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어디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거 다 헛소문입니다. 왜냐하면 조만간 저랑 같이 곡 내실 거거든요.”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킨더는 눈썹을 사납게 찌푸렸고, 이치세는 놀란 듯 크게 벌어진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두 놈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이치세 선배님께서 저를 기다려 주시느라 텀이 좀 길어지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오해가 생긴 모양이네요. 괜한 착각을 불러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저는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이치세 선배님 같이 뛰어난 실력자의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하, 하하하! 아하하하!”
내 말에 킨더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은 그렇게까지 웃기지도 않은데 일부러 과장하여 웃는 게 눈에 훤히 보여 견디기 힘들었다.
‘쪼개긴 뭘 쪼개, XX…….’
참자. 참아야 한다.
앞에서 온갖 꼴값은 다 떨고 있는 것을 꾹 참고 있으니 바로 킨더가 입을 열었다.
“이제 서유태 없으니까 얘로 갈아탔…….”
몇 마디 못 들어 봤는데 벌써 개소리의 예감이 들었다.
나는 바로 킨더의 말을 자르고 내 말을 늘어놓았다.
“저는 이치세 선배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고 싶지 않습니다.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인 것 같지도 않고요. 그러니 두 분께 풀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든, 따로 만나서 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 업계는 말이 무엇보다 무서운 곳이니까요. 저는 가벼운 입으로 화를 당하는 일따윈 사양하겠습니다.”
그 입 좀 다물라는 소리였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경솔함을 지적하는 것이 명백한 말에 킨더는 방금까지 머금고 있던 억지 웃음을 지워 내고 나를 노려봤다.
“너…….”
“예.”
나는 금방이라도 들이받을 것처럼 노기를 드러내는 킨더의 눈을 피하지 않고 응시했다.
‘그래, 네가 노려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
프리즘의 멤버 앞에서 ‘서유태’를 거론하는 것은 명백히 선을 넘는 짓이었다.
그리고 킨더는 이미 입을 경솔하게 놀린 것으로 한차례 욕을 먹었던 적이 있다. 이미 대중들과 동료 연예인들에게 매서운 눈초리를 받고 있는 와중에 나를 건드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감히 우리 집 애를 괴롭혀?’
그런 생각을 하며 폭주하는 분노를 잠재우지 못하던 중, 볼이 양쪽으로 눌려 입술이 붕어처럼 앞으로 튀어나왔다.
“우.”
‘뭐야?’
옆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이치세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내 볼을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 놈은 활짝 웃어 보였다.
“승범이, 나 때문에 화내는 거야? 이거 감동인데에? 그런데 그렇게 화 안 내도 돼.”
“몌?”
잘 움직이지 않는 볼을 달고 억지로 말을 하자 어정쩡하게 억눌린 발음이 흘러나왔다. 이치세는 그에 푸스스 웃음을 흘리고는 볼을 꾹꾹 눌러 댔다.
“나는 인사같이 기본적인 것도 못하는 사람이랑 이야기 나눌 생각이 없거든. 그냥 상대하지 마.”
그 말에 킨더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설마 지금까지 내 말에 대답도 안 했던 게!”
그렇다. 이치세는 애초에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않았던 킨더와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드디어 이치세의 태도를 이해하고 기운이 쭉 빠져 한숨을 쉬었다.
‘그런 거였냐고. 괜히 욱했네. 깜짝 놀랐다, 이 자식아.’
기죽어서 대답도 못하는 게 아니라면 다행이었다. 천장을 찌를 듯 치솟았던 눈꼬리가 제자리로 돌아오자 이치세는 다시 한번 껄껄 웃음을 터트리고는 내 눈가를 손끝으로 지분거렸다. 그리고 시선을 내 얼굴에 고정한 채 말했다.
“한 번만 말해 줄 테니까 잘 들어. 나야 항상 살 만해. 나는 프리즘이니까.”
‘뭔 소리야?’
나는 순간 이치세가 내게 말을 거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뭔가 맥락이 이상했다.
– 또 기어 나오는 거 보니까 이제는 좀 살 만한가 봐?
나는 몇 초 동안 머리를 굴린 후, 답을 알 수 있었다.
저 말은 킨더가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킨더 또한 그것을 눈치챘는지 이를 빠득 갈며 이치세를 노려봤다.
이치세는 킨더의 형형한 기색에도 멈추지 않고 차례로 답하기 시작했다.
– 프리즘 노래 외에는 얼굴 안 비춘 지 도대체 몇 년이냐?
“저번 솔로 곡 낸 지 아직 2년밖에 안 됐는데 좀 기다려 줘. 나는 너랑 달라서 많이 바쁘거든.
– 너도 결국 서유태나 프리즘 네임 밸류 없으면 별 볼 일 없는 놈이었던 거야.
“과연 내가 프리즘의 명성에 덕을 보기만 했을까? 내가 ‘그’ 이치세인데. 오히려 프리즘이 실력파 아이돌의 이미지를 쌓은 것에 나의 역할이 컸겠지.”
– 랩하고 무대 잘하는 것 외에는 봐줄 것도 없는 주제에.
“래퍼가 랩하고 무대 잘하면 됐지. 너는 그게 부족해서 나한테 졌던 거잖아.”
– 3분짜리 노래에 고작 20~30초 랩 채워 넣는 것쯤이야 개나 소나 다 하는데.
“나는 네가 20~30초도 안 되는 피처링 말아먹어서 욕 처먹은 것도 다 봤는데.”
“…….”
“아이돌 래퍼 그렇게 무시할 시간이 있으면 가서 네 랩 연습이나 더 해. 아니면 명상이라도 좀 하든가. 그렇게 이치세 팬덤 때문에 우승 못 했다고 남 탓이나 늘어놓고 있으니까… 도태당하는 거야.”
적나라하게 속내를 드러내는 말에 킨더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킨더는 내가 이치세의 지적을 모두 들었다는 것을 의식하기라도 하는 건지 나를 힐끔힐끔 보다가 분한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악을 쓰며 외쳤다.
“남 탓이 아니라 그건 정말로 프리즘 팬덤 때문에 인기 투표가 돼서!”
“그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활약도 못 하고 떨어진 아이돌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팬덤 타령이야? 내 덕분에 역대급 흥행 누렸던 건 입 싹 닦고 계속 이렇게 귀찮게 굴면 곤란해.”
“…….”
할 말을 잃은 킨더가 입을 다물자 이치세는 그제서야 시선을 돌려 킨더를 봤다.
“연락해, 영호야. 나는 너랑 컴백 시기 맞출 의향 있으니까. 정면 승부 하자. 나는 안 무서워.”
“…….”
“그런데 너한테 그럴 용기가 있긴 해? 내 컴백 시기 알아내려고 전전긍긍하면서 돌아다닌다는 소문 돌던데.”
“오…….”
나는 작은 감탄사와 함께 저 말이 정말이냐는 듯 킨더를 돌아봤다. 이치세가 말하는 내내 잔뜩 농락당한 볼때기가 아렸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킨더는 나의 반응에 매우 큰 동요를 보이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누가 그래! 그런 적 없거든?”
그리고 한 발 한 발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도망치네…….’
이윽고 거진 3m 정도의 거리를 확보했을 즈음, 킨더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꽥 질렀다.
“두고 봐! 일정이 빽빽해서 굳이 컴백 시기를 맞추지는 않을 거지만! 언젠가는 밟아 주마! 말해 주겠지만 컴백 안 겹치는 건 일정이 빽빽해서야!”
“…….”
그러고는 우리의 답은 듣고 싶지 않았는지 도망치듯 후다닥 자리를 떠 버렸다.
‘…쟤는 이렇게 당하기만 할 거면서 왜 굳이 와서 뺀질거린 거야.’
저놈은 도대체 뭘 위해 이곳에 온 것인가.
킨더의 볼품없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짜게 식은 눈을 하고 있을 즈음, 팔이 붙잡혔다. 그리고 거부할 틈도 없이 이치세의 괴력에 따라 몸이 멋대로 빙글빙글 돌았다.
“와! 악당을 퇴치했다!”
“놓아주, 놓, 놓아.”
강제로 강강술래처럼 겅중겅중 뛰던 나는 슬슬 속을 모두 게워 낼 것 같은 기분에 이치세의 팔을 급히 두드렸다. 그러자 이치세는 바로 다리를 멈추고, 나를 으스러트릴 것처럼 강하게 껴안았다.
“고마워, 승범아!”
“우욱, …뭐가요?”
대뜸 던져진 감사의 말에 의아하여 묻자 이치세는 차근히 말을 이어 갔다.
“만약 네가 없었다면 나는 욱해서 감정적으로 행동했을지도 몰라. 네가 중간에서 막아 줘서 정말 다행이야.”
‘욱하기는.’
그렇게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면서 욱했다고 하면 퍽이나 믿겠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킨더 트레이너님께서 선을 넘는 것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던 것뿐이니까요.”
“하하, 쟤는 원래 좀 그래. 좀 생각 없이 말하는 편이라. 내가 저 친구 성격을 아니까 웬만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으려고 했는데 솔직히 유태 형 이야기 나왔을 때는 조금 욱했거든.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건 무뎌지지 않나 봐.”
이치세의 입에서 또다시 내 이름이 거론되었다.
나는 애매하게 이치세의 시선을 피한 채 화제를 돌렸다.
“그것보다… 곡을 못 쓰고 있다는 것, 정말입니까?”
그러자 이치세는 답하기 어려운 듯 조금 뜸을 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슬럼프 비슷한 거라고 해야 하나. 너도 알고 있을 그 일을 겪고 난 이후로 나는 곡을 쓸 수 없게 됐어. 실력이 없어서 곡을 못 쓰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문제이기 때문에 킨더의 말은 사실이 아니지만, 지금 당장은 온전한 내 곡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게 맞지. 프리즘의 노래에 들어갈 짧은 랩을 짜는 게 고작이야.”
이치세는 앞으로 함께 작업을 하게 될 내게 대략적인 설명은 해야 할 필요를 느꼈는지 아주 솔직하게 본인의 상태를 토로했다. 나는 그것을 들으며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슬럼프를 극복할 기미는 보이는 겁니까?”
“으음, 아니. 솔직히 아예 감도 안 잡혀서 헤매고 있는 중이야. 유태 형은 나의 뮤즈나 다름 없는 사람이었거든. 그걸 잃고 나니 회복이 잘 안 되더라. 방송 활동도 그래서 중지하고 그냥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거고. 차운 형도 내가 이렇게 방황하고 있는 걸 아니까 그날 나를 부른 거겠지!”
이치세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밝게 답했다. 슬럼프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처럼은 도저히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저놈의 속이 이미 다 문드러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넘길 수 없었다.
내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자 이치세는 가볍게 숨을 훅 내쉬고 내 머리 위에 제 손을 얹었다.
“하지만 그러고 있던 중, 나는 너를 만난 거야. 정말 놀라웠어. 네 작업물을 들었을 때 유태 형의 곡을 들었을 때처럼 영감이 들끓었거든. 그런 감각은 정말 오랜만이었던지라 그만 네게 억지를 부리고 말았지.”
‘그렇게까지 내 곡에 집착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나.’
나는 그제야 이치세가 내 곡에 집착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럴 거면 그냥 곡을 줘 버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대로 가라앉고 싶지는 않아. 내가 이러고 있는 걸 알면 그 형은 분명 편하게 잠들지 못할 테니까. 그 형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고함을 지르면서 무덤에서 뛰쳐나올지도 모르지. ‘너 인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라고 말이야, 하하.”
약간은 장난스럽게 터져 나온 말 끝에 이치세는 정말 그래 줬으면 좋겠다, 라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것을 듣고 나니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이자 이치세는 잔뜩 당황하여 허리를 숙여 내 얼굴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어어, 승범이 왜 그래! 승범이가 생각보다 공감 능력이 좋구나?”
그러고도 끝끝내 내가 얼굴을 숨기자 이치세는 한숨에 가까운 웃음소리를 내며 내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나는 이치세야. 아주 작은 기회라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이 위기를 극복할 자신이 있지. 난 네 곡을 통해 다시 일어나는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슬퍼하지 않아도 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좋은 노래 들고 올 테니까.”
“그래! 그거면 충분해!”
내가 드디어 문장다운 문장을 뱉자 이치세는 낯을 화색으로 물들이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리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너희에게 더 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줬어.”
“…….”
“그러니 너는 내게 다시 일어날 기회를 줘.”
나는 울렁거리는 울대로 차마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러자 이치세는 두 손으로 내 손을 붙잡은 채 더 몸을 낮춰 나와 시선을 맞췄다.
“기다릴게, 승범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