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59
제159화
에고만의 이름은 그녀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고아였던 알라실은 에고만의 이름을 대가로 굶지 않는 삶을 얻었다.
굶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녀의 인생은 고아원에서 지낼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녀가 살던 성황국의 고아원에선 낮에 일을 했다.
여자와 아이들은 바느질을 하거나 근처 산과 숲 외곽에서 약초나 열매를 캤다. 적당히 성장한 남자들은 고아원이 소유한 밭을 가꾸거나 일손이 필요한 작업장에서 일했다.
녹초가 되도록 일해도 고아들의 손에는 돈 한 푼도 떨어지지 않았다.
고아원 어른들은 이래도 남는 게 없다며 늘 아이들을 향해 화를 냈다.
알라실도 아이들 사이에서 바느질했다.
원장은 구멍을 뚫고 실을 끼워야 하는 작업이라면 모두 바느질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가죽, 천, 양피지, 종이까지. 알라실은 여러 물건에 구멍을 뚫고, 그 작은 구멍으로 바늘과 실을 통과시켰다.
고아원에는 자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교황청의 실험체가 된 이후에도 자유는 없었다.
고아원과 이름도 위치도 모르는 성황국 어딘가의 지하는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볕이 들지 않아 시간 감각이 고장 난 그곳에서 하루는 세 갈래였다.
알라실은 다쳤다. 살을 찢고, 뼈를 부수고, 불로 살을 지졌다.
그녀는 자신이 들어가 있던 기구가 고문 기구라는 것을 훗날 알았다.
어쨌든, 그녀는 고문실 안에서 상처를 얻고 치료하기를 반복했다.
알라실은 병들었다. 성황국 최고의 의사들이 대륙에서도 최악의 병에 걸린 사람들의 피를 그녀의 피부에 묻히고, 먹였다.
내장을 쥐어짜는 고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고통이 극에 이르렀을 때, 사제들이 그녀를 치료했다.
알라실은 호흡하지 못했다. 걷는 것, 숨 쉬는 것, 말하는 것까지 모두 에고만의 이름에 어울리게 교정받았다.
고아 알라실이 가지고 있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성황국의 역사와 율란 에고만에 대한 사실을 공부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호된 벌을 받았다.
벌로는 고문 기구의 숫자가 늘거나, 환자의 숫자가 늘거나, 둘 다였다.
지옥은 성황국 어딘가의 지하에 있었고, 지옥에서 살아 나왔을 때, 고아 알라실은 알라실 에고만이 되었다.
성황국에서의 생활도 자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방이 감시의 눈길이었고, 그녀는 매일 마음에도 없는 웃음과 함께 사람을 치료해야 했다.
곪은 상처에서 터져 나오는 고름과 환자가 토해내는 피 섞인 기침을 맞으며 그들에게 축복과 행복을 빌어주었다.
알라실 에고만에게는 행복도 축복도 없었지만, 그녀가 건네는 말에는 행복과 축복이 있었다.
마르할은 그녀를 에고만으로 보지 않는다. 진짜 성인을, 율란 에고만을 알고 있는 마르할에게 알라실은 알라실이다.
알라실은 서부에서 처음으로 삶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더 에고만이라는 이름이 반갑지 않다.
“무슨 일인데요?”
“메라 이단심문관은 제 생각보다 훨씬 정신 나간 인물이었어요. 개척촌 우물에 누가 독을 탔다는 건 알고 있죠?”
“알아요. 사제를 파견해 달라는 요청이 몇 차례나 있었으니까요. 안톤 주교는 돈이 안 된다고 전부 무시했지만요. 멍청한 사람이죠. 공짜로 해줘도 이득인 일을 돈 받고도 안 하려 하다니.”
제국과 성황국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서부지만, 공짜로 자기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적의를 가질까.
그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아스트람이 우물에 독을 탄 마을은 열 개가 넘었다. 마을 사람들의 숫자를 합치면 수천 명은 된다.
교회에 우호적인 수천 명의 사람이 생긴다. 그건 이미 하나의 세력이다.
사제 한 명 파견으로 수천 명의 우군을 만들 수 있다면, 돈을 주고서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안톤 주교는 돈이 안 된다며 사제를 보내지 않았다.
“남쪽 도시의 알레스는 알고 있죠?”
“알아요. 성황국의 끄나풀 맞죠?”
“알레스는 그 사건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사람을 포섭해 독을 정화한 고행 사제를 성자로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죠.”
“자기가 성자라도 되겠대요?”
“아뇨. 그 사람의 입지가 좋지 않거든요. 이단심문관이 찾아갈 정도로요.”
“안톤 주교 같은 소인배 하나 잡자고 이단심문관이 서부까지 왔을 것 같지는 않더라니….”
안톤 주교는 운 나쁘게 얻어걸린 것이고, 메라가 노리던 진짜 표적은 아마 알레스였을 것이다.
“아뇨. 안톤 주교를 찾아온 게 맞아요. 정확히는 당신이지만요.”
“…제 정보는 성황국 내부에서도 극비 자료인데… 그 이단심문관, 생각 이상의 거물이었네요.”
“그건 모르겠고, 그의 계획은 정신이 나간 게 맞아요. 메라는 당신을 성녀로 만들려고 하거든요.”
알라실은 이미 율란의 대체품으로 키워지고 있다.
그녀의 머리에는 율란의 생애가 모두 들어 있다.
율란이 명성을 얻은 방법과 그가 인외라 불리는 힘을 얻은 방법까지.
역사는 반복된다.
율란은 평범한 사제 시절에도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이 대륙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건 마족이 나타나고 최전선에서 병사를 돌보면서부터다.
죽지만 않으면 어떤 상처도 치료하는 사제의 이름은 공국에, 나아가 마족을 상대하는 최전선 전역에 퍼져 율란의 역사가 되었다.
알라실이 행하는 무료 치료도 같은 맥락이다.
모두 명성을 얻는 과정이다. 이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진즉 교황청으로 강제송환 되었을 것이다.
명성을 얻은 그녀를 교황청이 가만히 놔둘까. 그리고 메라는 그녀를 왜 성녀로 만들려는 걸까.
성녀가 된다는 건 자유를 잃고 족쇄를 차는 일이다.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그게 토지 문서를 돌려받는 조건이잖아요?”
메라는 변방 주교 따위는 언제든 처형하고 모든 재산을 몰수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토지 문서가 다시 마르할 명의로 돌아가도 끝이 아니다.
이단심문관이 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하면, 교황청은 성황국의 이름으로 연합에 간섭할 수 있다.
알라실도 서부에서 보고 들은 게 있다. 연합은 공평한 조직이 아니다.
연합의 주인 중 하나인 성황국이 작정하고 손을 쓰면 마르할 본인은 몰라도 마르할의 땅은 무사할 수 없다.
그러니 알라실은 성녀가 되어야 한다.
그녀가 족쇄를 차면 마르할이 짊어진 것들은 무사하다.
“그까짓 거 하면 되죠. 알잖아요? 어차피 나중에는 성녀 비슷한 무언가가 될 예정이었어요.”
교황청은 그녀를 성인처럼 인외의 존재로 만들려 한다.
메라가 아니었어도 그녀는 교황청이 만든 대본대로 명성을 얻었을 것이다.
족쇄를 차는 시기가 조금 당겨졌다. 그뿐이다.
“도망치고 싶으면 말해요. 자리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니까. 아니면 세상 끝까지 도망쳐도 되고요.”
“당신이 같이 가준다면 생각해 볼게요.”
“당장은 힘들어도, 제 일이 마무리되면 못 따라가 줄 것도 없죠.”
“말만이라도 고맙네요. 저기 안톤 주교가 나왔어요. 가봐요.”
외출 준비를 끝낸 안톤 주교가 교회 입구에서 나오고 있었다.
안톤 주교에게 향하는 마르할에게 알라실이 물었다.
“아, 맞다. 만약 도망치겠다고 하면, 저도 서부 사람이 될 수 있나요?”
“지금도 서부에 살잖아요?”
마르할은 안톤 주교와 함께 교회를 나섰다.
알라실은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한 사제가 조심스레 알라실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일과, 다치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저, 알라실 수녀님. 슬슬 준비하셔야 합니다.”
“저기요. 저 서부에 살고 있는 거 맞죠?”
“네, 네. 그렇겠죠…? 여기가 서부니까요.”
“서부 사람. 서부 사람. 흐흥. 그거 좋네요. 거기서 뭐 해요? 시간 없다면서요.”
알라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교회로 들어갔다.
* * *
마르할의 부하와 연합에 가 토지 양도 문서를 작성한 안톤 주교는 교회로 돌아왔다.
안톤 주교는 집무실 의자에 몸을 묻었다. 나이가 들며 조금씩 아파오는 허리를 위해 성황국 금화를 다섯 개나 주고 주문 제작한 의자였다.
토지 문서가 손에 있을 때는 모든 걸 얻은 것 같았다.
황금과 권력 속에서 남은 인생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토지 문서가 사라지니 허탈한 게 아니라 홀가분한 기분이다.
안톤 주교는 자신이 분에 넘치는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기분이 좋아 보임다?”
뒤를 돌아보려던 안톤 주교의 얼굴을 강력한 손아귀가 고정했다.
손바닥 전체에 박인 굳은살의 감각이 선명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슴다.”
“그, 그쪽과는 이야기가 끝난 게 아니었나?”
“그건 사부님임다. 저랑은 아님다.”
“똑같은 거 아닌가!”
“다름다.”
얼굴 한쪽을 잡고 있던 손이 사라졌다. 대신 반대쪽 손아귀의 힘이 강해졌다. 눈이 짜부라질 것 같은 고통에 눈물이 찔끔 흘렀다.
안톤 주교의 눈앞에 작은 휘장이 내밀어졌다.
얼핏 은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휘장에는 해골이 새겨졌다. 해골의 벌어진 입 안에는 소금 한 덩이가 세심하게 표현되었다.
이단심문관이 처음 생길 당시 소금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최초의 이단심문관은 이단심문관의 상징으로 죽음을 나타내는 해골과 부의 상징인 소금을 골랐다.
소금을 문 해골은 평생 부를 멀리하고, 부패한 성직자를 처단하며, 이단에게 죽음을 내린다는 뜻이 담긴 이단심문관의 표식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수습생이었던 여자가 오늘 이단심문관이 되어 나타났다.
“전부 속였던 것이냐! 이단을 처단한다는 놈들이 역겹기로는 이단보다 더하구나! 끄으윽!”
노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노아는 어지간한 남자보다 키가 크다. 그녀의 손 하나는 안톤 주교의 얼굴 반을 덮었다.
“그 이상 사부님을 모욕하면 죽이겠슴다. 이건 그냥 제 변덕임다. 안톤 주교. 당신은 적당히 부패하고, 적당히 겁이 많은 인간임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내 모욕인가? 그래, 어차피 난 그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자포자기한 안톤 주교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한편으로 그런 계산도 있었다. 여기서 자신이 깔끔하게 죽으면 교회는 무사하다. 교회에서 일하는 그의 자식들도.
나중에 파견될 주교가 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교회에서 일하는 일꾼은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다.
“당신은 인생을 후회함까?”
“아니. 후회하지 않는다. 여자도 마음껏 안았고, 권력도 누렸다. 겁 많은 소인배로 태어나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이지.”
“그렇슴까.”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이 목으로 옮겨갔다. 휘장을 들고 있던 손도 더해졌다.
크고 단단한 두 손이 안톤 주교의 목을 감쌌다.
안톤 주교는 힘으로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노아의 손은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죽음은 생각보다 별거 아니구나.’
안톤 주교는 의식을 잃었다.
* * *
노아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교회를 나왔다.
교육생 시절 실기 1등을 놓친 적 없는 그녀에게 평민들의 눈을 피하는 건 졸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노아는 거리로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자 메라가 있던 자리에는 당분간 바쁠 것 같다는 말과 아직 가르칠 게 몇 개 남았으니, 배우고 싶다면 근처에서 기다리라는 내용의 편지가 있었다.
노아는 메라가 남긴 편지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메라는 그녀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라고 했다.
문득 노아는 스스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노아가 성기사가 되기로 한 건 성기사가 되면 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부모를 잃고 얼마 안 된 그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몇 개 없었고, 성기사는 그중 제일 괜찮은 선택이었다.
교황청에 들어간 후로는 훈련의 나날이었고, 메라의 제자가 된 뒤로는 메라가 시키는 일만 했다.
자유가 된 노아는 할 게 없어졌다.
이단심문관의 업무가 있지만, 이단심문관에게는 할당량이 없다.
몇 년이나 일하지 않은 이단심문관의 기록도 있다. 실은 일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몇 년이나 한 이단 무리의 뒤를 쫓느라 연락이 안 된 거지만, 어쨌든 이단심문관은 일하지 않는다고 처벌받는 직업이 아니다.
노아는 가장 기본적인 걸 자신에게 물었다. 인생은 무엇인가?
노아는 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답을 얻을 상대로 고른 것이 안톤 주교였다.
적당히 늙었고, 적당히 능력 있고, 적당히 부패한, 적당함의 상징 같은 안톤 주교라면 괜찮은 답을 내줄 것 같았다.
안톤 주교의 답은 인상적이었으나, 그녀가 원하는 무언가는 들어 있지 않았다.
길을 걷던 그녀의 눈에 한 사람이 보였다. 그녀도 아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저 사람과 만나면 안 될 이유가 있나 한차례 고뇌했다. 만나면 안 되는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노아가 마르할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