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인사 안 해요? 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기만 하는 거지?”
‘입, 입, 저놈의 입.’
차운은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며 빈정거렸다.
원래 이런 성격인 건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카메라가 없고, 중간에서 조절해 줄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가?
‘그러고 보니 내가 직접 이 자식에게 인성질을 당해 본 적은 없었지. 이래서 제이가 그렇게 차운을 싫어했군.’
차운은 원래 내게는 그나마 예의 바르게 구는 편이였다. 유교민국에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그룹 내에서 유일하게 저보다 나이가 많은 이에게 제 성질을 모두 드러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후배, 연하의 입장에서 직접 당해 보니 제이가 왜 그렇게까지 차운을 싫어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갔다.
나는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 못 하네요. 내 비밀을 알아 버린 한승범 군이 멀쩡하게 돌아다니니까요. 보기에 아니꼬와서 좀 치워 버리고 싶은데 유제이 씨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 같고…….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사람을 그렇게 멍청하게 만들어 놨어요?”
“…….”
“눈치 좀 보고 그래요. 그렇게 고개 빳빳하게 들고 다니니까 더 마음에 안 들잖아요.”
나는 놈의 말본새를 들으며 이단비가 차운보다 심했다고 생각했던 것을 후회했다. 막상 마주해보니 이 자식, 성격이 꼬여도 너무 꼬였다. 적어도 이단비는 상대가 먼저 시비를 털어야 화내지 이놈은 그냥 인생이 선빵이었다.
“아닌가? 이렇게 긁어도 입 꾹 다물고 있는 걸 보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래 놓고 또 이단비 성질내는 거 보면 이단비가 더 심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래, 나는 줏대가 없다.
하지만 놈들에 대한 평가가 이랬다저랬다 하는 동안에도 분명히 변하지 않는 사실은 있었다.
‘이단비는 내 말을 잘 듣고 차운은 나를 꺾고 싶어서 안달이 났지.’
나는 이단비의 반짝반짝한 눈망울을 떠올렸다가, 다시 차운의 비웃음 가득한 얼굴을 봤다. 그리고 차분히 말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절대 말할 생각 없다고.”
차운과의 유대 관계를 모두 잃은 상황에서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이미 지난 세월을 통해 놈을 다루는 방법을 이미 파악해두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심은 서로를 피곤하게 만들 뿐입니다. 저는 제게 잘 대해 주셨던 제이 트레이너님께 피해를 주고 싶지도 않고, 선배님과의 관계를 어그러트리고 싶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니 그렇게 불안에 떨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차운은 입이 요란한 것에 비해 강단이 없는 편이었고,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놈이었다. 만약 놈이 저의 말버릇만큼 강한 성격을 가졌다면, 과연 강혁우의 의심을 견디지 못하고 나를 찾아왔을까? 아니면 내가 죽은 이후에도 굳이 리스크를 부담하며 내 곡을 사용하려 들었을까?
정답은 ‘아니다.’였다.
공격적인 성격은 약한 내면을 가리기 위한 과잉 방어, 가림막에 불과했다. 놈이 지금의 내게 유난히 까칠하게 굴고, 끊임없이 의심하려 드는 것은 아마 그런 면의 연장선임이 틀림없었다. 뭐, 나쁘게 말하면 그냥 유리 멘탈 강약약강 어그로꾼이지만.
차운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나의 말에 손끝을 움찔 움직였다. 그리고 그를 부정하려는 듯 사나운 기세로 입을 열었다.
“내 상태를 멋대로 판단하지 마세요. 내 무엇을 안다고 한승범 연습생이 그렇게 입을 놀리는…….”
“눈앞에 두고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한 것 아닙니까? 끊임없이 의심하고, 제가 그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여야 마음이 풀리는 것이겠죠. 그래서 이렇게 방송에 얼굴을 비추지도 못하는 일까지 받아들인 거고요.”
속내를 관통하는 말을 늘어놓자 열심히 떠들던 입이 닫혔다.
작업실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당혹감이 가득한 차운의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며 생각했다.
‘분명 꽤 고쳐 놨던 거로 기억했는데…….’
나는 차운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놈의 이런 면을 눈치챘고, 그를 교정하기 위해 수년간 노력해 왔다. 그리고 내 기억으로는 나와 함께 활동을 하는 동안 차운의 성격은 큰 폭으로 나아졌었다, 제이를 제외한 프리즘 멤버들과 원활한 관계를 맺게 될 정도로.
‘지금 보니 원상태로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더 악화됐군.’
하지만 그것은 이미 모두 어그러진 지 오래인 것 같았다. 아마 내 존재로 인하여 놈은 앞으로도 계속 불안해할 것이며 날카로워질 것이다. 그것까지 미루어 본 나는 한숨을 가볍게 내쉬고는 테이블 위의 종이에 숫자들을 적기 시작했다.
“제 번호입니다. 곧 프로그램이 마무리되면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을 테고, 연락이 오면 바로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불안하시거든, 연락하세요. 웬만하면 금방 받을 테니까요.”
“…….”
“이렇게 무작정 긁는 것보다는 그게 더 안심될 것 아닙니까.”
차운은 내게 건넨 종이를 받아 들고는 우두커니 그것을 내려 보고 있었다. 나는 놈이 그것을 바로 버리지 않고, 가만히 쥐고 있는 것까지 확인한 후에야 고개를 돌렸다.
“진정되셨으면 작업 파일부터 확인하죠. 편곡 코칭 때문에 섭외되신 것 맞죠?”
“…네.”
잠잠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답했다.
나는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곧바로 파일을 재생할 준비를 마쳤다.
“아직 초반 부분까지밖에 못 만들었는데 들어 보시고 고쳤으면 하는 부분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
.
.
나는 차운이 작업 파일을 들어 보는 동안 습기를 머금은 손바닥을 허벅지에 꾹 대고 있었다. 혹시라도 차운이 원래의 나와 유사성을 찾을까 긴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처음에는 멍하니 노래를 듣고 있던 차운의 얼굴은 점점 경악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노래가 모두 끝난 후에야 내게 겨우 물었다.
“한승범 연습생 분명 연습생 기간 짧다고 하지 않았어요? 몇 년이라고 했죠?”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던져진 질문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2개월이요.”
내 대답을 들은 차운은 미간을 손으로 짚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럴 거면 뭐 하러 나 부른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있죠. 고작 2개월 차 연습생 작업물에 제가 손봐 줄 부분이 아예 없는데 이게 어떻게 문제가 없을 수가 있어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의 긴장감을 쭉 풀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최대한 유사성이 느껴지지 않도록 작업한 보람이 있었다. 애초에 편곡은 작곡과 다르게 티가 날 가능성이 아주 적었지만, 불안한 건 불안한 거였다.
‘쫄았다.’
“이런 재능 있어서 기분 좋겠어요? 이 실력 가지고 연습생들 사이에서 경쟁하고 있으니까 아주 편해 죽겠죠?”
“감사합니다.”
“칭찬한 거 아니에요.”
“네.”
나는 차운의 앙탈을 가볍게 흘려 넘기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차운은 그런 내 모습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 특별히 지적하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은 작업본으로 인한 충격이 커 다른 일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정말 타고난 사람들이 있긴 한가 보네요. 이렇게 어린 친구가 이런 결과물을 가지고 올 줄이야.”
‘과연 너보다 어릴까?’
내 정체를 모르는 불쌍한 차운은 내가 저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허탈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래서야 트레이너들의 존재 의미가 없겠네요. 나도 뭐 도움 줄 수 있는 게 없고.”
쿡쿡 찔리는 양심에 목을 가다듬은 나는 애써 놈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아니요. 선배님은 이미 제게 충분히 도움을 주셨습니다.”
“제가요?”
“3차 경연 때 젠의 연습을 도와주셨던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원래는 제가 하려고 했던 일을 대신해 주신 거니까요.”
젠의 이야기가 나오자 차운은 못마땅한 듯 불만스러운 투로 물었다.
“그건 어떻게 안 거예요?”
“젠 연습생이 말해 줬습니다.”
“…절대 다른 사람한테 불지 말라고 했는데 그걸 또 그새 가서 말했을 줄은 몰랐네요.”
“정확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부끄러운 줄 알면 어디 가서 떠들지 말라고 했죠.”
‘아.’
차운의 답에 맹한 젠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강 상황이 어떻게 흘러간 건지 짐작한 나는 웃음을 참으며 설명했다.
“젠은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먹습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니까 말해도 된다고 생각했겠죠.”
“…연습시킬 때부터 조금 느꼈던 건데 혹시 그 친구 눈치가 없는 편인가요?”
“네. 없는 편인 정도가 아니라 제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 제일 눈치 없습니다.”
“…….”
차운은 젠에 대한 설명을 듣고 현타를 제대로 맞은 듯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선을 고정한 채 목소리를 겨우 쥐어짜 물었다.
“그 친구 데리고 데뷔할 거예요?”
“네.”
“…괜찮겠어요?”
나는 그 하찮은 목소리에 결국 참지 못하고 작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놈의 어릴 적이 생각나 흘린 웃음에 놈은 눈을 흘기며 뭘 웃어, 라며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에 개의치 않고 젠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했다.
“아마 가르치는 족족 잘 흡수했을 겁니다. 그 녀석은 프리즘 활동 초기의 선배님과 아주 많이 닮았으니까요. 재능이 있는 거죠. 놓치기 아깝습니다.”
“…….”
내 설명에도 차운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나는 그에 조금 골탕을 먹여 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장난기를 머금고 물었다.
“선배님께서도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젠을 따로 챙겨 주신 것 아닙니까?”
‘딱히 그 친구가 잘되기를 바라고 한 행동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세욧!’ 같은 앙탈을 기대하며 한 말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내 예상을 모두 깨부숴 놓았다.
“…그 노래를 그렇게 버리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저는 그 꼴만큼은 절대 못 봐요. 한승범 연습생도 알 거 아니에요, 저는 형을 미워하거나 무시해서 그런 짓을 벌였던 건 아니라고요.”
“…….”
딱밤을 때렸더니 어퍼컷이 날아왔다.
10초 만에 수척해진 나는 그냥 입을 처닫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내가 미안하다.’
내 반응이 궁금하지도 않았는지 대형 폭탄을 터트린 장본인은 다른 고민에 빠진 듯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점을 찾은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했다.
“그런데 작업 속도가 너무 느리지 않아요? 이 상태로 계속 가면 완성본으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 텐데… 거의 갈아엎는 수준으로 편곡을 해 뒀는데, 이걸 멤버들이 단시간에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차운이 짚어 낸 문제점은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었던 가장 큰 문제가 맞았다.
이단비가 어떻게 랩을 할지 모르니 해당 부분을 미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문제도 있기는 했지만, 주된 부분은 그게 맞았다.
나는 차운의 분석력에 내심 뿌듯함을 느끼며 바른대로 사실을 고했다.
“…후반부에 랩 파트가 있는데 저희 팀 멤버가 이번에 랩을 처음 해 봐서 편곡 방향을 못 정했거든요.”
“흠, 그래요?”
내 이야기를 들은 놈은 바로 핸드폰을 들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했다.
“어, 난데. 지금 어디야?”
그리고 바로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대며 말하기 시작했다.
“회사 근처야? 타이밍 좋네. 심심하면 여기 얼굴 한 번만 비춰라.”
대화 내용을 들어 보니 뭔가 불길했다.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도대체 누굴 부르는 거냐.
초조한 마음을 억지로 억누른 나는 통화가 끊기자마자 곧장 물었다.
“…누구입니까?”
차운은 내 질문에 아주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트레이너 이름값은 해야죠. 우리 팀 랩 하는 애 오라고 했어요. 좋죠?”
아, 신이시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