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62)
62화
“…….”
나는 휴게실을 박차고 나가 버린 차운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더 이상 서유태가 아닌, 한승범일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으니 단단한 손이 내 어깨를 붙들었다. 기운을 북돋아 주려는 의도가 가감 없이 드러나는 그 동작에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제이를 돌아봤다.
“뭐야.”
그러자 걱정스러운 눈길로 내 얼굴을 보던 제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 괜찮은 거 맞지?”
“당연하지.”
“정말?”
“그럼.”
괜찮대도 제이는 내 등에 닿은 팔을 떼어 내지 않았다. 나는 진짜 괜찮은데 이놈이 이렇게 행동하니까 안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비죽 웃어 보인 나는 놈의 팔을 억지로 떼어 내며 입을 열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까지 눈치가 빨라서 사람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보냐. 나는 진짜 차운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다. 아니, 아니지. 본인도 몰랐던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알겠어. 네가 유별난 거지.”
“…….”
“끝까지 날 원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노래를 가져가서 쓴 것도 그래서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놈 속마음이 그럴 거라고는…….”
내가 끊임없이 머릿속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어 놓는 동안 제이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성질이란 성질은 다 낸 주제에 왜 갑자기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런 얼굴로 보지 말라고.’
놈의 시선은 아까 차운을 향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놈의 동정 담긴 시선을 외면하기 위해 땅바닥을 향해 고개를 처박았다.
“정말 꿈에도…….”
목이 메었다.
이게 다 제이 때문이었다.
저놈이 이상하게 행동하니까. 멀쩡하게 있던 아기도 호들갑을 떨며 괜찮냐 물어보면 울음을 터트린다. 이건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
화끈거리는 낯짝이 어색했다.
턱턱 막혀 오는 숨을 깊게 내쉬자 제이가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이럴 때 정도는 울어도 돼.”
정말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은 나는.
“징…….”
“징?”
“징그럽게 굴지 마라, 이 새끼야! 괜찮다고 몇 번 말해!”
‘울긴 뭘 울어 이런 미친.’
북받쳐 오는 감정이 쏙 들어가 정말 진심으로, 나의 모든 것을 걸고 괜찮아져 버렸다. 무슨 마법의 주문이라도 들은 것처럼. 제이는 한순간에 회복하여 허공에 주먹을 치켜든 나를 환멸을 담은 눈으로 바라봤다.
“나 형이 싫어지려고 해. 좀 감성적으로 살면 안 돼? 나는 기꺼이 형과 슬픔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으로 위로해 주는 건데 자꾸 그렇게 혼자 뛰쳐나갈래?”
“슬픔 같은 걸 나눠서 뭐 할 건데. 슬픈 사람이 두 명이 될 뿐인데. 나는 네 슬픔 나눠 갖기 싫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하기에 나는 콧방귀를 뀌고는 놈의 짜증을 외면했다. 쓸데없는 감정 소모 따위는 딱 질색이었다.
활짝 미소 지은 제이는 이를 악문 채 내게 물었다.
“나는 형이 싫어지려고 하는데, 그건 신경 안 쓰여?”
“네 감정은 네 자유지. 그것까지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냐.”
“형은 정말 최악이야.”
“그래? 나는 너 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뭐, 네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내가 너를 생각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을 거니까 걱정 말아라.”
“…나만 쓰레기 됐네.”
나는 그냥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한 것뿐이었는데 제이는 본인의 머리를 후려치고 있었다.
“야 야, 뭐하냐? 조금 있다가 또 스케줄 있을 거 아니야. 스타일링 망가진다.”
“머리가 무슨 소용인데. 지금 내 마음이 찢어졌잖아.”
“뭐라는 거야. 염병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띠링!
제이와 별 쓸모없는 대화를 나누며 어색했던 감정을 풀고 나니 휴대폰 알림 소리가 휴게실에 울려 퍼졌다. 나는 프로그램 규칙 때문에 핸드폰을 제출한 상태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것이 제이의 것임을 알았다.
“매니저야.”
핸드폰을 들어 연락을 확인한 제이가 짧게 말했다.
다음 스케줄을 위해 이동해야 한다는 연락이 온 것 같았다.
“나 이제 가 볼게. 아, 그리고 아까 말하는 걸 잊었는데… 형,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야.”
“무슨 말이냐?”
눈썹 한쪽을 삐딱하게 끌어 올리고 의문을 표하자 제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까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떠벌리는 사람들은 언젠가 화를 입기 마련이다.”
“그게 뭐가 어쨌다고. 빨리 말해.”
말할 거면 제대로 알려 주면 되지 저놈은 굳이 저렇게 돌려 말했다. 내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불퉁하게 말하자 제이는 한숨을 푹 쉬며 정답을 알려 주었다.
“우리 서유태 씨가 입버릇처럼 항상 말하던 거잖아. 차운도 그걸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텐데 그렇게 자꾸 실수하면 의심받을지도 몰라.”
순간 명령어를 잘못 입력한 것처럼 생각이 멈췄다.
내가 항상 하던 말이라고?
“뭐? 거짓말하지 마. 내가 그 말을 자주 했다고? 내 기억에 전혀 없는데?”
전혀 기억에 없었다.
금시초문이라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생각에 빠져 있자 제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자각 없을 줄 알았어. 원래 꼰대들은 자기가 매번 똑같은 소리 하는 줄 모르거든. 귀에 피 나는 줄 알았잖아.”
“진짜 한번 해보자는 건가?”
잔뜩 빈정거리는 말에 주먹을 꽉 쥐고 들어 올리자 제이가 꽥 비명을 지르며 등짝을 가렸다.
“아, 농담! 무슨 장난이 안 통해! 그리고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농담이든 맞는 말이든 둘 중 하나만 해라.”
“그래서 어떡할 건데. 이미 이상하다는 걸 느꼈을지도 몰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차운은 귀신같이 비현실적인 일을 절대 믿지 않는다. 닮았다는 생각하는 정도에서 그치게 될 것이다.
‘이화영보고 나 닮았다고 하더니, 닮은 놈이 둘이나 됐네.’
이화영의 존재가 놈의 머리에 이미 박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나는 차분히 제이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내 버릇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는 놈은 별로 없을 거고, 죽다 살아났다는 웃기지도 않은 소리를 덥석덥석 믿는 또라이는 더더욱 없을 테니까.”
“그거 설마 내 얘기야?”
“너 말고 누가 있겠어.”
“저는 그만큼 간절했던 거고요. 내 성의와 진심을 그렇게 폄하하지 말아 줄래?”
제이의 너스레에 웃음을 터트린 나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내내 신경 쓰였던 일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부탁 하나만 해도 되냐?”
“뭔데?”
“그 클라우드, 너는 아직 접속할 수 있는 거지?”
“응.”
“그럼 거기 있는 데이터 좀 네가 다 삭제해 줄 수 있냐?”
“…다 삭제해 달라고? 왜?”
내 부탁의 내용을 들은 제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이유를 물었다. 나는 건조한 어조로 그에 답했다.
“그냥, 어쨌든 이제 서유태는 돌아올 수 없고… 남은 사람들은 이제 슬슬 본인의 삶을 살아갈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
“차운이 언제 또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똑같은 짓을 반복할지 모르잖아. 아마 내 미공개곡이 남아 있으면 그놈은 영원히 내게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그건 맞지만…….”
나는 망설임이 가득한 제이의 팔을 붙잡고 호소했다.
“부탁한다. 이건 정말 진심이야.”
“…알았어.”
그러자 제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그에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시무룩해 보이는 놈의 등을 툭 쳤다.
“그럼 나는 이제 연습하러 간다.”
“이 와중에 또 연습을 하러 가?”
“당연하지. 우리 팀 변동 사항 많은 거 너도 알잖냐. 다 봤으면서 뭘.”
내 말을 듣고 중간 평가 무대를 떠올린 제이가 아아, 하며 수긍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매니저가 기다리는 차량으로 이동하려는 듯 몸을 돌리다가 멈춰 섰다.
“아, 그 강배영? 그 친구는 좀 조심해야겠더라.”
“왜?”
“그냥 감이지, 뭐. 걔는 눈깔이 글렀어.”
“뭔 헛소리야. 가라.”
나는 제이에게 손을 한 번 흔들어 주고 연습실을 향해 걸어갔다.
* * *
제이는 내가 만나 본 사람 중 가장 인간의 본성을 읽는 것에 능한 놈이었다.
놈이 거른 연예인들은 머지않아 논란에 휘말렸고, 놈의 심기를 거스르기라도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업계에서 도태되었다.
팬들이 놈을 ‘지뢰 탐지기’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는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됐다.
– 강배영? 그 친구는 좀 조심해야겠더라.
도대체 왜 지금 이런 생각을 하냐 하면, 결국 제이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도유다를 비롯한 멤버들을 향해 윽박지르고 있는 강배영의 모습이었다.
“너 일부러 그랬지.”
놈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발소리를 쿵쿵 내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차분히 연습실 문을 닫고 그를 내려다봤다.
“뭐를?”
“뭐긴 뭐야! 시치미 떼지 마! 설마 중간 평가 때 네가 저지른 일을 벌써 잊어버렸다고 하지는 않겠지!”
씩씩거리는 걸 보니 놈이 얼마나 흥분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밀어내고 연습실 내부를 둘러봤다.
‘카메라가 있는데도 이래? 진심인가?’
연습실에는 카메라뿐만 아니라 제작진까지 있었다. 문제를 일으키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거기까지 파악한 나는 강배영을 두고 연습실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놈은 씨익거리며 계속해서 쫓아왔다.
강배영이 뒤꽁무니에 졸졸 쫓아오는 것을 본 도유다가 으엑. 소리를 한 번 내고 놈과 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싸움이 날까 봐 미리 차단하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입가에 손을 대 가림막을 만들고 속닥거렸다.
“중간 평가 때 일 때문에 화났대요? 저희한테는 그냥 한승범 어디 갔냐고 신경질만 부려서 뭐가 문제인지 잘 몰라요.”
“몰라. 안 들어 봐서.”
“…안 들어 줄 거예요?”
“당연하지. 카메라 다 깔려 있잖아.”
주변을 둘러본 도유다는 아하, 하며 짧게 수긍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작진들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강배영을 보고 있었다. 아마 강배영이 더 날뛰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무시하지 마!”
나의 필사적인 노력이 무색하게 강배영은 주위를 꾸역꾸역 돌아와 기어코 내 앞길을 막아섰다. 그리고 길거리 불량배처럼 내 어깨를 강하게 밀었다.
“입이 있으면 뭐라고 변명이라도 좀 해 보지?”
“…….”
지난날의 악몽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강배영은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 놈이었고, 나는 안무 연습을 부탁받았을 때 이미 그것을 느낀 바 있었다.
나는 천천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오늘 재수 왜 이러냐?’
내 인생에 평온한 날이라곤 단 하루도 없긴 했다만, 오늘은 유난히 다들 나를 가만두지 못해 아등바등하는 것 같았다.
“내 말 안 들리냐?”
‘이 새끼는 카메라가 안 보이는 필터라도 끼고 있는 건가?’
나는 강배영의 얼굴을 조용히 관찰했다. 놈은 무언가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작진 쪽을 몰래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왜 화를 내면서 저렇게 카메라를 신경 쓰는 거지? 그 의문까지 떠올린 나는 그제야 놈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맙소사.’
놈은 이성을 잃어 본인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완전히 의도된 것이었으며 본인의 분노가 멋있다는 착각에 단단히 빠진 멍청이의 행동이었다.
차라리 논란거리를 일부러 만들어 뜨려는 전략이었으면 좋겠다. 이 폭력에 가까운 대리 수치에 그대로 노출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분위기 흐리지 않으려고 그동안 봐줬으면 적당히 눈치를 좀 채야 할 거 아냐.”
“…….”
중간 평가 때 해치운 줄 알았던 강배영이 근성을 시전했다.
강배영의 똥폼에 서유태는 99의 정신력 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