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9)
9화
“헉, 허억. 콜록!”
제작진들로부터 하루 만에 모든 연습을 마치라는 얼토당토않은 지시를 들은 후 우리는 연습실로 돌아와 개인 연습 시간을 가졌다. 아침 7시에 강당에서 돌아왔으니 내일 오후 2시의 중간 점검까지 31시간 남은 셈이었다.
“하아, 하… 후우, 훅.”
걱정했던 가사 암기는 반복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고 생각보다 귀에 콱콱 박혀서 거뜬히 해낼 수 있었다. 아임 섹시, 아임 큐트 이러고 있는데 어떻게 못 외울 수가 있겠는가.
“훅, 후욱, 하.”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만 따라와라! 이미 알려 줬잖아!”
나는 지금 이 순간, 띠동갑을 한참 넘어선 똥강아지들에게 미친 듯이 쫓기고 있다.
“형, 저도 춤 알려 주시면 안 돼요?”
“저도요! 댄스 브레이크 부분 한 번 더 해 주세요!”
“저는 노래요!”
노래는 내 주력 포지션도 아닌데 왜 노래까지 나한테 오냐. 진짜 미치겠네.
“너는 노래 잘하는 사람한테 가!”
“노래 잘하는 형들은 지금 안무 익히느라 바빠요! 안무가 어려워서 다들 길을 잃었다고요!”
노래를 알려 달라는 아이에게 거절의 의사를 보였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 똥강아지들은 정말 지치지도 않고 끈질기게 나를 쫓아왔다. 아마 알려 줄 때까지 쫓아다닐 생각인 것 같았다.
다른 연습생들이 헤매는 동안 진도를 모두 나가고, 같은 방인 도유다와 우강원을 가르치던 중 딱 들켰던 것이 쫓기는 이유였다.
“왜 강원이 형이랑 유다 형만 가르쳐 줘요! S급 1호실 친목 적폐다!”
‘어쩔 수 없다고!’
도유다는 여기 있는 연습생 중 노래를 가장 잘했고, 우강원은 피지컬이 가장 좋았다. 사실상 내 마음속의 데뷔 멤버 1위, 2위로 자리 잡은 두 놈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 데뷔를 시켜야겠단 말이다.
“미치겠네!”
* * *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어, 그거 아니야. 어깨 올리라고 한 적 없는데 왜 올라가는 거야.”
‘왜 이렇게 된 거지.’
정신을 차려 보니 거울 앞이었다.
아이들에게 쫓기고 쫓기던 나는 결국 거울을 앞에 두고 단체 안무 레슨을 하기 시작했다. 싫다고 하면 될 일이었지만, 갓 태어난 병아리들의 울먹거리는 얼굴을 보니 나이를 처먹을 대로 처먹은 양심이 따끔따끔 아팠다.
“형, 이거는요?”
“팔을 쳤으면 당기는 것도 제대로 끝까지 해 줘야지. 세게 치는 거에만 신경을 쓰니까 펄럭거리는 것처럼 보이잖아.”
“야, 형 진도 나가는데 중간에 끊지 마라. 수업 막히잖아. 나중에 따로 물어봐.”
A등급의 연습생 하나가 질문을 한 연습생에게 군기 반장처럼 냉정하게 말했다.
뭘 나중에 따로 물어봐, 나는 트레이너도 아닌데.
“싸우지 말아라, 얘들아…….”
“네, 형!”
초롱초롱 눈을 빛낸 A등급의 연습생이 바로바로 대답했다.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후우…….”
허리춤에 손을 얹고 한숨을 쭉 뱉었다.
‘우리 병아리들이 열심히 하시겠다는데 뭐.’
이왕 가르치기 시작한 거 적당히 할 생각은 없었다. 나한테 배웠는데 개떡같이 춤춘다는 말을 들으면 참을 수 없었다.
“그래, 죽을 때까지 해 보자고. 잠은 사치야, 그치?”
내 눈동자에 서린 광기를 본 도유다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직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아이들이 해맑게 대답했다.
“네에!”
“다시 갈게.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본, 투비, 아이돌. 댓츠 미. 아니야, 틀렸어. 다시.”
굳이 가르쳐 달라고 쫓아다니는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아이들은 대게 실력도 좋기 마련이었다. 시범을 보이면, 아이들은 곧잘 따라왔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만족할 거라면 나는 시작도 안 했다.
“다시. 나는 그렇게 안 가르쳐 줬어.”
“으앙.”
“다시.”
“으아악!”
“다시.”
“끄아악!”
“처음부터.”
“형, 조금만 쉬면 안 돼요?”
“어어? 누가 우는소리 해? 이리 나와. 너는 내 옆에서 해.”
.
.
.
“상쾌하다.”
모든 병아리들이 뻗어 버리고 홀로 뽀송뽀송하게 걸어 나온 나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는 도유다를 질질 끌어 보컬 연습실에 집어넣었다. 다른 연습생이면 몰라도 우리는 S등급을 유지하려면 노래도 완전하게 해야 했다.
“누워 있을 시간이 어디 있어. 연습해야지. 목 아프면 춤 연습하고, 근육 지치면 노래 연습해.”
“형, 살려 주세욕!”
보컬 연습실 문을 닫아 버렸다. 흡음재가 빵빵하게 채워진 벽을 뚫고 놈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성량 좋네. 목 상태 좋은 것 같으니까 연습하자.
그리고 겨우 자유를 얻은 나는 연습실 벽 쪽에 기대 물을 마시던 우강원의 옆에 앉았다. 주먹으로 입가를 가리고 쿡쿡 웃음소리를 눌러 담은 우강원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수고했어. 나도 알려 줘서 고맙고.”
“형은 이미 따로 알려 줬는데 왜 애들이랑 같이 들은 거야?”
“그래도 한 번 더 들어서 나쁜 건 없지.”
“으음…….”
“막막했는데 아마 네가 잘 알려 줘서 다들 잘할 수 있을 거야.”
“글쎄.”
아무리 알려 줘도 하루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이미 데뷔한 아이돌도 아니고 연습생들이 준비를 마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 아마 내일 이루어질 등급 평가에서 대부분의 연습생들이 눈물을 삼키게 될 것이다.
“…….”
물을 마시며 흘끗 본 우강원의 표정이 안 좋았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꾹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등급 평가가 불안한가?’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불안한 거면 죽을 때까지 연습시켜 줘야지. 대충 답을 예상하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우강원이 어렵게 입을 뗐다.
“마지막 생방송 날 우리 데뷔 멤버가 문자 투표 순위대로 결정된다고 했잖아.”
“응.”
“순위 조작이나 그런 건 없겠지?”
‘엥.’
“순위 조작?”
갑자기 뭔 순위 조작.
제대로 이해를 못 해 의아한 시선으로 올려다보자 우강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
우강원과 나의 분위기가 어색해질 즈음 누군가 뛰어와 말을 걸었다.
“형! 저랑 같이 연습해요.”
아까 병아리 연습생들을 통솔했던 병아리 1번이었다.
‘아까 다른 애들이랑 같이 뻗어 있더니 벌써 회복한 건가.’
저맘때 아이들은 원래 저렇게 체력이 넘쳤던가. 하도 오래전이라 기억도 안 난다.
“왜? 뭐 모르는 거 있어?”
“아니요. 그냥 더 잘하고 싶어서 형이랑 연습하려고요. 저 열심히 할게요.”
“…하.”
이런 기특한 자식. 죽을 때까지 연습시켜 주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병아리 1번과 거울 쪽으로 걸어가다가 멈췄다. 그리고 우강원을 돌아봤다.
“형은 왜 가만히 보고 있어? 따라와.”
“응?”
“쓸데없는 생각이 들면 연습을 해야지. 그럼 고민도 사라져.”
“…….”
고민이 많으면? 연습을 하면 된다.
고민이 없으면? 연습을 하면 된다.
* * *
“하아아…….”
진짜 역대급으로 피곤했다.
병아리 1번과 우강원을 데리고 새벽까지 연습하다가 잠깐 눈을 붙였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개인 연습을 했다. 아직까지 이 몸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번 미션 꿀 빨 줄 알았는데 등급 평가 무대보다 더 힘드네.’
중간 점검 겸 등급 재평가를 위해 이동한 후 순서가 다가올 때까지 눈을 붙였지만, 여전히 피곤했다.
사람을 가르치는 건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소모했다.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 헷갈리지 않도록 실수를 하면 안 되니까. 더군다나 가사가 입에 자연스레 붙을 때까지 반복했으니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병아리 1번이 생각보다 더 대단했어.’
병아리 1번은 체력에 한계가 온 게 뻔히 보였는데도 독기에 가득 차 이를 악물며 계속 연습에 따라오려고 했다.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기에 등급 평가에도 영향이 생길 수도 있어 억지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드는 게 또 있었다.
“으엑, 또 나 쳐다본다. 숨겨 줘.”
“또 쳐다봐요? 저 그 형 이제 슬슬 무서워요.”
나를 지긋이 보고 있는 이화영이었다. 진짜 얼굴 뚫릴 것 같았다. 이 자식은 다른 연습생들은 무슨 벌레 보듯이 무시하면서 나만 저렇게 거슬리게 계속 쳐다봤다.
등급 평가 무대를 한 이후로 계속 저랬지만,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칠 때는 아예 연습실 벽에 기대 대놓고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쳐다보다가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싱긋 미소 지었다. 마치 사냥감을 응시하는 뱀처럼. 다른 사람들은 별문제를 못 느끼는 것 같았지만, 나는 저놈의 미소가 기분 나빴다.
“으으…….”
다른 연습생들이랑 친해지기도 바쁠 텐데 왜 자꾸 나를 쳐다보는지 모르겠다.
쟤는 친구가 없나?
‘아, 없지.’
불쌍한 자식.
도유다의 등 뒤에 숨어 있다가 빠져나왔다. 그리고 안타까움을 담아 피식 마주 웃자 이화영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내가 이겼다.’
“형은 또 왜 웃어요? 이 형도 제정신 아니야.”
그리고 신경 쓰이는 건 저놈의 시선만이 아니었다. 등급 평가 때도 느낀 것이지만 저놈은 뭔가 익숙했다.
‘어디서 본 적이라도 있는 느낌이란 말이지.’
이화영은 데뷔 멤버에 합류될 것이다. 실력이 있었고, 캐릭터가 있었고, 매력이 있었다. 어차피 함께 그룹 활동을 할 거라면 친하게 지내는 게 좋겠지만, 설마 이렇게 애매한 관계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 팔자야.’
평가실의 문이 벌컥 열리고, 제작진 하나가 걸어 나왔다.
“다음 한승범 연습생 들어갈게요.”
“네.”
드디어 내 차례였다.
제작진의 부름에 응해 평가실에 들어가 보니 아주 가관이었다.
무대에는 뮤지컬의 독백 장면처럼 온통 까만 배경지에 불을 꺼놓고, 평가받는 연습생만 보일 정도로 조명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클립보드를 손에 쥔 트레이너들이 쭉 앉아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이 삐걱삐걱 움직이는 소리가 평가실 전체에 울렸다.
‘이딴 식으로 세팅해 놓으면 잘하던 애들도 못하겠네.’
대놓고 압박감을 주는 환경이었다.
“안녕하십니까. SU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한승범입니다.”
“어서 와요, 승범 군.”
무대의 중앙에 서 트레이너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자 마이크를 든 Seezy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연습생들의 긴장을 덜어 주려는 것인지 부드러운 어투였다. 긴장은 안 했지만.
“저희는 사실 연습생들이 준비가 아예 안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이 준비를 해 왔더라고요. 특히나 춤이. 깜짝 놀랐어요. 우리 S등급 한승범 연습생은 어디까지 마쳤을지 기대가 됩니다.”
“몇 퍼센트 했는지 먼저 말해 주세요.”
‘어디까지 하긴 뭘 어디까지 해. 다 했지.’
뭔가 불길했다.
“…100퍼센트요.”
“…….”
“…….”
정적이 흘렀다.
“에이 거짓말하지 말고.”
트레이너 중 하나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말이 거짓말 같나.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거짓말 같다.
“거짓말 아닙니다.”
“…허.”
트레이너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그걸 다 해 왔어요? 연습생들의 의지력과 기본 능력을 보기 위해서 일부러 불가능한 미션을 낸 거였는데.”
“그럼 설마 나머지 연습생들한테 춤 가르친 게 승범 군이에요?”
“네.”
“천재라는 게 진짜 존재하기는 하나 봐요.”
“이건 나도 하루 만에 못 해. 연습생이 어떻게 이러지? 너, 할 수 있어?”
“아니, 나 못 해.”
허리를 숙인 트레이너들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눴다. 아무리 목소리를 죽여도 평가실 내부가 너무 조용해서 다 들렸지만.
“어이가 없다, 그냥.”
“…….”
어이없는 건 나예요, 이 깜찍한 후배님들아.
설마설마했던 구라 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