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17
제117화
마리나는 엘리제를 타고 움직였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감정에 따라 얼마든지 비효율적인, 비상식적인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이 몸에 영향을 주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마법사의, 마리나 실라나티엘의 감정은 다르다. 그녀의 감정은 그녀의 마법에 영향을 끼친다.
일상에서 그 정도로 격렬하게 감정이 흔들릴 일은 없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마리나가 눈을 감았다. 그녀는 고통을 참으며 내면으로 파고들었다.
말리바 리시. 죽이고 싶은 인간.
모든 일의 원흉이다. 당장 찾아가 불태워 죽이고 싶다. 하지만 그는 전 제국군 사령관이다. 아마 황제에게 직접 명령받고 있다.
죽이고 싶지만, 죽여선 안 된다.
그러나 기회가 온다면 죽이고 말리라.
그리고 마르할.
마르할을 생각하면 가슴 안쪽이 아파온다.
최대한 태연한 척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여러 감정이 둑 터진 강물처럼 밀려온다.
그녀는 마르할이 서부에 얼마나 큰 가치를 두고 있는지 보았다. 사람 한 명을 구하려고 목숨이 경각에 달할 때까지 자신을 희생하는 마르할과 함께했다.
마르할이 쌓은 것을 그녀의 손으로 없애려 했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마르할의 정보를 제국에 팔았다.
스스로를 부숴버리고 싶다.
마르할이 그녀의 눈을 찔렀다.
배신감이 든다.
‘왜 실망하고 있는 거지, 나.’
마르할이라면 이해해 주리라 멋대로 기대했다.
그 얄팍한 감정에 기대 그녀가 저지른 일들은 어떠한가.
배신감을 품는 것도 사치다.
마르할이 그녀를 죽이려 해도 마리나는 변명할 입이 없다.
그래도 배신감을 지울 수 없는 건, 그녀가 그만큼 마르할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듣고 싶은 말이 그거냐고요? 정확했어요.”
모르고 한 말일까? 당연히 알고 있겠지. 그것도 모를 사람이 아니다.
목숨조차 신념 아래에 두는 인간이, 그녀이기에 예외를 허락한다고 해주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일지라도, 마르할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거기에 그녀는 만족한다.
마리나는 뒤를 보았다.
하늘로 올라가는 수많은 불빛이 보인다.
베스타롤라의 축제였나. 아마 맞을 것이다.
달려오며 그녀를 노려보던 한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단순한 적의나 살의가 아니다. 그녀를 경쟁 상대로 보고 있는 눈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도 남 말 할 입장이 아니다.
‘내가 저지른 일부터 해결해야지.’
그녀가 보낸 편지 두 통의 답장이 오지 않았다.
특히 두 번째 편지의 답장은 다양한 형태로 올 수 있다.
형식은 단순하지만 내용은 단순하지 않은 편지가 될 수도 있고, 무장한 제국의 군대가 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그녀가 해결할 것이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게 그녀의 죄를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길이다.
‘그냥 모두 자기만족이지.’
이미 쏟아진 물을 주워 담으려는 부질없는 노력이다. 하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슬슬 날씨가 쌀쌀해지는 시기다. 하지만 마리나는 춥지 않았다.
* * *
거리마다 향초가 꽂혔다.
갈림길에서 다른 길로 갈 때마다 다른 향초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기름등 특유의 악취도 향초의 향에 가렸다.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고향의 술과 음식을 먹으며 떠들었다.
마르할은 여관 2층에서 전신에 붕대를 감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조금 서두를 걸 그랬군.”
피 묻은 천을 짜내며 스트레킬이 말했다.
지친 조셉은 마장을 지키러 갔다. 축제가 고조되고 사람이 늘어날수록 말을 훔치는 사람도 많아졌다.
카반도 비슷한 이유로 카리안의 창고를 지키러 갔다.
카리안의 창고는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가 있다고 이미 소문이 나긴 했지만, 어디 취객들이 그런 걸 알고 사고를 치던가.
마르할의 상처를 봐줄 사람은 밤늦게 돌아온 스트레킬뿐이었다.
“잘 해결됐으니 괜찮아요. 그보다 축제가 끝난 다음에 스트레킬의 도움이 필요할 거예요.”
“그 하일리라는 남자 말이군.”
흑단목, 그리고 이번 축제까지.
마르할은 하일리와 할 말이 많았다.
“화가 잔뜩 났을 거거든요. 반쯤은 그쪽이 먼저 시작한 일이니, 그쪽도 큰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겠지만요.”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다.
하일리가 먼저 무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을 때를 대비한 최소한의 억제력이 필요하다.
“상처는 어쩔 거지? 새벽부터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할 거다.”
마르할의 상처 대부분은 화상이다. 신경까지 건드리는 심각한 화상.
통증이 없어 보이는 건 열기에 신경이 익어서다. 죽을 신경이 모두 죽고 애매하게 살아남은 신경이 일하기 시작하면 말로 못 할 고통이 시작된다.
스트레킬도 화상으로 지독하게 고생한 경험이 있다. 머리는 피곤해 죽으려 하지만, 통증 때문에 잠들지도 못한다.
“이 정도 상처는 익숙해요.”
“기사도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을 화상인데?”
“살아만 있으면 율란이 고쳐주니까요. 저보다 급한 사람도 많았고요.”
“대체 서부는 어떤 마경이었던 거지?”
스트레킬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인외라 불리는 넷이 저것보다 더한 중상을 입다니. 그리고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가 익숙하다니.
마르할의 인생이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의 예상을 훨씬 웃돌고 있는 듯했다.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경악하는 스트레킬을 보며 마르할이 장난스레 말했다.
여관 창문 아래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저쪽 길에 임시로 마련한 투기장에는 두 명의 남자가 올라가 웃통을 벗고 주먹다짐을 벌인다.
문화 갈등이 원인 같지만, 막상 싸움판에 오르니 남자들만의 자존심만 남은 얼굴이다.
옆에서는 돈을 거는 도박판도 보인다.
다들 행복해 보이는 얼굴들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미래가 없기에 맹목적으로 현재를 추구하던 사람들이 잠시나마 과거로 돌아가 그 시절을 즐기고 있다.
스트레킬이 나가고 홀로 남은 방. 향초 냄새가 마르할이 있는 2층까지 올라왔다.
마르할은 거리의 경치를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바체아 제국 건국제의 한 장면 같다. 과거로 돌아간 사람들은 마르할에게도 잠깐이나마 과거를 돌려주었다.
어린 시절 잠시나마 친형과 즐겼던 축제의 추억을.
축제의 여파는 거대할 것이다. 또 바쁘게 뛰어다녀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조금 이 경치를 즐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
마르할의 안에서, 혹은 밖에서.
형용 불가능하고, 인지 불가능한 비가역적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다행히 마르할은 그걸 인지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거리 끄트머리에 한 남자가 달려가는 소녀의 입을 막고 골목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마르할이 팔을 뻗고 작게 말했다.
“죄인이 설 땅이 아니다.”
납치범이 소녀를 놓고 무릎 꿇었다. 그는 자기 행동을 이해 못 하는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근처에 있던 용감한 사람 몇이 납치범을 끌어냈고, 골목 안에서 납치범의 동료들이 나타났다.
마르할은 그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죄인은 서지 말라고 했다.”
납치범의 동료들도 납치범과 같이 땅에 무릎을 댔다.
주변 사람들은 저게 뭔가 하면서도 납치범들을 붙잡아 꽁꽁 묶었다.
마르할은 다시 창틀에 턱을 괴었다.
“두 시간만 더 빨리 생겼으면 좀 좋아.”
마르할이 사용한 건 오동나무 관의 힘도, 마르할이라는 인간의 힘도 아니다.
이 토지의 역사다.
인류가 탄생한 이후 무수한 지도자가 이 땅을 다스렸다.
그 역사, 지배의 역사가 마르할에게 이어졌다.
마르할은 이 토지 안에서라면, 오동나무 관과 비슷한 능력을 쓸 수 있다. 그 위력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지만, 같은 종류의 힘이라는 게 핵심이다.
‘힘을 다루는 연습이 필요 없지.’
오동나무 관의 능력과 사용법은 이미 몸과 머리에 새겨져 있다.
하나하나 절차를 밟아가며 신비를 제어하는 법을 배워야 했던 저번과는 다르다.
창밖을 보며 마르할이 손가락을 튕겼다.
바람이 한차례 거리를 쓸고 지나갔다.
* * *
마린은 카리안의 창고 위에 앉았다.
창고 주변은 조용했다. 가끔 창고 창문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인간이 보이긴 하지만, 저런 놈들도 못 잡을 카반이 아니다.
하늘을 보면 별빛 사이에 등불과 풍선의 빛이 희미하다.
마린은 한숨을 쉬었다.
‘결국, 또 아무것도 못 했어.’
그녀가 한 일은 조셉을 데려온 게 전부다. 그것도 마르할이 엘리제를 타고 달렸으면 더 빠르게 가능했을 일이다.
마차는 포기해야 했겠지만, 마차 따위보단 마을이 수백 배는 중요하다.
힘, 힘이 필요하다.
마르할에게 도움이 될 힘. 적어도 방해는 되지 않을 힘이.
개인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
홀로 군대와 대적하는 용사 일행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녀는 용사 일행이 아니다. 인외라 불리는 힘을 가지지도 못했다.
필요한 건 세력이다.
자신을 지키고 마르할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세력.
그 마법사 년 같은… 방해되는 것들을 모두 치워버릴 힘.
마르할의 도움을 빌려서는 안 된다.
자신은 나약하다. 문제가 생기면 모두 마르할에게 맡겨버리는 미래가 훤하다.
스스로 무언가를 일구어야 한다.
그런 결심을 굳히며 마린은 옆에 놔둔 고향의 음식을 우물거렸다.
* * *
축제가 끝났다.
조셉의 마장 근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카반이 경호를 서지 않았다면 조셉이 있었더라도 수십 마리는 말을 도둑맞았을 것이다.
조셉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방에서 동시에 말을 훔쳐 달아나는 사람을 잡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마르할은 마장에서 조금 떨어진 카리안의 창고에 있었다.
카리안의 창고는 조셉의 마장보다 붐볐다.
이동이 자유로운 일꾼들만 축제를 즐긴 게 아니다. 근처를 지나던 상인이나 시간이 남은 용병 등등 본업이 있는 사람들도 바체아 제국 건국제를 구경했고, 그들의 짐도 카리안의 창고에 들어가 있다.
카리안은 장부를 직접 작성하며 창고 물류를 조사하고 있었다.
장부를 보고 단순히 물건의 출납만을 보는 건 하수다. 창고 대여로 돈을 벌려면 저 물건들의 목적지와 용처까지 짐작해야 한다.
‘나는 이걸 왜 도둑한테 배웠을까.’
잘 알아야 잘 훔친다는 걸까. 마르할이 배운 장사 요령 대부분은 도둑에게서 나왔다. 도둑도 아마 유명한 상회 건물을 순회하며 훔친 비법일 것이다.
“잘 즐겼어요?”
“향락은 검을 무디게 한다.”
마르할 옆에 거지꼴로 앉아 있던 남자가 답했다.
저번에 한 번 봤던, 카리안을 호위하는 암살자다.
“바체아?”
남자의 눈매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 했던 거겠지만, 일대일 대화에서 마르할의 눈을 피하는 건 도둑도 못 한다.
“바체아 출신 중에서 살아남을 위치에 있을 인간이… 오동나무 뿌리? 유곽의 사산아?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았나요?”
“…너는 누구냐.”
남자의 망토가 작게 움직였다. 저 안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몇 개의 도구가 들어가 있을까.
성인 남성 하나를 눈 깜짝할 사이 영원히 입 다물게 할 수 있는 물건이리라.
“저기 주인이요. 그냥 친구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한번 보고 싶었어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사람마다 차이가 있죠. 어제 향초. 원래 물건과 거의 비슷했죠?”
“…그래.”
“유곽의 사산아.”
“…….”
남자가 마르할을 빤히 보았다. 그리고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직접 당해보니 카리안의 말이 이해되는군. 코가 삐뚤어지도록 향초 냄새를 맡는 암살자라면 우리 말고 달리 없긴 해.”
유곽의 사산아.
버려진 창녀의 아이들을 데려가 암살자로 키우는 암살자 집단이다.
바체아 제국 전역에 널리 분포했고, 실력과 규모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혔다.
향초 냄새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암살자라면 유곽의 사산아 소속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그쪽이면 안심할 수 있겠어요. 카리안을 잘 부탁해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마르할에게 남자가 물었다.
“내가 바체아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내 공국어 발음은 완벽하다.”
“향락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알아요?”
“모른다.”
손가락 움직임 하나에도 조심하는 암살자 교육을 받을 때도 단어의 어원을 따져가며 말하는 법을 배우지는 않는다.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의 근원을 모두 알고 있을지 의문이다.
“향락은 고대 제국어에서 쓰던 단어거든요. 시간이 지나 바체아 제국 귀족이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고, 거기서 다시 퍼지며 동서부 귀족이 쓰는 어휘가 되었다가, 시간이 지나 일반 언어로 정립되었어요. 발음의 근간은 서부에 가까워요. 그래서 알았죠.”
담담하게 설명을 끝낸 마르할이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남자가 중얼거렸다.
엘리제가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그 얼굴이 어째 입술을 쭉 내민 사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