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84)
84화
나는 귀를 의심하며 이단비를 돌아봤다.
“승범 형한테 잘 보이려고 꾹 참고 있었더니 왜 자꾸 선을 넘지? 꼬락서니 보니까 그냥 답이 없어 보여서 말해 주는 건데, 사람 마음 여기저기 들쑤시면서 돌아다니는 짓 그만하고 다니세요. 진짜 걸리적거리니까.”
차운에 비하면 이단비의 주둥이는 우스워 보일 정도이다.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프로그램 개같이 말아먹어도 떵떵거리면서 살 그쪽보다는 이번에 데뷔 못 하면 버러지 같은 인생 살 내가 더 간절하고 무서우니까 의심 작작 하라고 하면 좀 신뢰가 가요? 진짜 무시를 해도 적당히 해야지. 사람을 아주 등신으로 보네.”
전면 철회하겠다.
그냥 야뭐시기 하야토가 일본인이라 봐줬던 거였다.
그런데 영국인 니콜라스 화영 리는 왜 안 봐주는지 모르겠다.
속사포처럼 쏟아진 말에 이화영이 놀란 고양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봤다.
왜,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시는지.
“…등신이 뭐야?”
“…….”
…암만 생각해도 얘도 봐줘야 할 것 같다.
우리 도련님 똑똑해서 한국어는 잘하는데 나쁜 말은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난생처음 마주해 보는 한국어에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보이는 이화영을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여기는 아가리 파이터 양성소가 아니니 이쯤에서 멈추게 해 줘야 했다.
“자, 진정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해결해 보자고. 우리 이럴 시간 없거든.”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흉흉한 기운을 갈무리하지 못했던 이단비는 시간이 없다는 말에 노기를 조금 사그라트렸다. 이씨들이 정신을 놓고 싸우고 있는 동안 이미 옆 연습실에서는 포지션 배정을 마치고 떠들썩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었다.
이화영은 이단비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지 욕하는 말인 줄은 알았는지 사나운 눈초리를 하고는 이단비를 노려봤다.
“우선 너희 둘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는 잘 알았어. 어느 쪽이든 일리가 있는 말이야. 분명 시청자들도 반응이 갈리게 되겠지. 그러니까 이건 아무리 다퉈도 정답을 알 수는 없는 문제라고 할 수 있어.”
“…….”
“…….”
이화영과 이단비는 그저 우두커니 서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내 말에 반발하거나 또다시 싸움을 벌이지 않는 모습에 나는 두 놈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우리는 어찌 되었든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니까 무엇이든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 그리고 나는 리더로서 무엇을 선택할지에 대한 결정권을 내게 줬으면 하고,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묵묵히 따라 줬으면 한다. 여기까지 이해했냐?”
“네.”
“응.”
차근히 설명하자 두 놈은 짧게 긍정의 대답을 내놓았다. 저놈들의 입장에서도 누군가 제삼자가 그냥 결론을 지어 주는 편이 훨씬 편할 터였다.
두 사람의 허락을 들은 나는 곧장 다른 멤버들을 지켜봤다. 그들은 이단비와 이화영의 무시무시한 다툼에 놀란 듯 가슴에 손을 올린 채 뻣뻣하게 굳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괜찮지?”
“응!”
“당연하죠!”
허락을 구하는 물음을 재차 던지자 그들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움직임에는 제발 빨리 좀 이 상황을 끝내 달라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나는 모두의 동의를 얻은 후 이화영과 이단비에게 말했다.
“랩 파트는 삭제하지 않을 거야. 편곡은 원곡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갈 거고.”
그 한마디에 희비가 갈렸다.
이단비의 얼굴에는 순식간에 혈색이 돌았고, 이화영의 얼굴에는 못마땅함이 서렸다.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14위. 데뷔권에 들기에는 애매한 숫자야.’
만약 현 상태가 유지된다면 이화영의 말대로 이단비는 절대로 데뷔권에 들지 못할 것이다. 이단비는 당돌한 캐릭터와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통해 방송의 후반부까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무대에서 파격적인 무언가를 보여 주지 못한 채 올라갈 수 있는 위치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른 요소로 그나마 그 한계를 넘어서려면 다른 연습생들을 도와주는 식으로 인성 어필을 하던가, 매화 신스틸러로 등장하여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여야 했다.
‘하지만 그 역할은 이미 나와 도유다에게 정착되어 버렸고, 애초에 본인의 상황이나 성격상 어울리지 않는 일이지.’
결국 이단비가 지금의 정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대에서 무언가 변화를 꾀하는 걸 보여 주는 일밖에 없었다. 지금도 정말 과할 정도로 노력하고 있는 건 맞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건 약속이야. 최선을 다하는 걸 넘어서 확실한 결과를 가져와야 해.”
“…….”
그리고 그것은 이단비 본인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만약 이단비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무대가 잘못되면…….”
나는 그 간절함에 걸었다.
“내가 책임질게.”
“한승범!”
“대신 기한은 트레이너 중간 평가일까지야. 그때까지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지 못하면 멤버들은 당연히 너를 믿을 수 없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이화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일그러진 낯으로 내 팔을 세게 움켜쥐었다. 이단비는 그저 벙찐 상태로 나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나는 이단비의 머리를 툭 만지고는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무대가 잘못되거든 나를 실컷 원망해. 아니, 원망받는 것 정도로는 책임이라고 할 수 없지. 내가 어떻게 해서든 수습할게. 날밤 새우고 피 토하는 한이 있어도 내가 다 뜯어고쳐 놓을게.”
나는 이단비처럼 악착같이 열심히 사는 아이들은 웬만해선 도와주고 싶었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치열하게 사는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대충 예상이 갔으니까. 내가 특별히 점찍어 놓은 놈이 아니더라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까 단비는 열심히 한번 준비해 봐. 네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놈인지 보여 줘.”
그러나 지금 내린 결정은 온전히 이단비를 위하는 마음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내 개인적인 감정에 다른 멤버들까지 리스크를 지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이단비의 손을 들어 준 것은 단순히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한 뒤 내린 결정이었다.
‘랩 파트를 정말 이화영의 말대로 완전히 노래처럼 편곡하면 원곡의 장점을 모두 죽이는 꼴이 될 거야.’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완벽한 새로움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기대하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적당히 타협할 바에야 도박을 한다!
그게 내 성격이었다.
“죄송해요. 저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다른 포지션 먼저 정하고 계세요.”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던 이단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연습실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이화영은 그 뒷모습을 보며 혀를 쯧 찼다.
“왜 갑자기 발끈한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군.”
“네가 탈락할 거라고 악담 퍼부으니까 그러지. 원래 연습생들은 그런 말에 예민하잖아.”
“탈락할 거라고 한 적은 없는데.”
‘음?’
나는 이화영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따라서 이화영이 했던 말을 되짚어 보며 확인했다.
“프로그램 끝나면 남는 게 시간일 거라면서.”
“데뷔하든 탈락하든 프로그램 끝나면 한가해지는 건 마찬가지잖아. 지금처럼 경연에 시달리지는 않을 테니까.”
“아.”
‘그런 의도였나.’
나는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차올라 역정을 냈던 이단비를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딱히 이단비를 탓할 수 없는 게 나도 당연히 그 뜻으로 생각했었다.
이화영의 평소 언행에 대한 편견이 조금 작용했다고 해야 할까.
“그럼 그렇게 말해야지. 오해했잖아.”
“나는 제대로 말했어, 시간 생기면 그때 연습하라고.”
“너, 나중에 그거 꼭 본인 앞에서 해명해라. 100% 오해하고 있으니까.”
“싫어. 짜증 나.”
…이 대책 없는 도련님을 어떡하면 좋냐?
* * *
포지션을 모두 정한 뒤 우리는 또다시 제작진이 시키는 대로 연습실 앞에 모이게 되었다. 장소를 보니 무엇을 찍으려고 하는 건지는 대충 감이 왔다.
“지금부터 여러분께 개인 핸드폰을 배부해 드리겠습니다. 차례가 오면 부스에 들어가서 자유롭게 본인이 연락하고 싶었던 사람과 연락을 하면 됩니다.”
‘역시.’
마지막 생방송을 앞둔 시점이니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즙 짜는 장면쯤은 찍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마지막 생방에서는 가족들의 영상 메시지가 나오며 또 한 번 즙을 짜게 될 것이다.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나는 차례로 방음 부스에 들어갔다 나온 아이들이 그리움에 젖어 눈물을 터트리는 모습을 보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전화 걸 사람이 없어.’
전화를 걸 상대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승범의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기에는 이미 한승범과 그들의 관계가 개박살 났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다. 그렇다고 한승범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기에는 한승범이 평소 그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역시 한승범 이모가 가장 무난한가?’
가장 쉬운 선택지가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한승범의 이모는 이래저래 꺼림칙한 부분이 있어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다.
이윽고 내 앞 순서의 연습생이 부스에서 나오고, 내 순서가 다가왔다.
마른침을 삼킨 나는 마음을 굳히고 연락처 하나를 눌렀다.
‘받아라. 받아라. 받아라. 받아라.’
연결음이 이어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끊겼다.
그리고 상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제이 트레이너님, 안녕하세요! Survive IDOL 한승범 연습생입니다!”
‘역시 익숙한 놈이 짱이지.’
나는 제이가 나를 ‘형’이라고 부르기 전에 재빨리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2초 정도 가만히 있던 놈이 바로 능청스럽게 대답을 했다.
“한승범 연습생! 촬영 잘하고 있어요? 먼저 연락해 줘서 고마워요.”
‘쓸데없이 빠른 눈치가 이런 때에 도움이 되는구나.’
“네, 물론이죠. 제작진분들께서 연락하고 싶은 사람한테 연락하라고 하셨는데, 제이 트레이너님 생각이 나서 연락드렸어요. 저번에 합동 무대 진행할 때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부스 안에 설치된 카메라에 보이도록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다른 놈들은 그리운 가족들과 연락을 하고 있는데 나는 못 하니 선배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이미지라도 챙겨 가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아하, 그렇구나. 그때는 저도 많이 즐거웠어요. 다음에 한 번 더 콜라보 무대 하죠!”
“아, 진짜요. 영광입니다. 하하.”
나는 방송에서 쐐기를 박아 두려는 속셈이 훤히 보이는 제이의 말에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기계적인 리액션을 뱉었다.
‘방송 나가면 일 커질 소리 좀 하지 마라. 괜히 욕 처먹기 싫단 말이다.’
“아하하하!”
스피커폰으로 제이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것을 듣자마자 이놈이 고의로 저딴 말을 씨부렸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화사하게 미소 지은 나는 바로 스피커 폰을 꺼 버렸다.
‘아오.’
“아, 그러고 보니 전달받았어? 그 얘기.”
속으로 온갖 쌍욕을 하고 있을 즈음, 내가 스피커 폰을 꺼 버렸다는 사실을 귀신같이 눈치챈 제이가 반말로 대뜸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무슨 얘기요?”
“아학, 전달 못 받았구나. 풉, 파이팅!”
뚝.
“…….”
멋대로 비웃더니 멋대로 전화를 끊어 버린 것이었다. 나는 뚜뚜뚜 울리기만 하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카메라를 등지도록 몸을 돌렸다. 참아 보려 했지만, 핸드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 네!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허공에 인사를 하며 전화를 끊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허리를 숙이자 투명한 창문을 통해 밖에서 백기량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도유다와 눈이 마주쳤다.
“기량 형! 가족 분들이랑 통화 안 하셔도 괜찮… 표, 표정 왜 저래!”
도유다는 내 얼굴을 보곤 기겁하며 비명을 꽥 질렀다.
‘이 XX XX, 죽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