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97)
97화
백기헌의 너튜브 동영상으로 인한 소란이 한차례 지나간 후, 나는 백기량을 데리고 속성 과외를 진행했다. 백기량에게 베팅을 했기 때문에 놈이 경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 형은 그 정 좀 어떻게 해야 해요. 저런 사람들이 장마철에 길고양이들 주워 간다니까.
– 시꺼.
나도 모르겠다.
도유다가 뭐라고 하긴 했는데 아무튼 나는 모르겠다.
‘아니? 그놈한테 가능성을 느껴서 이러는 거야. 정은 무슨. 고양이 주워 온 적은 있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형, 오셨어요? 곧 우리 리허설 차례래요.”
속으로 잔뜩 꿍얼거리며 대기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북적북적하게 모여 있는 스태프들과 연습생들 사이로 멤버들이 보였다. 가장 먼저 내게 인사를 한 이단비는 경찰복에 모자까지 풀세트로 입은 채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괜찮네.”
“정말요? 감사합니다.”
제법 멋있게 치장한 이단비를 쭉 훑어보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자 이단비는 약간 쑥쓰러운 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막내라 유니폼으로 준비한 모양이군. 센스 있네. 출연 연습생이 적어져서 여력이 생긴 건가?’
의상 팀에 사전에 콘셉트와 레퍼런스를 전달해 두었는데 그쪽에서도 나름 열심히 힘을 써 준 게 티가 났다. 우리 팀의 콘셉트가 성숙한 느낌이라 어린 이단비가 혼자 동동 뜰까 걱정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혼자 너무 어려 보일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그런 느낌도 없고.”
이단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리자 주변에 서 있던 멤버 중 하나가 으, 하며 앓는 소리를 내더니 진절머리가 난다는 투로 말했다.
“당연하죠. 승범 형은 단비를 너무 어리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출연 연습생 중에서는 어린 편이지만, 너무 빨리 커서 이제 외견은 완전 성숙해 보이잖아요.”
“…그런가?”
“네, 당연하죠. 쟤 키 큰 것 좀 보세요. 말하는 것도 아주 어른스러운 편이고요. 저렇게 덜썩 큰 애를 애 취급 하는 건 승범 형밖에 없어요.”
“…….”
‘내 눈에는 아직도 완전 애로 보이는데.’
아무리 성숙해 보이고 어른스럽게 행동해도 애는 애였다.
띠동갑보다 한참 아래인 놈을 어떻게 어른 취급하란 말인가.
의미 불명인 말들에 뚱한 얼굴을 하고 있자 어색해진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는지 다른 멤버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 그거 홀스터지? 간지난다. 완전히 콘셉트에 녹아든 느낌이네! 역시 얼굴이 잘생기면 뭐든 다 먹히는 건가?”
나는 놈의 말에 의상을 쭉 내려다보며 말했다.
“의상 팀에서 준비해 주신 거야. 형사 팀은 다 착용하고 있어.”
“우와, 부럽다. 우리 조직 팀은 왜 그런 소품 없어? 이거 저항이 있겠는데?”
“이게 공권력의 힘이다, 이 악당들아!”
“우리는 슈트입거든? 부러우면서 괜히 아닌 척하지 마라!”
‘이화영은 어디 있지?’
개싸움을 시작한 멤버들의 목소리를 뒤로한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화영을 찾았다. 보스가 없어서야 다른 조직원들을 아무리 꾸며놔 봤자 태가 나지 않을 것 아닌가.
그때, 문이 열리고 한순간에 대기실 안이 조용해졌다.
그에 이상함을 감지한 우리는 문쪽을 돌아보고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워.’
“와아아!”
왁스로 금발을 포마드 스타일로 세팅하고, 영 보스 콘셉트로 스타일링을 마친 이화영이 대기실로 들어온 것이었다. 코트에 속이 비치는 선글라스, 가죽 장갑에 구두까지 갖춰 입은 걸 보니 절로 탄성이 나왔다.
본인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기품있는 분위기가 찰떡같은 콘셉트를 만나 폭발했다고 해야 하나. 느와르 영화의 마피아 보스를 쏙 뽑아서 눈앞에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콘셉트를 씹어 먹었네, 아주.’
“…꿀리는 건 그냥 우리 얼굴이었구나. 난 또 참, 소품이 형사 팀에 몰려서 차이가 난다고 착각했네. 중요한 건 소품이 아니라 사람이었어. 하하!”
아까 소품에 대한 불평을 터트렸던 멤버가 자조를 흘리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왕이면 ‘아니다. 너도 괜찮다.’ 같은 말을 해 주면 좋겠지만, ‘저’ 이화영을 앞에 두고 있으니 도저히 그런 말이 안 나왔다.
이화영은 저에게 집중된 시선이 신경 쓰이지도 않았는지 곧장 내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준비는 제대로 됐겠지?”
“…물론이지. 내가 누군데.”
화려한 얼굴에서 겨우 시선을 떼고 대답하자 이화영은 대기실을 쭉 둘러보더니 말했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백기량이 자리에 없는데.”
“휴게실에서 마지막 벼락치기 중이거든. 곧 올 거야. 시간 약속은 잘 지키는 사람이니까.”
“벼락치기?”
내 대답에 이화영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제대로 설명해 주길 바라는 얼굴이었지만, 내가 입을 열기 전 제작진 하나가 나와 이화영의 사이에 끼어들어 급히 물었다.
“한승범 연승생, 변동 사항 없죠? 없으면 저번에 전달해 준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아, 네.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내게 말을 건 제작진의 얼굴을 기억해 내곤 애써 평점심을 가장하며 답했다.
‘그걸 애들 앞에서 대놓고 물어보면 어떡하나. 진짜 난감한 사람이네.’
명확한 정보가 포함되지 않은 대화가 제작진과 나 사이에 오가자 이화영은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듯 인상을 찌푸리고 내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한승범, 너 설마…….”
“그러면 이제 리허설 진행하러 이동하겠습니다.”
하지만 이화영의 추궁은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원하는 답을 얻은 제작진이 바로 다음 진행에 나섰고, 그에 따라 대기실 내부가 매우 어수선해졌기 때문이다.
“…….”
제작진의 방해로 대화가 두 번이나 끊기자 이화영은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지만, 더 이상 대화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지금 시점에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저놈도 아는 것이다. 백스테이지란 원래 이렇게 정신없는 법이다.
“하나, 둘, 셋, 넷… 어라? 뭔가 한 명이 부족한 것 같은데.”
정신없이 명단을 확인하던 제작진이 우리를 쭉 살펴보더니 난색을 표했다. 백기량이 이 자리에 없음을 짐작한 것이다.
“한승범 연습생, 멤버 체크 안 했어요? 백기량 연습생 어디 갔어요?”
그리고 바로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리더인 내게 책망하듯 물었다.
나는 그에 차분히 답했다.
“거기 있지 않습니까, 백기량 연습생.”
“예?”
내 말에 어리둥절하여 뒤를 돈 제작진은 시커먼 무언가에 부딪혀 크게 휘청거렸다. 그리고 겨우 중심을 잡은 그는 방금 저와 충돌한 것을 올려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백, 백기량 연습생?”
제작진의 뒤에 있던 것은 시간에 맞춰 돌아온 백기량이었다.
그냥 백기량이라면 그리 놀랍지 않을 텐데, 무엇이 그를 이렇게나 놀라게 만들었는가 하면.
“와, 저게 백기량이라고.”
“기량 형이 원래 저렇게 생겼었나?”
백기량의 비주얼이 평소의 위축된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나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은 스타일링으로.
백기량과 이화영의 외관을 번갈아 가며 눈에 담은 멤버들은 조용히 내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는 그에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역시 나는 대단하다.’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 만큼 백기량과 이화영은 내가 따로 스타일링을 담당했다.
뭐, 이화영의 스타일링에 영혼을 갈아 넣고 백기량은 색상만 검은색으로 바꿔 그대로 입힌 것에 불과하지만.
‘동일 인물임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똑같이 입혀 뒀는데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다른 것도 신기하군.’
이화영의 반짝이는 금발과 다르게 푸른빛이 돌 정도로 짙은 흑발, 실버 톤의 안경테와 줄 그리고 놈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음침하고 서늘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이화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극적인 변화를 보여 주고 싶다면, 외적인 변화를 동반할 경우 효과가 좋다.’
나의 신조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백기량이 나를 통해 얻은 것은 고작 외적인 변화만이 아니었으니까.
* * *
무대가 위치한 층으로 이동하고, 우리는 바로 제작진의 지시에 따라 리허설을 준비하게 됐다.
‘드디어 트레이너들 앞에서 보여 줄 수 있게 됐군.’
백기량에게 도와 달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스무 시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백기량의 자신감을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한 편의 영화를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보기에는 아주 충분했다.
– 자.
– 이게 뭔데?
– 느와르 영화. 거기 등장하는 조직 보스가 그렇게 멋있다는 평판이던데.
연습을 시작하자마자 내가 백기량에게 건네준 것은 느와르 영화의 파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상황을 개선해야 하는 와중에 생뚱맞게 영화를 건네니 백기량은 당황하여 불안한 눈초리로 나를 올려다봤다.
– …영화?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나는 당혹스러워 보이는 백기량에게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 형은 사람의 어떤 모습을 봤을 때 ‘자신감이 뛰어나다’고 느껴?
– 아마, 당당하거나 쉽게 떨지 않는 사람들…….
– 그렇다면 당당한 태도와 떨리지 않는 몸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자신감이 있는 건가?
– …그건 아니야. 그런 행동들은 자신감의 결과일 뿐이고, 조건은 아니니까. 결과를 모방해 봤자 그 사람의 내면이 어떨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
– 맞아. 하지만 사람의 내면은 읽을 수 없지. 타인이 볼 때는 그 사람이 속으로 토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든, 쥐구멍에 숨고 싶다는 생각을 하든, 당당한 태도를 꾸며 내기만 하면 진짜 자신감을 가진 사람과 구별할 수 없어.
– …….
– 무대에 오를 때 전혀 긴장하지 않는 놈들이 있긴 해. 젠이 거기에 해당하지. 혹은 긴장감 자체를 즐긴다든가. 이화영이 그 경우고. 그건 재능의 영역에 가깝다고 봐야 해. 타고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감각이니까. 하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어. 성공한 아이돌 중에 그런 재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거든. 형이 생각해야 할 것은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대중을 속이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는가야.
백기량은 나의 질문에 침을 꿀꺽 삼키고는 정답을 내놓았다.
– ‘자신감 있는 나’를 꾸며 내는 것…….
– 그래, 다들 자신감 있는 ‘척’을 하는 것뿐이야. 그리고 그걸 위한 다양한 자료들이 이 영화와 캐릭터에 있지. 그 배우가 어떤 움직임으로 보스를 연기하는지 고개의 각도, 눈을 깜빡이는 속도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외워.
‘느와르물의 등장인물들은 항상 자신감 넘치고 멋있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 말도 안 되는 범죄 미화긴 하지만.’
이번 경연을 통해 백기량은 ‘자신감을 연기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부여된 캐릭터는 그를 위한 가이드라인에 불과했다.
– 외우는 거, 잘하잖아?
나는 처음부터 백기량을 각성시키기 위해 이 무대를 준비했다.
“…….”
사전에 녹음된 구두 소리와 함께 백기량이 무대로 걸어 들어왔다. 원래부터 리버브 효과를 걸어 두긴 했지만, 넓은 무대의 특성상 더 큰 폭으로 울려 퍼진 그 소리는 단번에 무대의 몰입도를 올려 주었다.
삐리릭. 삐리릭.
벨 소리가 울리고, 푸른 조명이 위치한 무대의 중앙에서 백기량은 멈춰 섰다.
그리고 코트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귀에 가져다 댔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무대에서, 백기량은 속삭였다.
– Hi, it’s been a long time
I was waiting for your call, my friend
그 첫 소절 하나만으로 트레이너들의 얼굴에 서려 있던 권태가 사라졌다.
“…거짓말이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을 쥔 관절의 형태, 아래를 내려다보듯 하여 거만해 보이도록 연출된 시선, 하물며 눈꺼풀을 깜빡이는 속도에서조차 이질감이 느껴졌다.
“저게 백기량이라고?”
그 의문에 답하듯,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백기량이 카메라를 응시했다.
탕!
그리고 넋을 잃고 있던 모두의 정신을 깨우듯 날카로운 총성이 터져 나왔다.
– Catch me
I won’t run away
지금 무대 위에 있는 것은 백기량이 아닌, 영화 속의 주인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