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70)
70화
‘휴, 조질 뻔했네.’
개인 득표수를 확인한 나의 심정은 딱 이것이었다.
‘자빠져 있는 놈 도와주다가 등에 칼 맞을 뻔했어.’
하마터면 이화영에게 1위를 뺏길 뻔했다.
사람들은 성장 서사를 좋아한다. 특히나 지금처럼 프로그램이 후반부에 접어들어 각 출연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시기에는 더더욱.
부상을 당하여 그룹 퍼포먼스에 참여하지 못했던 이화영이 오히려 큰 폭으로 성장하여 나타나는 장면은 사람들에게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1위: 한승범] [2위: 이화영]흥분한 관객들은 당연히 이화영에게 표를 던지게 되었고, 약간은 객관성을 잃은 투표에서 이화영은 역대급의 득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팬덤이 견고하게 형성된 시점이 아니었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팀 노래가 경연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한몫했겠지.’
일단 즙을 짜거나 빡센 콘셉트의 노래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사실 경연에서는 우리 팀의 곡처럼 밝은 느낌의 노래는 불리했다.
예를 들자면 걔는 칼 들고 내 대가리를 따려고 덤벼드는데 나는 주먹 하나로 승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물론 나는 한 손으로도 애송이들을 개같이 밟아 줄 정도의 초월자였기 때문에 지지 않았다.
내가 몇 년을 해 먹었는데 질까 보냐.
허, 참나. 어이가 없네.
가서 코코넨네 더 하고 와라, 이런 애송이 놈.
“야. 잠깐 얘기 좀 하자?”
이화영에 대한 내면의 공격성이 점점 커지던 중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 으, 하는 소리를 냈다.
‘아, 진짜 적당히 좀.’
강배영이었다.
* * *
강배영과 나는 카메라를 피해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중간 평가 때 내가 벌인 일에 대해 책임을 물으려는 생각이겠지.’
그 와중에 저번처럼 멤버들에게 개무시당하기는 싫었는지 나만 쏙 빼서 불러낸 걸 보니 조소를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이곳에 나온 유일한 이유는 카메라 때문이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충돌을 통해 나는 이놈이 카메라 앞에서 돌발 행동을 벌일 수도 있다는 아주 성가신 결론을 얻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연습생들과 각도별로 설치된 카메라 앞에서 치고받고 싸우느니 차라리 이게 나았다.
‘그리고 나도 슬슬 참아 주는 거에 질렸고.’
오늘 이 자식을 아가리로 털어 버리겠다.
그렇게 다짐한 나는 구석진 방의 소파에 앉아 입을 열었다.
“말해.”
“솔직히 말해 봐. 네가 다 꾸민 거지?”
“뭐를?”
꼴등이라는 처참한 결과에 대해 탓하고 싶은 건지, 파트를 뺏긴 것에 대해 탓하고 싶은 건지 분명히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어느 쪽도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중간 평가 말이야! 1차 경연이나 2차 경연 때처럼 적당히 멤버들 배려하면서 조절할 수 있었는데 일부러 그런 거잖아, 트레이너들 앞에서 나 쪽 주려고.”
“…….”
“뭐라고 말이라도 해 보시지?”
쪽 주려고 한 게 맞았다. 하지만 마냥 내 탓만 하고 있는 것 같아 그대로 인정해 주기에는 너무 꼴 받았다. 그래서 나는 강배영이 싫어할 만한 말만 쏙쏙 골라서 해 주기로 하였다.
“조절을 안 한 게 아니라 그냥 네 실력이 허접해서 안 보인 거야.”
“뭐?”
“억지로 센터 먹은 게 이화영이었으면 어땠을까? 네가 그렇게 얕잡아 보는 도유다는? 이렇게 됐을까?”
“그건…….”
“매력도 없어. 피지컬도 안 돼. 노래도 못 불러. 그렇게 특기라고 자랑하고 다니던 춤도 내 눈에는 형편없지. 가진 게 뭣도 없으면 성격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그것도 이 모양 이 꼴이야. 이러니 누가 너를 봐줄까.”
신랄한 평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자 강배영은 잠시 벙찐 듯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네가 도유다만 편애해서 그런 거 아냐. 나도 네가 도유다처럼 챙겨 줬으면 충분히 잘할 수 있었어! 저번에 방송 보니까 도유다는 따로 연습도 시켜 줬으면서, 나는 센터였는데 그걸 못 해 줘?”
“실력으로 얻은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너 별로거든.”
“야!”
“말해 봐, 네가 어떻게 나한테 도유다랑 같은 취급을 받을 수가 있는지. 반성하고 연습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떼나 쓰고 있는 놈을 내가 왜 배려해 줘야 하냐고. 너 걔가 하루에 몇 시간 연습하는지는 아냐?”
도유다만큼의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닌 주제에, 놈의 반절도 못 따라가는 연습량을 소화하면서 감히 내게 배려를 요구하는 꼴에 화가 나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은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며 이를 짓씹었다.
그에 나는 코앞까지 다가왔던 놈의 몸을 손으로 툭 밀어냈다.
“나는 허접한테 안 맞춰. 거지 같은 무대 하기 싫으니까. 그러니까 너도 적당히 하고 가서 연습이나 해. 혹시 몰라, 코피 터지게 연습하면 네 비루함이 조금이라도 가려질지.”
“…….”
그리고 분한 듯 주먹을 움켜쥔 채 나를 노려보는 놈을 두고 자리를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나는 분명 경고했어, 후회할 거라고.”
평소 같았으면 그냥 흘려들었을 그 말에 발이 추라도 달아 놓은 듯 무거워졌다. 뒤를 돌아보니 강배영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긴장감에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언가 큰일을 앞두고 있는 사람처럼.
그 기이한 웃음에 마음이 어수선해져 물었다.
“뭐?”
“너같이 거만한 새끼들한테는 참교육이 필요하거든. 누구 하나 참교육으로 매장하는 거 해 보고 싶었는데, 잘됐어.”
‘…참교육?’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낸 강배영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저격 글이라고 들어 봤냐?”
“…….”
“사람들 심리가 참 이상하거든. 먼저 터트린 사람 말을 믿게 되어 있어. 나중에 아무리 반박해도 다 변명이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강배영이 몇 번 조작한 핸드폰에는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가 열려 있었다.
“우리 고상하신 한승범은 그런 거 모르나? ‘[Survive IDOL> 3차 경연 청량 콘셉트 팀 내 따돌림을 고발합니다.’, 어때? 제목 죽이지? 너랑 같이 계속 건방지게 굴었던 도유다랑 사이좋게 보내 줄게.”
도유다의 이름이 거론되자마자 심장이 철렁 가라앉았다.
여론전을 벌이는 일 따윈 두렵지 않았다. 연예게의 거물이었던 강혁우를 내내 상대했는데, 고작 애송이 하나 상대하는 게 두려울 리가 없었다. 심지어 놈이 글에 적어 올릴 것은 얼토당토않은 내용이었으니 얼마든지 우리의 입장을 증명할 수 있었다.
나는 괜찮았다.
다소 타격은 있겠지만, 그것도 일시적일 뿐이니까.
‘하지만 도유다는…….’
모든 의혹에는 그에 대처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즉, 먼저 사건을 터트린 쪽이 시간적인 면에서는 더 우세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해명문을 내고, 여론을 뒤집을 때까지 약간의 텀이 생기게 되니까.
그동안 당연히 표는 받지 못할 것이고,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악플을 받게 될 것이다. 나야 득표수가 높으니 버틸 수 있겠지만, 다른 놈들은 생존 여부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 [얘 좀 뒤졌으면 좋겠음. 지 아빠 죽여놓고 뻔뻔하게 고개 처들고 사는 것만 보면 ㅈㄴ 짜증나.]
– [엄마 없이 자란 거 존나 티 냄 ㅋㅋㅋ. 에휴 불쌍해서 응원해줬더니 ㅉㅉ.]
만약 도유다가 그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안 돼,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이건 자폭이자 도박이었다. 운 좋게 베네핏으로 살아남았던 강배영이 탄탄한 팬덤을 가진 나머지 연습생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은 본인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인지도를 올리려는 거군.’
한승범이라는 화제의 인물을 공격함으로써 본인의 이름을 알리고, 운이 좋으면 표까지 벌 수 있는 행동이었다. 이런 사건이 한번 터지면 대중들은 피해자를 옹호하며 온갖 볼품없는 모습까지 올려 치기 시작하니까.
물론 상황이 역전되면 오히려 욕을 먹게 되겠지만, 어차피 강배영의 최종 목적은 연예인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으니 그것을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BJ, 인플루언서 등 어중간한 인지도로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너도 한번 당해 봐.”
“…잠깐!”
핸드폰을 빼앗을 새도 없이 강배영의 손이 등록 버튼을 눌러 버렸다. 나는 그에 경악하며 놈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삭제된 글입니다.]하얀 스크린에 이상한 문구 하나가 떠 있을 뿐이었다.
“…….”
사라졌다.
강배영이 남긴 글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무언가 오류가 난 건가 싶어 새로고침을 눌러 보았다.
[삭제된 글입니다.] [사용자의 접근이 차단되었습니다.]하얗게 변했다가 돌아온 페이지에는 여전히 똑같은 문구가 걸려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격 글을 올리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 섬뜩한 감각이었다.
‘설마.’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저격글이 있었던 페이지에서 벗어나 해당 커뮤니티의 홈으로 돌아갔다.
[Survive IDOL 강배영 연습생의 학폭 사실을 고발합니다. (인증 사진 有)] [강배영 중학생 때 학교 폭력 가해자였대.]강배영의 저격 글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고, 강배영이 학교 폭력를 저질렀다는 이야기가 그 몇 초 사이에 터져 커뮤니티를 모두 장악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폭로의 내용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강배영의 평소 행동거지를 보면 놈의 학창 시절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만약 언론전을 벌이게 된다면, 그의 과거를 모조리 캐 공격할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움직이기도 전에 일은 터져 버렸다.
‘피해자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거지?’
일반적인 폭로와는 타이밍이 너무 달랐다. 하필 지금, 내게 유리한 타이밍에 스캔들이 터진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를 화나게 만들지 말았어야지.”
딱딱하게 굳은 내 표정을 의기양양하게 감상하던 강배영은 아직 무슨 사태가 벌어졌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본인이 예상했던 상황이 연출되어 내가 절망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으스대고 있었다.
벌컥!
그러던 중 누군가가 연습실의 문을 벌컥 얼고 들어왔다.
“네, 네.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메인 PD였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메인 PD는 어떻게 보면 화가 난 것 같기도, 어떻게 보면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한 얼굴을 한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메인 PD는 바로 나를 지나쳐 강배영의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후 더듬거리며 말했다.
“강, 강배영 연습생, 방으로 돌아가서 짐 싸세요. 그리고 오늘 내로 퇴소하면 됩니다. 기획사 측에는 이미 전달해 뒀어요.”
“네?”
강배영이 멍하니 되묻자 메인 PD는 위협적인 어조로 다시 한번 소리쳤다.
“다 끝났다고요. 얼른 짐 싸서 이곳에서 나가세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저는 지금부터 시작인데! 들어 보세요. 제가 방금 커뮤니티에…….”
“아니요. 저는 강배영 연습생의 말 따윈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지금 중요한 사실은 강배영 연습생이 학교 폭력 스캔들에 휘말렸다는 거죠.”
“…학교 폭력이요?”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김지성 군 괴롭혔다면서요. 이름 알고 있죠? 피해자가 본인 이름까지 밝히고 증거 사진과 함께 폭로했어요.”
강배영은 PD가 거론한 이름을 알고 있는 듯 바로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PD에게 매달렸다.
“PD님, 저 이대로는 못 나가요. 제가 얼마나 이 프로그램이 간절한데요. 도대체 왜 그러세요! 설마 한승범 편드는 거예요?”
지독한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머리를 부여잡은 메인 PD는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꿈이 중요했으면 조심했어야죠. 이번처럼 경솔한 짓을 벌이면 안 됐죠.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메인 PD는 강배영에게 ‘이번처럼’ 경솔한 짓을 벌여서는 안 됐다고 말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강배영이 저지른 죄는 과거의 것이었다.
보통 ‘그렇게’ 경솔한 짓을 벌여서는 안 됐다고 하지 않나?
무언가 맞물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PD는 강배영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보다는 ‘오늘 저지른 일’을 책망하는 것 같았다.
‘사람 무서운 줄을 모르고?’
그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나는 그 사실을 눈치챔과 동시에 가슴 깊숙한 곳에서 피어나던 두려움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이었다.
이건 모두 ‘그 사람’이 벌인 일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마치 ‘서유태’와 함께 있을 때의 행동들을 아주 똑같이 벌였다.
“…….”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 사람’은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관심을 쏟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여긴 그야말로 아직 데뷔도 못 한 아이들이 아등바등 발악하는 곳에 불과했으니까.
이 프로그램에 그 사람의 흥미를 끌 만한 사람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데.
어째서?
‘…흥미를 끌 만한 사람?’
가슴이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이명이 들렸다.
– 말했잖아. 네겐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귀를 막은 채 멍하니 서 있자 강배영을 쫓아내고 돌아온 메인 PD가 내 팔을 붙잡았다.
“한승범 연습생.”
“…네, PD님.”
PD의 새카만 눈에는 내가 비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그분이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조만간 ‘다시’ 보자고.”
아, 결국 들켜 버렸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