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63
제163화
역사상 최악의 기근이 닥쳤다 해도 믿을 경계와 달리 서부 개척촌들은 의외로 잘 버티고 있었다.
물류 회전이 빠른 경계 도시와 달리 개척촌들은 일반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평범하게 식량을 비축한다.
개척촌은 정기적으로 마을에 들르는 행상을 확보해둔다.
행상에게 마을에서 만든 물품을 팔기도 하고, 그들에게 물건을, 주로 식량을 사들인다.
행상이 항상 일정하게 마을에 오는 건 아니다.
사고가 생기면 늦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오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개척촌에서는 다음 행상이 올 때까지 먹을 식량을 비축해둔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수개월 분량의 식량을 확보하고 있는 개척촌들은 기근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마르할의 개척촌은 아슬아슬하게 식량 비축분을 맞췄다.
에나의 잡화점에 중요 인물들이 모였다.
에나, 조셉, 파푸란, 하바르산, 마르할의 이름은 몰라도, 마르할이 지주라는 건 아는 상인 몇 명. 그리고 카리안까지.
“우리 먹을 식량은 확보했어. 일단 우리가 굶지는 않아. 중요한 건 다른 마을이지. 파푸란.”
“식량이 떨어진 마을이 두 개. 나머지도 그다지 상황이 좋지는 않아. 이 근방에서 여기만큼 안정된 마을도 없으니까.”
이 근방에 용병 길드는 마르할의 개척촌밖에 없다. 용병들이 정식으로 의뢰를 받고 싶으면 개척촌을 찾아야 한다.
파푸란은 그걸 이용해 평소 주변 마을의 정보를 모은다.
그렇게 모인 정보는 마르할이 아니라 에나가 활용한다.
“다들 들었지? 목숨이 걸린 일이니, 저쪽도 목숨 걸고 나올 거야. 이번에 대충 하면 진짜 죽는다. 특히 너희 둘. 저번처럼 불침번 빼먹고 뒤집어져 자고 있으면 가게 뺄 준비 해야 할 거야.”
에나의 눈총을 받는 젊은 남자 둘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용병 숫자는 괜찮지?”
“술이 남는 마을이 여기뿐이라는 말에 다들 찰싹 달라붙어 있지. 누가 공격해온다는 소식을 듣고 고용해도 충분해.”
마르할은 토지 경주 때마다 초인이라는 놈들과 싸우는 모양이지만, 일반인이 무기를 든 초인과 마주하는 건 매우 드물다.
마을 단위의 싸움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건 쓸 만한 용병의 유무다.
비싼 돈을 들여가며 방어구를 사고, 매일 사람을 죽이는 기술을 연마하는 용병은 마을 사람들에게 기사와 다르지 않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럭저럭 괜찮은 실력의 용병이 작정하고 사람을 죽이기 시작하면 열 명, 스무 명은 우습게 죽는다.
사실 용병들이 모두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몇 년 활동한 용병들은 사람을 죽이는 데 거부감이 없다.
그게 사람들이 용병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다.
“조셉 영감님은… 알아서 잘할 거고. 카리안. 창고는?”
“중요한 물건은 전부 타지 않는 창고로 옮겼어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창고를 지키고 있고요. 그렇죠. 조셉?”
“어중간한 놈들은 창고에 들어가기 전에 죽을 거다.”
조셉은 카리안의 창고를 지키는 암살자와 몇 번 검을 나누었다.
그쪽에서 먼저 요구한 일로, 과연 기사에게 대련을 신청할 실력은 있는 암살자였다.
“그렇다면야… 언제 누가 선수를 칠지 모르니 다들 조심하고. 마지막으로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내가 또 상기시켜 줘야 하나?”
원래 이 자리에는 한 사람이 더 있어야 했다.
하지만 자리의 주인은 현재 뼛가루가 되어 서부 전역에 흩어졌다.
카리안의 정보를 팔아먹은 상인으로, 입을 잘못 놀린 대가를 치렀다.
“없으면 다들 해산. 그리고 카리안. 너는 남아라.”
“저요?”
“그래, 너. 뭐 해, 나머지 빨리 안 가?”
신경이 날카로워진 에나와 독대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하지만 남은 사람도 있었다. 조셉과 파푸란이었다.
“카리안. 서쪽의 식량 상황은 어때?”
“안 좋아요.”
“얼마나?”
“태반이 오늘 먹을 식량도 없을걸요?”
경계 도시는 식량 가격이 한 번에 2배 이상 오르며 그 꼴이 났지만, 식량 가격은 서부 전역에서 한 달 가까운 시간에 걸쳐 꾸준히 상승했다.
가격 상승은 식량 구입을 망설이게 한다.
카리안은 꾸준히 서부의 역사를 공부했다.
역사라고 해봤자 서부가 열리고 5년밖에 안 된 일들이지만, 카리안은 서부에 대해 많은 걸 알았다.
서부의 식량 가격은 동부에서 들어오는 식량의 양과 가격에 따라 1년 내내 변한다.
제국에서 농사가 잘 안 되어도 서부의 식량 가격이 변하고, 성황국에 수해가 닥쳐도 서부의 식량 가격이 변한다.
“식량 가격이 늘 변하니, 사람들은 되도록 식량이 쌀 때 사두려고 해요. 비쌀 때는 최소한으로 버틸 정도만 구입하고요. 특히 막 마을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 그렇다더라고요.”
“우리도 그때는 개고생이었지. 건물 지을 돈도 부족해 죽겠는데, 식량 살 돈은 어디서 나오냐고.”
“반 이상 마르할 돈이었으면서 지랄은.”
개척촌이 만들어질 때를 떠올리며 파푸란이 푸념했고, 에나가 그런 파푸란을 타박했다.
“그놈 생각나니까,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만 말해. 서쪽이 심각하다는 근거는?”
“황야로 가는 짐마차에 실린 식량을 봤어요. 양이 평소의 반도 안 됐어요. 원래도 식량이 풍족하진 않았는데, 사실상 마지막 식량 공급까지 반으로 줄었으면, 어떨지 뻔하죠.”
“그놈 흉내를 내더니, 헛수고는 아니었어.”
“아직 멀었어요.”
카리안은 에나에게 칭찬을 들은 것에 만족한 얼굴이었다.
마르할이 카리안의 목표라면, 에나는 카리안의 선생이었다. 글도 읽을 줄 모르던 카리안에게 장부 작성법부터 시작해 창고를 운영하는 방법과 서부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이 에나였다.
카리안의 말을 듣고 표정이 어두워진 사람도 있었다.
“씨벌… 지금 서쪽에 나가 있는 놈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지? 만 명은 확실히 넘고.”
파푸란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파푸란은 에나가 카리안에게 서쪽의 식량 상황을 물은 이유를 알았다.
“한창 일할 때인 장정들이 모여 있고, 먹을 건 없고, 눈을 돌리면 마을이 있고. 환장하겠군.”
굶어 죽기 직전인데 무슨 일을 못 할까.
서부에 나가 있는 일꾼들이 전부 도적으로 돌변하는 것도 한순간이다.
그리고 그 도적을 상대해야 하는 건 개발 중인 토지와 가까운 마을, 바로 이곳이다.
카리안도 에나의 질문에 숨은 뜻을 깨닫고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건 끝까지 입 다물어. 소란이 생기면 서로 피곤해지기만 하니까. 카리안, 너는 준비 단단히 해야 할 거야. 창고니까. 여차하면 버릴 준비도 해둬. 돈은 빌리면 되고, 창고는 다시 지으면 되지만, 뒈지면 끝이야.”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카리안의 머리로 겐트만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겐트만은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없을 때 창고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운이 나쁘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을 수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겐트만은 마르할의 지인이며, 독까지 다루는 사람이다.
‘독.’
많은 사람을 손쉽게 죽이는 도구다.
그리고 마침 카리안 주변에는 독을 만드는 사람과 독으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모두 있다.
지켜야 하는 건 땅과 재산. 싸워야 할 사람은 생판 모르는 타인.
에나의 잡화점을 나온 카리안은 꽉 맞잡고 있던 손에 힘을 뺐다.
핏기 없는 손이 떨렸다. 떨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의 선택에 몇십 명, 몇백 명이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빼앗기지 않으려면 죽여야 한다.
토지 경주 첫날 밤과 다르지 않다. 카리안은 경고를 무시하고 다가오던 사람에게 쇠뇌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사람을 죽였다.
그날부터 카리안의 인생을 변했다. 그리고 지금 내리는 선택도 그날의 선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래도 손이 떨리는 것은 그의 선택이 만들어낼 죽음의 숫자 탓이리라.
카리안은 수십, 수백의 죽음을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개인의 선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카리안의 발이 떨어졌다.
카리안은 겐트만을 찾았다.
* * *
마르할은 알레스와 메라가 있는 남쪽으로 향했다. 마르할의 옆에는 마리나와 네루가 나란히 말을 타고 있었다.
네루의 호위들은 뒤와 옆에서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
엘리제는 마르할이 본 최고의 명마고, 네루가 탄 말도 고르고 고른 명마였다.
마리나가 탄 말은 평범했지만, 마리나의 마법으로 보통 말 이상의 속도와 지구력을 보여줬다.
“그 말, 저한테 팔 생각 없나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낼 수 있습니다!”
“얼마를 줘도 팔 생각 없습니다.”
같은 질문이 벌써 열 번째였다.
네루는 엘리제를 보자마자 욕심냈다.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윤기가 나는 엘리제의 털은 마르할이 봐도 신기하긴 했다.
네루의 제안은 처음에는 그냥 가지고는 싶지만, 안 되면 말고 수준이었다.
네루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 시작한 건 엘리제가 달리는 걸 본 이후였다.
네루의 말은 그림으로 그린 듯한 백마로, 속도도 지구력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말을 데려와도 엘리제와 비교하면 손색이 있다.
엘리제는 약한 마족들 사이에 던져두면 마족을 차버리고 대장 노릇을 할 놈이다.
“말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군요. 말의 의견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네루를 빤히 보고 있던 엘리제가 마르할의 눈초리에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말은 제가 더 마음에 든 것 같군요! 말도 자기를 알아주는 주인에게 있어야 행복하지 않을까요!”
“좋습니다. 한번 타보시죠.”
마르할이 엘리제 위에서 내렸다.
네루도 말에서 내려 냉큼 엘리제의 고삐를 잡았다.
“이 아이의 이름은 무엇이죠?”
“엘리제입니다.”
“당사자는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투정을 담은 엘리제의 투레질에 네루가 말했다.
최근 얌전했던 건 이름을 받아들인 게 아니라 반항해도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인 듯했다.
“제가 당신 주인이 되면 멋진 이름을 지어 주겠어요!”
네루가 엘리제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엘리제가 기분 좋게 울었다.
“정말 말을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 영물일지도 모르겠어요!”
“한번 달려보시죠.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좋습니다!”
네루를 태운 엘리제가 달렸다.
순식간에 가속한 엘리제는 호위들이 당황할 정도의 속도로 멀어졌다.
“몇 번을 봐도 말이 안 되는 말이군요. 마법사들이 보면 눈 뒤집고 포획하려 할 겁니다.”
“잡고 싶다고 저놈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건 동감입니다.”
마리나도 엘리제를 타보았다.
옆구리에 구멍이 났던 상태라 제대로 달려보지는 못했지만, 적게 잡아도 열 시간 넘게 쉬지 않고 걸었는데 지치지 않았었다.
“영물의 기준을 알고 있습니까?”
“그거 제멋대로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 영물이라는 존재 자체가 워낙 희귀하니까요. 실라나티엘 가문에선 사람과 의사소통이 되면 영물로 봅니다. 저 말은 이미 조건의 반은 충족하고 있는 것 같군요.”
말을 하지는 못해도, 말을 알아듣는 건 확실했다.
몸짓이 아니라 언어로 의사를 전달할 줄 알게 되면, 마리나의 기준에서 엘리제는 영물이 된다.
“그거 안 좋은 거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
영물이라 해도 결국 동물이다. 사람은 동물을 먹는다.
희귀한 동물은 몸에 좋다는 속설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영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리면 얼마 안 가 영물이 잡혔다는 소식도 들린다.
엘리제를 타고 달려갔던 네루는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녹초가 된 네루가 마르할에게 엘리제의 고삐를 넘겼다.
“이 아이는 저랑은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런 것 같네요.”
마음껏 달리고 왔을 엘리제도 만족한 표정이 아니었다.
엘리제는 바람을 무시한 질주를 맛보았다. 마르할의 마법으로 섬세하게 조절되는, 마지막 한 방울의 체력까지 짜내는 짜릿함을 경험한 놈이 평범한 기수를 태우고 만족할 리가 없다.
마르할은 엘리제의 고삐를 넘겨받았다.
“그 이름으로 계속 살래? 새 주인 아래서 새 이름 받고 그렇게 달릴래?”
마르할은 되도 않는 애교를 부리려는 엘리제의 머리를 밀어냈다.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잘하자?”
엘리제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쪽으로 가던 일행은 남쪽에서 올라오는 마차 한 무리를 발견했다.
마차에는 알레스가 사용하는 인장이 박혀 있었다.
먼저 인장을 발견한 마리나가 물었다.
“저거, 그 재수 없는 사제의 문양 아닌가요?”
“그러고 보니 저쪽에서 찾아올 이유가 하나 있긴 했네요.”
이단심문관이 성녀를 만나러 온다는 소문이 있긴 했다. 알레스도 이단 혐의를 벗으려면 알라실과 한 번은 만나야 했다.
그래도 도시 상태도 좋지 않을 시기에 지주가 도시를 벗어날 줄은 몰랐다.
“저기 남쪽의 주인인 알레스가 타고 있다는 건가요? 오히려 좋습니다! 사람의 눈이 없는 장소에서 만나는 게 서로에게 편하겠죠!”
네루 황녀가 말의 속도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