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54)
54화
“…아니.”
망설임 끝에 나온 대답에 매서운 손아귀가 바로 목을 향해 뻗어졌다. 피부에 닿기 전 잠시 멈춘 그것은 곧이어 그 근처에 있던 옷깃을 낚아챘다.
나는 그 손에 시선을 한번 주고, 다시 놈을 올려다봤다. 제이의 얼굴에는 선명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고, 동공이 날카롭게 수축하였다.
거칠게 긁힌 목소리가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제이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내게 물어본 것은 정말 그것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닌, 마지막 확인에 불과했다.
그리고 놈의 생각은 맞았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채 클라우드에 박아 뒀던 곡의 후렴구를 그대로 가져올 줄은 몰랐다. 그것은 분명히 내 곡이었다.
‘죽기 전에 계정 정리 좀 해 둘걸.’
도대체 차운은 어떻게 내 계정에 접속할 수 있었던 것이며, 제이는 차운이 내 클라우드에 있는 곡을 카피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그걸 모르니 이 사단에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유출한 놈이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유출한 놈?’
생각의 흐름대로 거론된 단어가 뇌리에 박혔다.
그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놈, 혹은 하다못해 로그인을 허용해 준 사람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순식간에 사고가 정리되었다.
있었다.
내 계정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고 있고, 로그인을 허용할 수 있는 사람.
‘설마…….’
– 나는 네 보호자 같은 거니까. 편하게 의지하면 돼.
‘그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내가 죽고 한참 지났는데 자기 인생이나 살지 왜 남의 애들이나 들쑤시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너, 그거…….”
“형이 탈퇴한 이후로 나왔던 우리 타이틀곡들도 다 형이 쓴 거였고.”
정보를 제공한 사람의 정체에 대해 확인하기도 전에 제이의 입에서 폭탄 같은 말이 떨어졌다. 나는 혀끝에 맴돌던 질문을 미처 꺼내지도 못한 채 다시 머리를 굴렸다.
‘그걸 제이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설마 그것도 그 사람이 말해 준 건가?’
모든 일의 배후에 그가 있는 것 같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강혁우와 차운이 그에게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드러내는 짓을 할 리가 없었다.
제이와 차운은 그렇게까지 친근한 사이가 아니었으니, 차운도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남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강혁우는 제 회사의 소속 연예인들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놈이라면 제이와 프리즘 멤버들을 찍어 누르기 위해 말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용서할 수 없었다.
죽어도 비밀로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제안을 수락한 것이었는데.
놈과 한 약속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그래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에 나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강혁우가 말했어?”
“하.”
내 질문을 들은 제이는 새하얗게 질린 채 헛웃음을 뱉었다. 나는 놈의 얼굴을 눈에 담자마자 아차 싶었다.
‘떠본 거였어. 젠장.’
몸 상태가 안 좋으니 머리마저 잘 안 굴러가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딱딱하게 굳어 가만히 서 있으니 놈은 고개를 허탈하게 저으며 두 손에 눈가를 묻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정말이구나. 어쩐지 지금까지 히트곡이라곤 하나도 못 쓴 사람이 우리 노래만 쓰면 명곡을 뽑아내더라. 버러지같이 남의 것을 제 것이라고 속여 가면서 작곡가 이미지를 쌓았네. 우리는 그거로 계속 승승장구했고.”
물론 내가 부정한다고 해도 해서 제이가 그것을 믿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차운의 행보에는 다소 어색함이 있었으니까. 제이는 그것을 항상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관찰해 왔기 때문에 이런 탐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리즘이 이제껏 해 왔던 콘셉트를 유지하기 어려워서 그랬던 거야. 갑자기 노래 스타일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나는 살벌하게 차운을 매도하는 말을 부정했다. 같은 팀 멤버인데 저러면 분명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이는 개의치 않으며 제 말을 모조리 쏟아 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우리 힘으로 재기한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네. 혁우 형도 알고 있었고, 차운 형도 알고 있었는데 나만 멍청하게.”
“…….”
“차라리 정말로 멍청했으면 좋았을걸. 그랬으면 이걸 눈치채게 될 일도, 형을 이렇게 추궁하게 될 일도 모르고 있었을 텐데.”
나는 그 말에 어떠한 반박도 꺼낼 수 없게 되어 입을 꾹 다물었다.
프릭 때와는 달랐다.
이번에는 명백히 나의 잘못이 있었으니까.
나는 어찌 되었든 프리즘 멤버들을 속여 왔던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위한 선택이든, 아니든.
제이는 천천히 얼굴을 들어 올려 충혈된 눈동자로 나를 똑바로 봤다.
“형은 원망 못 해, 형이 어떤 사람인지는 질릴 정도로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프리즘은 이제 끝이야. 더는 안 되겠어.”
“뭐?”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프리즘이 끝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희들이 어떻게 버텼는데 그걸 버려.”
“우리들이 버텨? 아니야, 억지로 버틴 건 형밖에 없지.”
지금을 놓치면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황망한 마음에 되묻자 제이는 마치 준비라도 했던 것처럼 막힘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용해. 원래대로였다면 형이 탈퇴한 그날 다 끝났어야 했어. 우리는 너무 과분한 위치에 올라 버렸고, 형 없이 그걸 유지하는 것에 이미 지쳐 버렸거든. 차운은 아직도 프리즘을 손에 쥐고 있으려는 것 같지만, 현실을 봐. 이미 금이 가기 시작했잖아.”
놈이 저 긴말을 망설임 없이 뱉을 수 있었던 건 분명 수년간 반복했던 생각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인내심이 오늘 일을 계기로 폭발해 버린 것이다.
‘정말 프리즘이 해체되면 어떡하지?’
공들여 쌓은 모래성을 내 손으로 무너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작은 파도에 뒤편이 서서히 갉아 먹히고 있었는데, 성이 완전히 무너진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아 버린 듯한 허무함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도대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야.’
나의 의지와 다르게 상황이 점점 최악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분명 멤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지나고 보니 이 모양 이 꼴이었다.
– 우리는 20년 30년 나이 진득하게 먹을 때까지 프리즘 하자!
– 중소 아이돌이라고 비웃는 사람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 주자고! 우리는 꼭 성공해서 계속 그룹 활동 할 거야.
– 우리 서유태 씨가 있는데 뭐가 무섭냐! 나는 자신 있다.
이런 복잡한 사정 없이 그저 한 가지의 목표를 향해 다 함께 달려갔던 그 시절이 문득 떠올라 목이 메었다.
프리즘은 무능했던 엔터테인먼트를 억누르고 내 손으로 하나하나 가꾸고 키운 그룹이었다.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던 시기부터 아이돌의 정상을 차지하는 순간까지 내가 모두 함께했단 말이다.
“그게 어떻게 과분해. 너희들이, 너희들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내가 똑똑히 다 봤는데… 왜 그걸 스스로 놓으려고 하는 거야. 너는 지금 화가 나서 이성적으로 생각을 못 하는 거야. 그냥 다른 작곡가 노래 가져다 쓴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이렇게 망가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것이 나 때문이라면 더더욱.
나는 토악질을 억누르며 숨을 깊게 내쉬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무릎이 꺾일 것 같았다.
몸은 으슬으슬 떨리는데, 이마에 땀이 맺히고 내쉬는 숨이 더웠다.
‘왜 자꾸 제이 앞에서만 몸이…….’
왜긴 왜겠는가. 몸 함부로 굴리다가 한계까지 내몰린 상황에서 제이를 자꾸 만나게 되니 이러는 것이었다. 나는 놈의 팔을 지지대처럼 붙잡고 말했다.
“앞으로 너와 멤버들의 인생도 생각해야지. 노래의 원래 주인이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잖아. 내가 원해서 그렇게 한 건데.”
나의 애원에 조금 놀란 듯 벙찐 표정을 하던 제이가 단번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형, 바보야?”
“…….”
“그깟 정이 뭐라고 우리한테 이래? 나야 형이 이렇게 살아 있는 거 아니까 그나마 편하게 형 생각하지. 그런데 차운은 아직도 형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어.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는 않겠지.”
제이의 숨소리가 빨라졌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놈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발악하듯 소리쳤다.
“이미 죽었으니까, 죽은 사람은 말도 못 하니까 마음대로 가져가서 써도 되겠지. 차운의 머릿속에 있는 건 고작 이딴 생각뿐이라고. 형이 어떻게 이걸 몰라. 대단하신 서유태인데. 고작 20살짜리 어린애 껍데기 뒤집어쓰고 있어도 서유태인데. 모르는 척 좀 그만해!”
곡이 공개됐을 때부터 그건 이미 예상했던 사실이었다. 분명 알고 있었는데 제이의 입에서 들으니 새삼 충격적이었다.
“프리즘 멤버들에 대한 미련은 이제 버려. 이번 일을 계기로 알았겠지만, 그쪽은 이미 병들 대로 병들었어. 나도 그렇고.”
제이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아팠는지, 외면했던 진실이 아팠는지는 돌이켜볼 겨를이 없었다. 한계에 달한 체력과 함께 속에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미련하게 살 거야. 보고 있으면 내가 다 숨이 막혀. 결국 사람들 말이 맞았네. 우리는 결국 서유태한테 기생해서 피 빨아먹는 놈이었잖아.”
결국 놈이 화내는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제이는 이상하게도 내가 자신을 속였다는 배신감보다는 모르는 사이에도 계속 나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에 느끼는 죄책감이 더 커 보였다.
“…사람들 말 듣지 마. 본인이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도대체 누구 말을 믿는 거야.”
“형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잖아.”
“…….”
“지금도 내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으면서. 내가 형 말을 어떻게 믿어? 나는 형이 왜 죽었는지, 왜 그룹을 탈퇴했는지조차 아직 모르는데.”
변명처럼 건넨 말에 정곡을 찌르는 답이 바로 떨어졌다. 저 말이 맞았다. 나는 지금 놈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설명해 줄 생각이 있긴 한가?”
‘나도 더 이상 속이고 싶지 않아, 진심으로.’
숨기고 숨겨 왔던 진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막는 것이 힘들었다.
만약 모든 진실을 불어 버린다면 내 답답함은 가시겠지만, 제이에게 내 짐을 떠넘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초조하게 고쳐 쥐었던 주먹에 스르르 힘이 풀렸다.
“…….”
“그래, 기대도 안 했어.”
제이는 나의 침묵을 조용히 지켜보더니 뒤돌아섰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돌아가서 자. 내일도 촬영 있더라.”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축객령과 다름없는 소리에 나는 혼잣말하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비밀로 해서 미안했다.”
너희에게 최대한 상처 주고 싶지 않았는데, 좋은 일만 있길 바라며 노력했는데 왜 자꾸 일이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나와 관련된 일로 너희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이제와서 내 이름이 거론돼 봤자 누구에게도 행복하지 않은 결말이 될 테니까.”
“…….”
제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 후,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면 우강원과 도유다에게 걱정을 끼칠 수도 있었으니까. 몸 상태가 생각보다 많이 이상했으니까. 혼미한 의식 속에서도 서둘러 이 자리를 떠나야 하는 이유가 끊임없이 떠올렸다.
“…돌아가야 해.”
나는 도망치듯 다리를 움직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