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01
제101화
바체아 제국은 서부 굴지의 강국이었다. 바체아 제국의 국가 행사는 주변 국가에서도 무시하기 힘들었고, 그 정점인 건국일은 서부 전체의 축제였다.
매년 건국일 바체아 제국 황제에게 성의를 보여야 했던 다른 권력자들 입장에선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정은 접어두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바체아 제국 건국일이 서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축제였던 것은 맞다.
바체아 제국 건국제는 현 서부에 잘 어울리는 축제라 할 수 있다.
서부다운 축제. 그래서 안 된다.
“즐기는 놈들이야 좋아하겠지. 주변 지주들도 크게 신경 안 쓸지도 몰라. 하지만 머리가 달린 놈들이라면 네가 미쳤다고 생각할 거다.”
에나는 마르할의 의견에 부정적이었다. 축제? 좋다. 하지만 부담이 너무 크다.
“요즘 너무 당하고만 살아서요. 한 번쯤 갚아줄 때도 됐잖아요?”
“그래서, 마을을 날려 먹게?”
“누가요?”
“서부라는 말에 눈 시뻘겋게 뜨고 있는 놈들이지.”
연합은, 연합의 주인들은 서부에서 서부 출신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동부의 문화가 다르듯 서부의 문화도 다르다. 제국과 성황국이 합쳐질 수 없듯 서부의 국가들도 서로 합쳐질 수 없다.
하지만 잠시 손을 잡는 건 가능하다.
마족의 침공에서 살아남은 서부인들은 몇 가지 감정을 공유한다.
마족을 향한 증오, 제국과 성황국을 향한 증오, 그리고 고향을 향한 그리움.
같은 적을 가지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서부 출신들은 서부의 이름 아래 뭉칠 수 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에나조차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녀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는 윗대가리들이 모를 리가 없다.
특히 저기 있는 저 영악한 윗대가리가.
에나의 따가운 시선을 마르할은 물처럼 흘려 넘겼다.
“에나, 서부를 개척하고 있는 사람 중에 전 서부 출신들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반은 넘겠지.”
동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넘어오고 있긴 하지만, 본래 서부에서 도망친 사람들보다 많을 순 없다.
서부는 망했지만, 도망친 사람도 많다.
“하지만 서부 사람을 위한 축제가 열린 적은요?”
“아프란체 축제 하나.”
하일리가 지주로 있는 땅이다.
아프란체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하일리답게 그는 주변의 반대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아프란체 기념일을 챙기고 있다.
“아프란체인이 주류를 이루는 개척촌은 하일리의 마을 정도겠죠. 이상하지 않아요? 사람 숫자는 비슷하거나 이쪽이 더 많은데, 왜 기념일은 동부 기념일을 따라갈까요?”
“거기까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에나는 제국 출신이다. 제국 기념일을 챙기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잊고 있었다.
멸망한 서부 국가들의 기념일에 열리는 축제는 왜 없는가.
서부 사람들은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러면 오히려 축제를 열어야 한다.
“그럴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이 마을도 그렇죠. 가게 주인 중에 서부 출신이 몇 명이나 있어요?”
“세 명. 조셉을 빼면 둘이군.”
나머지는 전부 일꾼이다. 마을에 정착한 사람도 있지만, 떠돌이가 더 많다.
“가진 게 없으니까요. 가진 걸 전부 포기하고 서부로 도망친 사람들한테 뭐가 있겠어요. 전쟁이 한창일 때는 전방에서 마족과 싸웠을 거고, 마족이 사라진 다음에도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처음부터 시작했겠죠. 연합이 세워지는 5년 동안 동부에 자리 잡을 사람은 전부 동부에 정착했을 테고요. 지금 서부에 남아 있는 서부 출신들은 동부에 정착할 돈이 없어서, 또 서부를 잊지 못해 여기 있는 거예요.”
능력 있고, 목적도 있는 사람은 진즉 기반을 마련해 목적을 위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울테칸이나 하일리처럼.
나머지는 갈 곳도 없고, 다른 능력도 없어 서부에 꾸역꾸역 붙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위한 축제예요. 소외된 서부의 반을 위한. 누구보다 소속감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을 위한 축제. 그런 축제가 방해받으면, 그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미친놈.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이상한 방해만 없으면, 그냥 평범하게 놀고먹고 끝이에요. 그게 아니라면, 서부 사람들이 화내겠죠?”
에나는 저 미친놈이 벌이는 일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화를 낸다고 농담하듯 말했지만,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니다.
‘서부 출신들은 이동이 자유롭다.’
시간이 허락하면 그들은 언제든 모일 수 있다. 정착할 장소가 없기에 생기는 이점 아닌 이점이다.
그들이 그냥 모이기만 하면 괜찮다. 지금도 마을에 서부 출신들이 반이다. 하지만 그들이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면?
거대한 조직 하나가 생긴다. 잃을 것 없는 조직이.
그걸 모를 리가 없음에도 마르할은 태연하게 말했다.
“하기로 했으면 후딱 끝내야죠. 휴고, 에나. 축제 준비 부탁해요. 소문도 낼 겸 근처 마을에서 식량도 사 오고요.”
“알겠습니다.”
“진짜로 할 거냐?”
“불씨는 당겨졌어요. 불이 애꿎은 장소를 태우기 전에 탈 자리를 마련해 줘야죠.”
카리안이 들었다면 같은 주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헛소리가 소문을 타고 사실이 되는 건 하루면 된다.
“하아… 알았다. 마을 내부 준비는 내가 시키마. 그럼 됐지?”
“고마워요, 에나.”
“고마우면 축제를 열지 말든가.”
“그건 안 돼요.”
마르할은 단호했다. 에나도 알면서 해본 말이다.
“휴고, 사람들한테 전달 부탁해요. 개척은 조금 늦춰야겠어요. 카리안의 창고라면 지금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어서 바로 써먹게?”
“그거예요.”
마르할은 최서단, 자기 땅의 끝자락에 개척촌을 만들었다. 토지 경주에서 하얀 줄이 그어졌던 장소를 넘으면 카리안의 땅이다.
마르할의 마을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카리안의 땅에 창고를 짓는다는 행위가 가능하다.
축제에는 많은 물자가 필요하다. 지금 마을에 있는 물자로 외부인을 포함한 축제에 필요한 물건을 감당하기는 힘들다.
축제 준비라는 명목으로 창고를 지으면, 평소보다 싸게 인부를 부릴 수 있다.
“나는 가볼게.”
“돈 아끼겠다고 사기꾼이나 반푼이를 고용하지는 말고요.”
“그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
카리안이 에나의 잡화점을 나갔다.
마차에 실린 짐 중에는 카리안의 것도 있다. 창고를 지을 재료다.
힘든 일은 다 끝났고, 남은 관문은 인부 고용과 그들의 감시, 그리고 그들에게 지급할 임금이다.
그걸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카리안에게는 이 이상 없을 호재다.
“카반한테는 미안하게 됐어요. 시간이 조금 늦춰졌네요.”
“아닙니다.”
카반은 집이라면 조금 지을 줄 안다. 하지만 그걸 빼면 지주로서의 모든 일에 까막눈이다.
그가 투자자를 모으고 사람을 고용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마르할 덕분이다.
그는 마르할에게 불평할 입장이 아니다.
“그래도 마냥 나쁜 일은 아니에요. 들었죠? 서부 출신 중에는 일꾼이 많아요. 축제로 사람이 모이면, 그들을 그대로 도시 재건 현장에 데려갈 수도 있어요. 도시에 정착하겠다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고요. 에나, 카반한테 지주로서 필요한 간단한 업무 좀 가르쳐줘요.”
“축제 준비하면서, 덩치까지 하나 떠맡으라고?”
“그래도 확실한 호위는 되잖아요?”
“그건 나쁘지 않네.”
잡음이 많을 거라 예상되는 축제다.
에나가 평범한 성인 남자보다 강하다곤 해도, 그들이 무기를 들거나 숫자가 많아지면 그녀도 위험하다.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가 호위를 서준다면 안전에 투자할 시간과 돈으로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에나는 사실상 이 마을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능력으로만 따지면 도시 관리자로 앉혀놔도 손색이 없어요. 나중에 대리인을 구해도 중요한 부분은 직접 처리해야 하니, 이참에 기본적인 걸 배워둬서 나쁠 건 없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카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묵한 눈에 모종의 결심이 서렸다.
“그럼 정리 끝. 에나, 휴고, 부탁해요. 필요한 일 있으면 부르고요.”
마르할은 잡화점을 나섰다. 지주로서 큰 틀을 세워줬으니, 나머지는 실무자들이 할 일이다.
잡화점을 나온 마르할이 기지개를 켰다.
지주가 할 일은 끝났다. 그러면 하나가 남는다.
용병이 할 일.
바로 축제를 즐기는 일이다.
‘순수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야.’
용병 신분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미래가 벌써 그려진다.
* * *
마린은 여관에서 노인,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그녀 땅에 정착하겠다는 스무 명 정도 되는 사람을 빼면 나머지는 이 마을에 정착하기로 되어 있다. 그들의 숫자가 많지는 않았다.
헬라 같은 경우가 매우 특이한 것이지, 노인의 몸으로 맨땅에서 마을을 세우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마린을 따라오겠다는 노인들은 대부분 그녀를 보고 온 것이다.
어깨가 무겁다. 마린의 어깨에 달려 있는 건 그녀 어깨 위에 있는 게 전부였다. 조모가 타계한 이후 그녀는 자기 머리 위에 달린 물건… 그러니까 자기 머리만 간수하면 되었다.
타인의 목숨을 짊어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는 마르할이 왜 그토록 외부인에게 잔인한지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이유를 몸으로 알 것 같다.
마을을 세울 첫 기둥도 올라가지 않았는데 그녀는 벌써 외부인과 내부인을 구분하고 있었다.
“긴장 풀어.”
헬라였다. 알라실에게 치료받은 후 한층 생기 넘치는 그녀가 마린에게 다가왔다.
“긴장 안 했어요.”
마린은 최대한 평소처럼 말했다. 그러나 마족과의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노인의 안목을 피할 순 없었다.
“어차피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이여. 누구도 원망할 사람은 없어. 그런 나약한 놈들은 전부 경계에 남았지. 아이들도 마찬가지여. 쪼매난 녀석들이 철만 빨리 들어서는… 자기 선택을 이해 못 하는 놈은 없어.”
“정말로요?”
마린이 소심하게 물었다. 그녀가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아이.
그녀는 아이를 상대하기 거북하다. 그녀가 저 나이 때에는 어른과 밥그릇 경쟁을 해야 했고, 근처에 있는 또래는 어른보다 영악했다.
순수한 또래 친구는 사귀어본 적이 없다. 주변 사람은 전부 그녀를 이용하려 하거나, 그녀가 이용해야 할 대상이었다.
마린이 유독 노인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건 조모의 기억도 있지만, 노인을 제외한 다른 모두가 그녀의 경쟁자이자 적이었던 이유도 있다.
누구도 그녀의 편이었던 적이 없기에, 그녀는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헬라가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내가 다 이야기 끝내뒀지. 그러니까 네 일에만 집중혀.”
“고맙습니다.”
“고마우면 마을에서 자리 하나만 줘.”
마린이 작게 웃었다.
“촌장이면 될까요?”
“어이쿠, 그렇게 큰 자리를?”
헬라가 눈을 크게 뜨며 호들갑을 떨었다.
“싫으세요?”
“아니, 너무 좋아서그려. 늙어서 권력 맛 좀 보려고 가는 건데, 촌장이면 좋지. 어여 들어가. 나는 조금 더 있다가 들어갈 테니까.”
마린이 여관 위층으로 올라갔다.
헬라는 반대로 여관 밖으로 나왔다.
“기적이 좋긴 좋아.”
얼마 전까지는 무릎이 시려 걷기도 힘들었는데, 사제의 기적 몇 번으로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 아가씨가 어지간히 특별한 거겠지만 말이여.’
그녀도 들은 게 있다. 작은 마을에 있는 사제들은 감기나 베인 상처를 치료하는 게 고작이다.
날이 조금만 추워져도 쑤시는 관절을 치료하는 사제는 대도시나 영주의 저택 근처에나 있는 귀인이다.
그런 사람들도 하루에 수십 명의 병세를 본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공국에서 경계로 오며 한 번, 경계에서 중간 도시로 가며 한 번. 두 번 만났던 여인은 모든 노인과 아이의 병과 상처를 돌보았다.
‘그 아가씨도 청년을 보는 눈이 심상치 않던데.’
쯧쯧. 헬라가 혀를 찼다.
그 수녀 말고도 마린의 경쟁자가 너무 많다. 귀족 출신으로 보이는 금발 아가씨나 밤마다 모닥불에 불을 피워주던 마법사 아가씨도 보통이 아니다.
당사자들에게 연애 감정은 없어 보였지만, 젊었을 때의 감정은 장마철 날씨보다 휙휙 변하는 법이다.
그녀가 순수한 구경꾼이었다면 그저 즐겼겠지만, 손녀 같은 아이가 한 명 생겨버렸다. 그러니 기왕이면 손녀가 승자가 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저기 마르할이 걸어오고 있었다. 헬라는 팔을 살살 문질렀다.
“아니,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 그 나이에 감기라도 걸리시면 큰일 나요.”
“잘생긴 청년을 보려면 이 정도 고생은 해야지.”
“할 이야기 있으세요?”
“청년은 말이 빨라서 좋아.”
“저는 할머니가 더 신기한데요.”
진심이다. 헬라는 마르할이 보기에도 매우 특이한 사람이었다.
조셉은 전직 장군이고, 라일은 경험 많은 상인이다. 비교적 평범한 인생을 보낸 헬라에게서 그들의 그림자가 보인다.
노회한 생존자의 그림자가.
“미인께서 기다려 주셨는데, 자리는 제가 마련해야겠죠?”
“허허. 이 나이 먹고 미인 소리도 다 들어보고, 오늘은 호강하는 날이야.”
“마담, 손을. 여관 뒤쪽에 둘만을 위한 방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마르할이 손을 내밀었다. 헬라가 목청껏 웃으며 마르할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즐거웠다. 서부행을 택한 건 그녀 인생에서 두 번째로 잘한 선택이었다.
첫 번째는 물론, 남편을 고른 것이고.
마르할과 헬라는 여관 구석에 마련된 작은 방에 들어섰다.
마르할과 헬라가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 있어요? 할머니 같은 분이 직접 저를 부르셨다면, 보통 일은 아니겠죠?”
“함께 온 젊은 놈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감?”
과연,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