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87)
87화
“이거 갑자기 왜 이래? 내내 기세등등하더니 갑자기 맛이 갔어.”
차운은 내 상태를 보더니 망가진 무언가를 다루듯 내 머리를 통통 두드렸다.
나는 차운이 내 머리를 치든 말든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왜… 왜 이렇게 자꾸 프리즘 애들이 꼬이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아니, 아무리 이제 방송 좀 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개 연습생이 탑 티어 아이돌을 이렇게 자주 만나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아직 애들 만날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나는.’
나는 맹세코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 얼굴만 봐도 예전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데 뭐가 그렇게 떳떳해서 이런 상황을 기대하겠는가.
한 놈이 다른 놈을 물어 오고 그놈이 또 다른 놈을 물어오는 이 상황이 그냥 구라 같았다.
나는 손등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러자 차운은 나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며 물었다.
“뭐 해요?”
“페로몬이라도 나오는지 맡아 보려고요. 혹시 모르잖아요. 제가 캣닢일지.”
“헛소리하는 거 보니까 제정신 아니네. 벽에 머리라도 한번 박아 봐요. 혹시 모르잖아, 괜찮아질지.”
“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리고 대가리를 박으려는 순간 차운이 내 이마에 손바닥을 올려 막았다.
“아니 진짜 왜 이래? 정신 좀 차려 봐.”
벌컥!
차운이 내 머리를 붙잡고 있던 중, 묵직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하이용. 갑자기 왜 불렀어?”
그리고 경쾌한 걸음걸이로 들어온 이는 프리즘의 메인 래퍼, 이치세였다.
외국 이름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토종 한국인으로 경주 이씨에 다스릴 치, 인간 세 두 개의 한자를 담은 이름이었다.
후드를 쓰고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껄렁껄렁 걸어온 이치세는 팔을 번쩍 들며 차운에게 다가갔다.
“허그하는 습관 좀 고쳐. 한두 번 해야지 어떻게 매일 이래.”
차운은 지긋지긋하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대충 이치세의 허그를 받아 주었다.
“왜애, 좋으면서 괜히 투덜거리기는. 옆에 그 친구는 누구야?”
“지금 그 서바이벌 프로그램 하는 거 나오는 연습생인데 랩 파트 때문에 고생 중이라고 해서. 너 심심하면 와서 좀 도와주라고.”
“으음?”
차운이 나를 가리키며 말하자 이치세는 허리를 굽히고, 선글라스까지 벗으며 내 얼굴을 봤다.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의 단내가 확 느껴졌다.
그에 주춤 물러선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이놈의 후배 노릇 정말 지긋지긋한데 언제까지 해야 하나.
“안녕하세요, 연습생 한승범입니다.”
“안녀엉. 어! 너 한승범 아니야? 안녕!”
얼굴을 본 것만으로 대략적인 연령대를 짐작했는지 이치세는 검지손가락을 구부려 손가락 중간 마디로 내 뺨을 툭 건드렸다. 완전 애 취급이었다.
“만난 김에 너도 한번 안자! 예에!”
그리고 차운에게 했던 것처럼 팔을 뻗어 나를 꽉 껴안았다.
‘억.’
나는 간만에 받아 보는 포옹에 점심으로 먹은 음식을 다시 뱉어 낼 뻔했다.
“그래서, 랩 때문에 그런다고? 심심하니까 한번 봐줄게!”
“네…….”
‘이걸 어떡하냐…….’
꽤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치세를 보며 내가 느낀 감정은 딱 난감함 그 자체였다.
이치세는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로 아이돌 래퍼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힙합 신의 인정을 받는 놈이었다. 그런 녀석이 도움을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무엇이 그리 마음에 걸리냐 하면 바로 이단비의 실력 때문이었다.
‘동네 조기 축구에 메X 뜨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이놈을 데리고 오면 진짜 난감한데.’
녀석은 프리즘 멤버들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쾌활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갓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혹평을 쏟아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단비가 과연 이치세의 수준에 따라올 수 있을지였다.
벌써 예견되는 미래에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자 이치세는 활짝 웃으며 내 등을 팡팡 쳤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런데 일단 친구는 관상이 랩 못할 것처럼 생겼어!”
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열받지.
나는 이마에 돋아난 혈관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고 차분히 말했다.
“…랩 하는 건 제가 아닙니다. 저는 편곡 담당 멤버고, 랩은 다른 멤버가 따로 있습니다. 그 친구도 경연 시스템 때문에 처음으로 랩 하게 된 거고요.”
“아아, 그런 거야? 노래는?”
“하이프 선배님들의 [Catch me!>입니다. 편곡은 랩 파트 부분부터 진행이 안 된 상태고요.”
“랩 때문에 못 한 거구나? 괜찮아!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작곡은 기가 막히게 잘하는데 랩은 안쓰러울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 있어. 친구가 그 사람보다는 나을걸?”
‘너 인마, 설마 그거 나 말하는 거냐?’
순간 생각이 입 밖으로 불쑥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지 알 리가 없는 이치세는 해맑은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보통 랩 하는 친구들은 랩 메이킹 할 줄 아니까 그냥 비워서 전달해 주면 되거든. 그런데 지금은 상황상 랩 포지션 멤버에게 온전히 맡겨 둘 수는 없는 거지? 그렇다고 원곡 그대로 따라가기에는 편곡 분위기에 안 맞고?”
“네, 맞습니다.”
순식간에 본인이 인지해야 하는 내용을 물어보고, 머릿속에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말 내가 알고 있던 놈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치세는 센스가 있었다. ‘어떻게 좀 해 봐라.’라는 메모를 남겨 두고 토껴도 언제나 내가 돌아올 즈음에는 딱 내가 원하는 분위기로 랩 파트를 채워 놓았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뭐.
“오케이, 알겠어. 그럼 친구 작업해 둔 거 한번 들어 보고 조언해 줄 거 한번 찾아보자. 지금 파일 있지?”
박수를 짝 치며 바로 상황을 정리한 이치세는 내 볼을 쭉쭉 늘어트리며 차운에게 물었다.
그러자 차운은 장난스러운 태도의 이치세를 보며 경고했다.
“듣고 기절하지나 말아.”
“기절?”
“들어나 봐. 참고로 내가 장담하는데 그렇게 껄렁거리면서 들으면 너 분명 후회할 거야.”
이치세는 차운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 기울이면서도 스피커 근처에 의자를 가지고 와 앉았다. 굳이 연습생의 작업물을 그렇게까지 들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차운이 시키니 듣는다는 티가 역력히 났다.
차운은 이치세가 머리에 쓰고 있던 후드를 내린 후에야 노래를 재생했다.
.
.
.
작업된 부분까지 노래를 듣고 난 다음, 이치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딱 한마디였다.
“이게 뭐야?”
어처구니없다는 듯 뱉어진 질문에는 평소의 장난기 따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별다른 문제 없이 그냥 이 시간이 조용히 넘어가기를 기도했다.
‘랩 파트 조언만 해 줘라. 조언만.’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놈은 갑자기 내 앞으로 척척 걸어왔다. 그리고 나를 와락 껴안으며 고막이 터지도록 외쳤다.
“와! 나 너 진짜 맘에 든다! 이거 나 주면 안 돼?”
그 말도 안 되는 부탁에 잔뜩 당황한 차운은 바로 놈을 말리려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어 그를 저지했다. 그리고 이치세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아아앙! 한 번만! 딱 한 번만! 이제 인기 끌어모을 대로 모았으니까 경연은 적당히 넘겨도 되잖아! 나 주고 다른 거 써!”
이치세가 떼를 쓰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놈은 본인이 받고 싶은 곡이 있으면 이렇게 억지를 부렸고, 나는 이미 그것을 여러 번 경험한 바 있었다.
‘이놈이 아주 아무 데서나 앙탈이야. 누가 버릇 이따위로 들였어, 이거.’
예전에는 이렇게 녀석이 고집을 부리면 못 이기는 척 곡을 넘겨주기도 했지만, 지금 곡은 경연용으로 마련한 것이었기 때문에 절대 줄 수 없었다. 나는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내며 예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치세의 앞에 검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안 됩니다. 안 되는 건 안 돼요.”
“히이잉.”
“안 됩니다.”
‘나이 먹을 대로 먹은 놈이 히이잉은 무슨 얼어 죽을 히이잉.’
내 태도를 보고 승산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챈 이치세는 나를 붙잡고 있던 팔을 풀고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입맛을 다시며 ‘아, 얘는 안 통하네.’라고 중얼거렸다.
‘얼씨구?’
방금까지만 해도 가증스러움이 뚝뚝 묻어나던 목소리가 바로 성인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로 돌아온 걸 들으니 기가 찼다. 차운은 이미 내 심정을 대변해 주듯 환멸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 일단 있어 봐. 15분만!”
이치세는 그에 굴하지 않고 내게 잠시 기다리라는 듯 손바닥을 펼져 보였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가사를 검색한 후, 그것을 보며 작게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이상 행동이 약 10분 정도 이어졌을 즈음, 차운은 당연하다는 듯 헤드셋과 마이크를 이치세의 앞에 두었다.
간단한 녹음을 위한 준비가 모두 끝나자 이치세는 때맞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헤드셋을 낀 후 외쳤다.
“가 보자, 형!”
그 외침에 바로 녹음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고개를 까딱거리며 박자를 타던 이치세는 바로 익숙하게 랩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이 곡을 위해 몇 달씩이나 준비해 왔던 사람처럼.
나는 그 모든 것을 코 옆에서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뒤지게 탐난다.’
그냥 망태기에 싸서 주워 오고 싶었다.
레벨 1 계정으로 땅 파고 있는 와중에 만렙 계정을 체험해 버리고 이성을 잃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탈퇴한 후로 실력이 더 늘었군.’
나는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이건 병아리들 갖다줄 곡이니 다 큰 놈에게 쥐여 줄 수는 없다는 이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저걸 듣고 나니 굳건하던 장벽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진심으로 카메라가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저게 그대로 방송을 탔으면 대중들은 아마 이단비가 어떤 랩을 준비해도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곡자조차도 저것에 비교하면 허전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이단비가 무슨 수로 그것을 충족하겠는가.
“어때, 나 진짜 잘하지?”
랩을 끝마치고 헤드셋을 벗은 이치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외쳤다. 본인도 알고 있는 것이다, 방금 뽑은 랩이 아주 미쳤다는 것을. 나는 그 표정에 도저히 거짓을 고할 수 없었다.
“네. 그럴 것 같네요.”
내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호탕하게 웃은 놈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허리를 숙인 채 내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거 나 줘. 쓸데없이 노래 낭비하지 말고.”
‘이 자식…….’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장난기 따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이치세의 서늘한 미소를 보며 놈의 태도가 바뀌었음을 직감했다.
“네가 끝까지 안 된다고 하면 따로 커버 영상이라도 올려야지, 뭐. 그런데 멤버들 걱정 안 돼?”
이건 부탁이 아니었다.
네 곡을 내게 내놓지 않으면 경연을 망가트리겠다는 협박이었다.
“누가 와도 나만큼 널 만족시켜 줄 수는 없어. 아니야?”
“…….”
“나한테 주는 거로 알고 있을게. 알겠지?”
도와주라고 부른 놈이 폭주하고 있는 것을 본 차운은 한숨을 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마 지금과 같은 사태는 차운이 예상하지 못한 것일 터였다.
그도 그럴게 이치세는 원래 이렇게까지 하는 놈이 아니었다.
놈의 상태는 뭔가 분명히 이상했다.
하여 나는 차운을 책망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차운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한 나는 이치세를 보며 화사하게 마주 웃었다.
“아니요. 이 곡 절대 못 드립니다.”
운아, 이 엉아가 해결하마.
넌 그냥 가만히 있어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