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52)
52화
머리에 스쳐 지나간 무언가를 외면하며 두 눈을 꾹 감았다. 나는 그들의 프라이버시와 은밀한 취향을 존중해 줘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이게 다 도유다 때문이다.
나는 팬들의 그런 적나라한 덕질까지는 못 본 척 묵인하고 싶었단 말이다.
팬들은 내놔 내놔 하다가도 막상 떠먹여 주면 부담스럽다고 도망가는 이상한 행동 특성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원래 아닌 걸 내 말이 맞다고 우기면서 하는 덕질이 재미있는 것이라나.
도대체 무슨 심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휘둘리지 말고 너 할 거 하라는 소망이 담겨 있음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가끔은 달라는 거 줘도 되지 않나?’
정리를 마친 나는 차분히 제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는 팬분들께서 바라는 콘셉트라면 그게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소화할 것입니다.”
“에이, 그렇게 모범 답안 같은 소리 말고요. 한승범 연습생도 아, 이거로 배정되겠다 싶은 콘셉트 하나쯤은 있을 거 아니에요. 예상했던 것과 다른 걸 배정받아도 그때 열심히 하면 되는 거고, 그냥 재미로 한번 얘기해 주세요. 예능, 예능! 예능인 거 알잖아요?”
나의 궁극기, ‘팬들을 배려하며 질문 회피하기’가 먹히지 않았다.
제이는 내가 주로 어떤 패턴으로 답을 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으니, 이렇게 마음만 먹으면 훼방을 놓는 일 따위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저 자식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놀려 먹을 생각으로 가득 차 히죽거리고 있다.
“…저는 아마 카리스마 콘셉트로 배정받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나는 등급 평가 무대에서도 강한 콘셉트를 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2차 경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뭐라 답하기도 애매한 상황에 나는 그냥 가장 뻔한 답을 내놓기로 하였다.
“아, 역시 한승범 연습생은 이런 부분에서 둔하네요. 팬들이 자기를 어떻게 예뻐해 주는지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어요.”
누구나 예상했을 법한 답에 제이는 깔깔 웃으며 나를 마음껏 비웃었다.
‘알고 있어, 이 자식아! 모르는 척하는 거지!’
“제이 트레이너님은 뭔가 예상하고 계신 콘셉트가 있는 겁니까?”
저 눈치 없는 놈을 퇴치하기 위한 다음 기술은 역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나는 미소를 가장하며 대충 말을 돌렸다.
“당연히 귀여운 콘셉트죠! 야옹 승범 또 안 해요?”
취소. 퇴치 불가능이다. 저놈은 악이다.
저 표정은 눈치를 깠으면서 일부러 나를 놀리는 표정이었다.
‘아니 지 스케쥴도 바쁘면서 언제 다 챙겨 본 거야.’
어차피 선택권은 팬들에게 있었다. 우리가 어떤 콘셉트의 노래가 좋은지, 얼마나 하고 싶은지 고민해 봤자 시간 낭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떤 노래로 배정이 되든 나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소화할 자신이 있다는 것.
중요한 사실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렇군요. …저는 팬분들께 모든 선택을 맡기겠습니다.”
“네에, 알겠습니다!”
꾸역꾸역 답하자 제이는 다시 한번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나는 제이가 다음 연습생에게 질문을 이어 가기 위해 눈을 깜빡이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놈은 뭔가 불안해 하고 있었다. 평소부터 놈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눈치챌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요즘 좀 괜찮은 것 같더니, 갑자기 또 뭐가 문제인데.’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뭐, 놈이 갑자기 다운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이번에도 적당히 흘려 넘기면 될 것 같았다.
다시 활짝 미소 지은 제이는 우강원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우강원 연습생은 저번 1차 경연에서 잘못 찾아온 콘셉트, 물리적 심장 파괴자로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어떤가요. 이번에도 큐티 콘셉트가 기대되나요?”
“아… 사실 그때는 제가 실력보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많이 화제가 되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조금 더 완성된 모습으로 대중분들께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시켜 주신다면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이의 질문에 우강원은 난처한 듯 웃고는 정중하게 답했다.
우강원은 1차 경연에서 SNS 실시간 키워드를 점령하는 등 뛰어난 화제성을 누리며, 다수의 팬이 유입되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본인은 1차 경연의 결과에 대해 무언가 찜찜해하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콘셉트로 떴다는 불평은 아니었다.
놈은 그렇게 오만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예상하건대 놈은 집중된 이목에 감사한 마음을 가짐과 동시에 이래도 되는 것인지 불안감과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3차 경연에서도 또 억지로 귀여운 콘셉트를 배정받으면 4절 5절까지 가는 거지.’
본인이 소화할 수 없는 것을 떠맡아 괴리감으로 웃음을 주는 것은 한 번이면 족했다. 결국 그들의 관심은 실력에 대한 인정이 아닌 웃음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1차 경연은 그냥 운빨로 그 콘셉트를 떠안게 된 것이었던지라 타격이 덜했지만, 3차 경연은 대중의 투표로 진행되기 때문에 별개의 문제였다.
만약 같은 결과가 되풀이된다면 우강원은 대중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그런 것뿐이라는 사실에 낙담하게 될 수밖에 없다.
“좋습니다. 우강원 연습생이 앞으로 얼마나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줄지 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자, 그럼 첫 번째 곡의 소개로 넘어가 보도록 할까요? 저 또한 아직 무슨 노래들이 있는지 들어 보지 못해서 너무 궁금하네요.”
우강원의 의중을 눈치챈 제이가 부드러운 말로 받아 준 뒤, 본격적인 콘셉트별 곡 소개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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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콘셉트는 큐티 콘셉트입니다. 큐티 콘셉트의 노래를 작곡해 주신 작곡가, 김지수 님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작곡가 김지수입니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Survive IDOL 시즌 4에 이렇게 초대받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만든 곡, [First love>와 안무를 보러 가시죠!]스크린상에 나타난 김지수의 인사와 함께 여러 명의 댄서가 대형을 맞춰 서 있는 영상으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 부끄러운 내 마음, 너는 알까?
Hi hi my love.
콩닥콩닥 심장이 Bounce!
당신에게 전달해 줄래
발랄하고 깜짝한 멜로디와 함께 양손을 입 앞에 대고 엉덩이를 좌우로 콕콕 찍는 안무가 펼쳐졌다. 단적으로 말하면 가사나 곡의 퀄리티보다는 중독성을 중점적으로 짠 안무라고 해야 할까.
‘곡 난이도가 너무 애매하군. 댄스 브레이크도, 고음도 없으니 현장 평가용으로는 적합하지 않겠어.’
솔직히 말해서 별로였다.
“와. 완전 중독성 노린 노래네.”
“안무 재미있다.”
연습생들은 귀여운 콘셉트로 확 뜬 우강원을 보고 느낀 것이 있었는지 내심 탐을 내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것이 두 번이나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그저 흐린 눈을 하며 보고 있을 뿐이었다.
‘괜찮은 건 의상뿐인가.’
의상이 스쿨 룩이니 지금 딱 학생 신분인 연습생들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도유다라든가, 이단비라든가.
“전 저것도 좋은 것 같아요. 스쿨 룩!”
“너는 다 좋다고 하잖아. 싫은 걸 말하는 게 더 빠를걸.”
아니나 다를까 도유다는 스쿨 룩 의상을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팬분들이 제 교복 차림 보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근데 제가 이제 프로그램 때문에 학교를 거의 못 가게 됐으니까 이거라도 보여 드리려고요.”
“…….”
저렇게 바른 이유가 있었다니. 할 말이 없어졌다.
나는 쓰레기 새끼입니다.
못 들은 척 고개를 처박고 있으니 바로 다음 곡의 발표로 넘어갔다.
“네 번째 콘셉트는 청량 콘셉트입니다. 청량 콘셉트의 노래를 맡아 주신 [Tororo> 팀을 소개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Tororo입니다! 이번에 작곡한 [Marine Marine!>은 마치 바다를 연상시키는 청량한 곡이니까요. 우리 연습생 여러분들, 시원한 바다 바람을 떠올리며 준비해 주세요!]세 번째 곡이 끝나고 네 번째 곡의 작곡가들이 등장하여 곡을 소개했다.
– 준비하시고, 출발합니다!
3, 2, 1!
Marine Marine!
시원한 바다 바다
닻을 올리면 우리의 출발을 알리는 거야
댄서들은 네이비 컬러로 포인트를 준 새하얀 마린 룩을 입고 있었다. 단순한 안무 영상이기 때문에 실제로 무대에 오를 때는 더 퀄리티 좋은 의상을 입게 되겠지만,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감이 왔다.
[대장 반바지 니삭스 가보자고 ㅋ]‘이거구먼, 보고 싶다는 게.’
보아하니 내 팬들이 염원하던 의상과 대충 일치하는 것 같았다. 세련된 멜로디였고 포인트 안무도 잘 빠졌기 때문에 이 노래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내 몸에 저런 의상을 입었으면 축구 선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 이번에 한번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나는 저런 콘셉트를 생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꽤나 흥미가 있었다.
그러나 팬들은 ‘청량 콘셉트’라는 단어 외에는 아무런 단서도 받지 못했으니 이 곡에 투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여러분, 이거인 것 같습니다… 이거예요.’
팬들을 향해 텔레파시를 힘껏 보내자 도유다가 내 얼굴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물었다.
“형, 이게 그렇게 하고 싶어요?”
“…좋은 것 같아서.”
“저는 처음 들어봐서 감이 잘 안 오는데 형이 좋다고 하면 띵곡이겠죠. 그럼 저도 청량 콘셉트 됐으면 좋겠어요.”
뭔가 거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이왕이면 도유다 같은 메인 보컬이 있는 편이 좋았기 때문에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
“마지막 콘셉트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연습생들의 리액션을 충분히 찍었다는 제작진의 신호를 본 제이는 대본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대본이 이상한가?’
연습생들은 다른 곡을 설치할 때와 다르게 뜸을 들이는 제이를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제작진이 의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제이는 다시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카리스마 콘셉트의 노래를 작곡해 주신 작곡가는 프리즘의 히트곡을 다수 만들어 낸 작곡가이자 프리즘의 멤버, 차운입니다.”
그리고 놈이 입에 담은 말은 나의 평온을 모조리 무너트리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Survive IDOL 연습생 여러분. 프리즘의 차운입니다.]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이 목소리 또한.
나는 이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 유태 형, 나도 노래 쓰고 싶어요. 작곡하는 거 가르쳐 주세요.
제이는 아까와 같이 초조한 얼굴을 한 채 스크린 속의 그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제이의 눈빛에 서려 있던 아주 미약한 동정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제가 쓴 곡을 여러분께 선물해 드리기 위해 이렇게 찾아왔어요.]스크린에 보이는 저 인물은 내가 죽기 바로 전날까지 연락을 취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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