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5
제15화
땅을 얻는다.
마르할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이제 그러려니 했지만, 마린은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마린은 과장 없이 토지 경주에 목숨을 걸었다.
토지 경주에 참가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먼저 깃발.
연합에서 파는 공식 깃발의 값은 절대 싸지 않다.
땅의 온전한 소유는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다. 겉으로나마 평민도 토지의 정당한 주인이 될 수 있게 해주는 깃발은 상당한 값을 자랑한다.
깃발을 구한다고 끝이 아니다. 하이에나가 되어 깃발 주인을 죽일 것이 아니라면 먼저 달려가 빈 땅에 깃발을 꽂을 수 있게 해줄 준마가 필요하고, 측량사가 올 때까지 먹을 식량과 하이에나들에게서 몸을 지킬 무기도 필요하다.
개척촌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의 과거를 물으면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자주 나온다.
기사, 상인, 귀족 제자, 지금도 유효한 작위를 가진 귀족 본인도 있다.
그런 자들마저 하루살이 인생으로 만드는 것이 토지 경주다.
토지는 영혼이다. 한 번 땅을 잃었던 그녀이기에 그 사실을 누구보다 절실히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마린은 의심을 담아 되물었다.
“땅을 얻을 수 있다고요?”
“물론이죠. 제가 누군데요.”
“…용사의 길잡이.”
“그런 사람을 못 믿어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문명의 탈을 쓴 야만인 서부에서는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다.
마린은 술김에 시비 붙은 사람을 반으로 갈라 버리는 기사를 보았다. 사람 둘을 썰어버리고 힘든 기색 하나 없던 기사는, 다음 날 술집 뒤편 공터에서 등에 칼이 꽂혀 죽어 있었다.
그것 말고도 그녀는 많은 것을 봐왔다.
여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서부고, 토지 경주는 서부에서도 가장 격한 폭력이 오가는 장소다.
불가능해야 옳지만,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는 사람은 그보다 더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사람이다.
용사 일행은 그녀에게 일종의 신앙과 같다. 신앙의 대상이 하는 말을, 그녀는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대신 퉁명스레 물었다.
“어떻게요?”
“이렇게요.”
마린이 말리기도 전에 마르할이 그녀의 깃발은 뽑았다.
깃발은 그녀의 목숨이다. 이 경주 한 번을 위해 몇 년을 일하며 돈을 모았던가. 머리에 피가 몰리며 손은 단검을 잡고 있었다.
뒷덜미를 스치는 서늘함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튀어 나갔을 것이다.
영혼을 찌르는 살기에 마린이 덜컥 멈췄다.
“살기는 이렇게 쓰는 거다. 마구잡이로 내뿜는 게 아니라.”
“…….”
“싸우지들 마시고. 저쪽부터 보자고요.”
마르할이 가리킨 방향에는 또 다른 깃발이 보였다.
“깃발이군요. 평범한 풍경 아닌가요?”
“깃발만 보이는 게 아니라 깃대도 반 이상 보이는 깃발이죠.”
레벨라는 추적 기사 지망생이었다.
추적 기사는 초인이면 될 수 있는 일반 기사와는 다르다. 추적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익히고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몸을 쓰는 재능과 머리를 쓰는 재능. 양쪽 재능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추적 기사다.
황궁의 추적 기사 시험에는 허허벌판에서 자기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목적지를 정하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다.
“깃대? 설마… 항법?”
“정답.”
항법. 뱃사람들이 쓰는 말이지만, 사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기술은 모두 항법이라 부를 수 있다.
핵심을 알자 나머지는 빠르게 이해되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지 경주의 또 다른 핵심은 깃발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벌리는 것. 깃발을 최대로 활용하려면 독도법이나 항법, 최소한 고등 수학 지식이 있어야 하는군요.”
“눈에 보이는 곳에 깃발을 꽂는 게 관행처럼 되어버렸지만, 토지 경주의 정확한 규칙은 ‘깃발과 같은 높이에서 봤을 때 동쪽에 깃발이 보여야 그 깃발을 인정한다’예요. 사다리 하나만 챙기면 되는 일이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사다리 챙긴 사람 본 적 있어요?”
“없군….”
스트레킬이 침음했다. 준귀족으로 대우받는 그도 동쪽에 깃발이 보이면 그게 끝이라 생각하고 토지 경주에 참가했다.
몰락한 전쟁 영웅이라지만, 그의 끈이 모두 끊어진 것도 아니다. 고위 기사의 무력과 혹시 그가 재기했을 때를 대비해 그에게 물밑에서 끈을 대는 사람이 꽤 있다.
그런데 그가 서부로 간다고 했을 때 그런 사안을 귀띔해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깃발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멀리 떨어뜨려 둘 수 있어요. 그리고 깃발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 좋은 점이 크게 두 개 있죠.”
마르할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하나. 당연한 말이지만 땅을 많이 얻을 수 있다. 둘. 다른 깃발 주인의 견제를 덜 받는다.”
“깃발 주인의 견제를 받아? 왜?”
“음. 레벨라. 자기가 전부 처리할 수 있다는 건 알겠는데, 이건 좀 심하지 않나요?”
“토지 경주는 눈속임. 처음부터 목적은 유물이었습니다. 토지 경주는 차선책. 그래서 황녀님께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레벨라가 입을 여는 것보다 용암처럼 들끓는 마린의 분노가 먼저였다.
“잠깐, 황녀? 제대로 설명해.”
바체아 제국이 망하고 자신을 황녀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은 므에트 제국의 황족밖에 없다.
서부 사람들은 동부를 증오한다. 서부가 망할 때까지 동부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고, 제국과 성황국은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착취한 공국도 증오하지만, 서부가 마족의 손에 들어가도록 방치한 제국과 성황국도 원망한다.
그녀가 참는 건 전부 마르할이 있기 때문이었다.
옆에 우상이… 마르할이 없었으면 죽을 걸 알면서도 검을 뽑았을 것이다.
“지금 숨겼다가 나중에 크게 터지는 것보다, 한번 끝장을 보고 가는 게 좋죠.”
마르할은 은밀히 스트레킬에게 눈치를 주었다.
정치 경험 풍부한 고위 기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올라 므에실리고. 그녀는 진짜 므에트 제국 황녀가 맞아요.”
마린은 한 마리 짐승이 되었다. 울부짖으며 단검의 힘을 최대한 발휘해 베이올라를 덮쳤다.
되도록 체술로 제압하려던 스트레킬은 마린이 든 단검이 풍기는 심상치 않은 힘에 어쩔 수 없이 검을 뽑았다.
채앵! 스트레킬의 팔이 밀려났다. 마린도 마찬가지로 손이 위로 들리며 앞면이 열렸다.
‘튕겨? 나를?’
황당했다. 기사도 못 된 계집과 힘으로 호각을 이루다니, 저게 말로만 듣던 바체아 제국의 유물이란 말인가.
하지만 당황한 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유물을 사용한 공격이 반격당한 건 처음인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얼굴이었다.
스트레킬은 본능으로 움직였다. 검을 버리고 마린의 배에 발차기를 날렸다.
퍼엉!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마린이 뒤로 날아가 몇 바퀴나 땅을 뒹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내장이 터져 즉사했을 공격이지만, 그녀는 그냥 콜록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말도 안 나오는군.”
“저게 특별한 물건이에요. 바체아 제국 고위 귀족이나 하나씩 가지고 있을 물건인데… 어디서 구했는지… 마린.”
몸을 낮추고 다시 덤벼들 준비를 하던 마린의 동작이 뚝 멈췄다.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마르할의 말을 듣는 순간 납덩이를 얹은 것처럼 몸이 멈춰 버렸다.
그녀는 새삼 눈앞에 있는 전설을 다시 인식했다.
용사 일행과 대등하게 대화하고, 그들에게 의견을 타진하는 걸 넘어 정면에서 대들기까지 하던 소년이다.
마린은 역사와 ‘쌓인 것’은 모른다. 하지만 희미하게, 사람을 남들과 다르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안다.
용사는 마왕을 죽이기 전에도 일검에 하늘을 가르던 괴물이었다. 일국의 왕도 하대하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마르할은 그런 용사 일행과 대등하게 기 싸움을 벌이던 사람이다.
[잠깐의 분노로 모든 걸 태워 버릴 거라면, 안 막아요. 그런데, 그게 당신의 전부인가요?] […아니요.]“대화가 통했네요. 그리고, 마린. 베이올라를 죽여도 제국은 아무렇지도 않을걸요? 그녀도 반쯤 도망쳐서 온 입장이니까요.”
“제국 황녀가 도망?”
“자세한 건 나중에 본인에게서 직접 들으세요. 베이올라도 그게 편하죠?”
베이올라는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들의 악의는 수없이 경험했지만, 누군가에게 직접 살기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악의를 넘어선 살의. 자신을 불태워서라도 타인을 죽이겠다는 살의가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다는 건, 그리고 그게 자신에게로 향했다는 건 온실 속 화초인 베이올라에게는 세상이 뒤집히는 충격이었다.
얼마나 충격이었으면, 애써 눈을 피하고 있던 시신과 핏물이 시야 한구석에 보여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베이올라의 상태를 본 스트레킬이 혀를 찼다.
“생애 첫 살기였나.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겠군. 우리끼리 이야기하지.”
“그러죠. 도시 내부의 정리가 끝나면, 도시를 차지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깃발이 보이도록 만들 겁니다. 그때 깃발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깃발을 통한 장난질은 안 통한다. 도시 하나가 달린 일, 저 안에 있는 놈들은 전부 뒷배를 가진 집단이다. 깃발을 몇 개나 가지고 있겠지.”
마르할처럼 항법을 이용할 생각까지는 못 했지만, 스트레킬도 부하들과 함께 가져온 깃발이 다섯 개는 된다.
도시를 차지하고 여유가 있으면, 근처에 있는 깃발 주인은 모조리 죽이고 이 근처의 땅을 모두 먹으려 할 것이다.
“깃발을 가지고 있어도, 꽂지 못하면요? 마침 여기에는 공국 고위 기사가 있네요.”
“나보고 싸우라는 건가?”
“분위기만 잡아주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싸울 일은 아마 없을 거고, 싸움이 일어나도 우리 피해는 없어요.”
“확신할 수 있나?”
“확신은 못 해요. 그래도 제 이름 정도는 걸 수 있다고 할까요.”
“나는 찬성하겠다.”
“나도 찬성. 그런데 이 인원으로, 고작 이런 땅을 얻어서 어디에다 쓰려고?”
마르할을 따라가는 것 말곤 다른 방법도 없는 두 사람은 당연히 찬성이었다.
“마린, 당신이 정하면 돼요. 우릴 따라올래요? 혼자 깃발을 지킬래요?”
“따라갈게요.”
마린도 살아 있는 전설이 하는 제안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 * *
모두의 찬성을 얻은 마르할은 땅에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지도가 아니다. 도시가 멀쩡했던 시절의 지도다. 도시 내부의 주요 시설과 인근의 지형까지 모두 상세하게 나와 있는, 즉석에서 손으로 그렸다고는 믿을 수 없는 지도.
레벨라는 망설임 없이 지도를 슥슥 그리는 마르할을 괴물 보듯이 바라보았다.
“마족 발호 이전의 서부 지도는 군사 물자로 관리됩니다. 그걸 어떻게?”
“위대한 용사님을 이끌던 길잡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지도를 읽을 줄 아는 것과 지도를 외워서 똑같이 그리는 게 같을 수는 없다. 그녀도 지도를 읽을 줄은 알지만, 그걸 그리라면 평생을 살았던 제도의 지도도 못 그린다.
지도를 그린 마르할이 지도 위에 세 개의 점을 찍었다.
“여기가 도시 중앙. 그리고 여기가 아마 저희가 있는 위치. 그리고 이게 동쪽에 있는 깃발. 이 깃발을 제거하고….”
마르할은 도시 동쪽을 둘러싸는 반달을 추가로 땅에 그렸다.
“이 범위에 다른 사람이 깃발을 꽂는 걸 방해하면, 무슨 수를 써도 도시는 먹을 수 없게 되죠.”
“말은 쉽군. 하지만 이 넓은 범위를 방어하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천 단위의 병사가 필요하다.”
“여긴 전쟁터가 아니에요. 물 샐 틈 없이 꼼꼼히 막을 필요는 없고, 또 혼자서 모든 일을 할 필요도 없어요. 지금 보이는 깃발의 위치로 짐작했을 때… 도시 근방에 꽂혀 있는 깃발 숫자와 위치는 대충 이쯤. 이들하고 대화하죠.”
“그들이 협력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도시를 차지한 그들도 할 수 있겠죠. 오히려 깃발 주인은 도시 주인의 말을 따르려 할 겁니다.”
깃발의 높이와 토지 경주의 규칙을 이용해 도시를 차지한 사람을 압박하는 건 좋다. 하지만 마르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도 할 수 있다.
평범한 용병인 마르할과 확실한 소속 집단이 있는 누군가.
레벨라가 깃발 주인이라면 후자의 편을 든다.
“뭐, 그렇죠. 제가 무슨 제안을 하든 저쪽이 하는 제안이 더 매력적일 테니까요.”
“그러면 소용없는 게….”
“먼저 계략을 꾸미는 쪽이 유리하다. 인류가 이 땅에 발을 디딘 이후 늘 유효했던 진리죠. 이 작전에는 한 가지 가정이 필요해요. 우리가 먼저 움직이고, 저쪽은 나중에 움직인다. 뒤늦게 회유된 사람들이 깃발을 바꾸려 해도, 그럴 상황이 아니라면? 깃발을 뽑는 순간 가지고 있던 토지 권리도 빼앗기게 될 상황이라면요?”
“그게 가능할 리가….”
“측량사. 토지 경주의 법. 서부의 절대 권력. 그들이라면 가능해요.”
깃발을 땅에서 뽑았는데 측량사가 찾아오면? 그리고 주변에 땅을 노리는 하이에나가 잔뜩 있다면?
깃발 주인은 절대로 깃발을 뽑지 못한다. 목숨을 걸고 땅을 얻으려는 자들은, 목숨을 걸었기에 땅을 포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