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4
제14화
15년 전 나타난 마족은 1년이 채 안 되어 세상의 반을 삼켰고, 4년 동안 공국을 포함한 동부 국가들과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10년 전에 용사에게 마왕이 토벌되며 마족 전체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마르할이 마린을 만난 건 마족의 세력 확장이 거의 끝나가던 때였다.
공국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선 이미 전쟁이 시작되었고, 다른 지역으로 전장이 빠르게 번져가던 시기였다.
피난할 사람은 전부 피난을 마치고 더는 살아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그 안에서 마르할은 길잡이로 용사 일행과 함께 서부를 가로질렀다.
마왕이 자리 잡은 바체아 제국 황성까지 길을 내며, 겸사겸사 그 경로에 있는 사람들을 구했다.
도둑은 그딴 게 중요하냐고 역정을 냈지만, 정작 아이들을 돌보는 건 자기가 제일 열심이었다.
고아였다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라도 떠오른 거겠지.
마르할은 기억력이 좋은 편이지만, 그래도 용사 일행이 구한 천 명이 넘는 사람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가 마린을 기억하는 건, 그들이 구한 사람 중 아이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건장한 성인도 제 한 몸 챙기기 힘들던 시기였다.
책임감 없는 부모는 아이를 버리고 도망갔고, 아이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부모는 정말 목숨을 걸고 죽어버렸다.
성인도 살기 힘든 환경에서 아이가 혼자 살아남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마린과 그녀가 포함되어 있던 피난 행렬은 마르할이 만난 마지막 피난 행렬이었다. 200명이 넘는 행렬 대부분이 노인이었고, 그들 사이에 십여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앞으로는 마족의 영토에서 각자 살아남은 극소수의 사람밖에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지.’
피난 행렬과 헤어지고 마르할은 본격적으로 마족의 영토로 들어섰다. 그 후로 피난 행렬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방도가 없었다.
운이 좋았으면 살아남았을 테고, 아니면 죽었겠지. 그런 감상이 전부였다.
모든 이들의 죽음을 슬퍼하기에는 죽음이 너무 많은 시대였다.
스트레킬이 수상쩍은 눈빛으로 마르할을 바라보았다.
마르할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사람의 얼굴을 보고 기절하는 건 그 이상으로 보통 일이 아니지 않나.
“널 보고 놀란 것처럼 보였는데.”
“그녀 입장에선 그럴지도요. 이런 장소에서 만날 줄은 몰랐을 테니까요.”
“아무리 놀라도, 보통, 사람을 보고 기절하지는 않지?”
“그렇습니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마르할은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부터 정체를 의심받고 있었지만, 마린의 반응으로 의심이 극에 달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의심으로 끝나는 걸 보니, 그간 신뢰를 잘 쌓은 것 같았다.
믿음이 없었다면 의심과 함께 칼 뽑는 소리도 들렸겠지.
“서부 출신 용병이고, 용병 이전에는 기사의 종자 비슷한 거였어요.”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마르할은 베이올라의 눈에서 의심과 함께 희미한 기대도 엿보았다. 그녀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바체아 제국의 유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인연을 얻게 되는 셈이다.
“거짓말은 안 했어요. 기사의 종자. 용사도 일단 기사 비슷한 무언가니까요.”
“용사의 종자…?”
“역시, 단순히 아는 사이가 아니었군.”
“가업 때문에 서부의 지리를 외워야 할 일이 많았거든요. 그리고 용사와 그 일행은 바로 앞도 알아보기 힘든 안개 속에서 마왕성까지 길을 안내해 줄 길잡이가 필요했고요. 그래서 몇 년 동행했어요. 간단한 이야기죠?”
“전혀. 절대로 간단하지는 않군.”
“단순히 용사의 심부름을 하는 걸 넘어, 용사의 일행으로 여정에 함께했다고? 왜 너 같은 사람이 알려지지 않았지?”
스트레킬의 눈썹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세상 모두가 용사 일행은 네 사람으로 알고 있다.
길잡이라면 그 역할이 작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마족과의 전쟁 내내 전선에서 활약했던 자신이 소문조차 못 들었던 용사 일행이 존재하다니?
베이올라도 스트레킬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황제는 용사와 그 일행을 잡아들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용사 일행이 되기 전부터 특급 수배범이었던 도둑은 이제 와서는 잡는다는 기대 자체를 안 하게 되었고, 성황국의 성인은 성황국과 전쟁이라도 할 게 아니라면 건드릴 수 없다.
용사에게는 이미 3만 대군을 보냈다가 3만 명이 전부 제압당한 역사가 있다.
마법사에 대해서는, 10년 전 최후의 결전 이후 그녀를 봤다는 증언조차 없다.
“아.”
그녀의 머리에 번개가 번뜩였다.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래서 용사 일행 전체가 입을 다문 거야.”
“짝짝짝. 정답을 맞힌 상으로 박수를 드리죠. 맞아요. 마왕이 죽은 건 10년 전. 제가 꼬꼬마일 때였죠. 동부가 용사 일행을 잡아 죽이고 싶어 한다는 건 3만 대군 사건으로 알려졌으니, 한가하게 개선식 날짜나 잡고 있을 수는 없었죠.”
용사가 마왕을 죽이고 돌아왔을 때, 그를 향한 무수한 초대가 있었다. 공국에선 용사가 마왕을 죽인 날을 축일로 기록해 매년 축제를 열기로 했고, 제국에서는 성대한 개선식을, 성황국에서는 성인의 지위를 약속했다.
‘그렇게 동부로 돌아온 용사를 기다리던 건, 국적 불명의 3만 병사가 모인 군대였지.’
정해진 소속이 없던 군대였다. 비정상적으로 길게 이어진 비정상적인 소모전 끝에 탄생한, 멸망한 나라의 군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만들어진 목적을 알 수 없는 군대.
연원을 알 수 없는 비정상적인 군대였다.
잘만 뭉치면 약해진 공국을 뒤집을 수도 있고, 모두가 전쟁 경험자이니 그대로 성황국이나 제국을 침략해 땅을 요구해도 두 국가 입장에선 그들을 무시하기 힘들다.
그들은 무한에 가까운 선택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대한 군사력이 향한 건 한 명의 개인이었다.
국적 없는 3만 대군은 용사와 충돌했고, 그들은 용사의 역사를 쌓는 제물이 되었다.
어떻게 그런 군대가 구성될 수 있었는가. 또 왜 그들은 하필 용사에게 덤볐는가.
지금도 전말이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사건이다.
아는 사람은 안다. 마르할도 안다. 그건 용사를 죽이려는 불특정 다수의 악의가 뭉치고 뭉친 결과물이다.
권력자들이 용사에게 보내는 암살의 칼날이다. 암살의 핵심은 죽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하는 것이다.
칼날이 몇 개나 되든, 규모가 얼마나 크든, 누가 죽였는지만 들키지 않으면 암살은 성립한다.
“3만 대군은 미친 형 하나가 전부 제압해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그래도 그 뒷배의 힘은 그대로죠. 그 미친 형이 말했어요. 세상과 싸우지 못할 건 없지만, 그랬다간 세상이 망한다. 일행은 각자 잠적했습니다. 성인은 성황국으로 돌아가고, 도둑은 뒷골목으로, 용사와 마법사는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그리고 힘도 능력도 없던 길잡이는 역사에서 잠적했죠.”
기록은 지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용사 일행은 이미 네 명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마르할이 용사 일행에 합류한 건 서부 안쪽.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지역이었다.
합류 자체도 우연에 우연이 겹친, 일종의 기적이었다.
마르할에 대해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래서 늘 용사보다 한발 앞서 안개 너머를 읽던 길잡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말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으니, 므에트 제국 황제도 제가 누군지 모를걸요? 저를 잡아가면 단번에 유력한 황위 계승자가 되거나 공국에서 크게 권력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혹하지 않나요?”
“찰나의 행복을 바란다면 그것도 좋겠지. 하지만 뒤따라올, 움직이는 재앙들의 분노를 누가 막을까. 그러니까 혹하지 마라, 베이. 허… 음흉하기로 이름 높은 스트레킬의 제자가 저런 푼수라니.”
“아, 안 혹했어!”
베이올라가 소리를 빽 질렀다. 얼굴을 붉히고 눈을 피하는 것이, 누가 봐도 정곡을 찔린 모습이었다.
“저는 넘어간다면 스트레킬이 넘어갈 줄 알았는데요.”
“나는 염치를 아는 사람이다. 두 번이나 목숨을 구해준 대가를 원수로 갚을 수는 없지.”
“두 번이요?”
“성인님께서 내 목숨을 구해주셨다. 본인에게 은혜를 갚을 길이 없으니, 그 제자에게라도 갚아야지.”
“그거 고맙네요. 그 사람도 자기 선행이 돌고 도는 걸 보면 기뻐할 거예요. 이게 선업의 굴레라면서요.”
“업? 그건 은둔한 수행자들의 용어일 텐데?”
성황국, 종교로 유지되는 거대 국가는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딱히 종교가 아니더라도, 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믿음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수행자들은 성황국에서도 예의 주시하는 이단이다.
성황국의 성인이 이단의 언어를 사용하는 건, 생쥐가 하늘을 나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일이다.
“사람은 변하니까요. 성황국 성인이 평생 신을 믿으라는 법도 없죠. 사실 신조차 아니잖아요?”
성황국에서는 세상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믿는다.
사제들이 부리는 기적은 신이 내린 축복이자 은혜이며,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증거라는 게 성황국의 주장이다.
실제로 부러진 뼈를 한 번에 고치고, 죽어가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사제들의 기적을 직접 보면 그들이 선택받았다는 것도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세상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은 마법과 기적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안다.
둘 다 ‘쌓인 것’에서 기원하며, 성황국은 종교라는 탈을 쓰고 많이, 그리고 오래 쌓인 것에 불과하다.
성황국이 쌓은 종교 그 자체를 ‘신’이라 부른다면 인정해 주지 못할 것도 없다. 천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진 종교가 자아내는 역사는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성황국이 주장하는 전지전능한 무언가는 없다.
“그럼 그분은 신앙을 포기한 건가?”
“믿는 걸 바꿨죠. 자신을 믿어 현세에서 벗어나겠다던데, 저는 무슨 소리인지 들어도 모르겠더라고요.”
스트레킬은 심경이 복잡했다. 그는 성황국을 증오한다. 그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신이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성인은 믿는다. 그러니 성인의 신앙도 믿는다. 그랬던 성인이 변했다고 하니, 성인을 신앙처럼 삼고 있는 스트레킬로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잡담은 여기까지. 일어나려나 봐요.”
기절한 마린의 몸이 몇 번 꾸물거리더니, 허릿심으로 연어처럼 튀어 올랐다. 그리고 재주 좋게 허공에서 몸을 빙글 돌려 바로 자세를 잡았다.
마린의 양손에는 놓쳤던 단검이 들려 있었다.
사방을 살피던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은 마르할을 발견하고는 다시 멍해졌다.
[꿈이 아니었어…?] [당연히 아니죠. 공국어 할 줄 알죠? 얼마나 익숙해요?] [15년의 세월만큼요.] [발음 빼면 원어민 수준이겠네. 그럼 공국어로 해요.]마린이 불만 섞인 시선으로 마르할 뒤편에 있는 세 명의 남녀를 보았다.
베스타롤라어를 쓰면 둘이서만 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공국어를 쓰면 저기 있는 사람들도 대화를 듣게 된다.
마르할은 믿을 수 있다. 용사 일행의 일원이고, 따지고 보면 그도 그녀 목숨의 은인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다.
공국의 기사, 그리고 한쪽은 제국식 복장을 하고 있다. 옆에는 기사까지. 필시 귀족일 것이다. 모두 그녀의 아군은 아니다.
마린은 조모가 타계하고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세상은 외모 반반한 고아 소녀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불신으로 다져진 시간은 현재의 그녀를 만들었다.
[괜찮아요. 제가 용사 일행의 일원이란 걸 말했는데도 저를 묶지 않은 사람들인걸요.] […그렇다면.]용사 일행도 손대지 않는다면, 마르할에 비하면 발톱의 때와 같은 그녀에게는 더더욱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런 계산이다.
“마린, 고향은 베스타롤라.”
“그게 끝이에요?”
“뭘 더 말해야 해요?”
“뭐… 아무 말 안 하는 것보다는 낫네요.”
마르할이 얼굴을 긁적였다. 여자 혼자 토지 경주에 참가한 걸 보면 그녀의 사정도 알 만하다. 그녀의 의심이야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그럼, 이제 땅을 얻어볼까요.”
서부에서 제일 중요한 건 언제나 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