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64)
64화
“너, 어디 다쳤어?”
언제나 꼿꼿하게 등을 세우고 바르게 다니던 이화영의 걸음걸이는 어딘가 불편한 사람처럼 아주 조심스러웠다. 그 모습은 내게 위화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일어나 이화영을 붙잡았다.
그러자 이화영은 몸이 조금 흔들린 것만으로도 통증을 느끼는 건지 눈썹을 찌푸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허리 쪽이야?”
“신경 쓰지 마, 괜찮으니까.”
무뚝뚝한 목소리와 함께 이화영을 잡은 손이 뿌리쳐졌다. 그 말버릇과 행동에 열받기를 잠시, 이성이 나를 설득하듯 외쳤다. 저놈 싸가지에 ‘신경 꺼.’로 끝나지 않은 걸 감사히 여기자. 아픈 사람이니까 봐주자. 아니 근데 싸가지가 없잖아.
진정될 기미 없이 꿈틀거리는 울화를 다스리던 중 이화영은 다시 통증이 오는 듯 허리를 붙잡고 숨을 깊게 내쉬었다. 나는 그 모습에 걱정까지는 아니지만, 아주 조금 신경이 쓰여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정도면 통증이 심한 모양인데. 병원은?”
“됐어. 필요 없어.”
벌써 두 번씩이나 내 질문에 쓸데없는 답을 했겠다. 내가 도망 다녀도 졸졸 쫓아다닐 때는 언제고 자기 상황이 안 좋아지니 숨어 버리는 꼴이라니, 웃음도 안 나왔다. 나는 이마에 돋아난 혈관을 느끼며 활짝 웃었다.
“한 번만 더 내 질문에 물어보지 않은 답을 하면 네 의지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지금 당장 구급차를 부를 거니까 알아서 해. 나는 시간이 금처럼 아까운 사람이라 너랑 이렇게 씨름하면서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
내 비루한 인내심이 이제 한계에 달했다는 경고를 띠링띠링 울렸다.
이 자식이 정말로 한 번만 더 내 질문에 딴소리를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방을 뛰쳐나가 제작진들을 불러올 것이다.
이화영은 같은 방에 배정된 이후로 나를 보고 느낀 것이 있었는지 내 으름장을 의심하지 않고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놈이 나를 노려보든 말든 개의치 않고 똑같은 질문을 다시 던졌다.
“병원은.”
“…안 갔어.”
드디어 내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이 날아왔다. 나는 혀를 쯧 차고 두 번째 질문을 건넸다.
“아픈 곳 허리 맞지?”
“…….”
대답은 없었지만, 놈이 고개를 약간 숙이는 것이 보였다.
‘허리 쪽이면 문제가 심각해지겠군. 차라리 팔이나 다리였으면 안무를 조금 수정해서 보호대를 찬 상태로 무대에 오를 수 있는데 허리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
본인의 부상에 대해 이화영이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던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됐다.
“병원은 왜 안 가려는 건데.”
“병원에 다녀오면 연습에서 빠져야 할 수도 있으니까.”
‘역시.’
예상했던 답이었다.
이화영은 지금의 나보다는 갓 데뷔했을 적의 나와 사고방식이 정말 비슷했다.
‘설마 이런 부분까지 닮았을 줄은…….’
그냥 신경을 꺼 버릴까 잠깐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역시 마음에 걸려서 안 되겠다. 나는 성가신 건 바로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병원 같은 건 갈 필요 없어. 진통제 먹고 잠깐 쉬면 나아져. 제대로 된 치료는 프로그램 끝내고 하면 되잖아.”
심각한 듯한 내 얼굴을 힐끔 본 이화영이 변명하듯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냅다 고함을 질렀다.
“이런 멍청한 자식을 다 봤나!”
그러자 이화영의 파란 눈이 놀란 고양이처럼 휘둥그렇게 되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이화영이 화들짝 놀라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냅다 놈을 혼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치료를 받아도 완치 같은 건 절대 없어. 치료는 그저 더 악화되지 않고 현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에 불과하니까.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다치기 전의 몸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고. 성대도, 허리도, 다리도 마찬가지야!”
큰 소리가 나자 줄곧 눈치만 보고 있던 우강원과 도유다가 싸움이 난 줄 착각하고 허겁지겁 뛰어왔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그 둘이 이화영을 제압하기를 기다렸다.
“승범아, 진정해!”
그러나 우강원은 예상과 다르게 내 어깨를 붙잡아 내 몸을 이화영에게서 떨어트렸다. 그 몸놀림은 미친개를 제압하는 것과 비슷했다.
“아! 아니, 내가 아니라 쟤를 잡아야지. 지금 쟤가 문제고 내가 맞는 말 하고 있는데!”
“왜 그래, 승범아. 화내지 말고 말로 풀자. 니콜라스 많이 놀란 것 같은데.”
“형 이제 니콜라스 형이랑도 싸워요? 쌈닭 폼 쥑인다.”
‘이것들 진짜 가만 안 둬.’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강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나는 이를 으득 씹고 외쳤다.
“저 자식이 지금 허리 다쳤는데도 병원 안 간다고 버티고 있어서 그런다고! 잡으려면 나 말고 쟤를 잡아!”
“니콜라스, 정말이야?”
우강원은 내 말에 정말 몰랐다는 듯 놀란 얼굴로 이화영을 돌아봤다. 나는 두 사람의 애매한 기류를 느낀 후에야 놈과 우강원이 같은 팀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같은 팀의 멤버에게도 들키지 않았다니, 연습하는 동안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통을 참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안무 연습하다가 이렇게 된 것 같은데. 형, 이화영이랑 같은 팀이지? 얘 왜 이래.”
이화영에게서 제대로 된 답을 듣겠다는 생각을 저버린 나는 그냥 놈의 팀메이트에게 자초지종을 듣기로 하였다. 우강원은 내 질문에 기억을 더듬는 듯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팀 안무에는 아크로바틱을 응용한 동작들이 많거든. 고난이도의 동작을 기본기 없이 무리하게 강행해서 부상을 입은 것 아닐까? 그래도 내가 중간 평가 전까지는 멤버들이 부상을 입지 않도록 잘 살폈는데 이렇게 다쳤을 줄은 몰랐네. 많이 아파?”
“…별로.”
‘대충 감 오네.’
나는 이화영의 까칠한 답을 들으며 대략적인 추리를 마쳤다. 어제까지는 괜찮았다는 점, 함께 연습을 했던 우강원이 놈의 부상을 눈치채지 못했던 점, 그리고 그 사실을 우강원에게 계속 숨기려고 했던 점.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였다.
“너 개인 연습 하다가 다쳤지.”
“…….”
표정을 보니 정답이었다. 이화영은 정곡이 찔린 듯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나는 놈의 퉁명스럽고, 조금은 초조해 보이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어련히 잘할 테고 본인도 그걸 알고 있을 텐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초조해서 무리를…….”
말하다 보니 불현듯 어떤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고. 가끔은 아래도 봐.
– 계속 그렇게 위만 보고 있으면 너는 언젠가 네 아래에 있던 놈들에게 목덜미를 잡히게 될 거라는 말이야.
– 거봐. 내가 이겼다.
“아.”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얼빠진 소리가 입에서 나왔다.
초조하게 만든 원인이 나였네. 에헷.
뒤통수를 콩 때리고 혀를 빼꼼 내밀기도 전에 내내 철옹성같이 다물려 있던 입이 열렸다.
“…중간 평가 때 네 모습을 보고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확인 사살이었다.
그래요. 다 내 잘못이에요. 그걸 이제 알아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놈을 초조하게 만든 건 방금 내가 떠올렸던 2차 경연의 기억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때는 바야흐로 중간 평가를 한참 진행할 즈음이었다.
우리 팀의 무대를 진행하기 바로 직전, 나는 이화영에게 나름 충고를 해 준답시고 어떤 말을 했다.
– 제대로 하는 게 뭔지 보여 줄게. 잘 봐.
이화영은 그 후로 정말 내 당부에 따라 내가 강배영을 조지는 광경을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당연히 짬빠가 있으니 나는 이화영이 지금껏 했던 것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방식으로 강배영의 존재감을 지웠고, 원하던 결과를 이뤄 냈다.
내가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때와 목적을 가려 가며 본인의 존재감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발칙한 니콜라스 이화영은 내 바람과 다르게 본인보다 훨씬 능숙한 내 모습을 보며 경쟁심을 불태웠고, 지금처럼 무리를 하게 되었다.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감도 안 왔다.
이게 가르치는 것도 원래 하던 사람이 해야 하는데 나같이 독불장군인 놈이 하려고 하니 오히려 부작용만 생겨 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의도로 보라고 한 게 아닌데.’
심지어 놈이 배정받은 곳은 그렇게 의욕을 불태운다고 해서 해결되는 콘셉트가 아니었다. 이화영이 강점을 보이는 것은 보컬인데, 시크 콘셉트의 곡은 떼창 스타일로 노래를 안정적으로 넘기고, 퍼포먼스에 힘을 준 노래였으니까.
미묘한 죄책감에 뒤통수를 긁고 있으니 우강원이 나를 대신하여 이화영에게 말했다.
“지금 증상이나 통증의 정도를 봤을 때, 어쨌든 부상을 입은 건 확실한 것 같아. 만약 이대로 혹사하면 나중에 정말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아니, 후회할 거야. 그러니까 내일 해 뜨면 바로 치료하러 갔으면 좋겠어.”
“…….”
운동선수로 활약했던 우강원의 말이니 뭔가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고개를 끄덕일 법도 했는데 이화영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네가 아무리 연습에 참여하고 싶어도 건강이 안 좋아지면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계속 무대에 서고 싶거든 관리 잘해라.”
“몸살 났으면서 새벽에 찬 바람 맞고 돌아온 너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아, 물론 내게는 꼬박꼬박 말대답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
내가 제이와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을 때 이놈은 자고 있었을 텐데, 그걸 어떻게 알고 있나 의아했다. 그에 대해 묻자 놈은 입을 아예 다물어 버렸다.
‘딴소리하면 가만 안 둔다고 협박했더니 그냥 입을 닫아 버리네.’
아주 창의적으로 말을 안 듣는다. 뻣뻣해진 목덜미를 주무른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앞으로도 해야 할 무대는 충분히 많은데 프로그램 하나 찍자고 평생 쓸 허리 망가트릴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지금은 잘 쉬어 둬.”
“3차 경연은 포기하라는 소리야?”
내 말의 의미를 귀신같이 깨달은 이화영이 공격적인 어투로 물었다.
“완전히 포기하라는 말은 안 했어요. 댄스 퍼포먼스에서 빠지라는 말이겠죠!”
언성이 점점 높아지자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도유다가 냉큼 덧붙였다. 슬슬 이화영의 고집에 내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똑같은 말이잖아, 그러면 현장 평가 점수를 포기해야 하니까. 너도 알고 있잖아.”
“등수는 조금 내려가겠지만 그래도 탈락은 안 하겠죠. 객관적으로 봐도 형은 득표수가 너무 높으니까요.”
“…….”
“잘 회복하면 4차 경연 같이해 줄게.”
나는 한풀 꺾인 이화영의 모습에 이때다 싶어 초강수를 뒀다. 그러자 이화영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그리고 곧장 답했다.
“그 말 꼭 책임져. 내가 충분하다고 할 때까지 연습에 어울려 줘야 할 테니까.”
“그래.”
“…설마 네가 이렇게까지 내게 신경 써 줄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왜, 너를 혼낸 사람은 내가 처음이냐? 너는 부모님께도 혼난 적 없는데?”
드라마나 만화 속에서 도련님들이 자주 했던 대사를 따라 하자 이화영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함께 피식 웃음을 흘렸다.
굳이 이놈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없었는데,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과거의 나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