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61)
61화
남의 이야기는 엿듣지 말라.
이는 위대한 뭐시기 선조 여러분들께서 남기신 훌륭한 말씀이었다. 옛사람들 말 틀린 거 하나 없다고, 나는 그들의 말을 지키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다.
“혀… 한승범?”
가벽이 무너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등장한 내 모습에 제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차운은 놀라움보다 노여움이 큰지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봤다.
‘짜식, 성깔 한번 제대로네.’
순식간에 끌려간 몸은 벽에 난폭하게 떠밀렸고, 나는 바닥에 주저앉기도 전에 멱살이 잡혀 차운의 얼굴을 코앞에서 직시하게 되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들었어요?”
“…….”
‘어디서부터 들어도 다 끝장날 내용만 떠들어 댔으니까 물어봐도 의미 없는 거 아니야?’
불쑥 튀어나온 질문을 애써 무시한 나는 머리를 굴렸다.
지금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염.’을 시전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제이에게 했던 것처럼 내 정체를 밝히고 넘어가는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다 들어 버렸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차운은 그리 너그럽지도, 멍청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첫 번째 선택지를 골랐을 경우, 내 앞날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선배 가수가 후배 가수를 괴롭히는 것쯤이야 업계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두 번째 선택지를 고르면 나는 무슨 성냥팔이 소녀처럼 자신의 비밀을 팔고 다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미 한승범의 이모와 제이가 내 정체를 알고 있는 이상, 더 이상의 변수를 늘릴 수는 없었다.
‘차운은 신뢰할 수 없어.’
그리고 결정적으로 차운은 제이와 같지 않았다.
놈에게는 반항적인 면이 있었고, 배배 꼬인 성격으로 상황마저 꼬아 놓는 일이 종종 있었다. 만약 나의 비밀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 정체를 떠벌릴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결국 내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행할지는 온전히 나의 역량에 달려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계산을 마친 나는 차분히 차운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요.”
내 뻔뻔한 낯짝을 본 차운은 헛웃음을 뱉으며, 눈썹 한쪽을 끌어 올렸다. 딱 ‘얘 봐라?’ 를 얼굴로 말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변명 안 하네?”
“변명이라도 하면 속아 넘어가 주실 건가요?”
“아니? 그렇게는 못 하죠.”
놈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내가 말하긴 뭐했지만, 저놈의 인성은 정말 형편없었다. 만약 고분고분한 태도로 얕보이기라도 하는 날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소문을 퍼트려 내 평판을 땅바닥으로 끌어내릴 것이다. 제 약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지니 얼마나 편한 방법이겠는가.
“그럴 줄 알았어요.”
따라서 나는 보여 줘야만 했다, 나는 놈을 상대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유능하며, 만만치 않은 놈이라고. 감히 나를 해하려 들면 그에 어울리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은 놈은 다시 한번 내 멱살을 고쳐 잡고, 남은 한쪽 손으로 내 턱끝을 들었다. 그 억센 손길에는 이 당돌한 후배님의 얼굴을 기어코 봐야겠다는 어떤 의지마저 느껴졌다.
캡 모자 아래 감춰져 있던 얼굴을 확인한 놈은 피식 웃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조용히 속삭였다.
“이게 누구야. 화제를 몰고 다니는 한승범 연습생이네요.”
“…….”
“제이랑 같이 프로듀서 콜라보 무대 준비했던 친구 맞죠? 제가 유의 깊게 지켜봤던 아이들 중 한 명인데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어요. 이왕이면 내 노래에 배정되었으면 했는데.”
“제 활동을 긍정적으로 지켜봐 주셨다니 영광입니다.”
“그렇게 영광스러워할 만큼 열광적으로 지켜본 건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아요, 고작 연습생 주제에.”
“저희 프로그램에 소중한 곡을 맡기시기에 그 ‘고작’ 연습생의 협력이 필요한 줄 알았는데, 제가 넘겨짚은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하도 열광하기에 한번 믿고 맡겨 봤죠. 하지만 오늘 한승범 연습생도 봤듯, 돌아온 건 실망뿐이었는데요, 뭘. 연습생들 수준이 형편없었다는 말을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그래요?”
“저런, 그냥 곡을 공개하는 것과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하는 것, 두 가지 전략을 놓고 계산해 봤을 때 이쪽이 더 이득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것 아니습니까? 기부가 취미라면 차운 선배님의 판단을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건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요.”
숨 돌릴 새도 없이 빠르게 설전이 오가고, 날카로운 말을 족족 받아치는 내 모습에 차운은 제이를 돌아봤다. 이 새끼 도대체 뭐 하는 새끼냐는 눈빛이었다.
제이가 어깨를 으쓱이자 놈은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놈의 얼굴에는 약간의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내게 흥미를 느낀 것이다. 함께한 세월이 도대체 몇 년이었는데, 내가 이놈의 머릿속을 모를 리가 없었다.
딱 공략법을 알고 게임을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반절은 먹혀들어 갔군.’
호감을 얻었으니 다음으로는 내가 놈을 의도적으로 함정에 빠트릴 생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것을 생각하자마자 차운이 딱 알맞은 질문을 내게 던졌다.
“그 유명하신 한승범 연습생께서 쥐새끼처럼 숨어서 우리 이야기는 왜 엿들었을까? 어디 기삿거리로 팔아먹게?”
“당황스러운 건 오히려 접니다. 먼저 들어와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들이닥쳐 다투기 시작한 건 선배님들이니까요.”
그렇게 말한 나는 차운의 등 뒤로 손을 몰래 뻗어 허우적거렸다.
차운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제이에게는 분명히 보일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도움!’
내 신호를 확인한 제이는 이마에 손을 얹고 내 말을 거들었다.
“…그러고 보니 커튼으로 가려진 부분까지는 확인하지 않았지.”
“저는 커튼 뒤에서 조용히 혼자 쉬는 걸 좋아하거든요.”
“…한승범 연습생이 이곳을 자주 사용하는 건 저도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여기 사람 있다고 말이라도 그냥 해 주지 그랬어요.”
나는 이 휴게실에 와 본 적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놈도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인데 저러는 걸 보니 대충 눈치껏 내 편을 들어 주려는 모양이었다.
“너무 격하게 싸우고 계셔서 나갈 타이밍을 좀처럼 찾지 못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주의하지 않은 우리 잘못이죠.”
아주 그냥 죽이 척척 맞았다.
나와 제이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양을 지켜보던 차운은 한풀 꺾여 손의 힘을 풀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대화를 엿들은 것이 아니라는 구라를 믿게 된 것이다.
제이와 나는 아무리 봐도 큰 연줄이 없는, 그냥 트레이너와 연습생 사이였으니 억지로 편을 들어 주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터였다.
‘이때다!’
나는 차운이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구겨졌던 옷을 툭툭 쳐 펼치며 입을 열었다.
“이제 오해 풀리셨나요?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휴게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나 그 시도는 차운에 의해 바로 실패로 돌아갔다.
내가 문고리에 손을 얹기도 전에 뒤에서 빠르게 차운의 손이 뻗어졌고, 긴 손가락은 문의 잠금장치를 가볍게 건드렸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잠기고, 놈의 목소리가 뒷덜미로 떨어졌다.
“들어서는 안 되는 내용을 들어 버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그렇게 쉽게 보내 줄 수는 없죠. 낙관적인 편이라는 말 많이 듣죠?”
‘X바아알!’
“…저도 상식이라는 게 있어서 프리즘 선배님들을 적으로 돌리는 짓이 어리석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저는 남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떠벌리고 다니는 취미는 없으니 이만 보내 주시죠.”
“…….”
차운은 대답 없이 나를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그 시선에 약간의 초조함을 느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떠벌리는 사람들은 언젠가 화를 입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약속은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 말에 차운의 동공이 확장되었다가 축소되는 것을 반복하며 흔들렸다. 마치 크게 놀라기라도 한 사람처럼.
‘너무 많이 말했나? 이게 요즘 애들이 말하는 2절 3절인 건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에 조금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제이의 모습이 보였다. 저놈도 뭔가 이상하게 행동하는 걸 보니 차운이 도대체 왜 저러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재미있네요, 당돌한 재주도 있고.”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재빠르게 평정을 되찾은 차운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제이가 차운의 몸을 뒤로 밀어내고 우리 둘 사이의 거리를 떨어트렸다.
“적당히 하고 그냥 놓아줘. 우리 잘못이잖아.”
“…한번 두고 볼게요. 한승범 연습생이 말한 것처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녀 봤자 한승범 연습생은 후회만 하게 될 테니까요.”
차운은 어깨에 닿은 제이의 손을 매섭게 뿌리치고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경고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참견 하나 드려도 괜찮습니까.”
팔짱을 낀 차운은 어디 한번 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방송같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 선배님을 언급하는 건 삼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대중들이 눈치채게 되고, 그게 제 탓으로 몰리면 곤란하거든요.”
“…제이만 눈치챌 줄 알았는데, 한승범 연습생도 꽤나 눈치가 빠른 모양이네요.”
“지금 시점에서는 눈치채는 사람이 없더라도, 나중 일은 모르는 것 아닙니까.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언급 적당히 하고 씩씩하게 갈 길 좀 갔으면 좋겠다는 사심이 담긴 지적이었다. 그 말을 들은 차운은 조금 망설이더니 중얼거렸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저절로 속마음이 나온 거라.”
꺼질 것 같이 작게 뱉어진 말에 제이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
이놈들을 정말 어쩌면 좋냐.
제이도 그렇고, 차운도 그렇고 어째 멀쩡하고 살고 있는 놈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제가 만약 선배님이었다면 대중들이 쓸데없이 당신을 의심하지 않도록 언급은 되도록 피할 겁니다. 더군다나 서유태 선배님은 대중들에게 평판이 좋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서유태는 언론에서 떠든 것처럼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기자들 말도, 우리 회사 사람들 말도 안 믿어.”
“……”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딱딱하게 굳어 가만히 서 있자 차운은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우리 대화 들었잖아요? 자기 노래 훔쳐서 써먹겠다는 사람한테 ‘그래, 많이 가져가라.’ 하는 호구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어요. 한승범 연습생도 작곡하니까 자기 노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거 아니에요.”
“…글쎄요.”
내 건조한 반응에 차운은 욱하여 입을 열었다가 침음을 흘리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마치 믿을 수 없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처럼.
조금 휘청거린 차운은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피곤한 듯 빨개진 눈가를 손으로 훑은 후 천천히 문을 열며 말했다.
“너무 많이 말했네요. 나는 이만 가 볼 테니 약속 꼭 지켜요, 한승범 연습생.”
“네.”
그리고 휴게실 밖으로 빠져나가려던 놈은 몇 번씩이나 멈춰서고,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그 망설임을 겨우 끝맺은 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승범 연습생과 대화하다가 알게 된 건데… 어쩌면 나도 제이의 말처럼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남들이 아무리 욕해도 우리에게는 좋은 사람이었거든.”
“…….”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자기 아버지를 죽일 수 있겠어요. 나는 도저히, 도저히 못 믿겠어.”
그렇게 말한 차운은 이를 악물고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