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58)
58화
갑작스러운 이화영의 방문에 연습생들은 물론이고, 제작진들까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화영은 내가 배정된 곡의 인원이 이미 모두 차 버렸다는 것을 알고도 한참을 문 앞에 서 있었다.
결국 나는 놈을 데리고 자리가 남아 있는 연습실에 넣어준 후에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촬영 진행이 안 되는데 뭐 어쩌겠는가.
수고스럽게 내가 있는 연습실까지 찾아온 것은 참 불쌍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방송의 시스템이었고, 그걸 바꿀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이화영이 내 혼을 쏙 빼놓은 후 진행된 파트 분배는 그야말로 엿같았다.
놈이 말했던 것과 멤버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평등’하긴 했다. 다만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면 그 평등의 대상에 본인은 빠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콩알만 한 파트를 평등하게 나눠 받았네.’
조금 과장 보태서 파트의 40퍼센트는 강배영이 가져갔고, 나머지 멤버들은 강배영이 차지한 파트를 제외하고 남은 것 중 높은 음역대를 제외한 부분을 나눠 갖게 되었다.
물론 고음 부분은 모두 도유다에게 돌아갔고, 제대로 찍혀 버린 나는 가장 적은 파트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내가 저지른 행동에 책임질 자신이 있었다. 해결할 자신도 있었고.
“너라면 나를 이해할 거라고 믿어.”
“…….”
하지만 나를 짜증나게 만든 장본인이 이렇게 쫄래쫄래 쫓아다니며 입을 터는 상황까지는 참을 자신이 없었다. 딱 한 대만 칠까 수백 번의 충동을 참아 낸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아, 이 새끼 진짜 뒤지게 거슬리네.’
놈은 아침에 눈을 뜬 이후로 한시도 빠짐없이 내 뒤를 쫓아다니며 쫑알거렸고 숙소, 식당, 심지어는 화장실까지 쫓아오며 내게 계속 말을 걸었다.
“어떻게 배분해도 어차피 원망 들을 거잖아. 그럴 거면 나도 내 밥그릇 챙겨야지. 악감정은 전혀 없고 그저 합리적인 판단을 했을 뿐이야.”
이 자식은 파트 배분 끝났으면 좀 꺼지지, 왜 자꾸 내 옆에 알짱거리면서 자기변호 중인가? 꼭 남한테 죽을 만큼 피해 본 적 없는 애들이 저딴 말이나 지껄인다.
“나는 사실 화가 나면 아주 무서운 사람이야.”
나는 치약을 짠 칫솔을 입에 쑤셔 박으며 놈을 필사적으로 무시했다. 무시가 답이었다. 아침부터 내가 쫓기는 모습을 지켜본 도유다는 귀 옆에 검지손가락을 들고 빙빙 저어 보였다.
저놈 미쳤냐는 뜻이었다.
강배영은 눈앞에서 펼쳐진 도유다의 제스처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입을 멈추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바보가 아니거든. 공감 능력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
네네, 너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남을 희생시킬 수 있는 이기적이고 냉철한 사이코패스 자식입니다. 모두가 너를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만 너는 꿋꿋하게 살아요. 네 친구, 지인, 가족 모두 너랑 똑같이 생겨 처먹어서 네 행동을 무척 자랑스러워할 겁니다.
“배영 형, 지금 동선 정리하고 안무 카피하느라 바쁘지 않아요? 이렇게 승범 형 뒤만 쫓아다녀도 되는 거예요?”
보다 못했는지 도유다가 강배영과 내 사이로 파고들어 거리를 벌려 주었다. 그러자 강배영은 정곡이 찔린 듯 멈춰서 나를 뚫어져라 봤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안무 따는 법을 모르거든. 승범이가 춤 잘 추니까 도와주면 안돼?”
“…….”
결국 저것이 본론인 것이었다.
놈은 멤버들에게 앞으로 가르쳐 줘야 할 안무를 혼자 습득하지 못했고, 이를 해결해 줄 대상으로 나를 찾은 것이었다. 쓸모없는 자기변호는 쥐꼬리만 한 파트를 받은 내가 앙심을 품고 부탁을 거절할까 봐 이루어진 것으로 보였고.
고작 그딴 걸 위해 나는 지금 몇 시간 동안 귀에서 피가 나도록 시달려야 했던 것인가. 그냥 저놈을 기절시키고 이 럭키 센터를 탈주하고 싶었다.
대학이라곤 가 본 적도 없는데 인터넷에서 떠돌던 조별 과제의 공포를 느끼게 된 것 같았다.
이상했다. 내가 멱살을 잡고 팀을 끌어야 하는 일 따위는 이미 수도 없이 많이 겪어 봤는데 지금 이 상황이 유난히 개같았다.
“안무 어디까지 카피했는데.”
욱하며 올라오는 화를 겨우 진정시킨 나는 입을 헹구며 흘리듯 물었다. 겸사겸사 진행 상황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카피를 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 나는 계속 너 쫓아다녔잖아.”
“…….”
강배영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가로 기울이며 답했다. 놈의 움직임과 함께 드러난 목을 확 움켜쥐고 싶었으나 일단 참았다.
“…나를 쫓아다니지 말고 안무 카피를 해라.”
“너한테 부탁하려고 그랬지.”
타인의 마음은 그 상황에 직접 처해 봐야 알 수 있다더니 나는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참사는 과제가 빡셀 때가 아니라 사람이 개같을 때 벌어지는 거구나.’
“형, 수도꼭지 죽이지 마세요! 수도꼭지 죄 없어요!”
화가 치밀어 올라 수도꼭지를 꽉 쥐자 도유다가 옆에서 기겁을 하며 내 손을 떼어 냈다. 내 손에서 겨우 해방된 수도꼭지는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물줄기를 멈췄다.
“후…….”
생각해 보니 나는 참 운이 좋은 놈이었다.
1차 경연 때는 내 말만 듣는 병아리들과 배정되었고, 2차 경연 때는 덩치만 큰 호구들을 만나 최상의 퍼포먼스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나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행운으로 사람 같은 멤버들을 배정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분명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운을 소진해 버린 것일 터였다. 그러니 차운에 대한 일도 까발려지고 이런 개같은 팀원까지 만난 것 아니겠는가.
“승, 승범아?”
내가 깊이 숨을 뱉는 것을 본 강배영이 초조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본인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어이없는 짓인지. 하지만 제 손에 쥐여진 리더라는 책임을 다할 능력이 없으니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이었다.
‘진짜 한 대 치고 싶다.’
그것까지 파악하니 더더욱 화가 났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놈의 부탁을 수락했다. 어차피 이것은 내가 원하던 바였으니까.
강배영은 내게 춤과 관련된 부분을 모두 맡긴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내가 할 생각이었으니까 좀 가.”
“정말? 무르기 없다!”
“가, 좀. 제발.”
“그럼 나 이만 가 볼게! 고마워!”
내 목소리에 점점 짜증이 서리기 시작하자 강배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며 외쳤다. 놈의 뒷모습을 지켜본 도유다는 내게 페이퍼 타월을 건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무 형이 손해 보는 거 아니에요? 약간 호구 느낌도 좀 있는데.”
“뭐가.”
“그렇잖아요. 퍼포먼스 준비는 형이 거의 다 도맡아서 하게 됐고, 저 형이 하는 일이라곤 멤버들 줄 세우기밖에 없잖아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강배영에게 퍼포먼스를 맡길 바에야 그냥 이 지나가던 개에게 맡기겠다. 차라리 줄 세우기만 하는 게 다행이었다.
‘오히려 본인이 잘한다고 착각해서 나대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강배영은 무능했고, 그놈이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은 멤버 전원이 이미 알고 있었다. 실질적인 리더 자리를 뺏어오는 것쯤이야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었다.
“파트도 정말 쥐꼬리만큼 적잖아요. 형, 그 정도로 적은 파트 받아 본 적 없죠? 무슨 꽃병풍도 아니고 이렇게 생긴 사람을 뒤에 모셔 두기만 하나 몰라. 저는 솔직히 이렇게 보여 주기식으로 형한테 파트 조금 준 거 마음에 안 들어요.”
“…….”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듣고만 있으니 도유다는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들고 물었다.
“형, 정말 이대로 그냥 내버려 둘 거예요? 형답지 않잖아요.”
“내버려 두지 않으면?”
“저는 형이 가만히 안 있을 줄 알았죠. 왜, 형 주특기 있잖아요. 사람 멘탈 개박살 내고 약점 잡아서 협박하는 거요. 이번에는 엉덩이 걷어차고 파트 내놔! 하는 느낌으로 가는 건 어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농담이 반절 정도 되는 도유다의 말에 나는 결국 픽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도유다는 내 미소를 끄집어내고는 그제야 내내 늘어져 있던 눈썹 끝을 끌어 올렸다.
“저는 그래도 고음 파트는 모조리 떠안게 됐는데 형은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저는 그게 걱정이에요.”
“걱정하지 마. 잘 알고 있잖아, 내가 그냥 둘 리가 없다는걸.”
“그렇다면 다행인데요오… 형, 그러면 지금부터 안무 카피하러 갈 거예요?”
“아니. 어제 안무 영상 봐 둬서 이미 카피 끝났어.”
“재능충 정말 지겹다. 제가 그렇게 쉬라고 말했는데 말 진짜 안 듣죠. 그럼 이제 뭐 할 건데요? 강배영 형은 형이 이미 준비 끝난 줄 모르는 것 같았는데요.”
이미 안무 숙지가 끝났다는 말을 들은 도유다가 으, 하며 과장스레 앓는 소리를 내더니 다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씩 웃어 보이고 마치 이미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뻔뻔하게 말했다.
“나는 너랑 개인 연습 할 예정이야.”
“네? 저 그런 약속 한 적 없는데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도유다의 얼굴에 핏기가 사악 가시는 것을 본 나는 더욱 화사하게 웃었다.
“무슨 말이긴, 네가 지금 내 걱정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지.”
“…또 무슨 짓 하려고요. 저 뭐 잘못했어요?”
문답무용.
나는 도유다의 후드를 낚아채 연습실로 질질 끌고 들어갔다. 놈의 비명 소리를 들으니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조금이나마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 * *
연습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이후로 수일이 흘렀다. 오늘은 대형까지 모든 진도가 나간 상황이었고, 바로 내일 트레이너 중간 평가를 앞두고 있었다.
“이만 마무리하자.”
나는 태블릿을 조작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노래를 껐다. 마지막 점검을 위해 도유다와 늦은 시간에 만났지만, 놈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아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러자 도유다가 입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저 사실 무서워요. 작곡가분들도 온다고 하셨잖아요. 저 마음에 안 든다고 노래 못 준다고 하면 어떡해요.”
“아.”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대로 멈춰 서서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제이랑은 그렇게 헤어졌고, 차운은 그 모양인데 내가 어떻게 두 놈의 얼굴을 뻔뻔하게 볼 수 있겠는가. 갑작스레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설마 둘이서 싸우지는 않겠지?’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제이와 차운은 마주치지만 하면 싸우는 앙숙이었는데, 차운과 나의 관계가 밝혀진 이후로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치솟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술렁거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차분히 답했다.
“괜찮을 거야. 네가 거기 드러누워 있어도 어쨌든 노래는 줘야 해. 그게 계약적 책임이라는 거란다.”
“우리 개인 연습 한 거 의미는 있었던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센터인 그 형이 별로니까 다 별로인 것처럼 보이잖아요. 저는 아직도 형이 왜 트레이너 중간 평가를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당연하지. 내가 하는 일 중에 의미 없는 건 절대 없어.”
“…뭔가 기대하는 게 있는 모양이네요.”
“트레이너들은 그만한 자격이 있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거야. 아이돌이니 뭐니 대중들이 아무리 폄하해도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 그 사람들 앞에서 보여 주면 돼, 강배영이 억지로 차지한 그 자리가 얼마나 과분한 자리인지.”
내 설명을 들은 도유다는 잠시 생각하더니 기겁하며 숨을 들이켰다.
“설마 저한테 연습시킨 게 다…….”
내게 실질적인 리더 자리를 맡긴 것도, 동선 정리를 맡긴 것도 그놈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파트와 포지션 배분은 이미 끝났고, 강배영은 이제 멤버들을 통제할 힘을 잃으니 결과는 뻔했다.
나는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서 있는 도유다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내가 하는 일 중에 의미 없는 건 절대 없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