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08
제108화
엘리제는 마린이 평생 봤던 말 중 가장 빠르다.
조셉이 명마랍시고 내어준 말이니 그나마 따라붙었지, 평범한 말은 엘리제의 속도를 쫓지 못한다.
그녀가 타고 있는, 일반적인 말은 엘리제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거의 두 배. 저게 무슨 말이야.’
말이 헐떡일 정도로 달리고 있는데 마린과 마르할 사이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다행인 점은 마린과 마차의 거리도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차를 끌며 달리는 말이 사람 한 명 태우고 달리는 말보다 빠를 수는 없다. 마차를 끄는 말이 전부 엘리제 같은 괴악한 말이라면 또 몰라.
그새 마차를 거의 따라잡은 마르할은 바로 마차에 붙지 않고 옆으로 돌았다.
마르할의 팔에서 화살이 쏘아졌다. 그런 환상이 보였다.
화살처럼 날아간 가죽끈이 달리던 말 한 마리의 앞발을 묶었다.
말이 하늘을 날았다. 말에 타고 있던 사람도 하늘을 날았다.
활공 뒤에 있는 건 추락이다. 말과 기수는 짧은 자유를 누리고 땅에 떨어졌다.
말이 몇 바퀴 땅을 굴렀다. 그리고 쭈욱 미끄러졌다.
살을 모래와 비볐다. 말이 미끄러진 자리를 따라 피와 갈린 내장이 길게 남았다. 흙먼지가 짙게 일어났다. 기수의 꼴도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현실적인 광경에 강도들도 눈을 의심했다.
단숨에 두 생명을 끝내고도 가죽끈은 만족하지 않았다.
뱀처럼 스르르 묶고 있던 다리를 풀고, 다음 사냥감을 찾아 빠르게 땅을 기었다.
강도들이 뭐라 뭐라 목청껏 떠들었다. 그들은 반쯤 이성을 잃고 있었다.
말이 두 번째 말의 다리를 묶었고, 똑같은 광경이 반복되었다.
가죽끈이 뱀처럼 땅을 기어 말의 다리를 묶는 건 마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놀라 뒤집어질 모습이긴 했다.
마르할의 가죽끈이 세 번째 말의 다리를 묶는 걸 보고, 마린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늦게 가면 자신이 도착하기도 전에 마르할이 전부 끝내버릴 것 같다.
강도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세 번째 말이 하늘을 날자 그들은 말에서 내렸다.
마르할도 엘리제를 멈췄다.
강도들은 무기를 뽑을 생각도 못 했다.
평범한 사람에게 마법사는 공포의 대상과 같은 존재다.
세상에는 많은 소문이 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들리며, 기괴한 소문이 마법사와 관련된 것이다.
유명인 누군가가 마법사에게 어떻게 죽었다. 어떤 마법사가 어떤 기행을 했다… 같은 것들.
소문답게 부풀려지고 과장된 이야기는 마법사의 존재 자체에 공포를 가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앞에서 말이 하늘을 나는 광경을 막 두 눈으로 목도한 참이다.
강도 한 명이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박았다.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저희가 잘못했으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쇼.”
쯧. 마르할이 혀를 찼다.
마르할은 용서를 구하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 마르할에게 주어진 거의 유일한 행동 제약이다.
‘이건 오랜만인데.’
최근 큰물에서 놀다 보니 잘 없던 일이다.
높은 위치에 앉은 사람은 자존심도 강하다. 그들은 용서를 비는 일이 없다. 빌어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럴듯하게 죽기를 원한다.
반대로 버릴 자존심이 없으면,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는 건 쉽다. 말뿐이라도 용서를 빌 수 있다.
말 한마디로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세상에서 가장 남는 장사다. 그리고 마르할은 그 장사에서 밑져야 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죽일 거냐? 약속과 역사를 배신하는 거냐? 그러면 우리도 네 말을 듣지 않겠다. 역사를 포기한 자와 지킬 약속은 없다.]환청이 들린다. 환청이지만, 동시에 진짜 경고다. 마르할이 품은 마족의 역사가 뱉어내는 속삭임이다.
마르할이 침묵하자 남자는 다시 땅에 머리를 박았다.
“선생님의 마차인지 몰랐습니다! 정말입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개처럼 일하겠습니다!”
“그건 혼자만의 생각인가요?”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한 번만 봐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분위기가 묘해지자 강도들이 차례로 무릎 꿇었다.
자존심 강하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 능력도 없고 배알도 없는 사람.
둘을 상대하는 난이도가 비슷하다는 게 자신도 놀랍다.
죽이거나 상처 입힐 수는 없다. 그렇다고 놔주기도 어렵다. 그들은 마르할이 가죽끈을 사용하는 걸 봤다.
물건도 물건이고, 시간도 여유가 없어 바로 써버렸지만, 가죽끈은 나름 마르할이 가진 비장의 무기다. 입을 다물라 하면 이들이 그걸 지킬까?
엄포를 놓아도 금화 하나로 입을 열 것이다. 스스로 떠벌리진 않아도 고문을 받으면 입을 연다.
그렇다고 흔하디흔한 강도를 상대로 가죽끈에 이름을 쓰게 하는 것도 낭비다.
용서하면 그것도 또 문제다. 한 번 쉽게 용서받으면, 두 번째도 있을 수 있다. 그때는 더 음습한 방법을 사용하겠지.
마르할은 용사가 아니다. 예지에 가까운 직감을 가진 그 인간이라면 어떤 함정을 파든 여유롭게 피하거나, 설령 함정에 걸려도 힘으로 뚫고 나올 것이다.
반면 마르할은 칼에 찔리면 죽는 평범한 몸이다.
황족 출신이고, 서부에서의 다양한 경험 덕분에 독과 마약류에는 상당한 내성이 있지만, 그게 전부다.
마르할이 고민하는 사이 마린이 도착했다.
마르할은 땅에 머리 박은 십여 명의 강도 앞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항상 살짝 장난기 감돌게 웃고 있는 표정이 미미하게 찌푸려져 있다.
고민하는 마르할을 본 마린의 감상은 위화감이었다.
그녀가 아는 마르할은 이런 부분에서 고민할 사람이 아니다.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되도록 대화로 해결한다. 하지만 한 번 칼을 들면 자비가 없다. 그게 그녀가 보아온 마르할이다.
저들은 마을 축제에 쓰일 물건을 훔쳤다. 그녀가 아는 마르할이라면 살려 두기보다는 죽이기를 택한다.
출발 전에 마르할이 말하지 않았나. 봐줄 필요 없다고.
강도를 살려두는 이유를 모르겠다.
“선생님, 이렇게 빌겠습니다! 제발!”
-선생님!!
“마르할 님.”
“아, 마린. 왔어요?”
“죽일까요?”
마린이 다짜고짜 말했다.
마린은 빌고 있는 남자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마르할의 반응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데리고 가죠. 지주한테 돈 받고 일하는 거지. 우리한테 원한이 있어서 이러는 건 아닐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렇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어떤 원한도 없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뭐 하셨는데요?”
“그, 소작 지으셨습니다….”
자기도 설득력이 없는 건 아는지 남자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이름이 뭐예요?”
“빅토리오입니다!”
“좋아요, 빅토리오. 저 뒤에 말 타고 오는 사람 보이죠?”
“보입니다!”
뒤쪽에선 겐트만이 어정쩡한 자세로 말을 몰아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말은 속보로 걷고 있지만, 위에 탄 겐트만은 질주하는 말의 고삐를 잡고 있는 것처럼 힘을 꽉 주고 있다.
“뒤에 태워서 데려와요. 나머지는 출발 준비하고요.”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빅토리오, 마음 바뀌게 할래요?”
“아닙니다!”
빅토리오가 옆에 있던 말에 냉큼 올라탔다. 그리고 겐트만을 향해 달렸다.
마르할도 다시 엘리제에게 올라탔다.
잠깐 눈을 뗀 사이 마차까지 훔친 강도들답게 행동은 빠릿빠릿했다.
출발 준비가 끝났다. 강도 한 명이 마르할에게 물었다.
“저… 선생님. 어디로 가면 될까요?”
“북쪽에 있는 마을요.”
“북쪽이라면… 휴고?”
휴고의 이름이 나온 건 의외다.
마르할 대신 대외 활동을 하는 휴고는 마르할보다는 이름과 얼굴이 알려져 있지만, 보통은 휴고가 누군지도 모르거나 휴고의 이름만 아는 게 정상이다.
남자의 반응을 보니 휴고의 행적과 성격도 아는 것처럼 보인다.
지주에게 직접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들이니, 들은 게 있다는 걸까.
마르할에게 나쁜 일은 아니다. 알기 쉬운 협박 수단 하나가 늘었다.
“오. 휴고랑 아는 사이였어요? 진작 말하지, 그랬으면 더 평화적인 방법으로….”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냥 이름만 아는 게 전부입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휴고 선생님이 얼마나 바쁘신 분인지 소문으로만 들었습니다. 휴고 선생님은 저희 같은 길가의 돌멩이는 모르십니다. 뵌 적도 없지 말입니다!”
“다행이네요. 또 휴고의 지인에게 몹쓸 짓을 한 줄 알았잖아요. 그런데 휴고를 알면, 휴고 성격도 알겠네요?”
“선생님… 제발…!”
남자가 마르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마르할은 발로 남자를 밀어냈다.
“상품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으니, 제 재량으로 넘어가 주지 못할 것도 없어요. 하지만 그러려면, 알죠?”
“압니다. 압니다. 잘 압죠.”
“축제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죠? 이거 축제에 쓰일 물건이거든요. 빨리 도착해야 해요.”
“알겠습니다! 야야, 들었지! 움직여! 움직여! 죽기 싫으면 움직여!”
채찍질과 함께 마차가 출발했다.
강도와 피해자가 한 무리가 되어 황야를 가로질렀다.
마린은 조셉에게 받은 명마를 되찾았다. 마린은 말을 몰아 마르할 옆으로 갔다.
“마르할 님. 저놈들, 지금이라도 죽일까요?”
“에이, 말 잘 듣잖아요. 왜 죽이려고 그래요.”
“제가 아는 마르할 님은 그러셨을 테니까요. 안 죽이시는 게 아니라, 못 죽이시는 거죠?”
이런 걸로 마르할의 평정은 깨지지 않는다. 그는 용사의 길잡이다.
세상 누구도 가지 못한 길을 뚫고, 세상 누구도 해내지 못한 위업을 이룬 사람이다.
“제가 무슨 살인귀도 아니고요. 말로 풀 수 있으면 말로 풀어야죠.”
“말이 통하는 사람을 상대로는요.”
저기 있는 강도들을 말이 통하는 상대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같은 언어를 쓴다고 말이 통하는 게 아니다. 서로를 향한 최소한의 배려가 대화의 전제 조건이다. 그리고 저들은 자신이 약자의 입장에 있을 때 일방적으로 배려를 구걸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스스로 상대를 배려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게 되면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주인 없는 물건을 보았다고 바로 훔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르할이 입술에 침을 발랐다. 오늘따라 난감한 상황이 많다.
마린은 단호하다.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 평소에는 이만하면 물러나 주던데… 난처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저는 마르할 님의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건 고마워요.”
“하지만 저는 마르할 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날 이후 뭘 하셨는지. 그리고 지금 뭘 하고 계시는지도. 이대로는 마르할 님의 짐밖에 되지 않아요. 마차를 습격하던 날 그랬듯이.”
그날 마린은 자기 힘도 제어 못 하는 짐이었다.
그 후로도 그녀가 도움이 된 일은 거의 없다. 도시에 마약이 뿌려졌을 때는 암살자에게 당해 쓰러져 있었고, 이번 축제에서도 한 게 없다.
지금 그녀 품에 있는 땅문서조차 마르할이 없었다면 얻지 못했다.
마르할은 그녀에게 많은 걸 주었지만, 정작 마린은 마르할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
마르할이 하늘을 보았다.
날씨가 좋다. 십여 년 전 서부에서는 볼 수 없던 하늘이다.
기본적으로 서부의 하늘은 검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가끔 보이던 하늘도 마족의 힘으로 먹구름이 가득했다.
마족이 가득하던 서부에서, 마르할도 마린과 같은 고민을 했다.
마르할이 길잡이 역할을 못 한 건 아니다. 길도 알려주고, 밥도 준비하고, 일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마르할이 하는 일은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마르가 가지고 있던 세계지도가 있었다면 조금 늦더라도 마왕 앞에 도착했을 것이다.
마르할이 자신 있게 자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때가 유일했다. 마왕이 된 소일라 므에실리고 대신 마족의 업을 짊어졌을 때.
그 전까지 용사 일행에서 길잡이가 진정으로 필요했냐고 물으면, 마르할은 단호히 고개를 저을 것이다.
마르할이 뒤를 봤다.
겐트만을 태운 말이 달려오고 있다. 떨어진 장소에서는 강도였던 자들이 마차를 끌고 있다.
마차를 끄는 말이 지쳤다 싶으면 달리면서 마차를 끄는 말을 바꾸며 속도가 떨어지지 않게 조절한다.
“마린, 용사 일행에서 길잡이가 정말로 필요했을 것 같아요?”
“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에 마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