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21
제121화
제도를 떠나 공국에 도착한 도둑은 바로 공국의 왕성으로 향했다.
그의 앞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온갖 마법과 신비로 도배된 황궁조차 드나드는 도둑이다. 공국의 방비로는 그의 걸음을 막을 수 없다.
도둑은 왕궁의 성벽 근처를 거닐었다.
“이쯤인가?”
그가 발로 땅을 툭 치자 숨겨져 있던 문이 열렸다. 커다란 소리가 났는데도 도둑이 있는 방향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도둑이 있는 장소는 인적 드문 한지가 아니라 사람이 지나는 길목이었다.
몇 발짝 떨어진 장소에 왕궁을 순찰하는 병사와 수련 중인 기사의 종자, 왕성에서 일하는 시녀가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도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너무 편해서 불만이라고 하면 배부른 소리인가.”
언제부턴가 도둑은 사람들이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왕을 죽인 후 그 힘은 도둑의 주변에 있는 물건들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도둑이 하고자 하면, 대낮의 거리에서 사람을 죽여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도둑질과 암살에 있어 궁극의 경지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신비다.
하지만 도둑은 자신의 신비가 조금 불만이었다. 철옹성의 빈틈을 찾아 찌르는 재미가 사라졌다고 할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려나.’
마르는 세상이 변했다고 말했다. 도둑도 이제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
제국에서 공국까지 오며 기괴한 광경을 열 번은 보았다.
10년도 살지 않았는데 영물이 된 고양이, 종자가 되고 1년 만에 초인의 길에 발을 들인 둔재, 비정상적으로 자라는 식물.
심지어 공국에는 용사의, 그 괴물의 영역에 발을 들인 기사까지 있다는 소문이다.
세상 전체가 진화했다. 모두가 더 높은 경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몇십 년 후면, 그의 은신을 꿰뚫어 보는 누군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근데 그걸 언제 기다리냐.’
기분이 팍 식었다. 위험을 즐기는 도둑에게 위험 없는 삶은 지루하기만 했다.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지루하게 살라니, 차라리 콱 혀를 깨물고 말지.
남들 앞에선 할 수 없는 불평을 중얼거리며 도둑이 지하 통로로 들어갔다.
통로는 왕궁 지하로 이어졌다.
빛 한 점 없는 어둠도, 빙빙 꼬아진 외길도 도둑의 감각을 속이진 못했다.
도둑이 통로 끝에 도착했다.
빛 한 점 없는 암실이었다. 문도 없이 뚫려 있는 암실 중앙에 남자 한 명이 있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도둑이 구상했던 이상적인 체격을 가진 남자다.
남자 주변에는 수십 개나 되는 시체가 굴러다녔다. 손목과 발목 등에 있는 흉터로 봐선 사형수다. 죽고 한참이 지났는지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모두 말랐다.
도둑은 남자의 얼굴과 몸을 빤히 보았다.
기시감이 든다.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력에는 자신 있는 도둑에게는 드문 일이다.
도둑은 가만히 남자가 움직이길 기다렸다.
남자가 일어났다. 그리고 양손을 펼치고 요상한 체조를 시작했다.
도둑은 그제야 남자를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했다.
“그때의 꼬마 중 한 명인가.”
서부에서 있었던 일이다. 더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한 깊은 지역에서 피난민 무리를 만났다.
오지랖 넓은 바스타와 율란의 강한 주장으로 며칠 그들과 함께했다.
도둑도 거기 있던 꼬마들에게 먹고사는 기술 몇 개를 가르쳤다.
저건 그때 도둑이 가르친 기술 중 하나다.
‘거참, 굶지 말라고 가르쳤지, 피를 먹으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호신술도 가볍게 가르치긴 했다. 하지만 절대 사람을 학살하는 수준의 기술은 가르치지 않았다.
도둑도 자기가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안다. 자신 같은 인간이 더 생겨서 세상에 좋을 게 없다는 것도.
시체에 남아 있는 살인 기술들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꼬마가 자기 의지로 쌓은 역사다.
그러다 우연히 공국의 눈에 들어 천하의 도둑에게서 역사를 훔친다는 발칙한 짓을 꾸미고 있는 거겠지.
‘죽일까?’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직접 보니 기분이 나빠진다. 감히 누구 걸 훔치려 들어?
물리적으로 인간을 벗어난 것들이 우글거리는 므에트 제국이라면 조금 껄끄럽지만, 고작 공국에서 사람 하나 죽이고 빠져나가는 건 일도 아니다.
‘아니. 그만둘까.’
실전 없이 만들어진 인간의 한계야 뻔하다.
반푼이도 못 되는 살인마 하나가 어디로 향할까.
제국이나 성황국은 아니다. 공국 윗대가리가 미치지 않고서야 먼저 그쪽에 손대지 않는다.
남은 장소는 하나다.
서부.
무법자의 땅.
‘기술 자체의 완성도는 괜찮고, 은신도 제법.’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다.
자신의 역사를 훔치려는 발칙한 녀석을 놔두고, 도둑은 공국 왕성을 빠져나갔다.
다음 목적지는 서부. 훌쩍 커버린 꼬마를 만날 시간이다.
* * *
베이올라의 설명을 들은 스트레킬은 마르할의 눈치를 보았다. 마르할 앞에서는 베이올라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스트레킬도 정치를 못하는 건 아니다. 공국 귀족들, 그리고 왕궁에서 일하는 고위 관료에게 밀리지 않을 수완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르할에게 비교할 바는 아니다. 비교할 사람이 따로 있지.
스트레킬이 보기에 베이올라의 거래는 문제 될 소지가 없다.
베이올라의 이름이 가지는 가치는 현시점에서 없다고 볼 수 있다.
베이올라 본인이 가진 고대 제국어 능력은 황권 다툼의 판세를 바꿀 수 있지만, 그건 베이올라 개인의 힘이지 베이올라 므에실리고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다.
베이올라의 이름을 파는 건 동급인 권력에게, 황족에게 한 번 개길 기회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 말고 베이올라의 이름은 쓸데가 없다.
황족의 이름으로 사기 같은 걸 칠 수 있지 않으냐…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스트레킬이 알기로 베이올라는 자신을 상징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보증과 신용 없이 이름만 내세우는 사기에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장사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마르할의 침묵이 길어지자 베이올라가 불안한 눈으로 마르할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만큼 큰 잘못이야?”
“아, 아뇨. 베이가 한 말 자체는 아마 괜찮아요. 고작 이름을 사칭한다고 베이에게 손해가 생기진 않으니까요.”
“맞는 말이라도 우울하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일리니까요. 누가 그걸로 시비를 걸면, 휴고나 제 이름으로 인증하면 그만이에요. 다만….”
“다만, 뭐?”
“아뇨. 그냥 지켜보죠. 다른 황족의 세력과 하일리가 직접 싸우려면 아직 시간이 많을 테니까요.”
하일리가 단순히 베이올라의 이름을 팔아 황족을 방해하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슷하게 베이올라의 이름으로 사기를 치려고 해도 괜찮다.
마르할이 판단하기에 그쪽은 아예 배제해도 된다. 서부 출신이 핵심이 되는 하일리의 세력에서 므에트 제국 황족의 이름으로 사업을 하는 건 득보다 실이 많다.
마르할이 진짜 걱정하는 건 하일리라는 남자의 임기응변이다.
‘예를 들어, 베이올라 아래로 들어오려고 한다거나.’
베이올라는 황권 다툼이 끝나면 제국으로 돌아갈 사람이다. 혹은 그 과정에서 서부의 땅에 묻히거나.
황족의 이름을 이용하는 걸 넘어 황족의 그늘을 이용하려고 하면, 이쪽도 난감하다.
베이올라를 도와 얻을 게 하나도 없는 대지주가 그녀를 떠받들고 지원하면, 베이올라 본인이 부정해도 근처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 먼저 돌아가요. 저는 다른 일이 생겨서, 잠시 경계에 다녀올 테니까요.”
마르할이 말 머리를 돌렸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걱정해봐야 늘어나는 건 고민뿐이다. 지금 그에게는 더 급한 일이 있다.
* * *
바체아 제국 건국제가 끝나고, 마을에 몰린 인원 대부분은 서쪽으로 향했다.
마린의 땅과 카반의 도시, 그리고 그 주변의 마을을 만들 인력이다.
수십 대의 짐마차가 건축 재료를 가득 담고 폐허가 된 도시에 도착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린 옆에 있던 휴고가 물었다.
도시 재건은 대공사다. 도시와 카반 개인에게 들어간 투자도 상당하다.
일개 기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휴고는 다른 일을 미루고 여기까지 따라왔다.
그러나 그가 카반을 돕기 위해 온 건 아니다. 마르할은 휴고에게 카반보다는 마린을 우선하라고 명령했고, 휴고도 그럴 생각이었다.
“공사 진행은 헬라 할머니가 도맡아 하시기로 했어요. 저는 잡일을 하려고요.”
“굳이 일하실 필요 없습니다.”
마린은 지주다. 그리고 마르할의 지인이다. 그녀가 일하지 않아도 일할 사람은 많다.
“사람들 목소리를 듣기에는 그쪽이 제일 좋잖아요.”
“그렇군요. 알았습니다.”
휴고는 마린이 한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다.
현장에선 여러 사고가 터지지만, 그중에는 순수하게 사람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사고도 있다. 우연히 죽거나 다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 사이의 불만이 커져서 패싸움을 벌이거나 누굴 찌르거나 하는 일이다.
직접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마린이라면 그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가볼게요. 같이 있는 걸 보여서 좋을 것도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마린은 휴고와 떨어져 막 일을 시작한 인부들 사이로 섞였다.
인기척을 느낀 손에 망치와 정을 든 중년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것도 다 몸에 새겨진,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행동이다.
“아가씨는 뭐야?”
“일하러 온 사람.”
“여자가?”
여자, 마린이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다.
건설 현장에서도 여자, 화물 나를 때도 여자, 평생 물건 나르고 망치질한 사람들에게 현장과 여자는 양립할 수 없는 단어다.
여러 번 겪은 일이다. 마린은 가장 확실한 해결법도 안다.
그녀 주변에는 작업에 쓰는 연장이 여럿 굴러다니고 있다.
마린은 나무를 다듬을 때 쓰는 끌을 손으로 들었다.
“됐지?”
중년 남자는 마린의 손을 보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짜랑 경험자는 도구를 쥐는 방법부터가 다르다.
마린이 끌을 잡는 방법은 경험자, 그것도 숙련자의 것이다.
현장에서 일 좀 해봤다는 사람이라면, 일하는 마린을 보고 트집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랬다가 반대로 망신당할 걸 알기 때문이다.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인정하자 주변에 있던 다른 인부들도 경계를 풀었다.
숙련공의 추가는 그들에게 이익이면 이익이지 손해는 아니다.
마린은 인부들 사이에서 휴고의 부하가 명령하는 대로 일을 시작했다.
성인 남성이 끙끙대는 작업도 초인에 근접한 신체 능력을 가진 마린에게는 약간 힘든 일에 불과했다.
마린은 거대한 톱으로 통나무를 자르며 마을이 들어설 자리를 보았다.
휴고의 부하와 함께 남자들을 부리는 헬라가 보였다.
그녀는 기백으로 젊은 남자들을 휘어잡고 있었다. 자기보다 목공 일을 더 잘 아는 노인에게 그래도 나무 좀 만져봤다는 남자들도 고개를 못 들었다.
다른 쪽도 전부 순조롭다. 마린이 눈여겨보는 건 공국에서부터 따라온 남자 한 명이다.
이름은 카발리.
헬라 말로는 징세관의 아들.
서부로 올 이유가 없는 망나니.
헬라의 말이 맞다면, 마을에 정착할 예정인 사람 중 제일 위험한 인간이다.
그래도 의외인 건 일한 티가 난다는 것이다. 연장을 다루는 게 완전 초짜는 아니다.
공국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일할 기회는 얼마 없었을 건데, 그 짧은 시간에 연장 잡는 방법이라도 제대로 익힌 게 나름의 노력은 한 듯했다.
점심이 다 되어서였다.
슬며시 연장을 자리에 놓고 카발리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화장실이나 물을 마시려는 건 아니다.
‘그러면 그렇지.’
마린도 연장을 두고 조용히 카발리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