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89)
89화
“이, 이게 뭐예요, 형!”
나는 경악에 가까운 이단비의 외침에 뜨뜻미지근한 얼굴로 답했다.
“뭐긴 뭐야, 초특급 선생님이지.”
“그건 저도 눈이 있으니까 알아요. 도대체 치세 선배님을 어떻게 모셔 온 거예요!”
“잘.”
짧은 대답을 들은 이단비는 내게 상세한 설명을 들으려는 희망을 곧바로 버렸는지 바로 이치세를 바라봤다. 이치세는 이단비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곤 찡긋 윙크를 하며 외쳤다.
“안녕, 나는 초특급 선생님이야!”
나와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
그 누구도 이단비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두 노답 프리즘에 둘러싸여 이리저리 휘둘리던 이단비는 처량하게 바닥에 엎드려 중얼거렸다.
“내가 이상한 건가? 왜 나만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나는 딱 좋은 위치에 놓인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을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그냥 믿어 주기만 하는 건 너무 책임감이 없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해서 내 실력으로 네게 랩을 가르쳐 줄 수는 없으니 대신 가르쳐 줄 분을 열심히 모셔 왔지.”
“형아가 나 데려오느라 고생 많이 했다? 형한테 잘해야해, 아가야.”
이치세는 내 손동작을 보며 쿡쿡 웃음을 흘리더니 함께 이단비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짧게 덧붙였다. 이단비는 이치세의 첨언에 드디어 정신을 차렸는지 일렁거리는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봤다.
“…저 때문에 모셔 온 거예요?”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지.”
“맞대. 승범이는 부끄럼쟁이구나아. 굳이 꼬아서 말하네?”
‘네 멋대로 해석하지 마라, 이 자식아!’
“형…….”
저 해석기 기능에 아무래도 문제가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단비는 치세 해석기의 효과를 톡톡히 봤는지 잔뜩 감동받아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이단비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외면하며 퉁명스레 말했다.
“그러니까 열심히 해. 안 그러면 다 말짱 도루묵이니까.”
“물론이죠, 형! 저 열심히 할게요. 진짜 감사해요!”
“나도 열심히 해야지이.”
“그럼 나는 편곡 빨리 마무리하러 갈 테니까 너는 선배님이랑 연습하고 있어. 알았지?”
“네! 편곡 파이팅 하세요!”
“파이티잉.”
뭔가 누가 계속 한마디씩 덧붙이는 것 같았는데 그냥 못 들은 척해야겠다.
나는 이단비의 머리를 툭툭 만지고, 내내 못 본 척했던 놈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오냐!”
이치세의 경쾌한 답을 듣고, 나는 바로 연습실을 나섰다.
* * *
차운이 전달해 준 이치세의 랩 파일은 내게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해 주었다.
나는 원래 작업 속도가 빠른 편에 속했기 때문에 랩 파트 부분이 해결되자 모든 나머지 부분의 편곡을 아주 수월하게 무리할 수 있었다. 물론 밤을 새우긴 했지만, 내 예상보다 일정이 미뤄진 상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작업을 마치자마자 우리 팀 멤버들은 나의 소집에 따라 헤쳐 모이게 되었다.
바로 파트 분배를 하기 위함이었다.
‘한 놈, 두 놈, 세 놈…….’
“다섯, 다 모였네.”
연습실에 둥글게 둘러앉은 멤버들의 머릿수를 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다섯 명이면 한 명이 부족한 건데… 단비, 단비가 없어.”
그러자 내가 작게 숫자를 센 걸 들었는지 백기량이 바로 중얼거렸다. 그에 대답을 해 주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놈은 지레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
“미안해… 네 말이 맞아. 다섯 명이야, 우리는…….”
“우리 팀이 어떻게 다섯 명이야. 이단비는 오늘 안 와. 어차피 랩 포지션은 걔 하나니까 굳이 여기서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서 랩 연습하라고 보냈어. 아마 댄스 연습 시작할 때까지 잘 안 올 거야.”
나는 백기량의 헛소리에 혀를 쯧 차며 말했다.
이놈은 내가 ‘네 이름은 앞으로 청기량이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도 부정 하나 못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궁금한 거 있으면 그냥 물어봐. 그렇게 눈치 보거나 혼잣말로 말하지 말고.”
“응…….”
내 말에 백기량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이단비가 옆에 없으니 어째 평소보다 훨씬 더 기가 죽은 모양이었다.
‘에휴.’
경연이 시작될 때까지 저 성격이 개선될 수 있을까. 첫인상으로 단정하자면 저 성격은 데뷔해도 안 고쳐질 것 같았다. 백기량의 우유부단하기만 한 모습에 한숨을 쉰 나는 가사지를 멤버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이미 며칠 전에 경연곡을 배정받았기 때문에 멤버들은 원곡의 가사는 이미 숙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따로 가사지를 나눠 준 것에는 언제나 그렇듯, 이유가 있었다. 나는 쓸데없는 짓을 싫어하니까.
“이건…….”
가사지를 쭉 훑어본 멤버들은 이상을 느꼈는지 입을 벌리고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그에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맞아. 바뀐 부분이 꽤 많지? 원곡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는 정도로 가사를 좀 수정했어. 우리는 좀 더 명확한 콘셉트를 세우고 무대를 할 거거든.”
“콘셉트?”
콘셉트를 세운다는 말에 멤버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도 그럴 게 원곡은 그렇게까지 특출난 콘셉트의 노래는 아니었으니까. 아이돌들이 흔히 하는 사랑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경연에서 임팩트를 남길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이 편곡을 통해 이 곡에 특별한 콘셉트를 부여하기로 했다.
“우리는 조직원과 형사로 나뉘어서 무대를 하게 될 거야. 의상은 이미 제작진분들께 요청 드렸어. 아마 경연 일까지 잘 마련해 주실 거다.”
“조직원과 형사요?”
멤버들은 서둘러 가사지를 다시 살펴봤다. 그리고 내가 왜 콘셉트를 그렇게 잡았는지 이해했다는 듯 감탄사를 뱉었다.
“헤어진 연인에게 붙잡아 달라는 내용의 가사를 형사에게 쫓기는 조직원으로 해석한 거네요! 형사 쪽은 따로 가사를 추가하고요! 이렇게는 생각 못 해 봤어요.”
“우와, 막 가사를 다 뜯어고친 것도 아닌데 스토리텔링이 되는 게 진짜 신기해요. 재미있다.”
멤버들의 말이 맞았다.
우리가 부르게 된 하이프의 [Catch me!>는 전 애인에게 나 좀 잡아 주쇼 애원하는 남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가사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가사가 은유적인 느낌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예를 들어 ‘네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걱정했어. 혹시라도 영원히 사라져 버릴까 봐.’라는 가사는 전 애인의 뒤꽁무니를 구질구질하게 쫓아 뛰어다니는 내용이었지만, 어둠 속에 숨어 버린 조직원을 애타게 쫓는 형사로 대치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저는 좋은데요? 사실 저도 기량 형을 제외하고는 우리 팀 연령대가 좀 어려서 사랑 노래는 좀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었거든요.”
“저도 좋아요! 승범 형의 연애 세포에 대해서는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무대에 관한 부분은 승범 형의 의견을 따르는 게 가장 좋겠죠.”
“나도… 좋은 것 같아.”
서로 시선을 교환한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연애 세포는 무슨 얼어 죽을 연애 세포. 아이돌한테 그딴 건 필요 없다.’
당연히 좋아야 했다.
내가 개고생해서 짰는데 싫다고 투덜거리는 놈이 있으면 산 채로 묻어 버리겠다.
“이화영, 너는?”
“좋아.”
마지막으로 우리 팀의 유일한 투덜이까지 좋다는 의사를 확인한 나는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럼 콘셉트는 이대로 진행할 거고, 다음은 캐릭터를 정해야 해.”
“캐릭터요?”
내 말에 또다시 멤버들이 의아한 낯으로 물었다.
보통 무대에서는 하지 않는 일이라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하였다.
“굳이 센터가 아니더라도 관객들의 눈에 띄게 만들기 위한 강제성을 만드는 거야. 포지션 배정일에 말했듯이 이번 4차 경연에서 우리 팀은 이화영과 나, 둘이서 더블 센터로 무대에 나서게 될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센터에만 과할 정도로 시선이 쏠리는 건 무대의 완성도를 떨어트리니까 최대한 피해야지.”
“아하. 뮤지컬처럼 각자 대사가 있는 느낌이군요. 그럼 확실히 골고루 시선이 가겠네요.”
“의상도 각자 다르게 입게 될 거니까 보는 재미도 있겠지.”
“좋아요. 뭐. 솔직히 저희는 승범 형이랑 니콜라스 형한테 안 묻히려고 발악을 해야 하는 입장인데 이렇게 도와주시면 이득이죠.”
그냥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것 외에도 할 일이 생기자 바로 상기된 낯을 한 멤버들은 웃음기를 잔뜩 머금고, 캐릭터를 짜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는 정의감 투철한 형사인가?”
“바보야, 너는 악당같이 생겼거든?”
“그렇게 치면 니콜라스 형은 영 보스네요! 딱 잘 어울리는데요?”
“그렇지. 암만 봐도 형사 할 것 같은 얼굴은 아니지.”
“아무래도 형사는 월급 받고 일하니까…….”
“진짜 그러네. 그래서 안 어울리는 거였구나.”
나는 삐걱거리던 팀이 점점 활기를 띠는 것을 보며 아주 조금 뿌듯함을 느꼈다. 뭐, 여전히 백기량은 눈치만 보고 있었고, 이화영은 뚱한 얼굴로 가사지를 노려보고 있었으니 멤버 모두가 활기차게 대화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참여율이 저조하던 나머지 멤버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건 좋은 신호였다. 내 예상으로는 본인들도 무대에서 눈도장을 찍을 수 있다는 확신에 제대로 의욕을 내기 시작한 것 같았다.
“더블 센터로 가겠다고 했으니까 그럼 승범 형은 밸런스 맞춰서 형사 팀으로 가야겠네요.”
“아마 그러겠지.”
“그런데 저희 짝수가 안 맞아요. 7명이라서 한 명이 남아 버리니까요. 누구 하나는 외톨이가 되거나 깍두기가 되겠네요.”
한 명이 남는다는 말에 백기량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원래 친구 없는 놈들은 이런 상황에 예민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 예민함은 타당했다.
“아, 그거 백기량 형이니까 빼고 정해.”
아무렇지도 않게 뱉은 말에 백기량이 쏟아질 것 같이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예상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꽤 충격을 먹었는지 머리를 부여잡더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살짝 고개를 숙여 들어 보니 대충 본인이 또 무슨 실수를 했는지, 어떤 이유로 미움받게 된 것인지 인스턴트로 성찰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음침하다… 이렇게 살면 안 피곤하나.’
나는 갑작스레 쏟아지는 부정적인 기운에 질색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놈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실수한 거 아니니까 진정해.”
“…진정했어. 준비됐어. 그, 그런데 하차는 안 돼……. 하차 못 해.”
‘도대체 사고가 어디까지 흘러간 거냐.’
진정도 준비도 안 된 것 같은데 일단 1초라도 빨리 오해를 풀어 주지 않으면 놈이 곧 거품을 물고 기절할 것 같았다. 나는 휘청거리는 백기량의 어깨를 양손으로 세게 붙들고 최대한 상냥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잘 들어. 형은 보스의 다른 모습으로 나올 거야.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의 보스 말이야. 동일 인물이니까 쪽수에 포함이 안 되는 거지.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으니까 운 좋게 키까지 비슷하니까 그걸 써먹으려고 이렇게 짠 거라고.”
“니콜라스랑 페어로…….”
최대한 빠르게 늘어놓은 설명에 백기량은 넋을 잃고 멍하니 바닥을 응시했다.
정말 미동도 없이 가만히 땅만 보고 있기에 나는 백기량을 툭 건드리며 불렀다.
‘죽었나?’
“형?”
기절한 건 아니었는지 나의 부름에 백기량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뻣뻣하게 굳은 채 말했다.
“내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응, 아니야.
할 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