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제이 트레이너님, 연습실 입장해 주세요!”
오늘은 유태 형에게 잔뜩 신경질을 낸 후로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럭키 센터에 도착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 형, 바보야?
–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미련하게 살 거야. 보고 있으면 내가 다 숨이 막혀.
형에게 원망의 말을 쏟아 냈던 그 날의 기억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때는 너무 화가 나서 형을 되는 대로 몰아붙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정신이 나갔나 싶었다. 만약 프리즘 시절의 유태 형에게 그딴 말버릇을 보였다면 분명 용서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형은 그러지 않았다.
원래 형의 몸이 아닌, 마른 체구의 어린 몸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날카로운 말이 쏟아질 때마다 몸이 휘청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형은 내가 하는 말을 그저 듣고 있기만 했다. 그러고는 반대로 용서를 구하기까지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용서를 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용서를 구하는 것조차 과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아, 그만 생각해야 하는데.’
눈앞에 카메라가 있는데도 정신이 계속해서 흐트러졌다.
아마 지금 상태 그대로 병원에 가서 설명을 하면 의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타자를 치고, 약의 종류를 늘릴 것이다. 형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안 이후로 호전되었던 상태가 오히려 악화됐다는 말을 들을까 무서워 찾아가는 것을 미뤄 둔 상태였지만, 만약 이 증상이 지속된다면 더는 미룰 수 없을 것 같았다.
– 그래도 나와 관련된 일로 너희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이제 와서 내 이름이 거론돼 봤자 누구에게도 행복하지 않은 결말이 될 테니까.
원하던 대로 진실은 알 수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런 말까지 들었는데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겠는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몸 상태 안 좋아 보이던데 숙소까지 부축이라도 해 줄걸.’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서 억지로 고개를 돌리니 이제는 별게 다 신경 쓰였다. 한눈에 봐도 상태가 안 좋았는데 억지로 끌고 온 주제에 그걸 그냥 돌려보낸 게 후회됐다.
땅이 꺼질 것 같이 숨을 내쉬자 옆에 앉아 있던 트레이너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선배님, 많이 피곤하세요? 어제 술 한잔하셨나?”
“아니, 그냥 잠을 설쳐서.”
‘티가 날 정도인가.’
후배들이 눈치챌 정도로 피곤한 티를 내다니, 그 사실에 새삼 충격을 먹으며 억지로 테이블 위에 있던 자료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승범 군이 청량 콘셉트로 배정됐네요.”
“의외죠? 뭔가 팬덤 내에서도 다툼이 있었나 봐요. 정말 치열했어요. 결국 앞으로 못 볼 것 같은 콘셉트, 지금이라도 실컷 보자는 결론이 나온 것 같아요.”
‘그 형이 청량 콘셉트를 한다고?’
머릿속으로 ‘원래 서유태’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 위에 소년미 가득한 마린 룩 의상을 겹쳐 보니 정말 충격적이었다. 일단 그 로커처럼 치렁치렁한 긴 머리부터 에러였고, 근육질인 몸은 의상을 터트려 놓을지도 몰랐다.
‘호리호리한 몸 차지하더니 팔자에도 없던 콘셉트 하게 생겼네.’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미소 지을 즈음, 연습생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리고 우렁차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그래요, 어서 와요.”
그들의 인사를 받아 주다 보니 형과 눈이 마주쳤다. 형은 시선을 도르륵 도르륵 굴리더니 애매하게 다른 연습생들 사이에 섞여 인사를 건넸다.
“…세요.”
천하의 서유태가 내 눈치를 보다니.
눈을 땡그랗게 뜨자 형은 눈썹을 조금 찌푸리고 고개를 돌린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저건 어색해할 때의 표정이었다. 몸은 바뀌어도 표정은 정말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그 불편함이 한가득 묻어 있는 얼굴을 본 나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 천천히 미소 지었다.
일전에 말했던 것처럼 나는 형을 원망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짐을 지워 주고 싶은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나의 미소를 발견한 형은 짐짓 놀란 듯 숨을 멈췄다. 예전부터 웃음은 내가 보내는 화해의 신호나 다름없었으니까. 며칠이라는 시간 동안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 *
무언의 화해가 이루어진 후로는 차례로 중간 평가가 이루어졌고, 드디어 청량 콘셉트 팀의 순서가 다가왔다.
“어유, 배영이가 리더랑 센터 딱지 다 달았네? 미니 미션 덕을 톡톡히 보는구나.”
“좋은 모습 보여 드리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강배영이 트레이너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밝게 대답하는 동안 연습생들은 어미를 쫓는 새끼 오리처럼 형의 얼굴을 보며 대형의 간격을 맞추고 있었다.
‘얼씨구, 실질적인 리더는 우리 서유태 씨군.’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트레이너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이 팀의 진정한 리더가 누구인지.
“한승범 군은 얼굴이 정말 큰 장점인데 모자를 썼네요.”
검은 캡 모자를 깊게 눌러쓴 형의 모습에 트레이너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장점을 스스로 내버리는 것과 같은 선택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저 사람은 저가 지금껏 봐 온 사람 중 가장 유능하고, 치밀한 사람이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들의 무대를 지켜보기로 하였다.
“노래 주세요.”
– 준비하시고, 출발합니다!
3, 2, 1!
.
.
.
어느덧 노래가 중반부까지 진행되자 나는 어떤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무대의 퀄리티는 좋았다. 역시는 역시였다. 정갈하게 맞아떨어지는 대형,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안무 카피. 그야말로 ‘서유태’가 고집하던 것이 모두 지켜진 무대였다. 하지만 이 무대는 무언가 이상했다.
그 위화감의 정체는 주변 트레이너들 둘러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6명의 트레이너 모두가 오직 형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트레이너들은 결코 한 명의 연습생에게 주목해서는 안 되며 모든 연습생들을 동등하게,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의도적으로 다른 연습생을 보려고 했지만, 시야의 끝자락에 형의 모습이 스치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 것이었다.
저런 게 바로 천부적인 재능일까.
저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의 상처가 시큰시큰 아려 오는 것 같았다.
‘내 파트에서조차 저 인간한테 카메라 안 뺏기려고 얼마나 이를 갈아야 했는데.’
갓 데뷔했을 적에는 다른 멤버의 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감독들이 자연스레 형을 찍는 일은 정말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이 때문에 멤버들끼리 갈등을 빚었던 적도 있으니 당연히 내게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다만 그 시절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의도성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 거였군.’
나는 파트 배분 종이와 허우적거리는 강배영을 본 후에야 형의 의도를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1차 경연과 2차 경연에서는 적당히 조절을 한 것 같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강배영을 무너트리기 위해 작정을 한 사람이었다, 저건.
‘프로그램 시스템을 거스르는 지시를 할 수 있는 것은 트레이너들뿐이니까.’
형은 오늘 강배영이 얼마나 리더로서, 센터로서, 대다수의 파트를 차지한 멤버로서 얼마나 무능한지 내보이고 트레이너들이 그를의 손으로 강배영을 제 눈앞에서 치워 주길 바란 것이었다.
트레이너들이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감지한 강배영은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대형도 센터가 아닌 양 끝으로 시선이 퍼지도록 교묘하게 수작질을 해 둔 것이 보였지만, 강배영이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가운데에 서 있는다고 해서 무조건 시선이 집중되는 게 아닌데…….’
저 연습생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속속무책으로 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본인이 게으름을 피운 결과였으니 받아들여야 했다.
– Marine Marine……
– Marine Marine!
푸른 하늘 아래 푸른 물결을 봐!
잔뜩 위축된 강배영이 어물어물 후렴구를 이어 가던 중 귀를 확 뚫어 놓는 목소리가 들렸다. 3옥타브를 미를 찍는 초고음 애드리브었다. 도유다라는 이름표가 잠시 눈에 들어왔다.
‘[지배> 무대 리허설 때까지만 해도 적당히 대형 기획사 명함에 값하는 연습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저건 정식 파트가 아니었다. 소리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라이브를 가정하지 않고 넣어 둔 초고음 코러스를 애드리브처럼 소화한 것이었다.
‘이 인간이 진짜… 파트 뺏으려고 아예 작정을 하고 왔군.’
자기 잘했냐는 듯 우쭐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형으로 돌아가는 걸 보니 아마 형의 지시에 따라 벌인 일인 것 같았다. 답지 않게 껌딱지 하나 달고 다닌다 싶었는데 괴물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니.
정말 웃긴 점은 이미 강배영의 존재는 지워진 지 오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대는 전혀 부족해 보이지 않았고, 나머지 멤버들은 아주 평온했다는 것이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강배영을 제외한 팀 멤버 전원이 예상했던 것처럼.
클라이맥스가 지나가고, 형에게 유일하게 배정된 엔딩 파트가 시작되었다.
– 파도가 치면 저 넓은 바다로 향하는 거야
눈을 감은 채 초반부를 부르던 형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저 사람의 존재감은 파트를 줄이는 것따위로 절대 감춰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강배영은 이미 이 상황을 이해하기를 포기한 듯 텅 빈 눈으로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초조함을 느꼈다. 과거의 내 모습이 그에게 투영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는…….’
형이 턱끝을 들어 올리자 모자 때문에 내내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눈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짧은 변화만으로도 연습실에 있던 모두가 탄식을 뱉었다.
‘잡아먹힌다.’
그리고 그의 입가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는 것이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머리에 박혔다.
마지막 파트로 쐐기를 박듯 강배영의 존재감이 지워졌고, 연습실에 있던 모두가 단 한 사람을 지켜보다가 무대가 끝나 버렸다.
“감사합니다!”
무대를 마친 연습생들이 일렬로 섰다. 강배영은 창백한 낯으로 식은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Marine Marine!> 팀의 멤버들은 그에게 시선 하나도 주지 않았다. 마치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상황은 형이 의도했던 대로 흘러갈 것이다. 그만큼 형의 실력은 독보적이었고, 상황은 분명했다.
“강배영 연습생, 뭐 해요?”
“네?”
작곡가의 차가운 목소리에 넋을 놓고 서 있던 강배영이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강배영 연습생 지금 하나도 안 보여요, 한승범 연습생한테 잡아먹혀서. 센터가 보여야 하는데 지금 전혀 안 보이잖아.”
“…….”
“지금 거의 반절에 가까운 파트를 차지해 놓고 이렇게 하면 어떡해요. 이건 정말 책임감 없는 짓이야. 내 노래 이렇게 망칠 거예요?”
“…죄송합니다.”
“이거는 뭐 지금부터 센터 연습을 해 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네요. 누가 봐도 이 팀의 센터는 한승범 연습생이니까요. 저는 지금 강배영 연습생이 리더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에요. 멤버들이 완전히 한승범 연습생만 쫓아다니는데.”
다들 느낀 건 비슷했는지 나머지 트레이너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
“이 팀은 센터 교체랑 파트 재분배를 한번 고려해 보세요. 프로그램 규칙이니까 정 못 넘겨주겠다 하면 강요는 안 하겠는데 제 눈에는 지금 강배영 군이 포지션이나 파트나 좀 버거워 보이거든요.”
한숨을 푹 쉰 트레이너 하나가 강배영을 향해 말했다. 그 내용은 제안을 가장한 지시였다.
작곡가와 트레이너들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꿋꿋하게 고집을 꺾지 않을 사람은 그리 흔치 않았다. 강배영은 결국 스스로 파트와 포지션을 내놓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파트를 다시 배분해서 연습하면 시간이 촉박할 수도 있지만, 저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해내겠지.’
흘긋 본 형의 얼굴에는 역시나 당혹감따윈 없었다. 이 결과를 모두 예상했던 사람처럼.
“이제 들어가 봐도 괜찮아요.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대를 마치고 잔뜩 신이 난 도유다가 형의 옆에 기웃거리면서 소곤소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트레이너들은 제작진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에 정신이 팔려 듣지 못했지만, 나는 똑똑히 들었다.
“…허.”
강배영의 파트였다. 자기 파트를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을 연습생이 단순히 장난으로 다른 연습생 파트의 가사까지 전부 외울 리가 없었다.
‘리더에게 숨긴 채 몰래 연습을 해 왔군, 파트 변경이 이루어져도 아무 문제 없이 무대를 할 수 있도록.’
형은 애초에 강배영에게 대부분의 파트를 맡길 생각 따위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음 순서인 팀을 호명했다.
“…다음은 카리스마 콘셉트 팀 나와 주세요.”
그리고 해당 팀의 연습생들이 나오기도 전에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의 나긋한 목소리에 형의 무뚝뚝한 얼굴이 긴장감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죄송합니다. 스케줄 때문에 늦어 버렸네요. 아직 저희 팀 평가 시작 안 했죠?”
끝까지 오지 않길 바랐는데, 차운이 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