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53)
53화
콘셉트별 노래의 발표를 모두 마친 후 연습생들은 모두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3차 경연에 대한 기대감, 새로 만나게 된 룸메이트로 떠들썩해진 복도를 걸으며 마지막 곡이 공개됐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 와, 프리즘이야!”
– 대박, 우리 차운 선배님 노래로 무대 하는 거야?”
– 나 저 곡 배정받고 싶다…….”
연습생들은 차운의 곡으로 무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긍정적인 감정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차운은 내가 탈퇴한 이후로, 뿔뿔이 흩어졌던 멤버들을 모아 그룹을 재기시킨 장본인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스크린에 나타난 차운을 본 순간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기쁩니다. 떠오르는 샛별들에게 제 곡을 맡기게 되다니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것은 그저 녹화된 영상에 불과했고, 내게 건네는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초면인 사람에게 건네는 것 같은 인사말에 가슴께가 바람이 스미는 것처럼 서늘했다.
나는 이 감정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내 가슴을 이렇게 어지럽히는지 고민해 보았다.
‘…아.’
이것은 그리움이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
제이까지는 괜찮았다.
놈은 마지막까지 울며불며 내게 매달렸던 놈이었으니까.
정말 비겁한 생각이지만 놈의 그런 행동은 내게 편안함을, 안도감을 그리고 오랜 기간 성공의 기쁨을 함께 누렸던 이의 마음에서 나의 존재가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는 착각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은 제이와 달랐다.
내가 기억하는 놈들의 마지막 얼굴에는 나를 향한 실망과 분노 그리고 후회가 가득했다.
“…후.”
그 광경을 떠올리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 했는데, 어째서 자꾸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인지 정말 신에게 물어보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 [어떤가요? 열심히 작업해 봤는데 마음에 드나요? 제 노래가 여러분께 좋은 인상을 주었으면 좋겠네요.]
머릿속에 차운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하나의 장면이 지나가면 다른 장면이 나타나고, 모든 장면이 보여진 후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반복되었다.
놈의 인사말과 공개된 노래의 멜로디가 얽혀 마음을 어지럽혔다.
‘도대체 왜 노래를 그렇게 쓴 거지? 계속 그런 방식을 유지하다가는 대중이 언젠가는 눈치채게 될 거야.’
차운의 곡을 들은 나는 복잡한 마음을 도저히 다잡을 수 없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문제는 작곡 스타일이 나와 너무나도 유사했던 것이다.
이미 공개된 내 곡의 멜로디 라인을 명확하게 베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표절로는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의심할 수도 있었다.
‘차운이 전 멤버인 서유태의 스타일을 카피했다’라고.
딱히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애초에 놈이 나를 모방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내 감정이 아닌 대중들의 반응이었다.
‘굳이 표절이 아니더라도 창작자가 남의 스타일을 베끼는 것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욕을 먹을 수도 있어.’
작곡을 가르쳐 준 사람이 나였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놈은 작곡을 시작한 지 어언 7~8년 차가 되었다. 모방으로 학습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는 것을 대중들도 알고 있었다.
‘젠장, 설마 내가 그때 제대로 거절하지 않아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건가?’
프리즘은 셀프 프로듀싱 그룹으로 유명세를 얻었던 그룹이었기 때문에, 내가 탈퇴했다고 해서 다른 작곡가에게 노래를 받아서 활동을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억지로든 작곡은 프리즘 멤버들의 손으로 이뤄져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작곡의 책임은 내게 배운 지식으로 수록곡을 쓰는 연습을 했던 차운에게 돌아갔다. 그 상황에서 놈이 선택한 방법은 지금까지 활동했던 것과 유사한 스타일의 노래를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내 스타일을 카피하는 것은 아마 그때부터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기획사 내부에서는 차운의 노래는 프리즘의 타이틀곡으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강혁우로부터 시작된 말이겠지만.
– 대중들은 아직도 우리를 레전드 그룹으로만 보는데, 또 좋은 노래를 들고 나올 거라고 기대하는데 나는 그만한 노래를 못 쓰잖아요.
– 다 형 때문이야. 형이 우리를 무책임하게 두고 가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니까 책임져요.
차운은 강혁우를 통해 조용히 나를 찾아왔고, 어떤 요구를 해 왔다.
– 형이 쓴 곡, 내가 썼다고 하고 내면 되죠. 우리를 진심으로 아낀다면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당시 죄책감에 빠져 있던 나는 그것을 거절하지 못했고, 탈퇴한 후에도 프리즘의 곡을 계속해서 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차운은 작곡 공부를 그만 둬 버렸다.
‘그냥 차운이 쓴 곡 노래도 충분히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말해 줄걸. 그럴 가치가 있다고 목소리를 실어 줄걸.’
눈가를 손으로 꾹 누른 나는 방으로 들어와 바로 침대에 누웠다.
“…승범이 형 무슨 일 있어요? 아까 끝날 즈음부터 계속 상태 안 좋던데.”
“그러게. 걱정되는데 표정이 너무 어두워서 섣불리 물어보기가 어렵네.”
우강원과 도유다가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들렸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강혁우.’
나는 놈이 이 일에 관여됐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놈이 중요한 사실을 입에 담는다면 바로 지금이 그 타이밍일 것이다. 연습생들의 리액션이 잘 나왔는지 궁금하여 근질근질할 테니까.
강혁우의 이름을 속으로 부르자 바로 목소리가 들렸다.
– 네네, PD님. 반응 좋았다니 다행입니다. 우리 운이도 이제 슬슬 프리즘 노래 말고 다른 가수들한테 곡 주는 것도 해 봐야죠. 다른 히트곡이 하나쯤은 있어야 대중분들도 ‘차운이 작곡을 잘하네’ 싶을 거 아닙니까. 아, 저번에 보내 드린 선물은 잘 받으셨어요?
놈은 메인 PD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메인 PD는 기획사 관계자들과 은밀하게 소통을 하고 있었고, 그 대상 중에 하나가 강혁우였던 것이다.
‘하긴, 그 비열한 새끼가 아무 짓도 안 하고 있을 리가 없지.’
강혁우가 이런 연예계의 판을 뒤집은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을 리가 없었다. 나는 강혁우가 재빨리 제 몫을 챙기기 위해 합류했을 것이라 짐작했고, 그것은 적중했다.
‘강혁우.’
사용 시간이 한계에 달했는지 더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나는 다시 한번 능력을 사용했다.
– 어우, 저희 쪽에 맡겨 주셔서 저희야말로 감사하죠. 이거야말로 윈윈 아니겠습니까. 서유태 가고 그룹 이미지에 타격 많았는데, 이걸 계기로 좀 회복됐으면 좋겠네요. 네, 다음에 다른 프로그램 제작하시면 저희 쪽 애들 보내겠습니다.
‘강혁우.’
다시 한번 능력을 사용했다.
만약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된 시점이었다면 그냥 가만히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움직일 일이 없었으니 마음껏 능력을 사용했다.
– 박상중 그 친구는 이제 그냥 신경 끄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퇴출시킬 거라서요. 네. 어유, 걱정 마세요.
화제가 다른 것으로 옮겨 간 걸 보니 차운에 대한 얘기는 그 정도에서 마무리된 듯하였다.
‘이 새끼는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네.’
지금 당장 내가 얻고 싶었던 정보는 차운이 이 일을 원해서 맡게 됐는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였다. 그런데 메인 PD와 강혁우 사이에 지저분한 뒷거래가 이뤄졌다는 것 따위를 알게 되다니.
평소였으면 기꺼워했겠지만, 지금은 초조해지기만 했다.
‘차운.’
나는 다음으로 차운에게 능력을 사용했다.
서울까지는 아슬아슬하게 능력을 사용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 삐리릭. 삐리릭.
아주 작게 들리는 휴대폰 전화의 벨소리을 제외하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직 잘 시간도 아닌데. 왜 전화를 안 받지?’
시계를 봐 보니 저녁 9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자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뻔히 벨 소리를 들었으면서 전화를 받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 삐리릭. 삐리릭.
길게 이어지던 벨 소리가 잠시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또다시 능력이 한계에 달한 듯 도유다와 우강원의 대화 소리로 청각이 집중되었다.
‘차운.’
– …….
다시 한번 능력을 사용했지만, 들리는 것은 없었다.
이번에는 벨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방금 것으로 한계에 달했는지 눈앞이 뿌옇게 변하고, 피부의 감각이 무뎌졌다.
‘하, 이 정도까지 쓰면 아예 아무것도 못 하게 되네. 남아 있는 건 청각뿐인가.’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처음에 연습해 봤던 최대 사용 횟수를 넘으면서까지 능력을 사용해 생긴 부작용인 모양이었다.
보통 체력이 닳는 것만으로도 시각과 촉각이 날아가던가?
‘가진 게 이것밖에 없는데 이것마저도 멀쩡하질 않네.’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결과에 허무해져 속절없는 생각을 이어 가던 중 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들어온 것이다.
‘이미 우강원, 도유다, 이화영은 방에 있는데 누가 더 들어오는 거지?’
부디 카메라만 아니길 기도했다.
나는 꿈쩍도 할 수 없단 말이다.
그런 소망을 가질 즈음 도유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제이 트레이너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잠시 한승범 연습생에게 볼일이 있어서요.”
아무래도 방에 들어온 사람은 제이인 듯했다.
발걸음 소리가 올곧게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들어 보니 목적은 나였다.
‘힘들어 죽겠는데 타이밍 참…. 촬영도 끝났는데 도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나는 침대에서 몸을 꾸역꾸역 일으켜 세워 대충 제이가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 곳을 봤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한승범 연습생, 잠깐 밖에서 저랑 이야기 좀 해요. 지금 안 바쁘죠?”
“…네.”
솔직히 몸은 이제 한계였으나 남들이 보는 앞에서 거절할 수는 없었다.
놈은 무려 ‘대선배님’이었고 방금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던 나는 누가 봐도 안 바쁜 연습생이었으니까.
나는 무거운 걸음을 옮겨 앞장선 제이의 뒤를 쫓았다.
* * *
제이는 내가 평소보다 느리게 걸어오는 것에 대해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았다.
내 상태를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뭔가 생각이 많아 내 걸음걸이까지는 신경 쓸 겨를이 없어 그런 것 같았다.
‘데자뷰군.’
“…….”
“…….”
저번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앞장선 뒷모습, 날이 선 분위기. 뭔가 일이 터질 것만 같은 게 참 불안했다.
조용히 걸어가던 놈은 인적이 없는 곳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나를 향해 돌아보며 물었다.
“차운 형이 쓴 노래, 형이 죽기 전에 쓰고 다른 사람들한테 공개 안 했던 곡 후렴부 그대로 가져온 거 맞지. 클라우드에 남겨 둔 거.”
싸늘한 밤공기와 오한이 내 몸을 휘감았다.
회복되지 않은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아니.”
“거짓말하지 마,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차운의 곡이 가지고 있었던 두 번째 문제.
놈은 어째서인지 그걸 알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