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68)
68화
트레이너 중간평가 때 한승범의 활역을 지켜본 나는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처음 겪어 보는 완벽한 패배감이었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한승범과 같은 무대에 서 보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지만, 그것을 본 이후로는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나는 그 감각을 떨쳐 내기 위해 과한 연습을 강행했고, 그 결과는 바로 몸으로 나타났다.
– 이런 멍청한 자식을 다 봤나!
나를 향해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한승범이 갑자기 내게 상관하게 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들켜 버렸고, 그는 부상에 트라우마라도 있는 사람처럼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부상 입었던 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
한승범은 나와 동갑으로 고작 스무 살이었다. 연습생 기간도 얼마 되지 않는 그가 연습 중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더 이상 부상을 입는 것을 절대 지켜볼 수 없다는 듯, 4차 경연을 함께하겠다는 딜을 걸면서까지 나를 설득했다. 그리고 그에 그치지 않고, 엉망진창이 된 내 무대에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
연습은 처음에는 그가 시범을 보이고, 문제점을 짚어 준 후 내가 스스로 개선점을 찾아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누구나 해 줄 수 있는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한승범이 내게 보여 준 시범은 그간 쌓여 왔던 답답함을 단번에 뚫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는 정말 나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가 맞을까?
“시크 콘셉트 팀 입장하겠습니다! 3, 2, 1!”
그런 의문을 다시금 떠올리고 있을 즈음, 스태프가 카운트를 세고, 등을 떠밀었다.
나는 그에 따라 덩그러니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안무를 추지 못하는 내가 파트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무대를 두 개로 나누어 진행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메인 무대에 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팬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졌다.
“진짜 다쳤나 봐…….”
“그러면 노래만 하는 건가? 어떡해…….”
팬들의 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피아노 소리로 반주가 시작되고, 내 머리 위에 흰 조명이 들어왔다.
그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어째서인지, 한승범의 말이 떠올랐다.
– 이야기가 어떻게 어떻게 새어 나갔는지 사람들은 기사를 보고 드디어 ‘그’ 이화영이 꺾이는 것이냐며 떠들고 있잖아. 그리고 그건 네 멤버들도 별반 다르지 않지.
한승범의 말이 맞았다.
– 그래도 니콜라스한테 우리 표 뺏기는 없을 테니 다행이지.
– 그래, 걔가 좀 꺾여야 우리도 보일 거 아냐. 나 중간 평가 때 트레이너들이 니콜라스만 칭찬해서 솔직히 걔 좀 빠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 사실 니콜라스가 다친 것도 신이 도와준 거 아니야? 하하!
알고 있었다. 지금 저 메인 무대에 서 있는 멤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쯤은.
마이크를 손에 꽉 쥐자 장갑의 가죽이 뻑뻑한 소리를 내며 마찰되는 것이 느껴졌다.
속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화가 난 건가?
“…….”
한승범의 무덤덤한 얼굴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 분하지 않아?
둥, 둥, 둥.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손끝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 보여 줘, 네가 어떤 놈인지.
익숙한 감각이었다.
한승범이 내게 시범을 보여 줬을 때와 완전히 똑같은 느낌이었다.
– 방법은 이미 알고 있잖아?
쿵, 쿵, 쿵.
심장의 박동 소리가 귀를 사로잡을 즈음,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자에 맞춰 마이크를 빼 손에 들고, 스탠드를 크게 가로로 빙글 움직이자 어깨에 얹어 둔 흰 재킷이 망토처럼 펄럭였다.
기억 속의 한승범의 움직임과 나의 움직임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게 느껴졌다. 스탠딩 마이크를 활용하여 짠 그 안무는 허리의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면서도 텅 빈 무대 꽉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치밀하게 짜여 있었다.
– 네 단점은 너무 본인의 스타일이 확고해서 어떤 노래를 불러도 비슷한 느낌이 난다는 것이지. 지금이야 괜찮을지도 몰라도 언젠가는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어.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 네가 편한 대로 부르지 마.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더 콘셉트에 몰입할 수 있을지 고민해.
한승범의 말 한마디로 기존의 스타일을 버리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정체된다는 공포. 그것이 나를 훨씬 더 두렵게 만들었으니까.
나는 오늘을 기점으로 저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 어둠을 비추는 달빛 아래
Diamond보다 귀중한 걸 훔쳤어
첫 입을 떼자마자 인이어를 통해 흘러 들어오는 목소리가 완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한 박자, 음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걸 모르고 있었다니…….’
작곡가가 도대체 어떤 이미지를 그리며 이 곡을 만들었는지,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모두 이해됐다.
이 곡의 가사는 여인의 마음을 훔쳐 달아났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내가 관객들에게 전달할 이미지는 달빛 아래의 괴도였다.
목소리는 속삭이듯, 밀회를 즐기는 것처럼.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창법이었지만, 괜찮았다.
작곡가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환한 얼굴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 되찾으려 노력할수록
내 뒤를 쫓을수록
점점 벗어날 수 없게 될 거야
왜냐하면
푸른색으로 변한 조명이 창문 사이 드리우는 달빛처럼 내 얼굴 위에 비쳤다. 그리고 장미 꽃잎이 강풍기를 통해 나를 에워싸듯 흩날렸다.
카메라 어필을 위해 손을 앞으로 펼치고 있으니 어느샌가 꽃잎 하나가 손바닥 위에 올라와 있었다.
나는 그것을 후 불어 날리며 속삭였다.
– 너는 이미 나를 사랑하잖아?
끼이이익!
내 파트를 마치자 찢어지는 듯한 환호, 본격적인 노래의 시작을 알리는 바이올린의 소리가 울리며 나를 비추던 빛이 사라졌다.
메인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며 무대가 전환된 것이다.
나는 완벽하게 시작을 끊었다.
이다음부터는 멤버들의 차례였다.
– 네 심장을 훔친 건 바로 나야
Catch me
Until the moon goes down
아무리 애써도 도망쳐 보일 테니까.
과하게 달아오른 관객들의 반응에 그들은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당혹감 따위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너희는 그저 내가 깔아 놓은 판에 휘둘리기만 하면 돼.’
.
.
.
곡이 후반부에 이를 즈음, 나는 곧 내게 펼쳐질 미래를 예상했다.
“…….”
‘중간 평가 때와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겠지.’
쿵, 쿵쿵! 쿵!
강렬한 비트와 함께 시작된 이 댄스 브레이크가 끝나면 바로 내 차례가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제이 트레이너에게 지적받았던 부분이었다.
멤버들과 나의 무대가 단절된 것처럼 어색했던 이유는 그들이 내가 파고들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멤버들이 나를 아주 싫어하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승범은 달랐다.
– 사회성도, 말주변도, 남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도 없는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멤버들을 설득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네가 언제부터 남의 눈치를 봤다고.
– …그럼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야.
그는 콘셉트 배정일 당시, 출연 연습생들에게 거부당해 좋은 곡을 잃었던 기억으로 잠시 위축되었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인지 내 태도를 지적했다.
그리고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 그냥 잡아먹어. 네가 가장 잘하는 거잖아.
그 말이 다시금 귀에 맴돌며 순식간에 시야가 확장됐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물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 어떤 게 ‘제대로’ 하는 건지는 이미 본 적이 있지?
내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담고 있는 카메라, 인원이 많은 무대가 아닌 내가 서 있는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 인이어를 통해 흘러나오는 MR.
무대의 모든 요소가 마치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인식됐다.
중간 평가 때의 한승범은 작은 동작 하나만으로도 모두의 시선을 가져왔다. 그 움직임에는 노련함이 있었으며,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종류의 재능이 담겨 있었다.
‘그건 내가 지금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야.’
한승범에게 춤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무기는 무엇이지?
눈앞에 놓인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 Um…….
아주 작은 소리로 시작하여 비브라토의 폭을 점점 빠르게 바꾸며 커진 목소리는 이윽고 아주 큰 울림에 도달했다. 그러자 빠른 템포의 댄스 브레이크에 흥분됐던 관중석이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해졌다.
‘한승범의 안무가 없더라도, 내 노래만으로 충분해.’
짧은 허밍 하나만으로 모두가 나를 지켜보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느끼며 드디어 내 페이스를 되찾았음을 실감했다.
왜냐하면, 노래는 이미 엔딩에 도달했는데, 관객들은 앞의 무대를 모두 잊어버린 것처럼 나를 보고 있지 않은가.
“…….”
1, 2, 3.
그 어떤 음도 들리지 않는 정적이 흘렀다.
공연장의 울림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 이 지루한 세상에 내보이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당신
이별 따위는 영원히 찾아오지 않으면 좋을 텐데
장미와 레이스들로 화려하게 꾸며진 마이크 스탠드는 흰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는 파트너의 손을 쥐듯 그중 가장 굵은 레이스를 잡았다.
그리고 무도회의 한 장면처럼 스탠드를 기울여 잡으며 속삭였다.
– 이건 우리의 Last Dance
눈을 감고 나를 느끼면 돼
철컥.
오페라의 막이 내리듯 조명이 꺼지는 소리가 나고, 커튼이 재빠르게 무대를 가렸다.
“꺄아아악!”
“아아아!”
“니콜라스!”
“이화영! 이화영! 이화영!”
내 모습은 커튼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데도, 내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고개를 들어 메인 무대쪽을 보니 멤버들이 숨을 몰아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텅 빈 듯한 눈동자는 본인들의 미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메인 무대로 이동했다.
동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그들의 방심이 초래한 결과였으니까.
“후…….”
마지막 인사를 위해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중, 한승범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 순서를 위해 무대 옆의 통로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한승범의 큰 눈동자는 크게 벌어진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언제나 무표정으로 일관되었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며 등허리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한승범에게 인정받았다는 희열과 내 성장에 대한 기쁨이 뒤엉켜 마음을 어지럽혔다.
커튼이 열리고, 관객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상태였다.
“한승범.”
이름을 부르자 그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리고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나는 그를 향해 부러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그를 지목했다.
한승범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와아아아!”
“이화영! 이화영!”
인정해라.
네 옆에 서기에 나만큼 어울리는 이는 없다는 사실을.
보아라.
네가 길들여야 할 이는 도유다만이 아니라는 것을.
“내 무대, 봐줬어?”
나는 한승범을 가리키던 손가락을 말아 쥐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내 의도에 따라 함성 소리는 더더욱 커져 피부를 오싹하게 만들 정도의 울림을 자아냈다.
그에 다시 한번 미소 지은 나는 입 모양으로 말했다.
나는 결코 꺾이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