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09
제109화
잠을 자던 도둑이 눈을 떴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 침대 옆에 있는 주전자를 들고 물을 마셨다.
“뭐야, 문제 생겼어?”
“아니. 그냥 근처에 올 일이 있어서. 약속은 잘 지키고 있나 확인하러.”
방구석의 공간이 갈라지며 마법사, 마르 실라나티엘이 나타났다.
“지나치게 깔끔하더라니. 네 짓이었냐. 세상일에는 손대지 않는 거 아니었어?”
셋째 황녀의 자산 반을 날려버린 대화재는 제국에서도 뜨거운 논란이다. 제국의 내로라하는 수색 기사와 신비 추적자 소속 마법사들까지 나섰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했다.
도둑도 심심풀이로 한 번 현장에 가봤지만,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른 허접한 기사와 마법사는 몰라도, 도둑이 단서를 잡을 수 없는 건 말이 안 된다.
그의 눈을 피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셋뿐이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 하나.
하나는 몰래 불을 지를 바에 정면으로 돌파할 인간이고, 하나는 신이 되겠다며 미친 짓을 하고 있다. 서부에 있는 그놈은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한 명이 남는다.
“저쪽이 먼저 시비를 걸었어.”
“천하의 마법사에게? 그냥 화풀이가 아니고?”
“아냐.”
“네가 자진해 제국과 관계되었을 리는 없고. 그럼 그놈이구만. 벌써 제국이 거기까지 손을 댔나.”
마르 실라나티엘이 직접 제국에 손대게 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마르할 무느두스.
마르와 율란은 유독 그놈을 과보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나도 남 말 할 입장은 아닌가.’
모든 기술을 전수하고 몇 년이나 수련까지 시킨 게 과보호가 아니고 뭔지.
평소 그의 성향을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용히 가면 되는 걸 나한테는 무슨 일이야? 불이 나고 한 달도 넘게 지났는데, 그동안 제국에 있었냐?”
“연락은 받아, 아르고.”
도둑의 질문은 모두 무시하고, 마르는 자기 용건부터 꺼냈다. 도둑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마르 실라나티엘은 원래 그런 인간이다.
“네가 뭐가 예쁘다고 연락까지 받아주냐.”
마르 수준이면 세상 어디에 있든 원하는 사람을 찾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녀의 대화를 거절할 수 있는 건 그녀와 같은 수준의 사람이다.
특히 바스타와 아르고, 용사와 도둑은 죽어도 그녀의 연락을 받지 않는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신비를 차단하면 마르의 마법으로도 뚫을 수 없다.
“어차피 그놈이 서부를 마무리할 때까지는 자유잖아? 하루에 끝나는 일도 아니고 무슨 호들갑이야.”
마르할이 하려는 일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을 바라봐도 성패를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성공과 실패의 차원이 아니라, 일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뭔 일이야? 네가 제국까지 직접 행차했다면 보통 일은 아니겠지?”
“네 역사, 멀쩡해?”
도둑이 눈을 감았다. 눈꺼풀 뒤로 커다란 산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아주 조금 커졌다.
매우 미세한 차이였지만, 도둑의 눈썰미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도둑도 한때 목숨 걸고 역사를 쌓으려 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옛일이다. 이제는 숨만 쉬어도 역사가 쌓인다.
아르고라는 인간이 이룬 업적을 두고 무수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역사를 더해주고 있다.
그건 그와 같이 마왕을 죽이는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살피던 도둑이 인상을 쓰며 눈을 떴다.
“뭐야, 이건? 재미있는 짓을 해주는데. 내 물건을 빼앗으려 하다니.”
귀족들의 서고를 털고 다니던 도둑이다. 그도 역사 잇기가 뭔지 안다.
자신이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의식의 대상이 될 줄은 몰랐다.
“야, 마르, 이거 추적되냐?”
“무슨 짓을 하려고?”
“안 죽여. 안 죽여. 그냥 나한테 도전하는 놈이 누군지 얼굴이나 보려고.”
마르가 미심쩍은 눈으로 아르고를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거의 달라진 게 없었지만, 용사 일행이라면 그녀의 표정을 읽는 건 기본이다.
저 변덕스러운 마법사에게 밉보이면 그날 전투에서는 지원을 못 받는 수가 있다.
“내가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였단 소식이 들리면, 그놈이 가만있겠냐. 죽이려는 시도만 해도 귀신같이 찾아올 놈인데.”
“그건 그래.”
용사의 직감이라면 자기가 한 약속이 깨어지는 걸 예지해도 놀랍지 않다.
마르와 아르고가 함께 공감하는 일이다.
“헤어진 다음 꼬맹이 만나봤냐?”
“아니.”
“아깝단 말이야. 재능만 따지면 바스타 그 미친놈 다음인데, 그게 전부 묶여 있으니.”
아르고는 늘 울상을 짓고 있던 꼬맹이를 떠올렸다. 마족이 사라진 다음에는 그래도 나아졌지만, 서부에서는 매일 웃으면서 울고 있었다.
주변 환경이 좋은 듯 안 좋은 놈이다.
나라가 멀쩡할 때는 자기보다 뛰어난 형이 있었다고 하고, 나라가 망한 다음은 자신들과 만났다.
조금 재능을 꽃피우려나 싶으니, 거기에 마족의 업이라는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썼다.
‘기구하기로는 우리 중 제일이려나.’
자신을 포함한 다른 놈들은 결국에는 승자가 되어 전설의 역사를 쌓았다. 마르할은 그만한 역사를 가지고도 반대로 자신의 역사를 지워야 했다.
그 재능을 온전히 사용하게 되면 세상이 들썩일 텐데, 아까운 일이다.
“글쎄?”
“뭔가 있냐? 야! 어디 가! 갈 거면 말은 해주고 가! 아니면 나 설친다?”
공간의 균열과 함께 마르가 사라졌다.
몇 번을 봐도 저건 어떤 원리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세상이 변했어. 그걸 알려주려고 온 거야.”
목소리만 남기고 공간의 균열이 완전히 소멸했다.
아니, 그녀가 남긴 건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아르고는 마르가 있던 자리에 떨어진 종이를 주웠다.
“공국 지도?”
찢어진 종이에는 공국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지도에는 빨간색으로 한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추적해 달라던 그거? 그 짧은 사이 제국에서 공국에 있는 무언가를 탐지했다고? 역사에 대해선 전부터 최고이긴 했지만, 못 본 사이 더 괴물이 되었다.
“공국 수도… 왕인가? 내 물건을 훔치려면 왕은 되어야지.”
직접 손댈 마음은 없다. 어차피 도둑이라는 전설의 역사에는 흠집도 내지 못한다.
마르나 율란처럼 특수한 역사라면 모르겠지만, 도둑의 역사는 도둑이 직접 쌓은, 훔치는 것에 특화된 역사다. 검은 안개와 강대한 마족들도 그의 역사를 빼앗지는 못했다.
그냥 호기심이다. 도둑의 역사에 손끝이라도 닿은 인간이 누군가 하는 호기심.
그리고 마르가 마지막에 한 말도 무시할 수 없다.
“세상이 변했다고?”
괜한 말을 하는 여자가 아니다. 마르가 변했다고 하면, 정말 무언가가 변했다.
하지만 도둑은 그 변화를 모른다. 천하의 도둑이 모르는 정보가 있다니, 그의 자존심이 용납 못 한다.
* * *
용사 일행에는 길잡이가 있다.
마린에게는 하나의 진리와도 같은 사실이다.
단 사흘이지만, 그녀는 용사 일행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던 마르할을 기억한다.
인외라 불리는 네 사람에게 기세로 전혀 밀리지 않던 마르할을 알고 있다.
마르할 입에서 길잡이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이 나올 줄은 몰랐다.
“피. 필요해요.”
마린은 화려한 언변과 거리가 멀다. 마린이 급하게 짜낼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다.
말을 하고도 마린은 자신의 발언에 바로 후회했다.
한다는 말이 겨우 그거야? 필요하다는 말 하나? 자괴감이 든다.
위로조차 안 되는 말이지 않은가.
베이올라에게 말하는 법이라도 배워뒀어야 했다.
눈치 없고, 세상 물정도 모르고, 가끔 생각은 했나 싶은 말을 하고는 하지만, 그래도 베이올라는 마린과는 다른 고급스러운 어휘를 구사한다. 모국어인 제국어도 아닌 공국어로 말이다.
마린의 시선이 이리저리 헤맸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해주긴 했죠.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길잡이는 필요 없었어요.”
바체아 제국 황족 마르할이라면 필요했다. 하지만 길잡이 마르할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애매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 가끔 일행의 짐이 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르할은 지독한 무력감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율란의 기적과 마르의 마법, 그리고 용사와 도둑의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 없었다면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필시 미쳤겠지.
마린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마르할을 뚫어져라 보고 있지만, 입이 멍청하게 벌어져 있다.
“마지막까지 그랬던 건 아니고요. 나중에는 도움이 되긴 했는데, 사실 대부분은 제가 없어도 되는 일이었어요.”
“마르할 님… 그러니까….”
“괜찮아요. 다 옛날 일이니까요. 그리고 억지로 위로해줄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마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는 거예요.”
마린이 헛숨을 삼켰다. 그녀는 호흡을 잊었다.
마르할의 입에서 그녀를 이해한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머리가 멍하다. 몸이 붕 뜨고, 날아갈 것만 같다.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싹튼다. 이 사람도 나랑 같은 인간이구나. 고민과 걱정을 가지고 현실을 사는, 약해지기도 하는 인간이구나.
마르할과 자신이 같다는 점에 안도하고, 위안을 얻는 자신이 있다.
한 번 시작된 사고는 그녀의 의지와 무관하게 살아 있는 생물처럼 멋대로 결론을 내려버린다.
마린은 그런 자신이 혐오스럽다. 역시, 자신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다. 동시에 마르할도 자신과 같았으면 하고 마음 한편으로 바라고 있다.
동경하는 사람에게 닿을 수 없으니, 그 사람이 떨어지기를 바란다. 얼마나 천박한 생각인가.
“마린의 말이 맞아요. 저는 저 사람들을 죽일 수 없어요. 저는 저한테 용서를 비는 사람을 용서해야만 하거든요.”
“그건… 마법인가요?”
마법에 따라오는 기행. 그것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부분이 없다. 마르할은 마법사다. 기행의 역사 하나나 둘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비슷해요. 쉽게 어길 수 있는 제약이 아니라서요. 가끔 이런 일이 있어요.”
마르할이 고개를 돌렸다. 마린의 고개도 마르할을 따라 돌아갔다.
나아가고 있는 마차가 있다. 겨우 마차를 따라잡은 겐트만이 마차 안으로 뛰어들려고 말 위에서 다리를 구부린다. 강도 하나가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반대쪽 손으로 겐트만의 허리띠를 잡고 있다.
“역시, 죽이려고 하셨던 게 맞네요.”
“맞아요. 마차를 건드린 것도 건드린 거지만, 이걸 봤거든요.”
마르할의 몸통에 감겨 있던 가죽끈이 풀려나와 소매로 튀어나왔다.
“지금이라도 죽일까요?”
“아뇨. 이미 늦었어요. 그리고 이건 비밀이에요. 마린이라면 알죠?”
“네.”
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서해 달라고 하면 용서해줘야 하는 제약이라니. 모르고 있으면 정말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한 번 알아버리면 악용할 여지가 넘쳐난다.
마르할을 공격한 다음 용서해 달라고 하면, 마르할은 반격도 못 하고 일방적으로 당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나요?”
“스트레킬이 직접 알아내긴 했지만, 제 입으로 직접 알려준 사람은 마린이 처음이에요. 마린은 제가 못 하는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요.”
“네.”
마린이 힘주어 대답했다.
마르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마르할이 믿어주고 있다.
가슴 가득 충족감이 차오른다.
마린이 강도들을 노려봤다. 역시, 마르할보다 먼저 나가 저놈들을 죽여야 했다. 그러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마린은 속으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