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25
제125화
케레이 드뇌브라 불렸던 남자는 꿉꿉한 냄새가 나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볕이 드는 방에서 마르할이 책을 읽고 있었다.
“어째서…?”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광경을 떠올려봐요.”
새 이름.
첩보원에게 친숙한 단어다. 케레이는 자기 얼굴을 만져보았다.
피부병 환자처럼 우둘투둘한 살덩이가 만져진다.
마침 그의 옆에는 거울이 있었다. 케레이는 거울을 들었다.
그의 얼굴은 심각한 병을 앓은 환자처럼 변했다. 어떤 부분에는 혹이 있고, 반대편은 살을 파낸 듯한 구멍이 있다.
이목구비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 얼굴을 보고 케레이 드뇌브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 아아.”
목소리도 변했다.
케레이는 몸을 덮고 있던 천을 걷어내고 몸을 확인했다.
배 나온 중년의 몸 그대로다.
“저주로 몸을 너무 바꿔도 좋지 않거든요.”
케레이는 살짝 실망했다. 얼굴과 목소리가 바뀌었다. 방탕의 상징과 같던 이 몸도 변해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거기까진 아니었다.
“저는 뭘 하게 됩니까?”
“우선, 이름부터 써야죠.”
케레이 앞에 가죽끈이 들이밀어졌다. 끈 위에는 먹물을 묻힌 검은 깃펜이 있었다.
저 깃펜이 마르할에게 가지는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눈을 크게 떴을 광경이었다.
그걸 알 리가 없는 케레이가 책임의 깃펜을 손에 들었다.
가죽끈에는 이미 몇 개의 이름이 있었다. 케레이는 그 이름을 애써 보지 않으려 했다. 이 물건이 뭔지도 짐작이 된다.
첩보원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물건이다.
계약을 어기면 죽는 저주를 가진 유물.
케레이는 망설임 없이 책임의 깃펜으로 가죽끈에 이름을 적었다.
끈과 깃펜이 저절로 마르할에게 돌아갔다.
“도련니임… 작업 다 끝냈….”
샤힐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침대 위에 있는, 케레이가 얼굴을 확인하고 놓아둔 거울을 침대 아래로 던졌다.
마르할이 샤힐레에게 물었다.
“전부 끝났어요?”
“네에…! 케레이 드뇌브는 저주받아 죽었다고 생각할 거예요오….”
케레이 드뇌브가 실종된다면 하일리는 마르할을 의심할 것이다. 그러니 의심받지 않을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 역할은 샤힐레가 맡았다.
경계에서 시체 하나를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고, 저주받아 죽은 시신이라면 원형을 알아볼 수도 없다.
“이제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보죠. 마음에 드는 이름 있어요?”
“도련님이 지어 주신다면, 어떤 이름이라도 좋습니다.”
“그건 안 돼요. 자기 인생이니 스스로 정해야죠. 고민하고 싶다면서요?”
“…그러면, 한 가지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케레이가… 이제 이름을 잃은 한 남자가 마르할 옆에서 무표정하게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샤힐레는 괜찮아요. 그녀도 이름을 쓴 사람이거든요.”
“생각을 의미하는 고대 제국어를 알고 싶습니다.”
“‘쿠헬바’, 최대한 발음하기 쉽게 바꾸면 그래요. 의미는 인생의 고민.”
“인생의 고민… 말입니까?”
남자가 물었다. 마치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단어다. 너무 딱 맞는 단어라 마르할이 꾸며낸 말이 아닌가 하는 불경한 의심까지 들었다.
“고대 제국어는 복잡하려고 복잡해진 언어니까요. 찾아보면 이상한 단어가 잔뜩 있어요. 그래서 가족 간의 대화에서 사전을 찾기도 하고요.”
신하가 공적인 자리에서 사용한 단어의 뜻을 몰라 나중에 황제가 사전을 찾아보았다는 일도 자주 있다.
마르할의 기억에 남는 건 형의 말을 아버지가 알아듣지 못해 식사 중에 집사에게 사전을 가져오게 한 일이다.
사전을 뒤지며 멋쩍게 눈을 돌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추억이다.
‘권력의 수단이라는 것을 빼면 정말 비효율적인 언어란 말이야.’
하지만 권력의 수단이기에 역사를 가지고, 역사를 통해 힘을 가지기에 비효율적임에도 꾸준히 사용되고, 연구되는 언어다.
남자가 결의를 굳힌 얼굴로 말했다.
“제 이름은 쿠헬바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바꿨는데 그건 괜찮습니까?”
“가죽끈이요? 괜찮아요. 이름을 버렸다고 케레이 드뇌브로 살았던 역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고작 이름을 바꾼 걸로 피할 수 있는 가벼운 저주라면 마르가 욕심내지도 않았다.
자의로 하는 계약이라면, 그 이름이 가짜라도 가죽끈의 저주는 따라간다.
“대강 마무리되었으니, 밥이라도 먹을까요? 샤힐레는 쉬고 싶죠?”
샤힐레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낮에 일어나 지금까지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리고 밤새 작업까지 했다.
사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마법사라도 피곤했다.
“쿠헬바. 숙녀의 침대에 오래 누워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쿠헬바가 침대에서 바로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누워 있던 침대를 슬쩍 확인했다.
분별력 있는 중년 남자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여자 혼자 쓰는 침대를 사용했다고 말해주면, 누구나 신경 쓰이게 마련이다.
아무리 청소를 잘해도 밤에 침실을 열면 은은히 나는 홀아비 냄새가 신경 쓰이는 시기라면 더욱이.
쿠헬바의 걱정은 무의미했다. 샤힐레가 침대에 작게 접은 종이를 던지니 침대가 한 차례 검은 불길에 휩싸였다.
불은 아무것도 태우지 않고, 한 차례 크게 타오른 다음 환상처럼 사라졌다.
샤힐레는 소독이 끝난 침대로 지렁이처럼 기어들었다.
“잘 자요.”
“네에….”
나른하게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샤힐레가 이불을 얼굴까지 덮었다.
마르할이 열려 있던 창문을 닫으니 방이 어두워졌다.
“저희도 나가죠.”
“알겠습니다.”
마르할과 쿠헬바는 작은 제국의 거리로 나왔다.
“괜찮은 식당을 압니다. 모실까요?”
쿠헬바는 작은 제국에서 향락을 즐기던 지주다. 과장 조금 보태 그가 모르는 오락 시설은 없다.
“아뇨. 그냥 조용히 먹죠. 제 입지가 조금 애매해서요. 지주 회합은 알아요?”
“소문만 들었습니다.”
“거기서 저를 벼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뤼겐을 포함해서요.”
지주 회합에 참가하는 지주들 사이에도 격차가 있다.
뤼겐처럼 권력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그가 누군지 아는 지주가 있는가 하면, 아젠만처럼 지주 회합에는 얼굴을 비치지만,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있다.
마르할은 적당히 얼굴이 알려진 편이다.
거리를 걷는 정도는 괜찮지만, 고급 식당에 들어가면 마르할의 얼굴을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마르할이 작은 제국에 있다는 게 알려지면 마르할을 잡으려는 무수한 추격자가 생길 것이다.
엘리제가 있으면 말을 타고 따라잡힐 일은 없겠지만, 그것도 과신할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쿠헬바는 마르할의 걱정을 모두 헤아리지는 못했다.
다만, 마르할이 지주 회합에 참가할 정도의 세력을 가진 대지주라는 사실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거 말고 묻고 싶은 건 없어요?”
“사실, 많습니다.”
쿠헬바도 바체아 제국의 생존자를 찾아보지 않은 게 아니다.
겨우 찾은 생존자는 모두 바체아 제국 외곽에 살던 사람들이나 운 좋게 참사 당시 바체아 제국에서 나와 있던 사람들이었다.
바체아 제국 심부의 생존자는 한 명도 찾지 못했다.
마족이 최초로 나타났다고 추측되는 지역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마르할 무느두스, 바체아 제국의 심장에 머물던 사람이 있다.
어젯밤 마르할이 했던 말도 머리에 맴돌았다.
마법사와 도둑.
샤힐레라는 아가씨도 있다. 그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 아가씨의 어깨에 달린 휘장은 분명 사신의 문양을 하고 있었다.
마르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갈 길이 머니까요. 가면서 천천히 이야기해 줄게요.”
* * *
마린은 작업 현장에서 잘린 나무의 결을 헤아렸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회의감이 들었지만, 마린은 멈추지 않았다.
이걸 시킨 사람이 그녀 옆에 있었다.
도둑은 마린 옆에서 원래 그녀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중이었다.
나뭇결을 다듬고, 알맞은 크기로 잘라 정해진 방법으로 쌓아둔다.
세 명이 한 조로 종일 일해 통나무 몇 개를 손질하는 게 한계인 일이다.
하지만 도둑에게는 아니다.
손에 든 톱으로 나무를 쓱 가르면 대패질이 끝나 있고, 다시 톱을 쓱싹 움직이면 나무가 잘린다. 그리고 잘린 나무를 가뿐히 들어 옆으로 옮긴다.
서부에는 부상당한 기사나 한때 기사의 종자였던 사람들과 일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부상을 입었어도 초인의 신체 능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고, 자칭 기사의 종자들도 보통 사람보다는 훨씬 뛰어난 체력과 근력을 가지고 있다.
장정 몇이 옮겨야 하는 물건을 혼자 옮긴다거나 공구를 써야 하는 일을 맨손으로 하는 장면도 많이 본다.
그들과 함께 일한 서부 사람들은 동부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초현실적인 장면에 익숙하다.
그런 서부 사람들에게도 도둑이 일하는 광경은 상식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벌써 며칠이나 됐는데 사람들은 틈만 나면 도둑이 일하는 모습을 곁눈질했다.
톱질이 왜 대패질과 같은 효과를 내는 건지, 마린이 보기에도 신기하긴 했다.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이 새끼는 뭔가 싶지? 헛짓거리 하는 놈들도 조져야 하고, 땅도 관리해야 하는데 왜 이런 일이나 시키고 있나 엿 같지?”
마린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내로는 도둑의 말에 동의했다.
며칠 전 갑자기 나타난 도둑은 마린에게 말했다. 자기에게 기술 몇 개 배울 생각 없냐고.
이 남자의 정체를 알고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인외라 불리는 다른 세 사람이나 마르할 정도일 것이다.
최소한 마린은 아니었다. 힘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던 차에 건네진 도둑의 제안을, 그녀는 거부하지 못했다.
그 후로 그녀는 새벽부터 밤까지 나뭇결을 세는 일을 했다.
도둑은 그것만 시키고, 다른 어떤 것도 그녀에게 가르치지 않았다.
“네가 천재가 아니란 건 알지?”
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진짜 천재를 봤다.
남들이 평생 노력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신체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사람, 몇 마디 대화로 사람의 인생을 읽어내는 사람.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과 같은 재능을 가지지는 못한다.
“타고난 자질을 바꾸는 건 불가능해, 보통은 말이지. 그런데 내가 누구? 아르고 님이시다.”
입은 떠들면서도 도둑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혼자 장정 수십 명이 해야 할 하루치 일감을 끝내고 다음 나무에 손을 뻗고 있다.
“업이 뭔지 아냐?”
마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둑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안다고? 정말로? 너 같은 사람이 알 내용이 아닌데?”
도둑 기준에서 마린은 ‘너 같은 사람’이 맞다.
‘쌓이는 것’에 대한 내용도 그녀가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평생 몰랐을 지식이었다.
하지만 정면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괜히 기분이 나쁘다.
“마르할 님에게 들었어요.”
“그놈이랑 아는 사이였어? 그러면서 나한테는 입 꾹 다물고 있었고?”
“말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마린은 도둑에게 마르할에 대해선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도둑도 마르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마린은 본인 말대로 말할 이유가 없었고, 도둑은 10년도 더 전에 우연히 만났던 아이가 현재의 마르할을 알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도둑이 손을 멈췄다. 그리고 손질하던 나무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가 마린을 찾은 건 우연이 아니다.
서부 구경도 할 겸 마르할을 찾아 서부를 돌아다니던 중 희미하게 자신의 역사가 이어진 걸 발견했고, 그걸 쫓아 여기까지 왔다.
일부지만 진짜 그의 기술을 연마하고 있는 사람이 더러운 권력의 손이 닿은 반푼이에게 죽으면 도둑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대응할 기술이나 조금 전수해줄 생각이었다.
“너, 어렸을 때 봤던 그놈 얼굴도 기억하고 있냐?”
이번에도 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마린이 마르할의 부하라면, 도둑도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그놈 계획이 빨리 끝나면, 나도 움직일 수 있게 되잖아?’
아무튼 그런 거다. 다른 뜻은 일절 없다.
“그런데 너, 그놈과 무슨 사이야?”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도둑은 마르할에게 사람을 읽는 기술을 가르쳐준 장본인이다. 실라나티엘 가문의 기술과 성황국의 비법도 들어가긴 했어도, 큰 틀을 만든 건 도둑이다.
전문 훈련도 거치지 않은 사람의 거짓말을 알아보는 건 숨 쉬듯 쉬운 일이다.
도둑이 음흉하게 웃었다.
자기 제자가 그놈을 꼬시면, 그놈을 친동생처럼 여기는 바스타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결은 그거까지만 세라. 매일 새벽 일 시작하기 전에 열 개씩 세고. 그리고 지금부터는 실전이다.”
도둑이 말하는 실전.
마린이 침을 꼴깍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