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90)
90화
“내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프로그램이 시작한 이래로 가장 큰 소리로 내게 반항한 백기량은 자기가 성을 낸 주제에 후회막심했는지 본인의 입을 틀어 막았다. 그리고 내 눈을 2초 이상 응시하지 못하며 계속해서 눈동자를 굴려 댔다.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다.
소리 한번 질렀다고 내가 저를 죽이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턱을 괴고 백기량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자 백기량은 점점 더 큰 공포에 빠지며 내 눈치를 봤다. 눈이 마주치는 게 무섭다면 그냥 시선을 돌리면 될 텐데 놈은 꾸역꾸역 실눈을 뜨며 내 표정을 살폈다.
‘이 찌질이를 어떻게 조지지?’
그 과정이 10회 정도 반복되자 백기량의 얼굴은 거의 흙빛이 됐다.
참고로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이러다 일 나겠는데.”
“설마 승범 형의 지시를 거부하는 최초의 용자가 저 형이 될 줄은…….”
상황을 지켜보던 멤버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렇게까지 화나지 않았는데, 뭔가 주변에서 더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짓을…….”
백기량은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겨우 본인이 한 행동을 깨달았는지 머리를 부여잡았다.
진짜 하찮아서 한번 잘못 치면 꼴까닥 기절할 것 같았다.
그러자 보다 못했는지 나머지 멤버들이 끼어들었다.
“저, 형. 그만 용서해 주는 게 어떨까요.”
“울컥하는 것 정도야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만 용서해 주자.”
“맞아요. 저였어도 그 역할은 좀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근데 그걸 기량 형한테 시키면 얼마나 겁이 났겠어요.”
이화영은 백기량에게 관심이 없었는지 줄곧 가사지만 보고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
나는 백기량을 향해 있던 시선을 움직여 멤버들의 얼굴을 똑바로 봤다.
“나는 아직 한마디도 안 했어.”
“네…….”
“네…….”
그 말에 나머지 멤버들이 본인의 자리로 쏙 돌아갔다.
나는 멤버들이 물러선 후에야 입을 열었다.
“형 입으로 말해 봐. 언제까지 멤버들이 대변해 주는 거 그냥 기다리고만 있을 거야.”
“…….”
뭐라도 하나 죽을 것 같은 정적이 흘렀다.
백기량의 얼굴은 원래도 혈색이 없었는데 더 핏기를 잃으니 이제는 거의 어디 아픈 사람처럼 보였다.
“대답 못 해?”
“미안해…….”
다시 한번 묻자 백기량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사과를 하면 지금의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여 취한 행동 같았다. 하지만 고작 사과 따위는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백기량의 회피에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버릇도 슬슬 고칠 때가 되었고.’
나는 오늘 꼭 저 찌질이와 결판을 내야겠단 말이다.
“아니. 사과 말고. 사과는 필요 없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왜 싫은지 정확하게 말해.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건 고쳐야 하는 부분이 맞는 거니까.”
“…….”
“말해 봐.”
내가 더 이상 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눈치챈 백기량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무겁게 입을 열었다.
“왜냐하면 그 역할… 니콜라스랑 페어로 하는 거잖아.”
“이화영이랑 페어로 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의외의 답이었다.
나는 그냥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게 부담스러워 저러는 줄 알았다.
“그러면 이화영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괜찮다는 뜻이야?”
의아한 낯으로 다시 묻자 백기량은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수척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화영의 눈치를 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절대 니콜라스 발끝도 못 따라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다, 다르니까……. 니콜라스는 가만히 있어도 귀티가 나는데 나는 싼, 싼티가 나잖아. 분명 그런 역할로 나오면 엄청 비교돼서 사람들이 무대에 집중하지 못할 거야. 그러면 나 때문에 무대를 망치는 거고…….”
그 답을 들은 멤버들은 다 같이 기겁하여 백기량을 달래기 시작했다. 상상 이상으로 부정적인 말들이 줄줄이 흘러 나와서 매우 당황한 것으로 보였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이 형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
“누가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 하래요!”
“형은 소중하다. 사랑받아 마땅하다.”
나는 위로를 늘어놓는 멤버들을 미뤄 둔 채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러면 이화영이 아니라 나와 페어로 역할을 부여받았다면 그냥 받아들였을 거야?”
“으응…….”
나는 백기량의 대답에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나는 또 괜찮다고 하는 걸 보니 단순히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군. 인지도 차이 때문에 겁을 내는 것도 아니고.’
백기량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소심하고 자존감이 낮은 놈이었으니까. 이렇게 본인을 깎아내리는 모습을 보이는 건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하지만 왜 하필 이화영에게 저렇게 꽂혔는지 의문이었다.
이화영이 두각을 드러낸 건 프로그램 극 초반부부터였는데 이제 와서 열등감에 젖는다? 이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사용하는 어휘와 말투도 이상했다.
백기량은 자신감이 없어 말끝을 흐리는 버릇이 있을 뿐, 특별히 말을 더듬는다던가 하는 문제를 겪고 있는 놈이 아니었다. 그런데 특정 단어들을 뱉을 때마다 거의 딸꾹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마치 그 단어를 입에 담는 것 자체가 괴로운 기억을 헤집어 놓는 것처럼.
‘본인이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어휘가 아니야. 뭔가 이상한데?’
놈은 재능, 귀티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 집착하는 편도 아니었다. 도유다나 젠의 뒤꽁무니를 좋다고 따라다니는 놈이 그런 걸 신경 쓸 리가 없었다. 진짜 그런 걸 선망하고, 입이 닳도록 말하는 놈들은 따로 있었다.
예를 들면 프릭이라던…….
‘설마.’
무심코 그 이름을 떠올리자마자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기묘한 감각에 나는 재빠르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자 프릭이 했던 말과 백기량이 했던 말이 책을 펼치듯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와, 지금 입고 있는 것도 명품이죠? 몸에 걸치고 있는 거 다 합하면 얼마예요?”
– 국민 여러분께 사과 그렇게 할 겁니까? 너는 그냥 예의가 안 됐네. 사람이 준비가 안 됐어. 그냥 집에 가라, 넌.
– 프릭 트레이너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나는 형편없으니까…….
“허.”
나는 할 말을 잃어 헛웃음을 지었다.
이화영을 과하게 떠받드는 태도, 자극적인 어휘. 그 모든 것이 어디서 왔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백기량이 방금 토해 냈던 말들은 모두 본인의 생각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그것은 모두 프릭에게 들었던 말들이었다. 백기량은 프릭이 저에게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했던 억지 비난들을 모두 사실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소심한 놈이 이 지경으로 악화된 게 다 그 새끼 때문이었군.’
프릭은 유난히 백기량을 졸졸 쫓아다니며 괴롭혔었다.
S등급 연습생들 중에서 놈에게 휘둘릴 만한 놈이 백기량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강원은 몸집이 문짝만 했고, 도유다의 옆에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이단비는 개소리에 ‘아, 진짜요.’로 일관했으며 이화영은 이화영이었다.
결코 만만하지 않았던 S등급 연습생들 중에 프릭이 유일하게 건드릴 수 있었던 놈은 백기량 정도였을 것이다. 나는 이제야 백기량의 거슬릴 정도로 움츠러든 태도를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그거, 누구한테 들은 이야기지.”
“…….”
백기량은 카메라 쪽을 보며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였다.
저렇게 작게 움직이면 카메라에 담기지 않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안 담기기는 개뿔, 아마 제작진들 머리에는 ‘백기량 연습생이 자신감을 잃었던 이유…’ 이 난리를 치며 시청자들의 눈물을 뽑아낼 생각이 가득할 것이다.
‘백기량 팬들 이번 촬영분 방송 나가면 가슴 찢어지겠네. 가뜩이나 프릭 싫어하던데.’
하지만 고생하는 모습만 보여 줘서는 방송에 제대로 나갈 수 없었다. 사람들은 현재 진행 중인 고통을 실시간으로 직관하는 걸 잘 못 견디니까. 언제나 고통과 상처에는 극복의 서사가 따라와야 했고, 백기량이 이번 경연에서 이뤄 내야 하는 결과는 바로 그것이었다.
‘아마 적당히 위로해 줘도 안 통하겠지.’
나는 완전히 기가 죽어 바닥에서 아예 시선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백기량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리고 차분히 물었다. 이놈은 내가 조금만 언성을 높여도 겁을 집어먹으니까.
“형은 진심으로 형이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응.”
평소와 다르게 유하게 건네진 질문에 백기량은 조금 망설이다 솔직한 답을 내놓았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원래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지적하는 거고, 장점을 찾아주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야. 무능한 조언자는 비판을 일삼고 본인은 칭찬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는 착각에 빠져 살지.”
“…….”
“형한테 그 말을 한 사람은 유능한 조언자야?”
백기량은 난처한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아니라는 간접적인 표현이었다.
“그러면 형이 느끼기에 가장 뛰어난 것 같은 조언자를 떠올려 봐.”
간혹 프릭 같은 놈들이 있긴 했지만 이 프로그램에는 그래도 실력이 검정된 트레이너와 작곡가 많이 등장했다. 나는 제이라든가, 도유다의 보컬 연습을 도와줬던 Seezy라든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우물쭈물거리던 백기량이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너.”
엥.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그래, 그러면 그 사람의 조언을 우선순위로 두자고.”
오히려 좋았다.
이 기회에 나는 백기량을 칭찬 감옥에 가둬 버리겠다는 다짐을 했다.
프릭의 헛소리 따위는 잊어버릴 수밖에 없게 만들어 주마.
“나는 형이 노래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기복 없이 항상 좋은 노래를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거든. 마스크가 특이하고, 키가 큰데 비율도 좋아서 분위기가 있지. 가사를 빠르게 외우는 편이라 급박한 상황에는 큰 도움이 되고, 섬세해서 다른 멤버의 파트를 능숙하게 도와주는 것도 좋아.”
장점을 쭉 말해 주자 빨갛게 익어 버린 백기량이 으, 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눈을 깜빡거렸다. 기뻐하는 듯 부끄러워하는 듯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방황하던 얼굴이 참 생소했다.
부끄러워하지 마아악.
나도 같이 창피해지려고 하니까.
“승범 형 얼굴 빨개졌다.”
“와, 대박.”
“분위기 왜 이렇게 간지럽냐.”
옆에서 상황을 관전하던 나머지 멤버들이 수군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짓으로 그들을 조용하게 만든 다음 다시 백기량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흠칫 몸을 떨었다.
‘헉.’
똘망똘망하니 벌겋게 달아오른 백기량의 얼굴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주춤 뒤로 몸을 물렸지만, 그럴수록 백기량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어어…….”
‘얘 갑자기 왜 이래. 칭찬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보나.’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나는 백기량의 열렬한 눈빛을 피하며 마저 해야 할 말들을 이어 갔다.
“개선해야 할 점도 많으니까 그렇게 성급하게 좋아하지 마. 형의 안 좋은 부분은 자신감이 부족한 점이고, 나를 너무 어려워하는 것도 고쳐야 해. 무대에서 눈치 보는 것도 하지 마. 형 그러는 거 볼 때마다 노래 실력이 아까워 죽겠으니까.”
“…나, 나 너무 기뻐. 이렇게 말해 주는 사람 네가 처음이야.”
당근 다음에는 채찍이 들어가야 했다.
근데 채찍질을 해도 애가 히죽거리면 어떡해야 하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