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65)
65화
내게도 과도기는 있었다.
허리까지 머리를 기르고 시커먼 손톱을 하기도 했으며, 무대에서 산발이 될 때까지 머리를 흔들어 재낀 적도 있다.
그 당시 나는 소속사와의 갈등이 최고조로 오른 상태였고, 반항하는 마음으로 별짓을 다 했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회상해 보면, 하지 말라니까 오히려 더 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객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다 히트 쳐서 문제였지.
치아로 기타를 뜯겠다는 말도 했지만, 그것은 적당히 하라며 동생이 말려 주었다.
– 이거 놔. 내가 아이돌의 역사를 다시 써 주마!
– 끌어내.
천만다행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뭔가에 사로잡힌 것처럼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쨌든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진 그 스타일에 정착했던 나는 요즘 아이돌들이 하는 머리나 스타일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한승범의 몸에 들어오게 된 이후로 나는 그것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 가지게 되었다.
또한 프로그램이 후반부에 접어들며, 팬들의 화력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외적인 변화는 불가결했다.
– 형, 요즘 이상하게 모자 자주 쓰네요. 사람들이 너무 얼굴만 보고 감탄하니까 공허한 마음에 얼굴을 가려 버린 건가요? 미남들만 알 수 있는 세계인가요?
– 뭔 헛소리야. 나 탈색해야 하거든. 머리 이틀이나 안 감았어.
– 으에, 모자 절대 벗지 마세요. 저는 깨끗한 사람이 좋아요.
카메라가 돌아가는 트레이너 중간 평가에서도 모자를 쓰고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승범이 어서 와!”
“안녕하세요.”
“얘기해 준 대로 머리 안 감고 왔지? 탈색 덜 아프게 하려면 어쩔 수 없어.”
“네.”
나는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숍인 한승범 이모의 숍에 온 참이었고, 자연스럽게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라 VIP 룸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그쪽으로 보내는 것을 보니 아마 한승범 이모의 지시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서 오세요. 저번에 본 이후로 오랜만이네요.”
아니나 다를까 VIP 룸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승범의 이모가 은근하게 웃으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장난스레 건네진 인사에 마주 웃으며 답했다.
“급하게 말씀드렸는데도 바로 예약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굳이 VIP 룸까지는 내주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흰 탈색 약 외계인처럼 발라 놓고 그대로 사진 찍히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내 말 들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은 엄청난 화제성을 누리고 있다고요.”
“…….”
“뭐, 우리 승범이 얼굴은 그렇게 만들어 놔도 예쁘겠지만. 아무튼…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몰래 촬영 당하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잖아요. 제 눈에는 당신이 그런 걸 즐기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배려 감사히 받겠습니다.”
“좋아요. 저는 헤어 담당이 아니라 시술 대부분은 다른 분이 와서 해 줄 거예요. 다들 실력 좋은 사람이니 안심하고요.”
이미 내 성격에 대해 많은 부분을 파악한 것인지 한승범의 이모는 내가 의문을 내보일 필요도 없도록 여러 말을 늘어 놓더니 VIP 룸에서 나가 버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제발 나가서 들어오지 말아라.’
진심으로 그렇게 바랐다.
한승범의 이모를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숍이 업계에서 가장 좋은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방문했지만, 양심이 욱신거렸다.
저렇게 웃고는 있지만, 저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만약 내 동생의 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참을 수 있었을까?
분명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도 그놈한테 짐 지워 주기 싫어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도 못 알려 줬는데, 뭘.’
한승범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가족을 만나서 그런 걸까.
오늘따라 유난히 서유성이 보고 싶었다.
.
.
.
언제나 그렇듯, 나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 명의 스태프가 내게 매달려 머리를 마치고 나가니 한승범의 이모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VIP 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말했다.
“역시, 우리 조카 얼굴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 정도로 밝게 탈색하면 보통 안 어울리는데 참 잘 어울리네. 예쁘다.”
“…….”
내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한승범을 향한 칭찬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거울을 우두커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승범의 이모는 내가 어색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금방 슬픈 기색을 지워 내고는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뭐 하는 겁니까?”
“우리 숍 홍보용 SNS에 올리려고요. 이미 대기 중인 연예인 밀어내서 우리 숍에 자리 만들어 주고, 오늘은 급하게 예약 잡아 주기까지 했는데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요. 그렇죠?”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승범 이모의 행동을 내버려 두었다.
“…마음대로 하시죠.”
찰칵, 하며 몇 번 더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메신저 알림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삽시간에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연락이기에 저렇게까지 정색하는 건지 몰랐으나, 대충 개인적인 연락이겠거니 하며 무시했다. 그러자 한숨을 푹 쉰 한승범 이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승범이 새엄마예요. 요즘 하루에 두세 번씩 메신저가 오네요.”
“아직도 연락하십니까?”
이제 나는 그 집에 살지 않고, 그 사실은 한승범의 이모도 알고 있을 텐데 그녀가 연락을 받아 줘야 할 필요는 없었다. 이에 의아하여 묻자 한승범의 이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쪽이 거취를 옮긴 후로는 단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어요. 심지어 승범이가 있었을 때도 그 여자는 저한테 먼저 연락을 준 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먼저 연락하고,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았죠. 승범이한테 별일 없는지 물어보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최근 들어 갑자기 연락이 오게 되었다, 이 말이죠?”
“네. 자기 아들 우리 숍에서 메이크업해 줄 수 없냐는 부탁을 한 2주 전부터 했어요. 저는 이미 자리가 꽉 차 버렸기 때문에 그건 어려울 것 같다고 거절했더니 계속 이 상태네요.”
“그 친구가 메이크업을 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가족사진은 이미 찍었고, 졸업을 앞둔 것도 아닌데 청담동에서 가장 잘나가는 숍에서 일반인이 메이크업을 받을 일이 뭐가 있냐는 말이다.
사고 쳐서 결혼하나?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이마를 손으로 짚은 한승범의 이모가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아니 갑자기 무슨 배우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기획사에 오디션 보러 가는데 그때 조금이라도 예뻐 보이게 메이크업 받게 해 달라고 했어요.”
“…배우요? 한재운이?”
나는 귀를 의심하며 한승범의 이모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녀는 내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모르겠어요. 그 집 아들도 이제 슬슬 본격적인 수험 생활 준비해야 할 텐데 왜 갑자기 그러는지…….”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승범 동생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사람을 얼굴로 판단하는 것은 뭐 하지만, 한승범의 동생, 한재운은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씨는 같으니 닮은 구석이 한 군데쯤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특별한 끼가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연기력이라도 좋은가. 그것 또한 아니었다.
‘그 불명확한 발음을 고치기 전까지 배우는 꿈도 꾸지 말아야지.’
아이돌만 한평생 해 왔던 내가 배우의 재능에 대해 아주 잘 안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이 여자의 반응을 보면 애초에 이전부터 연기에 관심이 있었거나 두각을 보였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갑자기 왜 그러는 거지?’
“뭐 전해 들은 거 없었어요?”
어울렸던 시간이 극단적으로 적어 단서가 부족했다. 뭔가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 내가 인상을 찡그리자 한승범의 이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나는 본인의 조카도 아닌데 굳이 저런 표정을 지을 것까지야 있나 싶었다.
“아니요.”
“…그 가족들이랑은 아예 연락 끊은 거예요?”
“저는 지금 소속사와 계약을 하고 기숙사를 얻게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가족들과 연락하거나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이상한 사람들은 빨리 손절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서유태의 삶을 살며 뼈를 깎는 고통과 함께 얻은 교훈이었다.
그 이상한 집단에 소속될 생각도, 관계될 생각도 없었기에 서둘러 이유인과 접촉했던 것 아닌가. 곧 데뷔하면 억대로 돈을 쓸어 모을 텐데 그들과 연락을 취할 생각은 없었다.
“앞으로도 할 생각 없고요.”
단호하게 말하자 한승범의 이모는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게 나을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여자 연락은 그냥 제 선에서 모두 끊을게요. 애초에 내가 연락할 때는 본 척도 안 하더니 이제 와서 자기들이 필요해지니까 연락하는 건 너무 뻔뻔하잖아요.”
“번거롭지 않다면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번거로울 리가요. 지금 이 상태로 가만히 참고 있는 게 더 번거로워요.”
적당히 상의가 끝남을 짐작한 한승범의 이모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승범이 아버지한테는 먼저 연락 안 오던가요?”
“…네. 한 통도 안 왔습니다.”
굳이 왜 그런 질문을 하나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 여자는 한승범의 아비에게 일말의 기대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설마 같은 핏줄이라고 기대라도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결국 그놈도 제 아들이 말라 죽어 가고 있는데 전혀 알아보지 못한 놈이잖아.’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면 웃기지도 않은 기대였다.
찝찝한 기분을 좀처럼 지워 내지 못하던 내 앞으로 갑자기 한승범 이모의 얼굴이 다가왔다.
“…….”
“…….”
그녀는 한승범의 볼을 애달프게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나를 향하지 않은 그 눈동자에 아쉬움이 아닌 동정이 서려 있음을 느끼고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승범이는 자기 아버지만큼은 의지했는데… 정말 슬픈 소식이네요.”
– 혹시 승범이 아버지한테는 먼저 연락 안 오던가요?
아까의 질문에 담겨 있었던 미약한 희망과 간절함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리석고도 미련한 한승범의 것이었다.
* * *
시선이 따가웠다.
복도를 걸어가는 내내 동물원의 원숭이, 아니 런웨이를 걸어가는 모델이 된 기분이었다.
SU 엔터테인먼트에 연락을 하여 벤을 타고 돌아왔지만, 럭키 센터 내부에서까지 변한 머리카락을 숨길 수는 없었다.
이름도 외우지 못한 이들이 떼로 몰려와 칭찬을 늘어놓는 것은 정말 내 정신력을 한계까지 몰아세웠다.
‘피곤해…….’
그들을 피해 개같이 달린 나는 겨우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에는 도유다가 홀로 태블릿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인기척을 눈치챈 놈은 태블릿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아, 형. 외출 잘 다녀오셨어요?”
“어.”
짧은 대답을 들은 후에야 도유다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봤다.
그리고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하며 입을 틀어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오, 미남.”
딱 한마디를 뱉으며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