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20
제120화
마르할이 떠나고, 알로트가 하일리의 방에 들어왔다.
하일리는 그사이 술병을 까고 있었다.
알로트가 아프란체어로 말했다.
“형님, 꼭 그것까지 말해야 했습니까?”
“뭐? 내가 아프란체 왕족이라는 거?”
“아무리 까네라지만, 형님의 치명적인 약점을 직접 쥐여주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이 까다로운 건 케레이가 어떤 수작을 부렸을지 모른다는 점에 있다.
그를 죽이는 것만이라면 하일리의 부하들로 충분하다.
하지만 케레이가 자기가 죽었을 때를 대비해 수작을 부려뒀다면, 하일리는 막을 방법이 없다.
마르할은 잡음 없이 일을 처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 하지만 마르할을 고용하려고 하일리가 왕족이라는 걸 알려주는 건, 고양이 하나 잡자고 호랑이를 끌어들이는 꼴이다.
케레이 드뇌브?
전직 귀족이며 외교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아프란체 왕족의 예법을 알고 하일리의 정체를 추론할 정도라면 보통 인물은 아니다.
그는 특출 난 사람이다. 하지만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마르할은, 그와 한 번이라도 대화를 나눈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는 특별한 사람이다.
알로트는 마르할의 ‘그것’을 경험했다.
고향, 직업, 생애.
자신의 모든 게 까발려지는 기분이었다.
하일리와 가까운 곳에서 일하며 알로트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안에는 신비를 품은 용병, 한때 거상이라 불렸던 상인, 마족 침공 이전에 왕이라 불렸던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마르할 같은 사람은 없었다.
“마르할은 케레이 드뇌브 따위보다 수백 배는 위험한 사람입니다.”
하일리의 비밀을 쥔 케레이 드뇌브가 하일리의 세력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면, 마르할은 무슨 짓을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앞일을 예상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앞일을 모른다는 미지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하일리가 빈 잔에 술을 따르며 알로트의 걱정에 답했다.
“그렇지. 위험하긴 해. 그런데 그거 알아? 까네가 날 담그려고 했으면, 애초에 난 지주도 되지 못했어.”
“아무리 그가 이간질에 능하다 한들, 형님이 말입니까?”
하일리는 대지주로 땅을 운영하며 이미 능력을 증명하고 있다.
대지주는 아니었어도, 어디서든 지주 자리는 쉽게 따낼 능력이다.
하일리는 고개를 숙이고 키득였다. 호흡을 따라 그의 어깨와 등이 흔들렸다.
“이간질? 그런 건 필요도 없어. 까네가 명령만 내리면 여기 있는 사람 싹 다 뒤지는 거야.”
“그 소문이 사실이었습니까?”
대지주 아래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소문이 있다.
본인의 무력도 대단하지 않고, 따로 무려 집단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마르할이 여태 지주로 있는 건 그의 숨겨진 전력 덕분이다.
마르할이 숨기고 있는 병사가 모이면 제국 기사단도 상대할 수 있다.
대강 그런 내용의 소문이다.
이유 없는 소문은 아니다.
뤼겐은 제국 출신 기사들을 다수 휘하에 두고 있으며, 아젠만의 행적은 누구도 모른다.
다른 대지주들도 각자의 방법으로 신분을 숨기거나 몸을 지킬 방법을 마련해두고 있다.
이 넓은 서부 황야를 단신으로 돌아다니는 대지주는 마르할이 유일하다.
지주의 신분이 보호된다지만, 지주 회합에 참가하는 대지주들은 서로 얼굴을 안다.
누구 한 명이 작정하고 마르할을 노리면 마르할은 피할 곳 없는 황야에서 수백 명의 용병 내지 강도를 만나게 된다.
그런 제정신으로는 보이지 않는 마르할의 행보를 두고 나온 소문이다.
“소문? 그것도 잘못된 거라고는 못하지.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어.”
첫 번째 토지 경주가 막 끝난 서부는 현재의 서부와는 비교가 안 되는 난장판이었다.
토지 경주라는, 깃발을 꽂는 것만으로 땅을 얻을 수 있는 인류사에 전례 없는 시합, 그리고 그 결과로 생겨난 지주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지주가 태반이었고, 지주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땅문서를 노리고 얼굴이 알려진 지주를 습격했다.
하일리는 경주에 참가하지 않고, 토지 경주 시작부터 일어난 그 모든 소란을 지켜보았다.
마르할은 당시에도 겉으로 눈에 띄는 인간은 아니었다.
하일리도 마르할이라는 인간이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그는 마르할의 얼굴은 기억한다. 마르할과 함께 있던 한 여자를, 그 여자의 어깨에 달려 있던 휘장을 기억한다.
녹슨 휘장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는 휘장.
마르할이 그런 실수를 할 리 없다. 아마 여자의 실수겠지. 그냥 달고 다녀도 알아볼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확실히, 그건 그런 물건이다.
하일리가 술병을 기울였다. 술 몇 방울이 책상에 떨어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방울진 술을 찍어 하나의 문양을 그렸다.
해골이 있고, 벌어진 해골의 입 안에 한 송이 꽃이 있다.
우락부락한 하일리가 그렸다고는 믿기 어려운 섬세한 문양이었다.
“이게 뭡니까, 형님?”
“봐서도 안 되고, 볼 일도 없겠지만, 만약 살아서 이 문양을 볼 일이 있다면, 도망쳐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세상 누구도 잡을 수 없는 곳으로. 황야로 달려 세상 끝까지 가버리는 게 제일 좋겠어.”
“대체 이게 뭐길래 그러십니까?”
“사신, 죽음의 신이라 불렸던 인간의 문양이다.”
“사신?”
“있어. 그런 사람이.”
굳이 입에 꺼내고 싶은 주제는 아니다. 하일리는 무거운 분위기를 털어 버리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똑똑. 하일리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밖에서 부하 하나가 말했다.
-형님을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
-그, 마르할 님과 같이 왔던 아가씨입니다.
하일리가 눈썹을 좁혔다.
베이라고 했던가.
마르할 주변에 있는 사람의 이름은 그도 기억하고 있다.
제국 귀족 출신인 건 확실하고, 신체 능력은 초인이다. 그 이상의 정보는 없다.
그런 여자가 자신을 만나러 왔다.
‘재미있어.’
제국 귀족이 그에게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마르할이 데리고 다니는 여자라면 무언가 다를까.
“불러와!”
하일리가 흥겹게 소리쳤다.
* * *
“괜한 짓을 하지는 않을까 모르겠군.”
스트레킬이 말했다.
스트레킬과 마르할은 말을 타고 하일리의 저택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들 곁에는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베이올라는 하일리와 할 말이 있다며 저택으로 돌아갔다.
“베이도 슬슬 움직여야죠. 레벨라가 없다고 언제까지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의욕에 넘쳐 처음으로 벌인 일은 대개 사고로 이어지지.”
“부정은 못 하겠네요.”
마르할 본인도 그랬고, 다른 사람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도 많이 봐왔다.
그리고 첫 거래 상대가 하일리라는 것도 걱정이다. 하일리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내 모자란 제자한테 내세울 거라곤 자기 이름뿐이지. 서부 출신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군. 네가 있으니 죽이진 않을 거라는 게 위안인가.”
“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죠.”
베이올라 므에실리고.
그게 베이올라가 가진 전부다.
베이올라가 하일리와 개인적인 대화를 한다면, 그녀가 꺼낼 수 있는 건 그녀의 이름밖에 없다.
황권 계승 후보로서 자신의 이름을 판다.
다른 황족들은 어려서부터 해왔을 행위지만, 베이올라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동이다.
므에트 제국 황족의 이름을 들은 하일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마르할도 모른다.
“사고를 치진 않을까 모르겠군.”
“걱정을 많이 하네요?”
“나도 내가 이런 사람인지 몰랐다. 뭐, 순수한 걱정도 있고. 황족의 이름이 걸린 사고가 터지면, 이쪽도 편치는 않을 테니까.”
스트레킬도 자신이 이런 걱정을 할 줄 몰랐다.
스트레킬은 평범하게 결혼했으면, 마린이나 베이올라와 비슷한 나이의 딸이 있을 나이다. 늦게 제자를 들이고 부성애에 눈뜬 건지도 모른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죠.”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대비하겠지만, 예측 불가능한 일을 두고 걱정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또 없다.
* * *
베이올라는 하일리와 대면했다.
마르할과 스트레킬의 인상이 워낙 강렬해 가려져 있지만, 베이올라가 내뿜는 분위기도 평범하지는 않다.
‘이건 꽤.’
하일리가 감탄했다. 무표정하게 그의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베이올라의 모습에선 귀족의 기품과 위엄이 있었다.
귀족이라는 건 알았지만, 평범한 귀족이 아니다. 가문이 별 볼 일 없더라도, 본인이 거물이다.
미리 각오를 하고 있었기에, 하일리는 베이올라가 자기 이름을 말했을 때도 동요하지 않았다.
“베이올라 므에실리고. 소개는 이거면 되겠지?”
“황권 다툼인가. 하지만 황족이 직접 왔다는 소식은 처음 듣는군. 황제의 선언과 동시에 서부로 왔나.”
“대지주란 사람들은 모두 그래? 조금 기죽는데.”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의 파격 발언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안다.
하지만 황제의 발언과 그녀가 서부에서 발견된 시간을 계산해 베이올라가 언제 제국에서 출발했는지 바로 유추해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몇몇 무식한 놈들을 빼면 그렇지. 제국의 황녀께서, 서부의 평민에게 무슨 볼일이지?”
“지금은 소문만 파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형제들이 본격적으로 서부에 세력을 만들 거야.”
“성가신 일이지.”
연합을 만들고도 만족하지 못한 권력자들의 서부 견제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마적의 출몰이 늘었다. 기적을 사용하는 악마와 같은 마적이 악명을 떨치고 있다던가.
아마 성황국의 수작이다.
식량 수입 제한은 토지 경주가 시작될 무렵부터 있었던 일이고, 그것 말고도 성가신 일들이 많다.
‘거기에 황족들의 본격적인 참전이라.’
황족이 움직이면 황족 본인만 움직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황족을 지지하는 세력, 그들이 가진 기사와 군대, 그리고 자금.
제국과 성황국은 마족과의 전쟁에서 전력을 전혀 잃지 않았다. 그들의 힘은 건재하다.
힘을 가진 황족이 서부에 손을 내민다.
하일리에게는 썩 불편한 상황이다.
그가 술병을 옆으로 밀었다.
“베이올라 므에실리고. 들은 적 없는 이름이야. 따로 세력도 없어 보이고. 네가 나에게 뭘 줄 수 있지?”
“황족의 이름.”
“이런, 갑자기 청혼하면 난감해.”
“네 말대로 난 세력도 없는 황족이야. 하지만 황족이지.”
베이올라는 하일리의 농담을 완전히 무시했다.
쯧. 재미없기는. 하일리는 혀를 차고는 다시 진지해졌다.
“이름이라… 꽤 큰 걸 걸었군.”
진짜 황족이 서부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 하일리는 그들에게 손대기 힘들다.
서부는 동부의 권력이 통하는 장소가 아니다. 작위를 가진 귀족들도 말실수 한 번에 뒷골목 시체로 발견되는 게 서부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권력이 약해서다.
황족, 그것도 황위 계승권을 가진 황족쯤 되면 무형의 권력이 유형의 힘을 가지기 시작한다. 황족이라는 이름 아래 들어가려는 자들이 멋대로 일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름뿐이라지만, 같은 황족의 이름이 있으면 황족을 건드렸을 때의 저항이 훨씬 줄어든다. 황권 다툼이라는 명분도 챙길 수 있다.
“너는 나한테 이름을 빌려주고, 그럼 너는 뭘 원하지?”
“없어.”
“없다고?”
하일리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는 표정 관리가 안 될 정도로 놀랐다. 그리고 이어진 베이올라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도 제국이 마음에 안 들 거 아냐. 나한테는 그거면 돼.”
“내가 다른 황족의 일에 훼방을 놓는 것만으로 네 목적은 이루어진다는 거군. 내가 네 이름을 악용하면 어쩔 작정이지?”
“우리 아는 사이였나?”
처음부터 모르는 사이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라는 소리다.
다른 황족이 자기 이름을 사칭한 사람을 발견했다면, 자신의,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사칭범을 잡아 처벌해야 한다.
가진 건 이름뿐인, 잃을 게 없는 저 황녀는 다르다.
황족이라는 이름도 결국 차기 황권을 위한 도구. 더럽혀진다 해도 마지막에 황제에게 선택되기만 하면 된다.
역사는 승자가 쓰는 것. 황제가 되면 불명예의 역사는 승리를 위해 오욕을 감수하는 용기 있는 결단으로 둔갑한다.
하일리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좋군. 왜 너 같은 황족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모르겠어. 그 거래, 받아들이겠다. 덤으로 필요한 건 없나? 유물의 정보라면 우리도 몇 개 가지고 있다.”
“고맙게 받을게.”
베이올라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하일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베이올라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알로트가 깜짝 놀랐다.
집주인이 손수 문을 열어주는 건 상전에게나 하는 행동이다. 자존심을 목숨처럼 여기는 하일리가 할 행동이 아니었다.
그 후에 하일리의 입에서 나온 명령에 알로트는 입을 떡 벌렸다.
“알로트. 특급으로 분류해두고 있는 유물 정보 있지? 다 가져와서 이 아가씨한테 넘겨줘라.”
“진짜로요?”
“내가 언제 농담하던?”
“농담은 매일 하시는데.”
“손님 가시기 전에 가져와라.”
“알겠습니다.”
얼마 후, 특급 정보를 옆구리에 매단 말 한 마리가 목초지를 달렸다.
“형님, 정말 괜찮은 겁니까? 10년을 모은 정보입니다.”
“10년이나 지났는데 손도 못 대고 있는 것들이라면 내가 주인이 아닌 거겠지.”
“대체 무슨 대화를 하신 겁니까? 혹시 첫눈에 반하셨다거나?”
“들어보면 너도 이해할 거야. 각 지역 관리하는 애들 모아. 중대 공지가 있다.”
“알겠습니다.”
십여 마리의 말들이 사방으로 달려 나갔다.
* * *
마르할과 합류한 베이올라는 하일리와 한 거래 내용을 그대로 말했다.
그녀에게 해를 입히려면 필연적으로 마르할과 엮이게 된다. 그러니 숨길 수는 없다.
베이올라의 말을 모두 들은 마르할이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어… 나, 혹시 실수했나? 지금이라도 가서 없던 일로 할까?”
베이올라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