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82)
82화
슬슬 정신을 차린 제작진들은 다시 4차 경연을 위한 본격적인 진행을 밟아 갔다. 가장 먼저 각각 선정된 곡을 알려 주고 그다음으로 이어진 게 바로 지금, 포지션 배분이었다.
카메라 앞에 둥글게 모여 앉은 우리는 포지션 배분 종이를 앞에 두고 촬영을 시작했다.
“…….”
역시나 이화영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다른 옆자리에는 이단비가 앉았다. 아주 그냥 이씨들이 쌍으로 난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딱 하나 주어진 펜을 쥐고 자연스럽게 포지션 배분을 주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 우리 리더부터 정해 볼까. 하고 싶은 사람?”
“뭘 정해, 너지. 그것도 몰라?”
나의 아주 친절한 진행을 개같이 막아 버린 것은 이화영이었다. 놈은 내가 뭘 잘못 집어 먹기라도 한 건지 의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놈 자식, 그렇다고 해서 ‘아, 어차피 내가 리더 먹을 거니까 니네 입 다물고 자리 내놔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카메라가 다 찍고 있는데.
“다른 멤버들 의견도 들어 봐야지. 그렇게 한 번에 정할 수는 없어.”
나는 차분히 이를 악물고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이화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 기울였다.
‘이거 뭔 네 살배기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저도 승범이 형이 리더 하는 거 좋아요. 저번에도 잘해 주셨으니까요. 솔직히 우리 팀에서 형 말고 리더 할 만한 사람 없을걸요?”
이화영의 절망적인 사회성에 한숨을 쉴 즈음, 앳된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믿고 있어요, 형!”
1차 경연을 함께 했던 이단비였다.
이단비가 내게 힘을 실어 주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화영은 코웃음을 치며 이단비를 내려다보았다. 의미불명의 동맹이 맺어진 것 같았다.
이놈들은 도대체 내가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나를 향해 이렇게까지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는 건지 모르겠다. 끽해 봐야 뭐 좀 가르쳐 준 게 다 아닌가.
가만히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 이단비는 다른 멤버들을 쭉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다른 의견 있는 사람? ‘나 리더 해 보고 싶다.’ 하는 사람 또 없어요?”
내가 두 번 세 번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도와주려는 것 같았다.
멤버들은 이화영과 이단비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눈을 내리깔았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이견 없으면 리더는 내가 맡아서 한다.”
나는 포지션 종이의 빈칸에 내 이름을 적어 놓고 바로 다음 칸을 살펴봤다.
“다음은 메인 보컬인데…….”
“내가 할 거야.”
‘이럴 줄 알았다.’
내가 채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이화영이 말했다.
이화영이 이럴 거라는 사실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고, 놈을 메인 보컬 포지션으로 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다른 사람은?”
다시 한번 멤버들을 보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아무렴, 이화영이 하겠다는데 거기에 뭐라고 할 놈은 없겠지.’
실력도 충분했고 고집도 센 놈이니, 아마 나서더라도 어차피 메인 보컬은 이화영의 손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래, 그럼 이화영…….”
“잠깐만요.”
가만히 앉아 있는 멤버들은 본 나는 바로 포지션 종이에 이화영의 이름을 적어 넣으려 했다. 그런데 아직은 말랑한 편에 속하는 손이 내 손을 붙잡아 멈추게 만들었다.
“기량 형, 왜 지원 안 해요? 씩씩하게 손 들어요. 양보 이런 거 없어요.”
아, 있었지.
이화영의 고집에 반박할 수 있는 놈이 따아악 하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어린 놈.
이단비의 당돌한 외침에 백기량은 잔뜩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곧 본인의 얼굴에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나? 갑자기?”
“네. 형은 니콜라스 형만큼 노래 잘 부르잖아요. 그냥 서브 보컬로 썩히기에는 너무 아까워요.”
“어어… 고마워. 그런데…….”
“형 노래 진짜 잘해요. 그러니까 자신 가져요.”
이단비는 백기량이 S등급에서 떨어진 후, 그 자리를 꿰찬 놈이었다.
그런 이단비에게 저런 소리를 듣는 백기량의 기분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단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백기량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이화영은 그에 눈살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어투로 말했다.
“자신 없는 사람 부추기지 말고 가만히 내버려 두지? 간절하지도 않은 주제에 끼어들면 방해만 되니까.”
그 말에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고, 모두가 이화영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단비는 굴하지 않고 제 할 말을 다 했다.
“포지션 뺏길까 봐 불안해서 다른 연습생들이 지원하기 어렵게 만든 건 아니고요?”
“뭐?”
“그렇게 형이 하겠다고 확정 지어서 말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못 나서는 거 알잖아요.”
“아니, 모르겠는데. 그 정도로 나약하게 굴 거면 뭐 하러 여기 있는 거지?”
“데뷔하려고 여기 있죠. 누구에게도 사람의 꿈을 비웃을 자격은 없어요. 여기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가벼운 의지로 버티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비웃을 자격은 없더라도 함께 서기에 걸맞은 사람인지 판단할 자격은 있지. 너야말로 이렇게 남의 인생에 참견할 자격은 없으니 적당히 하고 물러서.”
사나운 어조의 말들이 여러 번 오가자 백기량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얘들아, 싸우지 마… 난 괜찮아.”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였다.
“아니요, 저는 안 괜찮아요.”
“아니, 나는 안 괜찮아.”
백기량의 말에 이화영과 이단비가 거의 동시에 답했다. 그리고 다시 언쟁을 시작했다.
‘방금까지는 사이좋더니 왜 또 싸우고 난리냐, 난리는.’
나는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짜게 식은 눈으로 지켜봤다. 멤버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는 것은 내게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제이나 차운이 뒤지게 싸우는 것을 질리도록 많이 봤기 때문에 서로 멱살을 잡고 쥐어패는 수준이 아니라면 나를 당황하게 만들 수 없었다.
심드렁한 얼굴로 앉아 있으니 백기량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며 나를 바라봤다.
구조를 요청하는 것 같았다.
나는 백기량과 이화영, 이단비 그리고 그 사이에 끼지도 못하는 멤버들의 얼굴을 차례로 둘려봤다. 자기주장 센 놈들이 두 명, 과할 정도로 기가 약한 연장자가 한 명, 눈치만 보고 있는 게 나머지였다.
‘에휴.’
봐라. 실력과 인지도만 보고 멤버를 뽑으면 팀이 이딴 식으로 망한다.
‘만약 이 사이에 도유다나 우강원 같은 놈이 하나쯤 섞여 있었다면 상황이 이 정도까지는 흘러가지 않았겠지.’
물론 나는 이번 경연 하나만 잘해 보자고 이놈들을 뽑은 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어서 멤버 선정을 이렇게 한 것이었지만, 이 상태가 계속 이어지면 참 곤란했다.
방송각을 잡은 제작진들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데 겨우겨우 키워 놓은 놈들을 잡아먹으쇼 던져 줄 수는 없으니까.
“그만들 해.”
“…….”
“…….”
가볍게 던진 말에 미친 듯이 서로를 향해 짖어 대던 두 마리의 개들이 우뚝 멈춰 섰다. 둘 다 내 성격을 아니 더 싸우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었다.
한순간에 잠잠해진 연습실에 나는 백기량을 불렀다.
“형.”
“으, 응!”
나의 부름에 백기량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하며 몸을 떨었다.
지가 도와 달라고 해 놓고 저렇게까지 기겁할 건 또 뭔가.
내 생각에 저놈은 본인이 한승범보다 연장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았다.
“이단비의 말대로 제대로 말할 기회가 없었던 건 맞으니까 다시 한번 물어볼게. 할 거야, 말 거야.”
내가 백기량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 이단비는 자기편을 들어 줄 줄 알았다는 듯 활짝 웃어 보였고, 이화영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백기량을 내려다보았다.
백기량은 이화영의 시선에서 숨으려는 듯 몸을 움츠리다가 겨우 답했다.
“…나는 괜찮아.”
“할 생각이 없다면 굳이 버거운 자리를 줄 필요는 없지. 알았어.”
나는 백기량이 에둘러 거절의 뉘앙스를 풍기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메인 보컬 자리에 이화영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단비의 낯이 어두워지고, 이화영이 승리감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말해 두는데, 이것은 놈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편을 드는 일이 아니었다.
이단비의 주장대로 백기량에게 제대로 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했고, 이화영의 주장대로 의지가 부족한 놈에게 남의 자리를 뺏어서 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이해했기 때문에 지은 결정이었다.
‘뭔 아빠라도 된 기분인데.’
두 사람 다 나의 결정에 납득을 했는지, 반발하는 놈은 없었다. 조금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백기량의 표정이 조금 어두웠다는 것일까.
하지만 본인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찜찜한 마음을 접어 두고 바로 다음 포지션으로 넘어가기로 하였다.
“다음은 메인 래퍼 포지션이네.”
“랩 포지션이요?”
“헉.”
뭔가 멤버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나는 멤버들의 반응에 의문을 가지며 고개를 들었다.
“왜? 무슨 문제 있어?”
“…형, 우리 팀 중에 랩 할 줄 아는 사람 없어요.”
‘오.’
잊고 있었다.
우리 팀에 랩을 할 줄 아는 놈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보컬과 댄스 멤버들을 탄탄하게 마련해 두었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었다.
‘이래서 노래를 정하고 멤버를 뽑아야 한다니까. 지들이 하는 거 아니라고 아주 아무 생각 없이 진행하고 있네.’
우리가 이번 경연에서 배정받은 노래는 중간에 랩 파트가 있었다.
그것도 아이돌 중에는 랩 좀 한다는 사람의 파트였기 때문에 난이도는 아주 상당했다. 지금까지 랩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멤버들이 쉬이 도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X, 곡을 마음대로 정하게 해 주든가 아니면 곡을 먼저 정하고 멤버들을 뽑게 하든가.’
이 모든 일은 무대에 대한 이해도가 완전히 떨어지는 제작진들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아니면 그냥 위기를 주기 위해서 이런 상황을 일부러 만든 것이던가.
4차 경연의 곡이 추첨이나 연습생들의 선택으로 선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고작 연습생인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어떡해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단비가 중얼거렸다.
“어떡하긴. 하면 하는 거지.”
나는 이단비의 질문에 침착하게 답했다.
여차하면 내가 하면 되는 일이었다. 당황할 필요 따윈 전혀 없었다.
‘북치기 박치기 북북.’
그리고 속으로 폭풍 랩핑을 하며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그러던 중 이단비가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 유심히 보더니 하얗게 질린 채 외쳤다.
“이 형 눈알 돌았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