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432
432화
시간이 지나도 ‘도연’이 오지 않자, 걱정이 된 이들이 찾아 나섰다.
그랬다가 얼마 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선 돌아왔다.
“맹주가 죽어 있습니다!”
다들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설마……!”
도연이 맹주를 죽인 것인가!
“그럼, 회주의 딸은?”
“안 보입니다. 부상을 입거나 싸운 흔적도 없고…… 주변에서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설마 봉마지기 일족에게 잡혀갔다거나 한 것 아닌가? 그들은 어떻게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문은 닫혀 있는데, 열려고 해도 꼼짝도 하지 않는 데다 기관까지 파괴되어 있어서 어떻게 손을 써 볼 수가 없었습니다.”
“기관이 파괴되었다고?”
기관은 대체 누가 파괴한 것인가?
그럼 이제 천마총 내부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게 된 게 아닌가!
“아, 그리고 이것. 이게 맹주의 시신 옆에 있었습니다.”
찾으러 갔던 이가 동그란 거울 하나를 허윤에게 내주었다. 딱히 이상한 것 없는 평범한 동경이었다.
허윤이 그것을 받더니 지그시 눈을 감고는 말했다.
“천마경이오.”
앗!
사람들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기관이 망가졌으니 당장에 문을 열 수 있는 건 천마신공과 천마경을 가진 도연뿐이었다.
그런데 도연이 천마경을 놓고 갔다면…….
사람들이 당혹해하면서 허윤을 보았다.
“회주! 딸을 찾아야 하지 않소?”
그러나 허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딸은 떠났소.”
“예?”
“이제 돌아오지 않을 거요.”
“그게 무슨…….”
허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눈에 눈물도 그렁그렁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깨달았다.
도연은 천마신공을 익혔다. 어찌 되었든 마공이다.
계속 허윤의 곁에 남아 있으면 부담을 주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떠난 것이다.
기관을 파괴하고, 천마경까지 놓고 감으로써 조화신공을 탐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채.
이로써 허윤이 오해받을 수 있는 일말의 의심까지도 모두 해소하길 바라면서…….
몇몇은 도연의 결연한 의지에 깊이 감동하여 함께 눈물짓기도 했다.
“천마총을 파괴하기 위해서 천마신공을 배웠다더니…… 정말로 그리했구려…….”
“정말 장한 따님을 두었소, 회주.”
하나 그 말을 믿기 어려운 이도 있었다.
무림맹에서 나온 주악정이었다. 주악정은 돌가루를 뒤집어써서 허옇게 된 채로 그들의 가운데로 걸어왔다.
“여러분들의 생각에 굳이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할 말은 해야겠소. 지금의 상황은 어찌 보면 예전 남령산맥에서의 일과 많이 닮은 것 같소이다.”
“뭐가 말이오?”
“그때도 회주는 천마신공의 비급을 우리가 보는 앞에서 산산조각 내고, 일부는 먹기도 했소. 모두가 절대로 천마신공을 얻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지. 하나, 그 생각을 깨고 결국 천마신공을 익히지 않았소?”
“허어…… 그렇긴 했지.”
“이번에도 마찬가지요. 기관을 부숴서 남들은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지만, 천마경이 남아서 회주의 손에 있잖소이까.”
그건 그렇다.
허윤이 딸을 살리고자 마음을 달리 먹는다면 언제든 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한데 그 순간.
“도연 소저의 진심을 마지막까지 의심하시는 겁니까!”
누군가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다.
아니, 정말로 피를 토하면서 연백룡이 몸을 일으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분이 왜 무림맹주는 의심하지 않으셨습니까!”
주악정이 움찔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연백룡이 이를 악물고 허윤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눈물을 흘리며 허윤의 손에 들린 동경을 쳐다보았다.
허윤이 그에게 동경을 내주었다.
연백룡은 동경을 던져 부러진 검을 잡고 마지막 힘을 다해 초식을 펼쳤다.
쩌억!
동경이 수십 조각으로 갈라져 땅에 떨어졌다.
연백룡은 그것을 하나하나 주워 근처에 있는 명숙들에게 한 조각씩 다 나눠 주었다. 명숙들이 놀라면서 조심스럽게 조각을 받았다.
연백룡은 그중 가장 큰 조각을 주악정에게 주었다.
“자. 이러면 되겠습니까?”
주악정이 그것을 받아서 이리저리 앞뒤를 보았는데, 그냥 손톱만 한 조각이었다.
“…….”
다른 이들을 둘러보니 다들 주악정이 자기들 대신 어려운 얘기를 해 주어 해결됐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백룡 소협이 직접 갈랐으니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을 겁니다.”
“누군가 다시 기관을 만들려 해도, 이제는 그 정도로 오랫동안 우리의 이목을 피해 공사를 하긴 어려울 것이외다.”
“백룡회주도 큰 결단을 해 주었소이다.”
허윤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그들에게 읍을 했다.
“그렇게들 생각해 주어 고마울 따름이오.”
주악정은 떨떠름했다. 그때처럼 찜찜함이 가시질 않았다.
천마경의 실물을 본 사람이 없기에 깨진 거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지 못한다.
하나 이 분위기에서, 저렇게까지 하는데 더 말하기도 뭐하다.
‘뭐…… 그래도 지금은 허 회주가 심성이 악한 자가 아니라는 걸 아니, 그걸 믿는 수밖에 없나.’
심지어 이제 와 안 사실인데, 허윤이 두풍으로 전각을 그렇게나 무너뜨렸음에도 그것 때문에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주악정이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이제 해결된 듯합니다. 서로가 이견이 있어 다투긴 하였으나, 결국 다 맹주에게 당한 피해자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싸움을 멈추고, 양측 다 부상자가 있으니 다친 사람들부터 함께 돌봅시다. 우선 근처의 의원이라도 불러와야…….”
그가 그렇게 말을 하던 중에 일단의 무리가 수레를 끌고 오는 게 보였다.
“누구지? 적대적인 세력은 아닌 듯한데.”
누군가 수레의 깃발을 알아보았다.
“백룡장의 깃발입니다!”
“강서성 상계의 깃발도 있는데요?”
약왕이 강서성 상단과 함께 수레에 가득 약재를 싣고 온 것이다.
허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강서성의 특산품이자 우리 백룡장에서 성숙곡의 전통 비전 방식으로 제조하는 만병통치약인데, 약왕께 미리 준비해 주십사 부탁드렸소이다.”
모두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점복자라더니 이런 앞날까지 내다보고 미리 준비했나. 심지어 시간까지 딱 맞춰서.
그 와중에 홍보성 표현이 들어간 것 같긴 했지만, 어쨌든 큰 도움이 될 건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허윤에게 포권하며 감사했다.
“강호가 회주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허윤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빚이라니, 당치도 않소.”
“강호를 구원한 것도 모자라 저런 고가의 약까지 무상 지원해 주니 든든합니다.”
“…….”
허윤이 말한 이를 빤히 쳐다봤다.
“무상 지원?”
“예?”
“무상, 지원?”
“……아. 그, 그럼 염가로…….”
“염가?”
허윤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근처의 명숙들이 눈치를 보며 방금 말한 이를 나무랐다.
“귀한 도움을 받으며 값을 깎으려 하다니. 그럼 못쓰네.”
“모름지기 복채와 약은 제값을 치러야 잘 듣는 법일세.”
“강호를 위기에서 구해 냈는데 약까지 공짜로 달라면 어찌하나.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아, 예…….”
그제야 허윤의 표정이 풀렸다. 조금 전까지 딸을 잃어 슬퍼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자, 중상자부터 이쪽으로 데려오시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강서성 남창의 백룡장에서부터 달려온 이들.
무림맹의 긴급 소집령을 받고 밤낮으로 뛰어온 이들.
모두가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모양새에 바싹 마른 입술로 숨을 몰아쉬었는데, 처음 내뱉은 말은 하나같았다.
“뭐야, 무림맹 어디 갔어?”
그도 그럴 것이, 높은 석벽과 전각은 안 보이고 돌무더기만 가득했다.
누가 보면 채석장이라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지경이었다.
“벌써 끝났나?”
“늦은…… 건가?”
단순히 늦었다는 말로는 표현이 다 안 되는 느낌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할 말이 없었다.
이윽고 무림맹 무인들을 발견했는데, 그들은 허윤 측 인사들과 싸우지 않고 오히려 함께 부상자들을 돌보는 중이었다.
산서언가의 가주 언건백이 외쳤다.
“누가 어떻게 된 건지 얘기 좀 해 보시오. 무림맹은 왜 이렇게 됐고, 무림맹주는 어디에 있소?”
언건백이 대답을 해 줄 만한 사람을 찾으며 시선을 맞추려 노력하다가 무당파의 범사 운중호를 발견했다.
운중호도 다쳤는지 다리에 붕대를 감고 부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거기 무당파 장문인 아니시외까! 괜찮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이라도 말씀을 좀 해 주시오.”
언건백의 청에 운중호가 그제야 눈을 맞추고 답했다.
“무림맹주가 우리를 다 죽이려고 일족을 불러오려다 목이 잘려 죽었소이다.”
언건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무 대충인데?
“일족은 뭐고, 누가 맹주의 목을 잘랐다는 거요?”
“다 설명하자면 얘기가 깁니다. 그냥 맹주가 살아 있었으면 언가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것만 알아 두십시오.”
언건백은 더 어리둥절해졌다.
운중호가 물었다.
“근데, 여긴 왜 오셨소이까?”
“일단은…… 백룡장이 기습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무림맹의 소집령을 받고 왔소만…….”
이제 보니 어쨌든 백룡장의 기습이 성공한 듯하다.
그럼 이제라도 무림맹을 대신해 싸워야 하나?
그러나 전후 사정도 모르고서 다짜고짜 나설 수도 없으니 애매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부상자의 치료 중이 아닌가.
“허, 이것 참.”
무림맹 측 다른 이들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때, 양가장 사람들이 뒤늦게 나타났다. 그들은 벌써 수천 명 가까이 모인 걸 보고 싸움에 늦었나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양가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참전했는데 빠질 수 없었다.
하여 창을 꼬나 쥐고 무작정 가운데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무림맹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대체 어떤 작자들이 이런 짓을 했는가!”
“우리 양가장이 용서치……!”
누군가 대답했다.
“내가 그랬소.”
허윤이었다.
어깨와 손에 붕대를 감고 양가장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양가장이 왜 저러나 싶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양가장은 순간 말문이 막혀서 멈칫했다.
“찾던 사람 여기 있으니까 말해 보셔. 뭘 용서치 않을 건데? 얼른 말해 보시라니까?”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오룡삼봉으로 허윤과 안면이 있던 양걸이 급히 나섰다.
“허 회주님, 저 양걸입니다. 화내지 마십시오. 그냥 저희 쪽 어른들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 같습니다.”
허윤은 양걸에게 반갑게 인사한 후에 양가장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양가장 사람들이 급히 시선을 돌리며 군사당을 찾았다.
“……무림맹주! 군사당주는 어디 있소? 우리를 불렀으니 설명을 해 주시오!”
그제야 머리를 붕대로 감은 군사당주 사마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돌무더기의 높은 곳에 올라 무림맹 측 사람들을 향해 읍을 하고는 말했다.
“여러분들을 뒤늦게 맞이하여 송구합니다. 싸움은 끝났습니다. 맹주는 천마의 유산을 습득하고 강호를 어지럽히려 하였으나, 백룡회주에 의해 저지당하고 죽었습니다.”
맹주가 천마의 유산을?
놀라운 얘기였으나 너무 간략하여 생각보다 충격이 아주 크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걸 백룡회주가 저지했다는 게 더 놀라웠다.
그때, 남궁가에서 나서서 이의를 제기했다.
“잠깐. 원래 회주는 맹주에게 따지러 온 거 아니었소이까?”
명분은 그래 놓고 비겁하게 기습을 한 것 아니냐고 따지는 질문이었다.
허윤이 그 질문에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따졌잖소.”
“하지만 따진 것 치고는 결과가…….”
“따진 결과가 이렇게 된 거요.”
“아니, 내가 듣기로는 다짜고짜 두풍을 날려 댔다고…….”
허윤이 남궁가의 가주 남궁후에게 눈을 흘겼다.
“무림인들도 수틀리면 칼질하잖소. 정말로 내가 그냥 따지러 오는 걸로만 여겼다면, 당신네들은 왜 죄다 병장기를 들고 몰려들었소이까?”
“그건…….”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이오? 무림맹을 물어내라는 거요, 뭐요?”
잠깐 멈칫하던 남궁후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터놓고 여쭈어보겠소이다. 이제 백룡회주, 아니, 백도맹주께서는 무얼 하실 생각이오?”
수천 명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신음까지도 참으며 허윤을 바라보았다.
무림맹이 박살 났으니 그 공백의 권력이 어디로 가겠는가.
당연히 백룡장이다.
무림맹주가 되든 반대파를 척결하든, 허윤의 행동에 따라 강호의 문파들이 취할 입장이 결정된다.
그런데 허윤은 왜 그걸 묻느냐는 듯이 대답했다.
“희한하구려. 남의 일이 뭐 그리 궁금하시오? 난 당연히 백룡장으로 돌아갈 거요.”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허윤은 볼일을 다 봤다는 듯 백룡회원들을 마차에 태운 뒤, 둥글게 말린 고우사와 대홍랍강도 잘 들어서 얹곤 떠나려 했다.
허윤 쪽 인사나 무림맹 쪽 이들이나 황망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냥 이렇게 가 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허윤이 그들을 보며 되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시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러자 허윤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점 보러 오쇼.”
그러곤 말을 몰아 마차를 출발시켰다.
그 뒤로 누군가가 소리쳐 물었다.
“복채는 아직도 삼십 문이오?”
허윤이 고개를 흔들었다.
“올랐소!”
그러면서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다.
사람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뭐야. 은 다섯 냥이란 뜻인가?
비싸긴 하지만, 하기야 허윤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솔직히 그 정도는 받아도…….
허윤이 외쳤다.
“오십 문이야! 한 푼도 안 깎아 줘!”
마차 안의 백룡회원들이 끙끙대며 한마디씩 했다.
“원래 삼십 문 아니었어?”
“언제 오십 문으로 올랐대.”
“물가가 오르지 않았소.”
“먹고살기도 힘든데 복채까지 올리냐.”
“거, 나도 먹고살아야 할 것 아뇨.”
“네가 강호 제일 부자인데 뭘 먹고살아.”
“부러우면 영감이 점쟁이 하든지.”
“뭐야. 어떤 미친놈이 마차에서 향 피워.”
“허수아비 명복 빌어 주는 거야.”
“아, 씨! 불났잖아!”
“야, 야! 밀지 마. 나 굴러떨어져! 어어어!”
“배고파. 당과 먹을래.”
다그닥다그닥…….
마차는 수많은 사람의 이목을 받으며 점점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