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00
제100화
므에트 제국 제도에서 사흘 거리에는 커다란 농지가 있다. 제국에서 손꼽히는 곡물 생산량을 자랑하는 땅으로, 귀족의 영지가 아닌 황제의 영토다.
흉년이 들면 이 토지에서 나오는 곡식으로 황제는 귀족들을 통제하고는 한다.
수천 명의 노예가 관리하는 대농지의 지하에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은밀한 공간이 있다.
개미굴처럼 복잡한 공간에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동시에 먼지 쌓인 가구들은 이 공간이 얼마나 방치되었는지 알려주는 단서가 되기도 했다.
한때 실라나티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이 살았던 공간은 10년 이상 방치된 끝에 폐허라 불려 마땅한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토굴의 모든 장소가 방치된 건 아니다.
토굴의 가장 안쪽, 한때 실라나티엘의 중진들이 이용하던 은밀한 회의실은 여전히 먼지 하나 없이 관리되고 있다.
회의실답게 안에는 하나의 탁자가 있다.
직사각형 모양의 회의실 천장에는 빛을 내는 유물이 방을 밝히고 있고, 벽에는 각각 해와 달과 별을 나타내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각 문양의 앞, 탁자의 한 면씩을 차지하고 세 사람이 회의실 안에 있었다.
그들도 바깥에서는 각기 다른 이름과 직위를 가진 귀족들이다. 하지만 이 안에서 그들의 신분은 하나로 통일된다.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가졌던 자.
실라나티엘이 아니지만, 누구보다 실라나티엘을 잘 아는 자들.
태양의 문양 앞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마리나 실라나티엘의 두 번째 편지가 도착했다.”
“또요? 아쉬운 것 하나 없는 척하던 년이 무슨 일이래.”
“그 남자에 관한 것인가? 갈리아 가주를 안다는.”
별 앞에 앉은 여자와 달 앞에 앉은 남자가 각기 반응했다.
“그래.”
“20대 초중반이라면서요? 갈리아 가주가 죽고 20년이 되어가요. 그 나이의 청년이 갈리아 가주를 알 리가 없잖아요.”
“불로의 신비를 가진 사람이거나 대를 이은 약속일 수도 있다. 그 이야기는 전에도 마무리했을 텐데?”
“그냥 수상쩍다는 거죠.”
별 앞에 앉은 여자가 몸을 옆으로 틀며 다리를 꼬았다.
달 앞에 앉은 남자가 물었다.
“이번 편지의 내용은 뭐지?”
태양 앞에 앉은 남자가 달 앞에 앉은 남자에게 편지를 건넸다. 편지가 커다란 탁자를 미끄러졌다.
달 앞에 앉은 남자가 편지를 읽었다. 편지를 읽는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뭐야? 당신이 호들갑을 떨 일이야?”
“직접 봐라.”
달 앞에 앉은 남자가 편지를 던졌고, 별 앞에 앉은 여자가 편지를 받았다.
“용사의 길잡이? 용사와 함께 서부를 여행한 인간? 이런 인간을 우리가 모를 수 있나?”
“우리는 안개 속에서 일어난 일은 무엇 하나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인외의 괴물이 더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태양 앞에 앉은 남자의 말에 별 앞에 앉은 여인이 몸서리쳤다.
“그런 괴물이 여럿? 끔찍한 소리 하지 마. 마르 실라나티엘 하나로 우리가 어떤 고생을 하고 있는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많지는 않을 거다. 아마 그 길잡이라는 남자가 마지막이겠지.”
역사를 삼키는 안개를 버티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다.
달 앞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마르 실라나티엘의 관계자와 접촉했다면, 세뇌는? 그 괴물의 일행이라면 알아차려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기색은 없다. 세뇌가 풀렸다면 이 편지가 도착하는 일도 없었겠지.”
“세뇌가 풀렸다는 건 그년이 죽었다는 소리니까. 다행이야. 난 그 생지랄을 또 하고 싶진 않거든.”
“푸념은 됐다. 어쩔 거지? 또 다른 용사의 관계자라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폐하의 말씀은 없으셨나?”
“있다.”
달 앞에 앉은 남자가 눈에 띄게 긴장했고, 별 앞에 앉은 여자도 몸가짐을 바로 했다.
그들은 한때 실라나티엘이었거나,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가졌던 자의 후손이다.
음지에만 존재해야 하는 실라나티엘이 양지에서 활동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태양 아래로 나간 자들.
그들은 황제에게 실라나티엘의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안다.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라 하셨다.”
“바로 죽이지 않고?”
“10년 동안 잡지 못했던 용사를 잡을 단서다. 이대로 놓칠 수는 없지. 그리고 진짜 용사의 일행이라면, 단순한 수단으로 잡거나 죽일 수 있을 것 같나?”
“그건 아니지.”
여기 있는 셋은 마왕을, 세상의 반을 죽이기 전의 마르 실라나티엘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안다.
서부로 떠나기 전의 마르 실라나티엘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드는 괴물이었다.
그런 인간이 서부에서 인류 역사상 다시없을 역사를 쌓았다.
이제 그들은 마르 실라나티엘이 부리는 마법의 규모가 어떨지 짐작도 못 하고 있다.
별 앞에 앉은 여인이 편지지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런데 이 마르할이라는 이름.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아?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지.”
“전혀.”
“나도 모르겠군.”
“쓰읍. 그런가? 별일 아니겠지.”
마음에 안 드는 일이지만, 여기서 가장 마법 수준이 떨어지는 게 그녀다. 다른 둘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녀만의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마법이 아니라 다른 일로 기억하는 이름이겠지.
“이견이 없으면 현상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답장을 보내겠다.”
“불만 없음.”
“나도다. 어차피 실라나티엘이 돌아오기 전까지 우리가 할 일은 없으니.”
태양 앞에 앉은 남자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고, 다른 둘도 각기 시간을 두고 회의실을 나섰다.
유물의 빛이 꺼지고, 방이 암흑에 잠겼다.
* * *
마을이 시끌벅적하다.
일꾼들은 맨손으로 마을에 온 게 아니다. 그들의 주머니에는 돈이 있다.
마을 안에서 돈과 물건이 돌아도 거기서 거기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돈과 물건도 고이면 썩는다.
특히 농사도 못 짓는 개척촌에서 돈과 물건이 돌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다.
돈과 물류를 돌게 해주는 게 외지인이다.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일감을 찾아다니는 일꾼들. 그리고 가끔 마을에 들르는 행상.
그들이 서부 물류를 움직인다.
수백 명의 외지인은, 그 숫자를 감당할 수 있는 마을에서는 쌍수 들고 환영할 경사다.
마을은 축제 분위기다. 상하기 직전의 술과 음식을 싼값에 풀고, 비어 있던 건물에서도 담소가 들린다.
마르할은 살며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혹시 여기서도 토지의 역사를 사용할 수 있나 하는 실험이다.
‘안 되나.’
여기 개척촌과 중간에 있는 도시를 비교하면, 아무래도 이쪽 개척촌에서 쌓은 역사의 깊이가 더 얕다.
지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건 이쪽이지만, 저쪽은 활용되는 토지의 크기와 유동 인구부터가 다르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카반의 도시는 하루아침에 재건되지 않는다. 도시가 만들어질 동안 그 수혜를 누리면 여기서도 상당한 역사를 쌓을 수 있으리라.
스트레킬과 카반은 보이지 않는다. 마린도, 베이올라도.
사실 다들 바쁜 사람들이다.
특히 마린과 카반은 정신이 없을 것이다.
마르할은 늘 하던 대로 용병 길드 지부부터 찾았다.
용병 길드는 외지인으로 가득했다. 그 사이에서 파푸란이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음식을 나르고 있다.
용병 길드의 특성상 식사류를 완전히 뺄 수는 없다. 그랬다간 낮에 의뢰받으러 온 용병들이 난동을 부릴 거다. 그래서 주점 일이 파푸란에게 편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파푸란은 은퇴한 용병이다. 사람 죽이는 재주는 있어도 접객 재주는 없다.
근처 가게에서 사 온 걸로 보이는 음식을 나르는 파푸란을 마르할이 불렀다.
“파푸란. 별일 없었죠?”
“그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조용했으면 좋겠다! 할 일 없으면 너도 좀 도와!”
“전 인사하러 다녀야 해서요.”
마르할은 파푸란에게 붙잡히기 전에 재빨리 용병 길드 지부를 빠져나왔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돌아다니는 마을에서 마르할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마르할은 여관에 있는 하바르산에게 갔다가, 근처 상점들에 들렀다. 그리고 에나의 잡화점으로 향했다.
“다들 여기 모여 있었어요?”
잡화상 안에는 카리안과 휴고, 카반이 있었다.
“왔냐.”
“카리안은 알 것 같고, 휴고랑 카반은 무슨 일이에요?”
에나가 말했다.
“네가 시킨 그거지. 세금.”
“아직 처리 안 했어요?”
개척촌의 유독 낮은 세금에 근처 지주들이 경계하고 있다는 대화를 토지 경주를 떠나기 전에 나눴다.
“이놈이 조금 바빠야지. 아니면 전서구라도 따로 만들든가.”
“세율같이 중요한 사안을 편지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라고 하네. 그러니 이 모양이지.”
에나는 지긋지긋하다는 투로 말했다.
마르할이 없는 개척촌의 돈과 물류를 관리하는 사람이 에나다. 근처 지주들이 시비를 걸어왔다면, 그걸 감당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을 것이다.
“카반은 무슨 일이에요?”
“도시 재건에 도움을 받으려고 왔습니다. 이 친구가 그러더군요.”
카반의 눈은 평소보다 더욱 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검게 변한 눈 밑이 그 원인이다.
공성 기사로 성벽을 만들고, 부수고, 보수해본 경험은 있지만, 집을 지은 경험은 의외로 없다.
도시를 재건하는 건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먼 거리도 아니잖아. 서로 도우면서 살면 좋지.”
카리안은 카반의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단기간에 너무 사람이 달라져 마르할도 낯설 지경이다. 저게 얼마 전까지 토지 경주에서 깃발 하나 달랑 들고 덜덜 떨던 사람 맞나?
“마르할, 여유 있으면 일꾼들을 보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일꾼이요?”
“음. 며칠 후면 공국의 건국일이잖아? 축제를 해야 한다는 사람이 몇 명 있더라.”
에나는 물론이고 휴고와 마르할까지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는 걸 본 카리안이 말했다.
“어, 이거 역시 심각한 일 맞지? 그럴 것 같더라.”
“상당히 심각해요. 여긴 공국이 아니니까요. 거기다 제국 사람과 성황국 사람도 있죠.”
고향을 떠나 서부로 왔지만, 여전히 향수를 품고 있는 사람이 많다.
추억은 미화된다. 서부에서 여러 고생을 하며 고향에서의 추억을 진심으로 좋았다고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동부에서의 생활이 살 만했다면 서부로 온다는 선택 자체를 하지 않았겠지만, 이미 미화된 기억은 그 고생마저 합리화한다.
미화된 기억과 향수를 품은 사람들에게 고향의 축일은, 고향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얼마 없는 기회다.
“고향을 추억한다. 말은 좋죠. 그런데 서부 출신인 사람들 앞에서 공국의 축일을 챙겨야 한다고 하면, 듣는 서부 출신은 어떤 기분이겠어요?”
공국의 축일은 그래도 낫다.
공국도 마족 침공의 피해자니까.
서부에서 도망친, 집도 고향도 잃은 사람들 앞에서 제국과 성황국의 축일을 챙겨야 하니 도와달라고 하면 욕부터 먹는다.
서부 사람이 아니더라도 공국과 성황국, 제국은 오랜 숙적 관계에 있다.
서부라는 환경에서 어우러지고는 있지만, 마을 단위로 한쪽 문화의 편을 들면 주민들 사이가 틀어지기 좋다.
카리안이 물었다.
“그럼 전에는 어떻게 했어?”
“여긴 아무 축일도 안 챙겼다. 근처에 공국, 제국, 성황국 축일을 챙기는 마을이 골고루 있지. 고향이 그리운 놈들은 축제 기간에 잠시 옆 마을에 다녀오고, 그걸로 끝이었어. 어쩔 거냐? 생각 없는 몇 놈이 시작한 것 같지만, 공국 사람이 다수인 이상 말은 나올 수밖에 없어.”
“그 사람 중에 진심으로 국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대부분이 축제 핑계로 놀고먹으려는 거죠. 그럼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돼요. 저희도 축제를 하나 열죠.”
“무슨 축제? 어설프게 열었다간 마을 놈들도 불만을 가질 거야.”
마을에도 공국 출신과 제국 출신, 성황국 출신이 섞여 있다. 일꾼들까지 포함하면 국적은 더욱 다양해진다.
어디 한쪽 편을 들 게 아니라면 지주가 특정 국가의 축일을 챙겨서 좋을 게 없다.
“제국 건국일이요.”
“올해 제국 건국일은 벌써 지났다.”
에나가 말했다. 올해 므에트 제국 건국일은 이미 지났다. 챙길 기일이 없다.
“그 건국일이 아니다. 맞지?”
스트레킬이 마르할에게 물었다. 마르할이 므에트 제국 건국일을 스스로 챙기는 날은 아마 영원히 오지 않는다. 그가 챙길 건국일이라면 하나다.
“세상에 제국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제정신이냐?”
에나가 물었다. 마르할이 하려는 건 그 정도로 정신 나간 짓이다.
“바체아 제국 건국일이 얼마 안 남았거든요. 원래 서부 최대 규모의 축제기도 했고, 멸망한 제국의 축일이라면 싸움 날 일도 없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