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24
제124화
케레이 드뇌브는 오동나무 뿌리 출신의 첩보원이다.
오동나무 뿌리의 활동 영역은 다양하다.
제국 내부의 불순한 움직임을 감시하기도 하고, 타국에 잠입해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케레이 드뇌브는 므에트 제국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원이었다.
드뇌브 가문은 오동나무 뿌리에서 작업한 잠입용 가문이었다.
케레이는 마족이 생겨나기 전에 므에트 제국으로 파견되었다. 짧은 기간에 두각을 드러내며 서부를 오가는 외교관 노릇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족에게 서부가 멸망하며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다.
마족이 멸망하고, 서부가 다시 열리자 케레이는 작위까지 포기하고 서부로 왔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오동나무 뿌리로서의 의무감이었다. 하지만 그가 서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바체아 제국은 멸망했고, 그가 충성해야 할 황제는 없었다.
오동나무 뿌리에서 배운 기술로 지주가 되었지만, 그 이상을 노리지는 않았다.
마르할의 고대 제국어를 듣고 케레이의 본능이 꿈틀댔다.
오동나무 뿌리는 모두 어려서부터 철저한 세뇌 교육을 받는다. 음지에서 활동하며, 그 공을 치하받지도 못하며 죽어가는 첩보원, 암살자들에게 충성심은 조직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타국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케레이 같은 경우 더욱 강한 세뇌 절차를 거친다.
그는 반평생을 제국에 충성하라고, 그의 목숨은 제국을 위해 있다고 배웠다.
유년기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학습된 기억은 잠깐의 일탈로 지워지는 게 아니었다.
케레이는 이미 마르할에게 반쯤 복종하고 있었다.
단 한 마디지만, 마르할이 말한 고대 제국어는 진짜다. 황족이 아니면 흉내 낼 수 없는 완벽한 발음.
[케레이 드뇌브. 진짜 이름인가요?] [드뇌브란 성을 빼면, 이름은 본명입니다.] [좋아요, 케레이. 므에트 제국에 파견된 후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요.]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시간은 많아요.] [알겠습니다.]케레이가 자신의 인생을 말하기 시작했다.
제국에 파견되어 외교관이 되기까지 있었던 일.
마족이 발호하고 서부의 정보를 모으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닌 일.
서부의 멸망이 알려지고 한동안 실의에 빠져있던 일까지.
바체아 제국어를 사용하는 건 거의 20년 만이다. 그는 잃어버린 바체아 제국어를 더듬더듬 떠올려가며 보고를 이어갔다.
한 사람의 반평생이 걸린 일이다.
케레이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이미 몇 시간이 지나 있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케레이가 벌떡 일어났다.
[고용인이 올 겁니다!] [그건 괜찮아요.]바깥에는 샤힐레가 있다. 사람 몇 명을 현혹하는 건 그녀에게 일도 아니다.
‘몇 시간이나 바깥에서 기다리게 한 건 조금 미안하네.’
샤힐레는 마르할의 이름을 안다. 그녀는 어지간한 대화는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건 오동나무 뿌리의 일원이 황제에게 밀린 보고를 올리는 일이다.
그 의식에 황실과 무관계한 사람을 들일 수는 없다.
케레이의 보고가 끝을 향했다.
지주가 되어 나태한 삶을 즐기던 이야기.
운 좋게 하일리의 출신을 알아낸 이야기.
그리고 오늘 마르할을 만나는 것으로 그의 보고는 끝났다.
침대와 조금 떨어진 벽에 기대고 있던 마르할이 물었다.
[하일리에게 토지를 받으면, 그걸로 뭘 하려고 했어요?]케레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몇 시간의 보고로 그는 과거의 정신을 되찾았다.
황족 앞에서 차마 그 재산으로 사치를 부리려 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꼴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툭 튀어나온 배, 살찐 몸, 그리고 조금만 뛰어도 헐떡이는 체력.
최소한의 단련조차 하지 않은 케레이의 몸은 방탕한 삶을 보낸 중년 귀족 그 자체였다.
[이야기하기 싫으면 괜찮아요.] [아닙니다! 저는 주제를 잊고 서부 부흥을 위해 쓰여야 할 자금을 일신의 쾌락을 위해 쓰려고 했습니다! 무능한 뿌리에게 벌을 주십시오!]케레이는 반쯤 광기에 차 말했다.
500년 동안 이어지는 권력은 좋은 통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머리로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짓을 다 해야 겨우 유지할 수 있는 게 권력이다.
그리고 케레이의 광기는 바체아 제국이 낳은 어둠의 일면이다.
마르할은 바체아 제국의 어둠을 부정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그는 오동나무 관의 주인이며 바체아 제국의 유일한 후계자다. 그리고 마족의 업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이용하지 않으면 마르할의 염원은 이룰 수 없다.
[됐어요. 명령을 내릴 사람조차 없었으니까요. 지금부터 잘하면 되죠.] [태양의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케레이, 하일리가 암살자를 보냈을 때를 대비해 두었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제가 죽으면 사흘 내로 그의 정체가 작은 제국 전체에 퍼질 겁니다.]그는 오동나무 뿌리 출신 첩보원이다. 죽음을 대비한 정보전은 기본이다.
[회수할 수 있죠?] [하루면 됩니다.] [전부 회수해요. 그리고 케레이 드뇌브는 죽어야 해요.] [알겠습니다.]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나오는 대답은 아침 식사를 했냐는 질문에 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오동나무 뿌리의 일원이며, 마르할의 명령에 죽음도 불사하는 고급 인력이다. 그래도 케레이 드뇌브는 죽어야 한다.
그가 죽지 않으면 하일리가 납득하지 않는다.
[밤에 다시 올게요.]마르할이 침실에서 나갔다.
케레이가 손바닥을 폈다. 손에 땀이 흥건하다.
몇 년 치 말을 한 번에 쏟아냈다. 정신이 돌아오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성이 인식한다.
그를 덮치는 것은 죽음, 압도적인 죽음의 향기가 케레이를 짓눌렀다.
오동나무 뿌리의 세뇌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유년기의 세뇌로 묶어 두기에는 케레이의 인생이 너무 파란만장했다.
진짜 첩보원이라면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케레이의 가슴에는 다른 본능이 꿈틀댔다.
생존 욕구.
그는 살고 싶다.
비루한 삶이다. 지주의 삶이 비루하다니, 남들이 보면 미친 소리라고 하겠지. 하지만 인생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본인이다.
그의 인생 목적은 오동나무 뿌리로서 바체아 제국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체아 제국은 멸망했고, 그의 인생도 목표를 잃었다.
그래서 방탕한 삶을 살았다. 향락에 취하고 황금을 탐했다.
시간을 넘어, 기적처럼 그의 앞에 바체아 제국 황족이 다시 나타났다.
바체아 제국이 멸망하고, 동부 국가들은 바체아 제국의 흔적을 찾았다.
바체아 제국이 보유하고 있던 유물과 기록, 기술이 있으면 왕국도 제국으로 도약하는 게 가능하다.
괜히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가 차기 황권까지 걸어가며 바체아 제국의 기록을 찾고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낸 국가는 없다. 그만큼 바체아 제국의 기록은 철저히 망가졌다.
그분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마족에게 점령되었던 바체아 제국에서 살아남아, 동부 모든 국가의 눈을 속이며 서부에 있다.
삶의 이유가 돌아왔다. 오동나무 뿌리로서 기뻐해야 옳지만, 케레이는 그러지 못했다.
그의 삶은 비루하다. 그러나 삶이다. 그는 비루하게 살아남고 싶다.
케레이는 침대에 앉아 고개를 떨궜다. 한참이나 그러고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과 머리에 폭풍이 친다.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감정이지만, 답이 없는 문제에 매몰되어 있기에는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하지?’
또 어떻게 해야 하지?
도망은 불가능하다.
실력은 녹슬었어도, 케레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 집단인 오동나무 뿌리 출신이다. 저택 방비는 철저하다.
그는 누구도 모르게 저택에 침입했다. 몇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눌 동안 한 명의 고용인도 그의 방을 찾지 않았다.
마법이다.
어쩌면 사라진 바체아 제국의.
도움을 청할까?
권력자 목록이 그의 머리에 지나간다.
뤼겐, 말리바 리시, 알레스, 무리하면 아젠만 리안틀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라면 케레이를 보호해줄 수 있다.
그 후에는?
그들과 거래하려면 그가 가진 정보를 풀어야 한다.
하일리가 아프란체 왕족이라는 것, 바체아 제국 황족이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정체까지.
케레이가 모든 정보를 밝힌다고, 그들이 케레이를 끝까지 보호해줄까? 그러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그리고… 그 모든 걸 감내하며 비루한 삶을 이어갈 가치가 있나? 목적 없는 삶을 이어갈 바에 황족의 뜻에 따라 본분대로 죽는 게 더 나은 삶이 아닐까?
“하아….”
케레이가 일어났다.
선택은 나중에 하더라도, 우선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가 죽었을 때를 대비해 흩뿌려둔 장치들을 회수해야 한다. 다른 건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생각하면 더 나은 일이 훨씬 많을 텐데도.
어쩌면 이것도 그를 묶고 있는 유년기의 속박이리라.
* * *
케레이는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사후를 대비한 장치를 모두 회수하고, 불에 태웠다.
이미 시간은 밤이었다.
케레이는 침실에 앉아 독주를 들이켰다.
사람은 모두 물렸다. 오늘 밤은 조용히 있고 싶으니 누구도 오지 말라고 했다.
케레이는 여전히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삶의 목적이란 뭘까.
하루 사이 케레이에게 닥친 문제는 너무 거대해 배움이 얕은 그는 접근할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보였다.
자기 삶의 목적을 명확히 정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케레이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뤼겐의 목적은 권력에서 나오는 칭송이다.
뤼겐과 술자리를 가지며 본인에게 직접 들은 말이다. 실제로 뤼겐은 자신이 칭송받을 일이라면, 다소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움직인다.
운 좋게 딱 한 번 만났던 아젠만과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의 눈에는 명확한 심지가 있었다.
케레이가 한때 부하로 뒀던 용병 중에서도 삶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던 사람이 있었다.
평생 놀고먹을 돈을 모아 일하지 않고 사는 게 꿈이라던 상인은, 그럴 돈을 모으자 미련 없이 손을 털고 장사를 접었다.
서부가 활성화되며 상회 규모가 몇 배로 커질 게 확실하던 상황에 있었던 일이었다.
케레이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한 번의 상실과 오랜 시간이 그를 바꿨다.
침실 문이 열리며 그가 들어왔다.
케레이는 새삼 깨달았다. 그는 남자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
남자의 뒤에는 음침한 여자가 따라왔다. 저 분위기, 마법사일 것이다.
남자의 입에서 바체아 제국어가 나왔다.
“케레이, 정리는 다 끝났어요?”
“끝났습니다. 이제 저를 죽이시면, 하일리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사라집니다.”
“샤힐레.”
샤힐레가 손으로 알 수 없는 모양을 만들었다. 그 주변의 공기가 변한다. 그리고 무형의 힘이 케레이를 감싼다.
불길하고, 불결한, 만인에게 배척받고 두려움을 사는 힘, 저주다.
저주가 몸을 서서히 감싸고 있다. 케레이가 마르할에게 물었다.
“감히, 두 가지 질문을 허락해 주십시오.”
“말해봐요.”
“당신의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마르할 무느두스.”
“마르…할?”
케레이도 모든 황족의 이름을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무느두스의 이름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황제와 그 직계 자손뿐이다.
케레이가 아는 황족의 이름 중 마르할이라는 이름은 없다.
“아마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그런 마법이 걸려 있으니까요.”
“그런 마법이 있단 말입니까?”
그와 마르할이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다. 마르할이 그에게 마법을 걸었을 리는 없다. 개인을 향한 마법이 아니다.
세계를 대상으로 한 마법이다.
“그런 게 가능합니까?”
“마법사와 도둑이 힘을 합치니 대강 되더라고요.”
마르가 아르고의 힘을 빌려 ‘마르할 무느두스’를 훔쳤다. 사람의 기억에서, 그리고 모든 기록에서.
케레이는 혼란스러웠다.
세상에 마법사와 도둑을 인칭대명사로 사용하는 경우는 하나밖에 없다. 정말 그 둘과 아는 사이라고?
바체아 제국의 마지막 황족이?
“첫 번째 질문은 끝. 두 번째 질문 차례예요.”
“당신께서는… 삶의 목적이 있으십니까?”
“삶의 목적이요?”
“평생에 거쳐 이루어야 할, 단 하나의 숙명 말입니다.”
마르할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서부의 부활. 그게 제 숙원이에요.”
“감사합니다.”
케레이가 눈을 감았다.
망설임이 사라졌다. 손의 떨림도 멈췄다.
서부의 미래를 위해 죽는다면, 그도 만족할 수 있다.
그의 삶에 목적은 없었지만, 숭고한 삶의 한편을 차지하는 디딤돌은 될 수 있다.
그 사실이 케레이에게 용기를 주었다.
“다시 한번, 감히 부탁드립니다. 삶의 마지막에, 한 잔만 괜찮겠습니까?”
마르할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레이는 잔에 남은 술을 비웠다. 몸을 감싼 저주는 이미 그의 몸을 옥죄고 있다.
호흡이 힘들고, 얼굴에 물집이 잡힌다.
저주의 영향인지 술기운이 확 올라온다. 초점이 안 맞는 눈에, 웃고 있는 마르할이 보인다.
“케레이,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얼굴이 좋을 것 같아요?”
“누구도 돌아봐주지 않을 추한 외모가 좋습니다.”
“의외의 대답이네요. 이유라도 있어요?”
“그래야만 스스로 고민하는 치열함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인에게 외면받는 처절한 고독 아래 있노라면, 인간의 삶과 목적을 탐구하는 것에만 평생을 바칠 수 있지 않을까.
막 학문에 눈뜬 사춘기 아이처럼 단순 무식한 이유다.
“철학적인 이유네요. 잘 가요, 케레이 드뇌브. 새 이름은 눈 뜨고 다시 생각해 보자고요.”
“방금 뭐라고 하셨….”
그게 케레이 드뇌브의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