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36)
36화
본격적인 무대가 이루어지기 전날인 오늘은 리허설을 진행하는 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단체로 방송국으로 이동하고,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당황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으아악! 깨졌어!”
“지영 쌤, 괜찮아요! 내가 여분 가져왔어!”
‘…프로그램이 대박을 친 이후로 지원이 늘었나 보군.’
무슨 전쟁터처럼 사람이 북적이고, 온갖 화려한 의상과 소품이 대기실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보통 드라이 리허설은 의상과 메이크업은 갖추지 않은 채로 진행하지만, 트레이너들의 피드백을 한차례 거쳐야 하는 연습생들이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갖추어 연습해 보는 것 같았다.
베팅을 거부한 팀의 탈락 위험 연습생들은 그대로 탈락했기 때문에 연습생 수는 꽤 줄어든 상태였지만, 대기실은 여전히 좁았다. 따라서 나는 내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공기를 쐬기 위해 대기실을 나섰다.
‘내 순서 될 때까지만 제대로 돌아오면 되겠지.’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마음에 딱 드는 휴식 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이라곤 한 명도 오가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제이 형, 저 진짜 못하겠어요. 흑. 흐윽!”
그런데 근처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훌쩍이는 소리가 간간이 섞여 있는 것을 보니 울고 있는 듯했다.
‘제이 형?’
아는 이름이 나와 잠깐 걸음을 멈췄다.
“나 어떡해애. 으어엉.”
목소리의 주인공은 양하준이고, 대화 상대는 제이인 것 같았다.
“흐으… 제 인하트그램에 자꾸 사람들이 애들 인생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댓글 달잖아요. 대본 제가 짜는 것도 아닌데!”
연습생들이 떠드는 것을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양하준은 훈훈한 비주얼과 좋은 목소리로 단번에 스타덤에 올라 화려한 커리어를 이어 가고 있는 배우라고.
‘그 ‘국민 오빠’가 마음고생하며 질질 짜고 있는 꼴이라니.‘
엮이면 귀찮아질 게 뻔해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채 10분도 가지지 못한 채 양하준이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얼씨구?’
토끼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눈을 하고는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휘청거리는 것을 보니 내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아예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어디가 맞는 방향인지도 모르고 휘청거리는 꼴이 제법 안쓰러웠다.
저놈의 팬들이 이 광경을 보면 기절하지 않을까.
‘허우대는 멀쩡한데 내용물은 이단비만도 못하군.’
“아, 미안해요.”
알아서 피해 갈 수 있도록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놈이 내 쪽으로 부딪혔다.
‘에휴.’
사복으로 입고 온 검은 셔츠에 양하준의 눈물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정신 빼놓고 이 험난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냐, 이 자식아!’라고 꾸짖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지금의 나는 후배이니 참겠다.
나는 양하준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몸을 똑바로 세워 줬다.
“조심하세요. 그러다 다칠라.”
“…….”
그러자 눈물을 머금은 눈동자가 나를 휘둥그레 바라봤다. 끼리끼리 모여 다닌다더니 어릴 적의 제이 놈과 참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는 손등을 들어 놈의 눈가를 꾹꾹 닦아 주며 말했다.
“울지 말고요. 뚝.”
“…네.”
양하준의 얼떨떨한 대답에 만족한 나는 놈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양하준이 망설임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스, 승범 군!”
“네.”
“화이팅! 응원할게요.”
비장하게 부르기에 뭔 말을 하려나 싶었는데 그냥 응원하는 말이었다. 선배가 후배에게 하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이상함이 있었지만.
‘아까까지는 맥없더니 지금은 또 쌩쌩하시고. 국민 오빠는 무슨… 아직도 애 같은데, 뭘.’
“감사합니다.”
피식 웃으며 말하자 양하준이 소녀처럼 입을 막고 나를 봤다. 슬슬 얼굴이 뚫어질 것 같아 나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멋있어…….”
뒤에서 뭐라 중얼거리는 것 같았는데 뭐,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닌 것 같았다.
* * *
“[Motorcycle> 팀 트레이너 피드백 듣고 무대 내려갈게요.”
실수란 실수는 다 했던 다른 팀과 다르게 우리 팀은 문제없이 리허설을 마칠 수 있었다.
멤버들이 말하기를 리허설보다 내가 연습실 거울 앞에 앉아 지켜보는 것이 더 떨린다던데, 그런 마음가짐이 생각보다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피드백을 받기 위해 일렬로 서자 트레이너들이 차례로 마이크를 들었다.
“한승범 연습생 얼굴이 아주 미쳤습니다. 무슨 얼음 왕자 같아요. 방송에 한승범 연습생이랑 번갈아 가면서 제 얼굴 나올 생각 하니까 벌써 위축됩니다. 저 어쩌죠?”
“그냥 받아들여요. 나는 승범이랑 카메라에 같이 잡히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하려고. 제 트레이너 신분이 정말 감사해지는 순간입니다.”
트레이너들은 모두 입을 모아 내 얼굴에 대한 칭찬을 한 바가지 쏟아 냈다. 지금까지 내내 봤으면서 뭘 또 새삼스레 언급하냐 하면, 바로 메이크업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자연스러운 느낌을 추구했던 공식 주제가 무대, 귀여운 느낌을 추구했던 1차 경연과 사뭇 다르게 이번에는 꽤나 강렬한 메이크업을 한 상태였다.
짙은 음영 메이크업은 한승범의 차가운 인상을 더욱 고고해 보이도록 만들었고, 회색 렌즈는 이질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눈깔 빠질 것 같아.’
건조하고 먼지 가득한 무대에서 눈알이 뻐근하긴 했지만, 이 정도의 결과를 낸다면 참을 만했다.
“무대 연출도 연말 시상식 같고, 원곡자들이 보면 아주 뿌듯할 것 같아요. 한승범이 리더만 잡으면 아주 난리 나네!”
“그리고 전체적으로 멤버들 평균 신장이 아주 크다 보니까 분위기가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이런 콘셉트는 얼굴이 아무리 예쁘고 잘생겨도 키랑 비율이 안 좋으면 멋이 안 나거든요. 멤버 참 잘 뽑았네요.”
당연했다.
내가 우강원을 멤버로 원했던 이유도 바로 이것에 있었다.
타고난 신체 조건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분위기는 절대 후천적으로 얻을 수 없으니까.
우리 팀은 죄다 180cm가 넘는 장신이었기 때문에 뭉쳐서 걸어 다니다 보면 주변 사람들을 아담해 보이게 만드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팀 분위기에 대한 칭찬을 듣자 간지나게 서 있던 멤버들이 헤벌쭉 바보같이 웃으며 무장 해제 된 채 나를 바라봤다. 칭찬해 달라는 눈빛이었다.
‘에휴.’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자 풀이 죽은 놈들이 끙끙거리는 소리를 냈다.
몸집은 산만 한데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어, 멋있다.”
결국 칭찬의 말을 한마디 하자, 놈들이 파아앗 효과음이 들릴 것 같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트레이너들이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다들 승범이한테 칭찬받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났구나? 여영아, 승범이한테 인정받고 싶어?”
“네!”
“아하하학! 너무 순진하게 대답하는 거 아니야? 여영아, 방금까지 멋있게 서 있었잖아. 콘셉트 지켜야지!”
“넵. 카리스마 있는 눈빛! 열심히 하겠습니다!”
“으흐학! 아, 나 쟤 진짜 웃겨.”
“이 팀 너무 좋아요. 다크호스인 것도 있는데, 팀 케미가 진짜 미치겠어.”
우리 팀은 지적할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개그로 대충 시간을 때울 생각인지 계속해서 농담이 오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분량을 채웠음을 직감한 제이가 슬슬 분위기를 정리했다.
“춤도, 라이브도 문제 될 게 없어요. 열심히 준비했네요. 좋아요. 이제 들어가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 * *
대기실로 들어오자 그 전에 리허설을 마친 도유다 팀이 있었다. 다른 팀은 축 처진 상태였는데,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는 광경을 보니 참 이질감이 들었다.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있으면 안 될 텐데.’
트레이너들의 시선에서 만족스러운 무대를 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혹평을 들었을 텐데, 놈들은 아무 생각도 없는 듯했다.
‘…도유다는 어디 갔지?’
그런데 그 화기애애한 멤버들 사이에 도유다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도유다의 멤버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도유다 어디 있어?”
“아하하! 트레이너님이 ‘무대가 왜 이 모양이에요?’ 하는데 등에 식은땀이 나지 뭐야!”
“그렇게 식은땀 흘릴 거면 열심히 연습하라고. 하하하!”
“아니지, 아니지. 연습은 네가 아니라 도유다가 해야지! 솔직히 노래 제일 못한 사람 걔 맞잖아.”
놈들은 수다를 떠느라 내 말을 전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자고로 연예인이란, 킬 각을 재기 전 반드시 카메라 설치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법이다.
‘카메라 없고, 마이크 없고.’
오케이, 접수.
한 발 앞으로 나아가 놈들 사이로 대가리를 비집어 넣었다.
그리고 주둥이를 털기 시작했다.
“누가, 뭘 제일 못해?”
“한, 한승범…….”
그제야 나를 발견한 놈들이 기겁하며 입을 벌렸다. 나는 그런 놈들을 쭉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니, A등급도 못 받는 실력으로 S등급을 지적하는 게 좀 웃겨서.”
“지적까지는 아니고…….”
“너는 누구야? S등급이면 얼굴을 알고 있을 텐데 잘 모르겠네.”
놈들의 변명을 무시하고 방금까지 신나게 도유다를 욕했던 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허리에 걸린 이름표가 눈에 들어왔다.
[D등급 56위. 김종원]진짜 웃기지도 않았는데 웃음이 실실 나왔다.
헛웃음 비슷한 것이라 해야 하나.
“너구나? 도유다가 살려 준 게. 탈락할 각오 하고 살려 줬더니 뒤에서 욕이나 하고 있네.”
“그게…….”
“에이, 승범아. 우리도 친구 사이인데 그렇게 서로 날 세우지 말자.”
멤버들의 무의미한 변명을 끊고, 무리의 중심에 있던 놈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했다.
한 번도 대화를 나눠 보지 않은 놈이었다.
이름표를 내려다보니 리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송한서……. 이놈이 이 무리의 우두머리 격이군.’
“친구라고 그렇게 도유다만 감싸면… 나 서운해. 나도 너랑 친구잖아. 같은 스무 살!”
‘개수작이나 부리고…….’
단순히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너스레가 아니었다.
무언가 지저분한 욕망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촬영 기간 내내 이화영에게 친한 척을 하다가 무시당하더니, 이번에는 내가 타깃인 것 같았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불쾌함뿐이었다.
“…도유다 어디 있는지나 말해.”
“그렇게 말하지 말고. 잠깐 앉았다가 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으면.”
송한서는 내 어깨 위에 스멀스멀 손을 올려, 아래로 지긋이 눌렀다.
자리에 앉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놈의 손을 뿌리치려는 순간, 익숙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한승범이 왜 너 같은 놈이랑 친구야?”
리허설을 끝내고, 이제 막 들어온 이화영이었다.
촌철살인 같은 말에 눈에 띄게 당황한 송한서가 애써 웃으며 답했다.
“…우린 다 친구지. 너도, 나도, 승범이도.”
대놓고 비웃음을 흘린 이화영은 이제 송한서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는지 대뜸 나를 보며 말했다.
“소품실.”
“뭐?”
“소품실에 있다고, 네가 찾는 놈. 상태 안 좋던데.”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고맙다.”
송한서 따위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이화영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말한다는 것은 상당히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의미했다.
빠른 속도로 걷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샌가 뛰고 있었다.
벌컥!
도유다의 멤버가 말했던 소품실에 겨우 도착하여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도유다는 커녕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감각을 곤두세워 보니 아래쪽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놈은 소품실의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원래 이 음은 나왔는데. 편해야 하는데. 이상한데. 나 잘할 수 있는데. 잘해야 하는데.”
딱 봐도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꿇자 놈의 흔들리는 시선이 그제야 나를 향했다.
“도유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숨을 몰아쉬고, 호흡에 쇠 긁는 소리가 섞여 나왔다. 절박하게 나를 올려다보는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혀, 형. 숨이, 허… 으. 헉, 숨이 잘, 안 쉬어져요.”
“…….”
어쩔 줄을 몰라 자기 좀 어떻게 해 달라는 얼굴에 말문이 턱 막혔다.
X발. 잠깐 보내 줬더니 뭘 어떡해야 애가 이 지경이 돼서 돌아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