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2
제12화
검은 안개 속에서 두 사람이 검을 들고 있다.
마르할은 이게 언제의 기억인지 바로 떠올렸다.
오랜만에 꾸는, 악몽이 아닌 과거의 꿈이다.
서부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마르할은 몇 번이나 용사에게 검술을 알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용사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휘두르면 된다니까?”
“그게 되면 이러고 있겠냐, 망할 인간아! 그러니까 다른 인간들도 학을 떼는 거 아냐!”
당시에는 여러모로 여유가 없었다.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고, 남은 건 악밖에 없었다.
매번 용사는 검을 휙휙 휘두르는 걸 검술이랍시고 가르쳤고, 마르할은 그게 뭐냐고 떽떽 소리쳤다.
그날도 같았다. 서부, 마족의 소굴에서 마르할은 아침부터 용사에게 검을 배웠고, 되도 않는 용사의 교습법에 소리 질렀다.
용사는 정말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가 안개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실전은 어때?”
안개 안쪽에서 수십 마리의 마족이 모습을 보였다. 전선에 나타나는 마족과는 격이 다른 놈들이다. 한 마리만 나타나도 성벽이 무너지는, 움직이는 재앙들.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나 죽이려는 거지? 그럴 거면 그때 줍지를 말든가!”
“음. 저건 너무 많지?”
용사가 검을 휘둘렀다. 힘을 담은 것도 아닌 가벼운 휘두름이었다. 안개가 갈라지며 마족들이 반으로 갈라졌다.
모든 마족이 갈라진 건 아니었다.
한 마리가 남았다. 놈은 마족들의 사체 사이에서 떨리는 눈으로 용사를 보았다.
“그럼 한 마리면 어때?”
뒤쪽에서 날아온 단검이 마지막 마족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걷는 법도 모르는 애한테 뭘 시키고 있어. 너는 그게 문제야. 살인을 가르치려면 사람 목 베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니까.”
“성인이, 둘 다 그 이상 개소리를 하면 오늘은 치료 없다고 전하래.”
정찰 갔던 도둑이 하품을 하며 건들건들 숲에서 나왔고,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자던 마법사와 땅에서 자던 성인도 몸을 일으켰다.
지옥 같던 서부에서 있었던,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 * *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벨라가 깨어났고, 마르할이 잠깐 선잠을 자고 눈을 뜨니 새벽이었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마르할이 스트레킬에게 말했다.
“스트레킬, 황녀에게 검술을 가르칠 수 있나요? 검술이 아니면 간단한 호신술이라도.”
“검술을?”
“유파의 수련법 말고요. 몸은 벌써 초인이니, 정말 간단한 기초면 돼요.”
“아니, 내 유파를 전수해 주지.”
놀란 건 듣고 있던 베이올라와 레벨라였다.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 익히고 있는 유파라면, 역사도 길지 않나요?”
“내가 고위 기사가 된 건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서지, 우리 유파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역사도 100년이 안 된다. 그냥 재능 있는 사람 하나가 운 좋게 확립해, 운 좋게 이어지던 흔하디흔한 방법이지.”
“아, 네….”
레벨라가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인간이 저런 말을 하니 아니꼽다. 아니꼬워서 꼬투리라도 잡고 싶은데, 전부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다.
스트레킬이 대단한 사람인가?
맞다.
그의 유파가 뛰어난가?
사실, 대부분 기사의 유파와 수련법은 ‘선대가 이런 방식으로 초인이 되었으니,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하면 초인이 될 수 있다’라는 식의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다.
그게 세대가 지나 조금씩 ‘쌓인 것’들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다듬어 나가면 명문 유파가 만들어진다.
그즈음 되면 유파의 주인은 귀족 부럽지 않은 세력을 지닌 명사가 되든가 세습 귀족으로 영토까지 받은 후다.
스트레킬이 세운 업적은 분명 대단했지만, 딱히 특별한 출신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스트레킬이라는 인간이 특별한 건, 진짜 인간 자체가 잘나서다.
‘출신이라면 오히려…….’
마르할. 용사의 지인.
정황을 보면 용사만이 아니라 용사 일행 전원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두 개 언어에 매우 능숙하다.
바체아 제국이 고대 제국어에 집착했던 것처럼, 므에트 제국도 언어의 가공에 꽤 공을 들이고 있다.
고대 제국어를 복원하지는 못하니,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언어로 역사와 문화를 쌓아가겠다는 의도였다.
그런 이유로, 황궁 내부 사람들이 사용하는 발음은 제법 이질적이다. 그녀와 베이올라의 발음은 황궁 관계자가 아니라면 같은 제국 사람도 잘못 알아듣는 일이 잦다.
제국어가 익숙해 보이는 스트레킬도 그녀와 베이올라의 말을 가끔 못 알아듣겠다는 듯 미간을 좁힌다.
하지만 마르할은 단 한 번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언어에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게 가능한가?
짝!
마르할의 박수에 레벨라의 상념도 깨졌다.
“걸으면서 하는 훈련 있어요?”
“기사의 종자에게는 숨 쉬는 것조차 수련이다.”
“그럼 수련은 가면서 하죠. 땅을 얻으려면 바삐 움직여야 하거든요.”
“일어나라, 황녀. 수련 시작이다. 남들 앞에서도 황녀라 부를 수는 없으니, 이제 이름으로 불러야겠군. 그 표정은 뭐지? 차라리 수련생이나 종자가 좋나?”
“그건 절대 안 됩니다!”
레벨라가 소리를 빽 질렀다.
경험은 없지만 지식은 많은 레벨라는 황궁 기사들의 각종 음담패설도 들으며 컸다.
중년 기사가 수련의 흔적도 안 보이는 젊은 여자를 종자로 데리고 다니면, 사람들은 애첩으로밖에 안 본다.
“그… 그런 거였어?”
“다른 사람이 어떤 관계냐고 물으면, 돈을 주고 고용했다고 하세요. 귀족 여식이 호신술을 배우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다. 그래도 안 믿으면 장갑을 던지시면 됩니다. 종자가 친 사고의 책임은 기사가 지게 되어 있으니, 명예를 아는 기사라면 그냥 넘어가지 않겠죠.”
레벨라가 눈을 치뜨고 스트레킬을 노려봤다.
노련한 기사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장난이 실패했음을 아쉬워했다. 스트레킬은 마르할을 재촉했다.
“어서 가지. 움직이지 않으면 수련도 시작할 수 없으니까.”
* * *
마르할은 동쪽을 향해 걸었다. 그러는 도중에도 스트레킬의 수련은 이어졌다.
수련의 시작은 그가 배운 유파의 역사를 듣는 것이었다.
“눈이 안 좋으면 눈을 먹는다. 간이 안 좋으면 간을 먹는다. 흔하디흔한 민간신앙이지. 내가 배운 수련법도 이러한 신앙에서 시작했다.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역사는 힘을 가진다.
수천 마리 동물을 먹고 그들의 힘을 얻고자 하면 정말 힘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사람을 초인으로 만들어줄 정도였다면 세상에는 초인 아닌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먹으면서 크고, 죽기 전까지도 먹고 죽는다. 다친 놈들한테 물어보면, 반쯤은 아픈 것보다 배고픈 게 서럽다고 말한다. 죽기 직전인 놈들에게 물어보면 열에 셋은 음식과 관련된 대답을 했다. 뭐를 먹고 싶었다느니, 무슨 식사가 기억에 남는다느니 하는 것들이었지. 생물은 그렇게도 먹을 것에 집착한다. 하지만 정작 먹어서 힘을 얻은 놈은 없다. 이게 말하는 게 뭐지?”
“그 수련법을 만든 사람이 천재였다?”
먹는다는 행위 자체는 어떤 역사도 쌓지 못한다. 그걸 쌓고 쌓아 초인이 되었다면, 분명 천재라 불려 마땅한 인간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 먹는다는 행위를 수련으로 승화한 건 천재만이 남길 수 있는 업적이다. 문제는, 그 천재가 남을 가르치는 일에는 소질이 없었고, 또 더럽게 고집이 셌다는 것이다. 자기가 무조건 맞으며, 자기가 맞다는 걸 증명하려 들었지. 천재가 자신이 운 좋게 성공한 방법을 진리라고 믿어버린 결과, 광인이 탄생했다.”
광인은 아이들을 납치해 산속에 가둬두고 몸에 좋다는 건 뭐든지 먹였다.
밤에도 볼 수 있는 눈을 위해 눈알을, 빠른 다리를 위해 준족을 가진 동물의 다리를, 뛰어난 머리를 위해… 사람의 머리를.
“웁…!”
베이올라가 헛구역질했다. 레벨라도 표정이 안 좋긴 마찬가지였다.
“진짜 먹었습니까?”
“내 전전대 인물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내가 종자이던 시절에 들었지.”
“즉…?”
“내가 따랐던 기사 본인의 이야기겠지. 나한테 괴식을 먹일 때의 눈은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괴식…!”
“천재의 광기는 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드는 법이지. 수십 명의 아이가 산에 갇혀 몇 년간 먹고 수련하길 반복했고, 그렇게 몇 명이 초인이 되었다. 그리고 스승이자 자신들을 가둔 광인을 죽이고 산에서 탈출했지. 그게 약 50년 전, 우리 유파의 시작이라면 시작이다. 그리고 이게 내가 쌓은 가장 기본적인 역사다. 피를 보지 못한다고? 걱정 마라. 앞으론 살아 있는 쥐를 씹어먹게 될 테니까.”
“그냥 검만 배우면 안 될까…요?”
베이올라는 창백해진 얼굴로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그녀가 살면서 쥐를 처음 본 건 서부 개척촌의 침대에서였다. 잠결에 눈을 뜨니 황궁 정원에서 보던 다람쥐와도 비슷한 작은 동물이 등을 보이고 있었다.
찍찍? 소리와 함께 쥐가 등을 돌렸고, 그녀는 쥐의 입과 손에 묻어 있는 붉은 피와 작은 손에 들린 내장인지 고기인지 모를 붉은 걸 보고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절했다.
그녀 개인의 감상으로는, 어제 봤던 마족보다 그날 새벽에 봤던 쥐 한 마리가 열 배는 더 무서웠다.
그런데 살아 있는 쥐를 씹어먹어야 한다니!
“그렇게 말하는데?
베이올라를 가르치라고 한 사람은 마르할이다. 베이올라가 배우지 않겠다고 하면, 그에 대한 의견도 마르할에게 물어야 한다.
어느새 검술이 아니라 스트레킬의 모든 걸 전수받는 걸로 바뀌긴 했지만, 아무튼.
“본인이 싫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역사는 쌓이는 거라면서요. 지금이라면 고위 기사인 당신의 역사까지 그 수련법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 아닌가요?”
“맞다. 내 인생은 제법 불행하고 파란만장한 편이다. 많이 죽였고, 많이 먹었고, 많이 겪었지. 나를 스승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것들을 고스란히 이어받는다는 뜻이다. 너도 배울 생각 없나?”
“전 이미 잡다하게 익히고 있는 게 많아서요. 제대로 배우지도 못할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군.”
성인에게서 기적을, 마법사에게서 마법을, 도둑과 용사에게서도 무언가 하나씩 이어받았다고 하면, 그건 한 사람이 담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한 역사다.
그들의 기술과 그들이 쌓은 역사와 비교하면 스트레킬이 가진 건 정말로 사소하다.
언제 초인이 될지 모르는 기사 수련을 시작할 바에야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갈고닦는 편이 이득일 것이다.
“내 수련법은 특히 피를 많이 보게 되어 있다. 뭐든지 먹는 것이 수련이니, 피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다. 내 유파가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건 아니지만, 피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데에는 세계 최고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베이올라의 동공이 흔들렸다.
피 공포증은 그녀의 가장 큰 약점이다.
므에트 제국 황제는 무능해도 되고, 멍청해도 된다. 하지만 피를 보지 못해선 안 된다.
선황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1세는 정복 전쟁으로 제국을 이룩했고,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는 그런 선황의 유지를 이어 황제가 된 이후 자신의 이름까지 바꾸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문명을 가진 므에트 제국이지만, 주변 국가에게 야만국이라 불리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피를 보지 못하는 황족은 황제가 될 수 없다.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가 알면 그녀를 족보에서 지워 버려도 이상하지 않다.
“정말로? 정말로 고칠 수 있어?”
“이 미친 수련법을 만든 천재와 내 스승의, 그리고 내가 쌓은 역사가 헛짓이 아니었다면, 차도는 있겠지.”
“좋아. 배울게.”
“이제부터 나를 선생이라 불러라.”
“…이게 미쳤나?”
“나는 기사다. 갑옷을 벗고 평범한 옷을 입는다고, 내가 평범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나?”
스트레킬은 풍채가 좋고, 기사답게 육체도 단련되어 있다. 키도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고, 목과 얼굴에는 몇 개나 되는 흉터도 있다.
그리고 목숨의 위기를 수없이 넘긴 사람들만이 풍기는 특유의 위압감을 풍기고 있다.
그가 평민처럼 입는다 해서 그를 평민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호위가 말했듯, 기사가 젊은 여자를 거느리면 사람들은 첩으로밖에 안 본다. 하지만 부르는 호칭이 선생이면, 돈을 주고 기술을 배우는 부잣집 딸인 줄 알지. 첩이 될 테냐, 부잣집 딸이 될 테냐.”
“스으어언새앤님. 즈알 부탁드리입니드아.”
베이올라가 이를 갈았다. 자존심을 내려놨다곤 해도, 평생 쌓은 자존심이 한순간에 짜잔! 하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름 높은 학자도 아니고 공국의 기사, 그것도 저런 인간을 선생이라고 부르려니 이가 갈리고 손이 떨렸다.
“그래, 잘 부탁한다. 베이.”
“베이?”
“생각해 보니 베이올라라는 이름은 위험해 보여서 말이지. 다른 황족의 수족이 서부로 온다며? 그때 이름으로 불렀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선생님, 제자로서 선생님의 수준을 알고 싶습니다. 한 대 때려도 될까요?”
“나도 제자의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 전력으로 대응할 거다. 괜찮나?”
“칼싸움이 아니라 말싸움을 배웠나….”
“나는 공국에서 정치적 입지도 제법 있다. 초보적인 말싸움에 당해줄 것 같나.”
“으윽…!”
분을 참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베이올라 옆에서 스트레킬이 실실 웃었다.
레벨라는 그런 둘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의외로 두 분이 죽이 잘 맞는군요.”
“신분을 빼고 보면 사람은 의외로 다 거기서 거깁니다. 성황국의 성인과 제국 길거리의 도둑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처럼요.”
“당신의 예시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예외 아닙니까.”
“그 예외라도 있다는 게 중요하죠. 불가능은 아니라는 거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죠?”
“저기로요.”
마르할의 손가락 끝에는 깃발과 그 깃발을 지키고 있는 깃발 주인이 있었다.
그리고 깃발 주위로 다가가는 십여 명의 사람들도.
멀리서 봐도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위험해 보이는군요.”
“하이에나가 벌써 여기까지 왔나.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려고 참가한 하이에나보다는 돈 주고 깃발 산 사람이 더 대화가 잘 통하겠죠. 말이라도 훔쳐 올 걸 그랬나요.”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베이, 보고 있어라. 이게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베이라고 부르지….”
스트레킬이 바람처럼 달렸다. 그 속도는 말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아 보였다.
“…말라니까.”
스트레킬이 사라진 자리에 베이올라가 꺼낸 말만이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