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6
제16화
마르할은 레벨라와 함께 말을 타고 있었다.
주인이 죽었는지, 버려진 건지, 황야에서 풀을 뜯고 있던 말에게 몰래 다가가 고삐를 잡았다.
도시 주변의 깃발 주인을 모두 만나려면 시간이 없고, 또 이동 거리도 상당하다.
여태까지는 말 없이도 괜찮았지만, 원래 서부에서의 이동은 말을 타는 게 기본이고, 말을 마을 단위 자산으로 관리하는 개척촌도 있다.
“꽤 괜찮은 준마입니다. 이런 녀석이 주인 없이 떠돌고 있다니….”
“제도에서도 비싼 녀석인 모양이죠?”
“겁도 없어 보이고, 근육도 탄탄합니다. 기마를 타는 기사단이나 고위 기사들이나 탈 물건일 겁니다.”
“그래서 비싼가요?”
“팔면 제도 구석에 집 한 채는 살 수 있을 겁니다.”
“이 근처 땅을 전부 뒤지면 이런 말이 200마리는 나올 텐데.”
200마리? 이게 다 얼마야?
욕심이 있냐 없냐를 논하면 욕심이 많은 편이고, 도박을 좋아하냐 싫어하냐를 물으면 도박을 좋아하는 편이다.
도박하는 심정이 아니면 베이올라의 호위를 맡지 않는다.
냉정하게 말해 베이올라는 황제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녀 위에는 천재라 불리는 세 명의 형제가 있고, 그들이 아니더라도 황족들은 성정이 잔인하다.
한 사람이 황제가 되면 다른 형제들의 팔다리를 끊어버릴 것이다.
베이올라는 여자이니 팔려 가듯 타국 왕족의 첩실로 들어가겠지.
그나마 그건 살아남기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최악은 황족과 그 측근들이 함께 숙청당하는 것이다.
레벨라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베이올라의 직속 호위가 되었다.
위험이 큰 만큼 성공했을 때의 배당도 클 테니까.
꿀꺽. 레벨라가 침을 삼켰다.
저기 있는 말들이 다 돈이다. 그녀 주머니에도 돈이 있긴 하지만, 쓸 수 있는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돌아갈 때 몇 마리 데려갈 수 있을까요?”
“무리일걸요. 전문가들이 있거든요.”
“전문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연합이 만들어질 때부터 있었다는 거죠. 아까 좋은 말이라고 했죠? 그런 말들이 하늘에서 내려왔겠어요? 땅에서 솟아났겠어요?”
“…연합이군요.”
“맞아요. 전설의 명마 같은 놈들이 아닌 이상 말이 땅보다 비쌀 수는 없죠. 부자들은 땅을 위해 억만금이라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고요. 말을 팔고, 버려진 말을 다시 수거하고, 그렇게 수거한 말을 다시 팔고. 말을 샀던 사람들이 항의해도 소용없어요. 여긴 힘이 곧 법인 서부니까.”
서부를 감싼 거대한 손길에 레벨라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연합이 만들어진 배경과 그들이 서부 전역에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서부 전체가 연합의 장난감이군요.”
“그렇게 보이지만, 그건 또 아니란 말이죠. 떠들면 밑도 끝도 없어요. 그냥 지주들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만 알아둬요.”
대화가 끊어졌다.
괜찮은 말이 보일 때마다 레벨라는 한참이나 그 말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다 가져갈 필요도 없다. 세 마리 정도만 가져다 팔면… 헐값에 팔아도 한동안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저 멀리 깃발과 그 주인 일행이 보였다. 레벨라가 그를 발견한 것처럼 그들도 이쪽을 발견하고는 무기를 뽑았다.
“그런데, 정말 저희 둘이 오는 게 정답이었습니까?”
“저야 스트레킬과 함께 오는 게 편하죠. 전신 갑옷만 슬쩍 보여줘도 어지간한 사람은 전부 꼬리를 말 테니까요. 하지만 당신과 베이올라, 그리고 마린이 남았다가 싸움이라도 나면요?”
“싸우지 않을 겁니다.”
“베이올라는 남을 무시하는 태도가 기본이죠. 마린은 세상을 증오하는 피 끓는 청춘이고요. 잘못 꺼낸 말 한마디에 마린이 폭발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아뇨.”
베이올라는 황족이다. 황제가 아닌 누구에게도 얕보여서는 안 되며,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눈치를 봐야 한다. 베이올라를 지켜주던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평생을 몸에 익힌 습관이 하룻밤 사이 사라질 리가 없다.
베이올라는 고향을 잃은 사람 앞에서 섣부른 말을 내뱉는 경솔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의 태생에서 나오는 오만함은 본인이 없애고 싶어 한다고 없앨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별일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레벨라는 베이올라를 믿는다. 베이올라는 믿지만, 베이올라를 키운 환경은 믿지 않는다.
제발 돌이킬 수 없는 상황만은 되어 있지 않기를.
* * *
베이올라는 황족이다.
므에트 ‘왕국’의 역사는 300년에 이르지만, 므에트 ‘제국’의 역사는 100년이 채 안 된다. 그리고 므에트 제국의 비교 대상은 늘 반 천년 역사를 가진 바체아 제국이었다.
므에트 제국이 역사와 품위에 집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베이올라는 그런 환경에서 살았다.
자신의 위신을 세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타인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천박한 행동이라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박함을 우아함, 높은 식견에서 나온 통찰로 만드는 게 권력이 가진 힘이다.
마르할이 레벨라와 떠나고, 남겨진 세 사람 사이에는 대화가 없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서로 다른 신분,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세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주제란 많지 않았다.
숨 막히는 침묵이었다. 마린은 스트레킬과 베이올라를 노려보고 있었고, 스트레킬은 근처에서 시신을 치우고 있었다.
그가 주워 온 삽을 땅에 박을 때마다 삽의 크기보다 세 배는 큰 구멍이 만들어졌다.
셋 중에서 가장 침묵을 버티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베이올라였다.
그녀 주변에는 늘 그녀에게 아부하는 누군가가 있었고, 황궁을 나온 다음에는 레벨라가 따라다녔다.
“이봐. 과거의 그는 어땠지?”
“누구?”
“마르할, 그 천민 말이다.”
“천민? 천민이라고? 감히 누구한테!”
마르할은 마린의 우상이다. 그녀의 은인이었으며, 그녀 조모의 은인이다.
그녀는 참을성 있는 성격이 아니다. 긴 도피 생활과 그 이후 이어진 길바닥 생활은 마린에게 한 가지 법칙을 가르쳐 주었다.
참는 놈이 호구다.
그게 귀족의 너그러움에서 나온 자비든, 기사의 명예에서 나온 용서든, 당사자들은 그들을 호구라 생각하고 벗겨 먹을 생각만 한다.
귀족과 기사를 대하는 태도조차 저렇다. 마족에게 고향을 빼앗기고 동부로 쫓겨난 소녀와 노인에게 삶은 삶이 아니었다.
성황국에서 믿는 신이 정말로 있다면, 그 신은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무언가일 게 분명했다.
마린은 인내를 버렸다. 참는 법을 잊었다.
스트레킬이 마린의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두 사람의 거리는 지척이었다.
마린이 베이올라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고, 베이올라는 그 손을 낚아채 몸을 돌리며 마린을 땅에 메다꽂았다.
‘꼴에 황녀라고, 기본적인 호신술은 익히고 있었나.’
스트레킬은 삽을 버리고 두 사람을 중재하기 위해 다가갔다.
땅에 엎어졌던 마린이 조금 전에 보여줬던 것처럼 몸의 탄력을 이용해 벌떡 일어났다.
번뜩이는 마린의 눈은 비정상적으로 붉었다.
“…광전사.”
초인의 일종이며, 기사보다는 용병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모습이다.
피와 죽음의 역사를 쌓은 사람 일부는, 피를 보면 자신을 주체 못 하고 피에 미친 살인귀가 된다.
피와 살육의 역사에 자신을 내던진 광전사는 이성을 잃는 대신 일개 용병이 낼 수 없는 힘을 낸다.
마린은 강도와 싸우며 그들을 최대한 죽이지 않으려 했다. 당시에는 사람을 죽인 경험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지만, 광전사가 될 정도라면 그 반대라고 보아야 한다.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이 죽였던 거였군.’
과도한 피를 보고 폭주하게 되면 그녀 본인도 자기가 어디로 갈지 모를 테니까.
한 명은 피를 무서워하기에 피를 보면 안 되고, 한 명은 피를 갈구하기에 피를 보면 안 된다.
‘이 정도로 반대되는 사람이 모이기도 힘들겠어. 우선 단검을 꺼내기 전에 제압해야겠군.’
광전사는 신체 능력이 오른다. 지금의 그녀는 초인, 기사와 능히 힘겨루기가 가능할 것이다. 거기에 유물인 단검까지 들면, 스트레킬도 상처 없이 제압할 자신이 없다.
이성을 잃은 마린이 베이올라에게 달려들었고, 그 사이로 스트레킬이 끼어들었다.
스트레킬의 주먹이 마린의 허벅지, 배, 옆구리를 차례로 강타했다. 옆으로 날아간 마린이 배를 움켜쥔 채 숨을 몰아쉬었다.
마린이 여전히 붉은 눈으로 스트레킬을 노려봤다. 그러나 붉은 기운은 아까보다 확연히 약해져 있었다.
“몸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하는 애송이가 하나 더 있었군. 내 제자가 돼라. 그러면 최소한 방금같이 허무하게 당하는 일은 없게 해주마.”
“…난 이미 배운 게 있어.”
“길어봤자 일주일. 육체 단련법과 검을 휘두르는 궤적 몇 개를 배운 게 전부겠지. 아닌가?”
정곡이었다. 일주일도 아니고 사흘이다. 도둑이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지만, 그 시간에 아이들을 초인으로 만들 단련법을 전수해 줄 수는 없었다.
“배운 걸 버리라는 게 아니다. 그 위에 더 쌓으라는 거지. 무슨 뜻인지는 나중에 알게 될 거다.”
“배우면 당신을 죽일 수 있어?”
“나는 10년도 전에 내 스승을 뛰어넘었다. 모든 건 네가 하기 나름이지.”
마린의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땅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정면에는 베이올라가 비슷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스트레킬은 차마 소리 내어 웃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웃었다.
‘정말이지, 정반대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닮았어.’
어디서 작정하고 데려와도 힘들 것 같은 인간 군상이었다.
* * *
마르할과 레벨라는 계속 전진했다.
앞으로 가는 말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깃발 주인과 그 일행의 적의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살기를 느낀 말들이 흥분하고 있었다.
“저들을 설득하기 전에 미리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죠?”
“당신 계획은 구멍투성이입니다. 바로 생각나는 것만 해도 대책을 몇 개나 떠올릴 수 있어요.”
“음음. 생산적인 논의는 좋은 거죠. 말해보세요.”
“당신 계획의 핵심은 도시에 깃발을 꽂아도 그 깃발이 인정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냥 많은 깃발을 가지고 사방에 깃발을 꽂으면 됩니다. 도시에 들어간 사람은 백이 넘고, 그들이 준비한 깃발도 백 개는 되겠죠. 그 숫자의 깃발이 있으면 당신이 그렸던 지도를 전부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일차원적으로 보면 그렇죠.”
“일차원적? 제가?”
“안 그런 척하더니 당신도 결국 제국 귀족이네요. 높은 지위에 있는 우월함을 내세우는 인간.”
까득. 레벨라가 이를 깨물었다.
“당신은 사람을 긁는 것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군요. 하나 말해두면, 저는 그런 사람을 가장 혐오합니다.”
“자기혐오? 아니면, 부모 이야기인가요?”
“제가 검을 뽑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지금은 그러려고 온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다음에 다시 하죠.”
“다시 하는 겁니까.”
“실은, 저도 제국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증오하고 있죠. 아주아주 많이. 서부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처럼요.”
증오하고, 증오하고, 또 증오한다. 살을 벗기고 뼈를 불사르고 영혼을 짓이겨도 없애지 못할 증오다.
마르할이 웃는 건, 모두 빌어먹을 인간들과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그 약속이 있기에 그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지만, 그렇다고 영혼에 낙인처럼 박힌 감정이 사라지는 일은 없다.
“마족 사태에 대해 제국의 조치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건 제국의 학자들도 황실을 비평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왜 그토록 제국을 증오하는 거죠?”
“서부에서 살다 보면 알게 될 거예요. 제국에 대해서도, 연합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가서, 제 계획이 구멍투성이라고 했죠? 맞으면서 틀려요. 계획의 구멍은 저기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메워줄 거거든요.”
알아서 서행한 말은 어느새 깃발 바로 근처까지 와 있었다.
깃발 주인은 용병으로 보이는 사내였고, 그는 십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었다. 사내들이 쇠뇌를 겨눴다.
“멈춰라! 그 이상 다가오면 쏘겠다!”
공국어이긴 했지만, 그 억양이 서툴렀다.
레벨라는 반사적으로 마르할을 찾았다. 이 어처구니없는 언어 능력을 가진 사내는 이번에도 무언가를 보여줄 것인가.
그리고 마르할은 이번에도 그녀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이웃 주민으로서 대화하러 왔습니다만, 이거 의외의 장소에서 동향 사람을 만난 것 같네요. 헤센 지방?”
“어, 어떻게…?”
“홍차가 괜찮죠. 상품으로 못 쓰는 찻잎을 가져가 우린 물로 밥을 지으면 그게 별미죠. 안 그래요?”
“쓰읍….”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도는지 남자가 침을 삼켰다. 마르할과 레벨라를 겨누고 있던 쇠뇌도 모두 내려간 뒤였다.
“무슨 용건이지?”
용병 남자가 한결 너그러워진 태도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