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65
제165화
마르할이 남쪽으로 향한 건 메라와 만나기 위해서였다. 메라와 만났으니 마르할은 목적을 이루었다.
목적을 이루었으니, 다시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
아젠만이 혼자 일을 마무리해 주면 마르할도 편하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어 나쁠 건 없다.
메라와 알레스는 성녀, 알라실을 만나기 위해 북쪽으로 가던 중이었고, 네루는 어디로 가든 자기 마음이다.
그래서 일행은 북쪽으로 말 머리를 돌렸다.
일행은 메라와 알레스 말고도 마부와 알레스의 부하 셋이 더해졌다.
말이 출발하고 얼마간 그들은 네루의 호위와 신경전을 벌였지만, 네루의 호위들은 알레스의 부하들의 도발에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게 자신감의 발로라는 걸 깨달은 알레스의 부하들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마르할은 떠날 때와 같은 시간을 들여 도시로 돌아왔다.
며칠 사이 도시의 분위기는 더욱 암울해졌다.
배곯는 사람의 반은 서부 사람이 아니었고, 나머지 반은 서부 사람이었다.
마르할은 서부 사람들에게 식량을 풀어야 하나 고민했다.
서부의 재건은 마르할의 염원이고, 서부 사람을 지키는 건 마르할의 의무다.
누구도 마르할에게 강요하지 않은 의무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의무다.
하지만 마르할은 스스로에게 의무를 부과했고, 그것이 바체아 제국 마지막 황족의 의무인 이상 마르할은 의무 수행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마르할은 식량을 풀겠다는 판단을 쉬이 내리지 못했다.
식량은 넉넉하지 않았다.
마르할이 지켜야 하는 건 경계 도시만이 아니다. 중간 도시도 있고, 개척촌도 있다.
경계 도시에서 무계획적으로 식량을 소비했다가 중간 도시나 개척촌에서 식량이 부족해지는 날이 오면 안 된다.
낭비의 이유도 있었다.
배곯는 사람의 반은 서부 사람이고, 반은 서부 사람이 아니다.
식량을 풀면 서부 사람과 서부 사람이 아닌 자들이 몰려올 터인데, 마르할이라도 그 안에서 서부 사람만을 골라낼 순 없었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러려면 뛰어난 인력 다수가 식량 배급소에 달라붙어 있어야 했다.
결국 식량의 반은 서부 사람이 아닌 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소리였다.
또 식량을 지키는 것도 일이다.
미친 척하고 식량을 훔쳐 가려는 도둑, 그리고 도둑질이 실패하면 강도로 돌변할 사람들을 막는 일은 누가 한단 말인가.
“전염병이 도는 모양이군요.”
마부석에 있던 메라가 말했다.
메라 옆에 앉은 마부는 메라의 신분을 아는지 계속 메라의 얼굴을 곁눈질했고, 메라는 그런 마부를 무시했다.
“저희는 교회로 가 보겠습니다. 예정대로 성녀를 만나야 하거든요.”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한 성녀라니 꼭 한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네루가 메라를 따라나섰다. 여기서 그녀를 막을 사람은 없었으므로, 네루의 말은 통보와 같았다.
“그럼 저는 연합으로 가 보겠습니다.”
마리나가 네루와 동행하던 건 네루가 일방적으로 그녀를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네루와 떨어질 기회가 생긴 마리나가 냉큼 말을 꺼냈다.
마리나의 말에 네루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었지만, 이내 호위들과 함께 메라의 마차를 따라갔다.
“이제 겨우 떨어졌네요.”
“눈은 어때요?”
“이거요?”
마리나는 마르할이 찌른 왼쪽 눈을 만졌다. 그녀는 여전히 안대를 차고 있었다.
“생활에 불편함은 없습니다. 마법으로 대신하면 되니까요.”
“평생 그러고 살게요?”
“사람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할 말입니까? 인간쓰레기.”
“미안해서 물어볼 수도 있지. 까칠하게.”
“미안한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마리나는 안대를 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 그녀는 자유롭다. 올해 측량사 일은 잡혀 있지 않고, 후원자들도 웬일로 그녀를 방치하고 있다.
이유는 짐작된다. 그녀가 보낸 편지 때문이겠지.
마르할, 용사의 길잡이.
마리나는 후원자의 정체를 모른다. 하지만 제국의 높은 사람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라나티엘 가문의 책과 유물을 가지고 있으며, 마법에 발끝만 겨우 담그던 계집아이를 실라나티엘의 마법사로 만드는 자들이 보통 인물일 리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마르할의 존재는 그 자체로 골칫덩이일 것이다.
지금은 그녀를 자유롭게 두고 있지만, 후원자들은 언젠가 그녀에게 편지를 보낼 것이다.
‘그때까지는 힘을 길러야 해.’
그녀는 지금의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자유롭게 마법을 연구하고, 신비로 가득한 서부를 돌아다닐 수 있고, 마르할이 옆에 있다.
후원자들이 그녀를 찾는 날이 올 것이다.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주고 이용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마리나도 그들의 요청이 합리적이라면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합리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편하고 쉬운 일을 시킬 거라면 눈먼 고아 하나를 데려다 키우는 것보다 자기 자식들에게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내리는 게 이익이니까.
“눈을 대신할 마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물도요.”
“고생해요.”
“안 쓰는 유물 없습니까?”
“그런 게 있는 사람이 있겠어요?”
“당신이라면 몇 개쯤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요.”
“빛을 내는 유물이라면 남는 게 있어요.”
다른 유물도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마리나에게 줄 물건은 아니다.
바체아 제국 황실 관련 유물이나 마족이 득실대던 서부에서 찾아낸 유물을 그녀에게 줬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그건 저도 만들 수 있습니다.”
빛을 내는 유물은 한 사람 몫의 마법사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물건이다.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고, 또 적당한 가격에 팔리기에 별다른 특기가 없는 마법사들의 밥줄이 되어주는 고마운 유물이다.
그런 유물은 수백 개가 있어도 마리나의 눈을 고치지 못한다.
“마르 실라나티엘이 만든 것도요?”
“그건 많이 가지고 싶긴 하네요. 가지고 있습니까?”
“그게 있으면 눈을 고칠 수 있어요?”
“아뇨. 무리입니다. 제 마법을 위한 참고 정도는 되겠지만….”
“그럼 싫어요.”
마리나가 마르할의 팔을 잡았다. 마리나의 손가락이 마르할의 팔뚝을 파고들었다.
“우리 이러기예요?”
“저한테도 몇 개 없는 물건이라서요.”
“그 귀한 걸 몇 개나 가지고 있으시다?”
빛을 내는 유물은 대장장이에게 검과 같은 물건이다.
대장장이 소리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검을 만들 수 있지만, 초보 대장장이와 장인이라 불리는 대장장이가 만든 검은 부르는 가격의 단위가 다르다.
마르 실라나티엘이 만든 유물도 마찬가지다.
“진짜 우리 사이에 이럴 거예요?”
“저희가 어떤 사이였죠? 서로 가진 걸 태우고 빼앗은 사이?”
“태우진 않았습니다. 당신이 일방적으로 빼앗았지.”
“살인미수도 범죄로 치는 거 몰라요?”
“북쪽이 열리면 저도 측량사로 지원할 겁니다. 당신이랑 최대한 가까운 장소로.”
“그거 협박?”
“네, 협박입니다.”
“제가 유물을 주면요?”
“뇌물이 되겠죠.”
“그게 통하긴 하고요?”
“당신하기에 달렸습니다.”
“조금만 일을 도와주면, 못 줄 것도 없어요.”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습니까. 정말 인간쓰레기가 따로 없군요.”
마리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마르할이 말을 꺼내고 나면 늦다.
뼈저리게 알고 있던 사실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스리슬쩍 사람을 끌어들일 줄이야.
“두 개 줄게요.”
“…들어보고 정하겠습니다.”
“환각 마법은 사용할 줄 알아요?”
“실라나티엘 가문의 기본은 할 줄 압니다.”
“그거면 충분해요.”
마르할은 연합 조사원을 속여 넘길 최고의 마법사를 고용했다.
* * *
교회로 가던 메라는 길을 걷는 여인을 발견했다.
여인은 겁먹은 다람쥐처럼 거리를 걸었다.
거리 구석구석에는 배곯은 자들이 축 늘어졌다. 그들의 눈빛이 여인의 몸을 머리부터 발까지 훑었다.
사람이라도 씹어 먹을 준비가 된 사람들 사이에서 여인은 몸을 움츠리긴 해도 멈추진 않았다.
여인의 걸음은 느려지지도 빨라지지도 않았다.
배를 곯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배곯은 자들의 피부는 거칠었지만, 여인의 살결은 고왔다. 말랐지만, 뼈와 살이 들러붙지도 않았다.
여인은 어깨에 천을 걸치고 있었고, 천에 매달린 휘장이 흔들렸다.
메라는 다양한 지식을 탐구했다.
세상의 비밀, 역사와 업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통제되고 있지만, 그걸 빼면 이단심문관에게는 상당히 많은 자료가 열려 있다.
특히 성황국의 역사와 관련된 책은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비사도 열람할 수 있다.
수백 년 전, 성황국과 교황청의 모태가 되는 종교가 태동하고 막 이단심문관이 생겼을 시기였다.
한 명의 이단심문관이 동료 이단심문관 수십과 당대 교황에 해당하던 종교 지도자를 살해하고 달아났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가 남긴 말은 교황청의 비밀 서고에 남았다.
-결국 죽음만이 남는다면, 나는 죽음이 되겠다.
이단에 홀린 사람 같은 발언이지만, 메라는 책을 읽으며 그 이단심문관의 기분이 이해되었다.
그도 세상의 진실을 알아버린 사람이었을 것이다.
신도 없고, 천국도 없다.
평생의 기도는 헛되었고, 손에 묻힌 피는 무의미했다.
그가 행한 일은 이단을 처단하는 숭고한 작업이 아니라 다른 신념을 가진 똑같은 사람을 학살하는 단순한 살인귀의 일이었다.
도망친 이단심문관은 자신이 남긴 말을 실천했다.
서부에서 그는 죽음의 신이 되었다.
사신이라 불리는 일족을 멸하기 위해 몇 번이나 실력 있는 이단심문관이 파견되었지만, 살아 돌아온 사람은 없다.
마차가 여인을 스쳐 지나갔다. 여인은 걸음을 멈추고 잠깐 메라의 얼굴을 살피는 듯했지만, 이내 발을 옮겼다.
메라도 여인을 무시했다.
그의 목적은 신의 탄생이지 교회의 적을 죽이는 게 아니다.
그래도 자신보다 먼저 진실을 깨닫고 교회를 뛰쳐나간 사람의 후손을 보니 감성적인 기분이 되었다.
‘사신. 서부가 멸망하며 교황청에서는 그 이름을 잊었지만, 살아 있었나.’
죽음의 신답게 자신의 죽음은 피한다는 걸까.
마차가 교회를 향해 나아갔다.
마차를 지나친 샤힐레는 마차가 보이지 않는 장소까지 걸었다. 그리고 마차가 지나갔다는 확신이 들자 옆에 있던 골목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후우. 샤힐레는 길게 심호흡했다.
이단심문관을 알아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녀는 보는 것만으로 이단심문관을 알아볼 수 있다.
모두 그녀 가문이 품고 있는 역사였다.
샤힐레는 어깨에 달고 있는 휘장에 손을 가져갔다.
‘떼야 하나요오?’
그녀도 휘장을 달고 다니는 위험을 모르지 않는다.
서부가 멸망하며 휘장을 알아보는 사람 대부분이 죽었겠지만, 그래도 사신의 휘장은 달고 있는 것만으로 위험을 부를 수 있다.
샤힐레는 휘장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러나 끝내 휘장을 떼어내지는 못했다.
‘으으….’
이 휘장은 그녀가 위대한 가문의 후손이라는 증명이며, 동시에 그녀에게 용기를 주는 물건이다.
비록 알아보는 사람은 없지만, 휘장을 달고 그녀가 누구인지 뽐내고 있으면 샤힐레는 멀쩡히 마법을 다룰 수 있다.
‘도련님을 찾아가야….’
샤힐레는 좌우를 살피며 종종걸음으로 골목에서 나왔다.
몇 시간 후, 도시 상태를 살피기 위해 나왔던 연합의 조사관은 전신에 피고름을 흘리며 죽은, 파리 날리는 시신 두 구를 골목에서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