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77)
77화
“한승범 연습생! 왜 그래요? 괜찮아요?”
“상태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
급히 숨을 몰아쉬니 자리에 앉아 있던 제작진들이 우르르 몰려와 나를 둘러쌌다. 나는 소란스러워진 주변에 한쪽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귀에서 소리가 웅웅 울렸다.
“일단 들어가서 조금 쉬어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몸 좀 괜찮아지고 하면 되잖아요.”
그 말에 나는 입 안의 살을 짓씹었다. 내 상태는 멀쩡한데 지금 이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걱정하는 척 가식을 떨며 관심을 돌리려는 게 역겨웠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제작진들은 여전히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에 반응하고 싶지는 않았다. 머리를 부여잡고 스크린을 보자 이미 이화영과 우강원이 탄 차는 너튜버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일단 사람들 틈에서 벗어났어. 다행이야.’
제작진들이 끝까지 우강원을 방치하려 든다면 나는 당장 이곳을 뛰쳐 나가 놈을 건져 올 생각이었다.
나는 우강원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것은 분명한 폭력이었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정당한 처벌임과 동시에 추악한 유흥이었다.
‘만약 우강원을 기다리지 않고, 처음부터 내가 개입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됐을까?’
순식간에 밀려온 피로감과 후회에 눈가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일은 벌어졌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나는 제작진들을 향해 차분히 말했다.
“지금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는 악플 때문에 어린 연습생들이 많이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인터넷 반응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인터넷을 차단해 주세요.”
“아, 연습생들…….”
제작진들은 내 말을 듣고 나서야 다른 연습생들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지 숨을 들이켰다.
‘이 새끼들이 진짜…….’
연습생들 중에는 중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불안해하든 말든 모조리 방치해 두고서는 우강원의 고통을 소비하며 이곳에 모여 앉아 있다니,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주먹을 꽉 쥔 나는 그들 중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메인 PD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PD님, 따로 드릴 말씀 있는데 잠깐 시간 내 주실 수 있습니까.”
“아, 네, 네! 그러죠.”
메인 PD는 내 심상치 않은 기색을 읽었는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다른 회의실로 데리고 갔다.
회의실에 먼저 들어간 메인 PD가 내 앞으로 의자를 빼 주었지만, 앉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몸의 긴장감을 늦추면 전부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쿵. 쿵. 쿵.
딱히 몸을 심하게 움직인 것도 아니었는데 심장 박동 소리가 고막 전체를 울렸다. 비행기에 탄 것처럼 멍하다가도, 작은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침을 삼켜도 청각이 본상태로 돌아오지 않았기에 나는 결국 이상을 해결하지 않은 채 대화를 시작했다.
“아까 우강원 연습생이 서 있던 곳,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죠.”
“네, 맞아요. 차로 이동하면 한 15분 정도 걸릴 거예요.”
“그러면 둘 다 곧 럭키 센터로 돌아오겠군요.”
“럭키 센터는 다른 일반인이나 취재진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고, 이화영 연습생 차량은 이미 등록이 되어 있으니 큰 문제 없이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이화영이 운 좋게 데려올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군.’
지끈거리는 머리가 이화영의 존재를 떠올렸다.
도대체 이 시간대에 왜 저놈이 바깥에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돌아오면 어떡할 겁니까.”
“제작진들은 아마 우강원 연습생이랑 대화를 나눠 보고 소속사랑 상의를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프로그램 하차 여부를요?”
“…….”
날카롭게 물어보자 메인 PD는 시선을 피하며 입을 다물었다.
우강원을 데리러 가는 것조차 껄끄러워했던 제작진의 모습을 이미 봤기 때문에 그리 놀라운 반응은 아니었다.
짓눌린 듯한 메인 PD의 표정에 가슴이 답답해져 목까지 올라왔던 저지의 지퍼를 내렸다. 하지만 그 행동으로 숨을 쉬는 것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우강원 연습생이 돌아오거든 저와 가장 먼저 대화를 나누게 해 주세요. 제작진 없이 단둘이서요.”
“…그건 어려워요. 제작진들도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한승범 연습생에게 먼저 보내 줄 수는 없어요. 제작진이 먼저입니다.”
“제작진이 지금까지 제대로 한 게 뭐라도 있어야 맡기죠. 외부에 노출된 채로 몰매를 맞고 있는 우강원 연습생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다른 연습생들의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뭘 믿고 맡기라는 말입니까.”
“그래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습생들을 제대로 보호하는 것. 그게 제작진들의 책임 아닙니까. 저는 지금 17살 이단비에게 19살 도유다를 맡기고 왔습니다. 더 이상 제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제가 참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
메인 PD는 내 단호한 태도에 식은땀을 흘리며 난처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분명 저 머릿속에서는 내게 잡힌 약점과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한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을 터였다.
“소속사와 먼저 소통하고 계세요. 우강원 연습생과는 제가 먼저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벌컥!
그 순간, 노크 하나 없이 큰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바로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몸을 돌리자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화영이 보였다.
“…….”
놈의 얼굴을 눈에 담자마자 눈앞이 빙글 돌았다.
“한승범!”
미약하게 휘청거리자 이화영은 서둘러 나를 부축했다. 나는 사색이 된 이화영의 얼굴를 본 후에야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린 건가.’
그런데 이화영의 뒤를 둘러봐도 우강원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하여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어깨를 지탱하고 있는 팔을 움켜쥐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
“…강원 형은?”
“방에. 올라오지 말고 방에서 기다리라고 했어.”
이화영은 내 불안을 바로 잘라 내려는 듯 빠르게 대답하고는 어깨를 조금 더 강하게 붙들었다. 그리고 메인 PD를 노려보며 말을 이어 갔다.
“일이 터지고 한참이나 지났는데 우강원을 그냥 내버려 뒀잖아. 그런 사람들 앞에 던져 줄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아.”
“…….”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숨을 내쉬자 이화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내 얼굴을 살펴봤다.
“너, 괜찮아?”
“…어, 수고했어. 고맙다.”
‘별꼴 다 보이네.’
나는 이화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메인 PD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 일은 제가 해결할 겁니다. 도와줄 생각이 없다면 방해라도 하지 마세요.”
그리고 마지막 통보를 건네며 이화영과 함께 회의실을 나섰다.
* * *
나는 분명 우강원에게 실망했다.
2차 경연 때 보였던 모습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굳이 놈을 멤버로 넣을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진실을 말해 달라는 도유다에게 거짓을 고할 생각은 없었으니, 그것은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처음으로 우강원에게 이상함을 느낀 것은 콘셉트 배정 때였다.
– 실력보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많이 화제가 되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조금 더 완성된 모습으로 대중분들께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강원은 대중들에게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콘셉트 투표가 이루어졌을 때, 일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웃긴 거 한 번 더 보자.’는 식으로 장난 투표를 하자는 이야기가 돌았던 적이 있었다. 꽤 유망주였던 운동선수가 아이돌을 하겠다고 나서니 사람들의 눈에는 제법 우스워 보일 터였다.
결국 아주 아슬아슬하게 시크 콘셉트로 배정받을 수 있었지만, 우강원은 대중들이 본인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찌 되었든 본인이 떠안고 갈 부분이지.’
아이돌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업계에 들어온 이상, 사람들의 시선은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모두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설령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찰나의 화제성을 위해 망가지는 사람이 수두룩한 이 업계에서 이 정도의 일로 절망한다면 나약해 보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그러는 건 아주 일시적이야. 앞으로 노력해서 증명해 보이면 돼.’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강원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에 그것까지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내가 우강원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은 본격적인 계기는 겨우 그딴 것이 아니었다.
– 촬영 피해 안 가게끔 조용히 나가겠습니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를 너무나도 간단히 손에서 놓았던 것.
나는 그것이 실망스러웠다.
우강원이 얼마나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함께 생활을 하다 보면 모를 수가 없었다.
따라서 나는 우강원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정말 아이돌이 하고 싶냐’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그놈의 간절함은 알 수 있었다.
그런 놈이 제 꿈을 그렇게나 쉽게 포기하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승범아.”
“형.”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에 걸터앉은 우강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곤해 보였지만,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니콜라스는?”
“…다른 연습생들 돌봐 주라고 보냈어.”
“그렇구나. 나랑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고 했다면서.”
내가 바로 앞의 침대에 걸터앉자 우강원은 무릎 위에 팔꿈치를 얹은 채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많이 놀랐지? 나도 정말 걱정됐어. 혹시 너나 유다처럼 나와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이 생길까 봐. 일이 이렇게 되어서 정말 미안해.”
“…….”
“그 글을 쓴 친구는 정말 내가 선수 생활을 함께했던 후배가 맞아. 증거 자료로 첨부되었던 음성 녹음도 내 목소리가 맞고. 아, 이미 인터넷으로 봤으려나. 미안.”
“…….”
“일부러 들으려고 했던 건 아닌데, 네가 유다한테 했던 말… 우연히 들어버렸어. 미안해. 일이 이렇게 되어서 어차피 나는 데뷔할 수 없겠지만, 그 말을 들은 후로 나 자신에 대해 많이 돌아봤거든. 차라리 다행이다 싶어. 너희들 사이에 끼어들기에는 내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
“…….”
세 번이었다.
우강원이 세 번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늘어놓는 동안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듣고 있기만 하자 우강원은 난처한 듯 웃으며 물었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었던 거 아니야?”
“…맞아. 그런데 이런 말이나 들으려고 부른 건 아니야.”
“그러면?”
“형도 분명 내가 도유다에게 한 말을 들었을 텐데.”
우강원은 ‘도유다에게 한 말’이라는 단어들을 듣자마자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내가 실망했다고 했던 것이 꽤나 트라우마가 됐는지 그 기억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날 속이려 들지 말라고. 안 먹히니까.”
내가 말한 것은 도유다가 우강원처럼 몰리고 몰려서 화장실에 숨어들었던 그때였다.
그제야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한 우강원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나는 우강원이 당황스러워하든 말든 멈추지 않고 입을 놀렸다.
“그 녹음… 폭행 사실을 묻어 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었잖아.”
그러자 우강원이 숨을 멈췄다.
크게 벌어진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요동쳤다.
“나를 속일 생각따윈 집어치워. 내가 듣고 싶은 건 형의 의미 없는 사과도, 그놈의 거짓부렁이도 아니니까.”
“…아니야. 그 아이가 말한 건 전부 사실이야.”
우강원의 떨리는 목소리와 의미 없는 저항을 무시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언제까지 그 거짓말쟁이한테 놀아날 거야?”
“…….”
“그 억하심정에 언젠가는 끝이 보일 거라고 생각해? 진심으로?”
놈이 가장 숨기고 싶었던 진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