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16
제116화
마린이 타고 있던 말이 멈췄다.
말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멈췄을 것이다.
비명이 들린다.
마르할 아래 깔린 마리나에게서 나오는 비명이다. 그녀의 발이 물에 빠진 사람처럼 바둥바둥 움직인다.
비명이 끊어지지 않고 길게 이어진다.
듣는 그녀가 다 섬뜩해지는, 내장에서부터 긁어 올리는 울림이다.
멈춘 건 카반도 마찬가지였다. 투구에 가려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고삐를 잡고 있던 손이 허리춤으로 가는 것을 보아 그의 복잡한 심경은 짐작할 수 있다.
“가지. 아직 끝난 건 아닌 것 같으니.”
카반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조셉이 아직 싸우고 있다. 대부분 정리되었지만, 아직 몇 명이 남았다.
그리고 조셉도 상당히 지친 것으로 보인다. 멀리서 보이던, 그의 몸을 감싼 푸른 전기가 보이지 않는다.
카반과 마린이 말을 몰았다.
* * *
아르테르는 조셉과 거리를 벌렸다. 그는 파멸적인 비명을 들었다.
그는 비슷한 비명을 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질 때 내지르는 소리가 저러하다.
제국 기사로 있으며, 또 연합에서 아르테르는 다른 사람에게서 저런 음색을 짜내었다.
그리고 지금 나락으로 떨어진 건 연합 최고라 불리는 마법사다.
“후퇴한다.”
“하지만 도망갈 장소가 없습니다.”
이곳은 사방이 트인 황야다. 어디로 도망가든 훤히 보인다.
잠깐이라면 그들은 말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속도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한다.
말을 탄 추격자가 있으면 따라잡힌다.
“도망치는 방향은 저쪽이다.”
아르테르가 가리킨 방향에는 마르할의 마을이 있었다.
달밤에도 빛을 내는, 황야에 떨어진 거대한 양초와 같은 마을.
“마을에 숨어 불을 질러라 그때 도망자 무리에 섞여 도망친다. 합류 지점은 그곳이다.”
기사들만으로 마을을 불사르는 건 물리적으로 힘들다. 마법사가 무력화된 시점에서 작전은 실패다.
살아 돌아가는 게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그건 모두 말리바에게 보고할 핑계고, 아르테르의 본심은 달랐다.
앞에 있는 기사를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전신 갑옷을 감싸던 전기는 사라졌다. 노기사가 지쳤다는 걸 움직임으로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몸을 감싼 전기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검과 검이, 검과 갑옷이 부딪치면 손과 팔이 아리다.
적은 지쳤지만, 아르테르는 전의를 잃었다. 아르테르는 도망치고 싶었다.
조셉이 검을 빙글 돌려 역수로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검을 땅에 찔렀다.
아르테르가 본능적으로 자리를 피했다.
조셉은 싸움이 시작된 이후 계속 검으로 땅에 선을 그렸다. 그 선은 바닥에 이리저리 이어져 있다.
조셉이 그린 사투의 흔적을 타고 푸른빛이 달렸다.
파지직. 정전기 소리와 함께 땅이 한 차례 빛났다.
조셉이 그린 선을 밟고 있던 그의 부하들의 몸이 굳었다.
조셉이 검을 버리고 움직였다.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는 손가락 하나까지 모두 흉기다. 그는 맨손으로 사람의 옆구리를 뚫고 안에 든 창자를 뽑아냈다.
아르테르는 그 장면을 보지 않았다. 남은 힘을 모두 짜내어 마을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는 소리를 들었다. 살아남은 부하는 다섯 정도 되는 것 같다.
쇳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노기사는 움직이지 않는다.
지쳐서 쫓을 기운이 없는 것일지도.
그에게는 좋은 일이다. 아르테르는 마을을 향해 똑바로 달렸다.
정면에 말 두 마리가 그를 향해 달려온다.
여자 하나와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 하나.
또 전신 갑옷. 지긋지긋하다.
마법사가 말했던 사람, 돌을 베는 기사 카반, 공국 영웅 스트레킬,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르테르도 아는 사람이다. 둘 중 누가 되더라도 그의 앞을 막지는 못한다.
아르테르는 한 손으로 검을 잡고 팔목에 힘을 주었다. 단번에 베고 지나간다.
* * *
마린은 등자에서 발을 뺐다. 그리고 말 위에 두 발로 섰다.
“상대는 철을 베는 기사다.”
카반은 아르테르가 철을 베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전신 갑옷을 입은 조셉에게 망설임 없이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추측할 수는 있다.
“철을 베도, 이건 못 베요.”
마린은 허리 뒤쪽에서 한 쌍의 단검을 들었다.
그녀가 말 위에서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포식자의 눈이 사냥감을 포착한다.
사냥감은 똑바로 달려오고 있다. 공포에 질려 있고, 동시에 이쪽을 얕보고 있다.
표정을 숨길 생각도 않는다. 꽉 쥔 손에서는 이쪽이 무슨 짓을 하든 한 번에 벨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인다.
유물의 힘이 마린의 몸을 은밀히 감쌌다. 밤의 장막이 마린을 감싼 붉은 기류를 숨겨준다.
말과 아르테르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마린은 신중하게 거리를 쟀다.
피의 역사에 몸을 맡기지 않은 그녀는 고위 기사와 정면에서 검을 맞댈 수 없다. 하지만 말의 가속도를 빌리면, 한 합은 검을 나눌 수 있다.
그녀는 한 합에 모든 걸 끝낼 생각이었다.
‘여기.’
마린이 말의 등을 딛고 뛰었다. 충격에 말이 크게 휘청였고, 마린이 화살처럼 직선으로 쏘아졌다.
아르테르가 보기에 마린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양손에 든 단검이 우습다. 속도를 살려 빈틈이라도 찌르려는 거겠지만, 아르테르는 정면에서 휘두르는 무기도 막지 못하는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다.
아르테르가 검을 휘둘렀다.
대각선 아래로 떨어지는 검.
마린도 단검을 뻗었다.
마주한 검과 단검 사이에서 불똥이 튄다. 아르테르의 눈이 커졌다.
노기사처럼 특별한 기술을 익히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단순한 힘 싸움이다.
그가 절대 질 수 없는, 져서는 안 되는 싸움.
하지만 막혔다. 작은 단검 하나가 철을 베는 기사인 그의 검을 버티고 있다.
최근 철을 베는 기사가 된, 세상 그 자체의 변화가 없었다면 평생 제자리에 머물렀을 기사에게 진짜배기 유물을 알아보는 안목 같은 건 없었다.
아르테르 앞에 있는 건 불가해의 부조리였고, 그는 부조리의 피해자였다.
아르테르의 발이 뒤로 밀려났다. 달리는 말의 속도에 본인의 힘까지 더해진 마린의 일격은 고위 기사도 밀어냈다.
허공에 떠 있던 마린의 발이 땅에 닿았다.
마린은 자신을 밀어내는 아이테르의 힘에 저항하지 않았다.
양손으로 아르테르의 검을 막은 채, 중심을 낮췄다. 그녀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대각선으로 휘두르는 아르테르의 검이 마린을 아래로 찍어 눌렀다. 마린은 그 흐름을 거부하지 않았다.
마린은 아르테르의 검이 이끄는 대로 땅을 미끄러지며 아르테르 아래로 들어갔다.
고위 기사의 힘은 마린의 가벼운 몸을 간단히 밀어냈다.
땅을 미끄러져 아르테르 아래를 지나가며 마린이 단검을 세 번 찔렀다.
아랫배, 고간, 오금.
세 군데 급소를 찔린 아르테르가 무릎 꿇었다. 그는 검을 놓고 아랫배를 눌렀다.
“전신 갑옷만 있었다면….”
마린이 그의 뒷목에 단검을 찔렀다.
* * *
마르할은 양손으로 눈을 감싼 마리나를 두고 일어났다.
그녀는 벌레처럼 몸을 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인간쓰레기.”
마리나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요.”
마리나가 남은 한쪽 눈으로 마르할을 노려보았다.
“괜찮은 모양이네요.”
“복수할 거야.”
“진짜 복수할 거면 그런 말도 하면 안 되죠.”
“진짜 진짜 복수할 거야, 진짜로.”
몸을 일으키려던 마리나는 옆구리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다시 땅에 누웠다.
눈은 여전히 마르할을 노려보는 채다.
“처음 실명했을 때도 이렇게 아프진 않았어요.”
“그때는 어땠는데요?”
“독성 기체가 눈에 들어갔고, 그대로 기절했습니다. 이제는 아프다는 기억도 없습니다.”
마리나가 조심조심 일어났다. 옆구리가 뜨겁다.
눈은… 아프지는 않다. 그녀의 눈은 그녀의 후원자들이 제공한 유물이다. 눈을 구성하던 마법이 부서지며 신경 연결도 끊어졌다.
그냥 눈알 안쪽에 묵직하기만 한 돌을 넣어둔 기분이다.
마리나가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웠다.
시야는 변하지 않았다. 애초에 마법으로 구현하던 것들이다. 하나가 부서진다고 진짜 한쪽 눈이 실명한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기지는 않는다.
시야를 이용한 마법에는 조금 제약이 생기겠지만, 그게 전부다.
“별로 원망하는 것 같지는 않네요.”
“저는 이성적인 마법사입니다. 여기서 당신과 대립각을 세워봐야 상황은 나빠지기만 하죠.”
자신감 넘치던 철을 베는 기사는 쇳조각 하나 베지 못하고 죽었다.
살아남은 부하들은 돌을 베는 기사 카반이 말을 타고 쫓아가 죽이고 있다.
여기서 마르할에게 반항하는 건 자살이다.
“복수는 어쩌게요?”
“언젠가 할 겁니다. 윽…!”
마리나가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싸우다 중상을 입은 건 처음이다.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마리나가 식은땀을 흘렸다.
“도와줄까요?”
“저를 왜 살려주는 거죠? 저를 죽이는 게 모든 면에서 당신에게 이득 아닙니까? 여기서 죽이고 파묻으면, 누구도 모릅니다.”
서부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은 조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특히 마을도 아닌 장소에서 일어난 일은, 적당히 흔적을 지우면 완전범죄가 된다.
마리나는 연합이 보유하고 있는 마르할의 정보를 보았다.
크게 대단한 정보는 없었다. 마르할의 뒤를 캐던 사람과 마르할과 적대하던 사람은 대부분이 죽었다는 기록만 남았다.
마르할은 자기 물건을 건드린 사람을 살려두지 않는다.
과거 마르할과 부딪힌 사람 중에는 죽이면 뒤가 걱정되는 거물도 몇 명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예외는 없었다.
그리고 마르할은 지금 예외를 두고 있다.
마리나는 그게 불편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다.
“실라나티엘의 이름 때문입니까? 그거라면 상관없습니다. 제가 죽어도 가주의 편지는 당신에게 도착할 겁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눈을 대신하던 유물이 부서진 게 정신에 영향을 줬나? 아니면 아파 죽을 것 같은 옆구리?
죽고 싶냐고? 모르겠다. 나오는 대로 말을 뱉고 있다.
마법사답지 않은, 마리나 실라나티엘답지 않은 일이다.
“저번에 도와준 빚이에요. 그때 마리나가 없었으면 일이 훨씬 복잡해졌을 거예요.”
“제가 있어서 살았다는 말은 죽어도 안 하는군요.”
“제 비장의 무기 봤잖아요?”
마리나의 마법조차 끊어버리는 신비를 부리던 알레스를 마르할은 상처 하나 없이 제압했다.
용사 일행의 길잡이가 자기 몸을 지킬 수단도 없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했다.
“빚으로 탕감해줄 거면 눈이라도 찌르지 말든가.”
“그건 필요한 일이었어요. 설명했잖아요?”
“모릅니다. 인간쓰레기.”
경고 목적으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옆구리보다 얼굴이 효과적이긴 하다. 눈이라면 더할 나위 없고.
“마리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죽였어요. 듣고 싶은 게 이거예요?”
“글쎄요.”
뛰기 시작한 심장을 보면, 그게 맞는 것 같다.
그녀는 말리바 리시 따위에게 속은 것보다, 한쪽 눈을 다시 잃은 것보다, 마르할에게 미움받는 게 더 싫었던 것 같다.
그녀는 손 하나를 심장 어름으로 가져갔다. 평소보다 큰 심장 박동이 손으로 전해진다.
인간에게는 거처가 필요하다. 마리나 실라나티엘의 거처는 제국이다. 그녀의 후원자들이 내준 저택, 그게 그녀의 거처다.
하지만 그 거처는 그녀의 마음에 드는 장소는 아니다. 잃었던 빛을 되찾고 실라나티엘의 역사를 잇게 된 것은 좋지만, 그 이상으로 안 좋은 기억도 여럿 있다.
그녀의 호불호와 관계없이 제국은 그녀의 거처이며, 그녀가 있어야 하는 장소다.
마르할은 그녀에게 온기를 주었다. 그는 실라나티엘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마리나 실라나티엘이 아닌 마리나라는 인간을 봐준다.
마르할의 옆은 그녀가 있고 싶은 거처다.
있어야 하는 장소와 있고 싶은 장소의 괴리.
마리나 실라나티엘의 역사가 만들어내는 갈등.
마리나는 그것을 모른다. 그걸 한 번에 알아차리기에는 그녀의 통찰이 부족하다.
부족한 통찰을 가진 그녀지만, 마리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는 안다.
“말 한 마리만 빌리겠습니다.”
“와… 그 말 엄청 뻔뻔한 거 알아요?”
“빚도 다 갚았는데, 우리 사이에 이것도 못 해줍니까?”
“그건 아니죠.”
마르할이 휘파람을 불었다.
멀리 피해 있던 엘리제가 달려왔다.
“…이걸 줘도 되는 겁니까?”
“빌려주는 거예요. 다른 마을에서 말을 사고 적당히 황야에 풀어줘요. 말 안 들으면 불로 엉덩이 한 번씩 찔러주면 돼요.”
“잘 쓰겠습니다.”
엘리제 위에 올라타려던 그녀는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그녀의 신체 능력이면, 이 상처로도 말에 타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마리나는 한 번도 부상당한 몸으로 움직인 적이 없다. 다친 몸을 가누는 요령을 모른다.
마르할이 미끄러지려는 그녀의 허리를 잡고 엘리제 위에 올려주었다.
“이것도 못 해요?”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이 할 말은 아닙니다.”
“말리바 리시에게 전해줘요. 크게 빚졌다고요.”
“아마 당신이 빚을 직접 갚을 기회는 없을 겁니다.”
마리나가 고삐를 당기자 엘리제가 천천히 나아갔다.
마르할이 뒤를 보았다.
말을 탄 마린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
“조셉, 몸은 어때요?”
“지친 걸 빼면 멀쩡합니다. 마린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납득하지 않을 겁니다.”
“얼버무려야죠.”
“쉽지 않을 겁니다.”
마르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조셉이야 마르할의 선택을 모두 이해한다. 하지만 마린은 아니다.
마린은 서부 출신이다. 그리고 마르할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마르할이 용서해도, 마린은 마르할에게 칼을 들이댄 마리나에게 적의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아마 괜찮아요.”
마린이 마르할 곁에 도착했다.
멈추지도 않은 말에서 뛰어내린 마린이 마르할에게 달려왔다.
“마르할 님. 몸은 괜찮으세요?”
“조금 쓰라린 걸 빼면 괜찮아요.”
“그런데 그년은….”
마린이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마리나를 노려봤다.
“서로 오해가 있어서요. 이제 풀었어요.”
“하지만….”
“눈 하나를 받았는데, 그래도 부족해요?”
마린이 큰 눈을 깜빡였다. 마리나의 비명에서 무언가 있었을 줄은 알았지만, 눈을 찔렀을 줄은 몰랐다.
“제가 그렇게 무른 사람으로 보였어요? 그러면 실망인데요.”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돌아가죠. 마린, 뒤에 타도 되죠?”
“네, 물론이죠!”
마린과 마르할을 태운 말이 마을을 향해 걸었다.
조셉은 옆에서 걷고 있다. 지쳤어도 그는 기사다. 말이 걷는 속도에 뒤처지진 않았다.
마르할은 마린에게 반쯤 몸을 기댔다. 마르할이 입은 화상은 상당히 심각하다.
도둑의 기술을 사용했고, 또 마리나가 실전 경험이 없는 마법사라 제압하는 건 쉬웠지만, 그녀가 싸움에 능숙했으면 위험한 건 마르할이었다.
마린은 뻣뻣하게 굳어 앞만 보고 있다.
“아.”
마린의 입이 열렸다. 마을에서 별빛이 태어났다. 수백 개의 풍등이 하늘로 올라갔다. 그 옆에는 풍선이 있다. 작은 초를 담은 풍선은 베스타롤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품이다.
마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마르할이 눈을 떴다. 올라가는 빛들을 보고 마르할이 말했다.
“마차, 버리지 않길 잘했죠?”
“그럼, 그 마차가?”
그녀가 마르할과 운반하던 마차. 마린이 버리자고 했을 때 마르할이 버리기는 아깝다고 했던 마차다.
“풍선은 어때요? 서부를 다 뒤지니, 딱 한 명 있더라고요. 출신으로 차별받기 싫어 전에는 숨겼던 모양이에요. 마린?”
마린은 말이 없었다. 그녀는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하늘로 올라가는 풍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등의 온기와 하늘을 수놓는 불빛.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조용한 황야.
다른 모든 것들은 그녀의 머리에서 날아갔다. 오감만이 또렷하게 살아나 그녀의 심장을 찌른다.
아마 이 순간을 죽어서도 잊지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