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62
제162화
마르할은 손으로 한차례 턱을 쓸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네요.”
“나는 북부가 열릴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슬의 마법은 제가 본 마법사 중에서도 특이한 편이죠. 일단 제 계획이 성공하기는 하나 보네요.”
아젠만이 허리를 숙였다. 그는 책상 아래에서 지도 하나를 꺼냈다.
서부의 지도는 대부분 옛날 지도다.
개척 지역을 넘어 서쪽으로 가려면 연합이나 용병 길드의 허가가 필요하다.
대부분은 허가 따위 무시하고 자유롭게 서부를 오가지만, 몇몇 사람은 연합에게 감시당하고 있다.
지도 작성이 가능한 식자들이다.
서부의 지도가 돌면 지도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계획을 짜기 시작할 거고, 그건 연합에서 바라는 바가 아니다.
아젠만이 꺼낸 건 최근 작성한 지도였다. 천하를 담은 땅과 천하를 담은 땅 안에 있는 몇몇 마을의 위치, 토지 경주가 시작되었을 때 유리한 출발 장소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북부가 열릴 때를 대비해 준비한 지도다.”
“제가 그걸 외우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대답만 들을 수 있다면 상관없다. 다른 사람들이, 하일리와 제국 황녀조차 눈앞의 끼니를 걱정할 때 너는 북쪽을 그리고 있어. 그 눈에 세상은 어떻게 보이지? 넘을 수 없는 벽들의 향연? 적당히 어려운, 해결할 보람이 있는 문제?”
“식량이 필요하다. 동부의 식량을 끌어오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면 남은 답은 하나죠.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일이에요.”
“그 조금이 언제나 역사를 바꿔왔다. 이번에도 역사를 바꾸겠지. 먼저 움직이는 자가 유리하다. 네가 한 말일 텐데?”
마르할은 첫 토지 경주가 시작된 이후 5년 동안 아젠만을 봐왔다.
마르할은 눈앞의 아젠만이 낯설다.
아젠만은 이성적 판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한 번 이익이라고 판단하면 자존심과 명예도 망설임 없이 내던지는 이성의 화신이다.
감정적인 질문으로 질척하게 달라붙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르할에게 달라붙은 아젠만의 시선은 떨어질 줄 몰랐다.
“나는 아직 용사를 찾고 있다.”
“그랬어요?”
“그래. 그를 만나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바로 네게 한 질문이다.”
“그런 걸 물어서 뭐 하게요?”
“범인의 한계를 알고 싶었다. 내가 무슨 수를 써도 넘어서지 못했던 쌓인 것들을 개인이 넘어설 수 있는지. 그런 자들의 눈에 세계는 어떻게 보이는지.”
“제 대답은 참고가 안 될 건데요.”
아젠만의 뜻은 알았다.
아젠만은 만인에게 인정받는 천재다. 하지만 한 번 실패했다.
연합이 세워지고 토지 경주가 생기지 않았으면, 아젠만은 어디 소국에서 서류나 보고 있었을 것이다.
아젠만이 실패한 건 그가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조차 위로 올라가기 위한 발버둥이었다면, 역사를 가지지 못한 자가 역사를 가진 자를 따라잡기 위한 방법이었다면, 그는 역사에 패한 것이다.
귀족이, 왕족이, 기사가 쌓은 역사 앞에 천재는 좌절했다.
“당연히 아시리라 생각하는데, 일단 저도 귀족이거든요? 그것도 상당한 역사를 가진.”
“그 정도 재능은 천운의 영역이다. 역사를 쌓은 귀족의 자식이 모두 천재라면, 내가 본 무능아들이 설명되지 않아. 내가 원하는 건 부모에게 물려받은 권력 없이 자기 힘으로 역사를 쌓아 올린, 역사를 바꾸는 사람의 대답이다.”
“배경도 없이 역사를 쌓은 사람. 그래서 용사네요.”
“그래.”
용사가 역사를 바꿨다. 그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다.
용사가 없었으면 세계는 멸망했거나, 제국과 성황국이 양분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걸 막고 현재의 대륙을 만든 사람이 용사다.
“최근 비슷한 질문을 자주 듣네요.”
“이상한 인간이 다 있어.”
“각하 이야긴데요.”
“나한테는 칭찬이다.”
마르할은 의자에 드러눕듯 앉았다. 팔짱을 끼고 검지로 팔뚝을 두드렸다.
“세상이라… 확실히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건 이제 없는 느낌이네요.”
“이제 없다?”
“예전에는 많았는데, 꼭 벽을 넘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벽이 있으면 돌아가면 되고,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을 찾으면 되잖아요? 그 용사조차 일행이 있었는데, 저라고 세상 혼자 살 이유 있어요?”
아젠만은 마르할이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열린 입에서는 침이 떨어졌다. 솔직히 멍청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아젠만은 이마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웃었다.
한 손은 이마에, 한 손은 배를 부여잡고 목이 쉬도록 웃었다.
끅끅대는 그의 눈에선 눈물까지 떨어졌다.
웃음에 울음이 반쯤 섞였다.
아젠만은 울면서 웃으며 말했다.
“한심하군! 한심해! 넘지 못하면 돌아간다. 혼자 못하면 다른 사람을 찾는다. 그 간단한 이치를 몰라 아까운 인생의 몇 년을 허비했는지!”
아젠만은 경쾌하게 한탄했다.
이 쉬운 문제를 두고 인생을 낭비했음을 한탄했고, 기어코 답을 찾았다는 것에 환희했다.
아젠만은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아젠만의 눈시울은 붉었고, 눈동자는 깊었다. 깊은 눈동자가 마르할을 향했다.
“이게 대답이 된다고요?”
“네 대답을 듣고 깨달았다. 내가 원했던 건 그들의 시선이고, 나에게 필요했던 건 불가능은 아니라는 대답이다. 나는 비열하고 배알도 없는 인간이다. 나는 새로운 것을 직접 개척하지는 못하는 인간이다. 하지만 길이 있다면, 길을 찾아가는 건 자신 있는 인간이다. 새로운 길을 찾았으니, 가지 못할 이유가 없지.”
“각하, 어디 다치신 거 아니죠? 노망이 들었다거나.”
“이게 노망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잡담은 끝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지. 알레스, 그 돼지의 포섭이 끝났다는 이야기까지 했던가.”
“그랬죠.”
이 도시와 남쪽 도시의 조사 자료를 조작해 연합이 곡창지대를 열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었다.
“네루 황녀는 가만히 둘 건가?”
“그쪽이 고민이긴 해요.”
네루 황녀는 현 서부 식량 거래의 큰손이다. 시중에 풀리는 식량 대부분이 그녀에게서 나온다.
사실 식량만이 아니라 기근도 그녀의 존재에서 오고 있다.
“네루 황녀를 죽일 순 없죠.”
“그러면 더 심한 혼란만 생겨나겠지.”
네루가 죽어도 식량은 풀리지 않는다. 그녀 아래 있는 문관들이 아니면 뤼겐 백작이 식량을 손에 넣고 주무를 것이다.
“식량 창고의 위치라면 파악하고 있다. 식량은 잘 타지.”
“그건 안 돼요.”
“너도 제국을 싫어할 텐데?”
“네루 황녀는 감이 좋아요. 운도 좋죠. 가볍게 건드리면 이쪽이 피를 봐요.”
“그렇게 말할 정도라고?”
마르할의 제국 혐오는 아젠만도 몇 번 겪었다.
마르할의 사업에 한 발 걸치려다 피를 본 제국 출신 귀족이나 상인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마르할이 창고에 불을 지르는 간단한 일도 반대한다.
‘감과 운이 좋다라….’
다른 사람이 똑같은 소리를 했다면, 아젠만은 그 사람과 모든 거래와 연락을 끊었다.
살길을 모색하는 데 있어 감이 중요하다는 건 아젠만도 안다. 하지만 일을 시도하기도 전에 상대방의 운이 좋다며 포기하는 건 겁쟁이 이하의 무언가다.
그러나 그 화자가 마르할이라면, 역사와 업을 알며 넘치도록 실적을 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벼이 받아들일 수 없다.
‘한번 만나봐야 하나.’
직감, 운, 본능. 이성으로 설명 불가능한 영역의 일은 타인의 설명만으로는 판단이 힘들다.
직접 경험하는 게 최선이다.
“혼자 하겠다면, 말리진 않을게요.”
“아니. 관두지. 괜한 소리는 아닐 테니.”
“네루 황녀에 대해선 나중에 생각하고, 당분간 도시는 맡겨둘게요. 저는 남쪽에 한번 내려갔다가 제 땅을 살펴야 해서요.”
“늘 그랬듯, 마중은 안 나가겠다.”
***
마르할은 아젠만의 저택을 나왔다.
간단한 채비만 하고 남쪽으로 가 메라를 만나야 한다.
메라를 설득하는 건, 일단은 쉬워 보인다.
영웅은 혼란 속에서 태어난다.
알라실의 명성을 높이고 싶은 메라는 이 기근조차 반가워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난관은 그가 곡창지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인가.’
메라는 평범한 이단심문관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정치인으로서의 식견을 얼마나 가졌는지는 또 다르다.
지식이 많다고 좋은 정치인이 되는 건 아니고, 정치인이 모두 학자와 견줄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메라도 마찬가지다. 메라는 율란의 이름을 알고, 역사와 업에 대해서도 안다. 하지만 그게 그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는 보증은 되어주지 못한다.
“왜 저를 따라오시는 겁니까.”
“저는 제가 가고 싶은 길을 갈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길이 왜 저랑 똑같냐고 묻는 겁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르할은 발을 돌렸다.
서부에서 제일 바빠야 할 사람이 자기 거점도 아닌 도시에서 뭘 하고 있는지. 그보다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기척 자체를 못 느꼈다.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신비다.
“잠깐! 이쪽으로 가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도도도. 황녀라는 직위에 어울리지 않는 발소리.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네루가 나타났다.
“찾았다! 여기 있었군요! 마르할!”
네루가 마르할을 가리켰다.
“오랜만입니다. 황녀님.”
“편하게 네루라고 부르세요! 지금은 놀러 나온 거니까요!”
“한창 바쁠 시기 아닙니까?”
“일은 전부 딩켄에게 맡겨뒀으니 괜찮습니다!”
그 딩켄이라는 사람도 한 번은 만나봐야 할 것 같다.
네루에게 전적으로 신뢰를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마리나도 오랜만이에요.”
“별로 길었던 건 아닌 것 같지만, 오랜만입니다.”
“여긴 무슨 일이에요?”
“도망쳤습니다.”
“마리나가요? 누구한테서요?”
마리나가 옆에 있는 네루 황녀를 눈짓했다.
알 만했다. 네루가 옆에서 계속 부하가 되라고 했겠지. 네루의 신비도 마리나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다.
네루의 신비는 네루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마리나의 사정은 봐주지 않는다.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건 마리나에게는 달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저도 궁금하군요. 당신 같은 마법사가 누구에게서 도망친다는 거죠?”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차마 바로 옆에 있는 황족을 피해 다녔다고는 말할 수 없었던 마리나는 애매하게 대답을 얼버무렸다.
마리나의 대답을 네루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난다면, 저런 태도도 이해가 된다.
네루는 혼자처럼 보였지만, 호위들은 착실히 일하고 있었다.
네루 뒤에는 호위 두 사람이 조금 떨어져 쫓아왔다. 좌우 건물의 그림자에는 각각 세 명씩 총 여섯 명이 몸을 숨기고 미리 위험을 제거했다.
마르할의 귀에는 생명이 꺼져가며 내뱉는 희미한 비명들이 들렸다.
“도시 분위기가 살벌하군요.”
마리나가 주변을 둘러보곤 말했다.
장정들은 거리에 쓰러졌다. 그들의 풍채는 건장했으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모포를 몸에 말고 추위를 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포조차 없어 몸을 웅크린 사람도 있었다.
네루의 호위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귀족으로 보이는 여자가 둘이나 있다.
기근이 아니더라도 납치범들이 군침을 흘릴 조합이다. 그들의 침은 피가 되어 거리 구석에서 은밀히 흘렀다.
마르할은 흐릿한 비명을 들으며 호위의 실력을 짐작했다.
개개인이 중위 기사 이상의 실력이다. 모두 수색 기사 출신이나 추적 기사 출신으로 이루어진 듯했다.
뒤에서 따라오는 두 명의 기사는 고위 기사였고, 소리로 보아 옷 안에 사슬 갑옷을 입고 있었다.
“작은 제국은 어때요?”
“여기랑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쪽은 연합의 입김이 강하니 연합 소속 병사들이 단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르할,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네루가 물었다.
“남쪽에 볼일이 있어서 한번 가봐야 합니다.”
“잘되었군요! 저도 마침 남쪽으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함께 가도록 하죠! 모든 경비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아까 마리나에게 말하던 것을 보면 거절한다고 떨어져 나갈 것 같지도 않았다.
엘리제를 타고 달리면 따돌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뒤따라온 네루가 알레스의 땅에서 사고를 치면 마르할의 계획까지 꼬이는 수가 있다. 네루의 신비는 그러고도 남는다.
사고를 치더라도, 같이 가서 같이 치는 게 수습도 편하다.
“식량도 포함됩니까?”
“지금 서부에서 제일 많은 식량을 가진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죠? 무슨 음식이든 주문만 하세요!”
제국의 황녀가 사실상 성황국의 땅이나 다름없는 장소로 간다.
마르할은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