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67
제167화
나흘이 지났다.
말리바 리시는 퀭한 눈으로 마지막 자료를 살폈다.
아젠만 리안틀이 보낸 도시 내부 피해 보고서였다.
말리바 리시는 군대를 지휘하는 사령관이었다.
군체를 숫자로 파악하거나, 숫자로 군체를 읽는 건 그의 특기다.
아젠만 리안틀의 보고서는 명백히 수치가 이상했다.
최소 수십 배는 숫자가 부풀려 있다.
마냥 거짓이라 하기에는 조사관들의 증언이 일관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서부에 와서 가장 끔찍한 광경을 보았노라 말했다.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말리바 리시는 아젠만에게 항의하지 않았다.
그는 연합 이사들을 설득해 천하를 담은 땅을 열기만 하면 그만이다.
지난 나흘, 말리바 리시는 밤낮으로 일했다.
자료를 수집하고, 다른 이사를 찾아가 설득하고, 회유했다.
공국은 설득하기 쉬웠다. 천하를 담은 땅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공국이다.
연합이 세워지며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도 공국이다.
또 북부가 열리면 공국은 군대를 동원할 수 있다.
서부로의 군사 행위는 금지되어 있지만, 우연히 군대를 해산하고, 우연히 그들이 서부에서 발견될 수는 있다.
대상회를 위시한 기타 세력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일찍이 서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전력의 상당수를 경계 인근에 집중했다.
성황국을 뒷배로 둔 이사가 결단코 반대했지만, 이미 다수결로는 답이 나왔기에 그의 발언은 큰 힘을 가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제국.
‘빌어먹을….’
서류를 정리하는 말리바 리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서부를 여는 건 제국의 뜻이 아니다. 황제의 뜻조차 아니다.
말리바 리시는 네루 황녀가 누구와 외출했는지 알아보았다.
네루 황녀는 마르할과 남쪽으로 갔었다. 그리고 알레스와 함께 돌아왔다.
네루 황녀가 말리바 리시에게 곡창지대를 열라고 명령한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마르할.’
연합은 북부를 열자는 제안을 말리바 리시가 처음 꺼낸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진짜 배후는 마르할이다.
말리바 리시는 그게 불안했다.
서부의 대지주들은 모두 과거가 확실한 사람들이다. 뒤에 누가 있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 대부분 알려져 있다.
단 하나의 예외가 마르할이다.
출신도 능력도 정확한 정보가 없는 미지의 인물.
그런 인간의 뜻으로 곡창지대를 열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말리바 리시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곡창지대를 여는 건 제국의 뜻이 아니다.
마르할의 뜻이고, 네루 황녀의 뜻이다.
말리바 리시는 연합 통제를 위해 황제가 보낸 인물이다. 그의 직속상관은 황제다.
말리바 리시가 서부로 올 때, 황제는 몇 군데 주시해야 하는 땅을 꼽았고, 천하를 담은 땅은 그중 첫 번째다.
황제의 허가 없이 단독으로 북쪽을 여는 건 황제의 뜻을 어기는 일이다. 그렇다고 북쪽을 열지 않으면 네루 황녀를 통해 황제의 이름을 사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명령 불복종과 황제의 이름 사칭.
하나는 황제가 끔찍이 싫어하는 일이고, 하나는 모반 혐의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말리바 리시에게는 두 개의 길이 있었고, 두 길의 끝은 모두 죽음이었다.
‘실적을 내야 한다.’
황제가 그를 용서할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실적을. 그도 아니면, 제국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독자적인 권력을.
‘설마 이걸 전부 노렸나? 마르할?’
북쪽을 열고, 자신을 궁지에 모는 것까지 전부?
말리바 리시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판단을 확신하지는 못했다.
전략가인 그가 무서워하는 건 눈앞에 들이닥친 십만 군세가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적이다.
말리바 리시는 마지막으로 서류를 정리했다.
회의 시간이 되었다.
서부의 역사를 바꾸고, 말리바 리시라는 인간의 역사를 결정할 선택의 때가 왔다.
방에서 나가 회의실로 향하던 말리바 리시는 마리나를 만났다.
말리바 리시의 인중이 꿈틀 움직였다.
연합 이사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면 만날 수도 없는 인간이다.
마리나의 상쾌한 조소가 이 만남이 우연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회의하러 가는 길이었습니까? 딱 맞춰서 만난 것 같군요.”
“개소리 그만하고 목적부터 말해라.”
“제 일은 아니고요. 지인이 당신에게 전해 달라는 말이 있었어요.”
네루 황녀가 남쪽으로 갈 때 거기에는 마리나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벼락처럼 말리바 리시의 머리를 스쳤다.
“기사단 고맙게 받았대요. 보답은 톡톡히 할 테니 기대하래요. 기대되지 않나요?”
“…진즉 죽여뒀어야 했어.”
“당신이 그 사람을 말입니까? 지나가던 개가 웃겠군요. 그럼 수고하시죠. 말리바 리시 연합 이사님.”
마리나가 말리바 리시를 지나쳤다.
상정하던 최악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에 그는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 * *
말리바 리시가 이사 회의에 들어갈 시각. 마르할은 별장에서 축배를 들었다.
마르할의 대작 상대로 특별한 사람이 식탁에 함께했다.
“각하께서 저택을 나오시다니, 또 저한테 못 할 짓이라도 저지르셨어요?”
“나도 가끔은 변덕을 부린다.”
아젠만과 마르할.
두 사람의 대면에 이언은 주방 구석에 틀어박혔고, 샤힐레는 여관 구석에 있는 의자에 쪼그려 앉아 두 사람이 앉은 식탁을 힐끔힐끔 곁눈질했다.
“준비는 안 하셔도 돼요?”
“현재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해뒀다. 나머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한 일뿐이다.”
“그것도 그렇네요.”
아젠만은 훨씬 예전에 밤이슬에게 북쪽이 열린다는 미래를 들었다.
세상 누구보다 철저한 준비를 해둔 사람이 아젠만일 것이다.
식탁에는 술이 두 병 있었다.
마르할이 술병을 들고 아젠만의 잔에 따랐다. 아젠만도 똑같이 다른 하나의 병을 잡고 마르할의 잔에 따랐다.
마르할의 잔에서 나는 주향에 아젠만이 콧잔등을 씰룩였다.
“냄새가 거의 독이군. 무슨 맛으로 그런 걸 먹는지.”
“익숙해지면 이것도 괜찮아요. 드셔 보실래요?”
“사양하지. 내 몸에 그런 걸 먹으면 진짜 죽어.”
아젠만은 늙었다. 마족이 나타난 15년 전에 이미 그는 한창 현역으로 뛰고 있었다.
그 후로 15년이다. 보통 사람은 현역에서 한발 물러날 나이다.
하지만 아젠만은 지치지도 않고 대지주로서 토지를 다스리고 여러 사업을 주관했다.
잔을 비운 아젠만은 식탁에 있던 과일로 손을 뻗었다. 마르할이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웠다.
“말리바 리시는 불쌍하게 됐어.”
“알고 계셨어요?”
“지금 북쪽이 열리면 제국은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되지. 작은 손해도 보지 않으려 하는 황제가 그걸 허락했을 리가 없어.”
“자기 이름으로 권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외가를 멸족시켜 버린 광인이니까요.”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가 황제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일어난 일이다.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는 황제가 되며 외가의 도움을 상당히 받았다.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가 황제가 되고, 그의 외가는 므에트 제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는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견줄 자가 없던 권력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술자리에서 황제의 이름을 팔았다는 이유였다.
진위가 불분명한 사건이지만, 마르할은 그게 진실임을 안다.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의 외가 멸족에는 실라나티엘도 한 손 보탰고, 실라나티엘 가문에는 다양한 인체 실험 기록으로 남겨졌다.
“그보다는 성황국을 걱정해야죠. 제국은 네루 황녀가 있기라도 하니까요.”
“성황국은 이미 포섭한 거 아니었나?”
아젠만은 알레스가 자료 조작에 동참하는 걸 보고 영락없이 성황국을 완전히 끌어들였다고 생각했다.
“일이 기이하게 풀려서요. 성황국 지도층, 그러니까 교황청하고는 어떤 상의도 안 되어 있어요.”
마르할이 잔을 비웠다. 이번에는 아젠만이 마르할의 잔을 채웠다.
아젠만은 자기 잔에 담긴 술을 홀짝이며 푸념했다.
“그걸 나한테 알린다는 건, 나보고 대책을 짜란 거군. 쯧. 괜히 왔어.”
“안 왔어도 편지로 보냈을 거예요.”
“가장 큰 피해자는 제국이 아니라 성황국이었어. 그거 아나? 나는 제국보다 성황국이 무서워.”
“솔직하시네요.”
“할 말 못 할 말 다 했는데, 이제 와서 허세 부릴 필요 없지.”
아젠만의 잔이 비었고, 마르할이 잔을 채웠다.
“각하, 변하셨습니다?”
아젠만은 은신과 연기의 달인이었다.
외부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남들에게는 철저히 계산된 모습만을 보여준다.
필요하다면 명성과 자존심을 모두 내던지고 무릎 꿇고 고개를 박는 사람이 아젠만 리안틀이다.
눈앞의 아젠만은 마르할이 만났던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러웠다.
“평생 원하던 답을 얻으면 누구든 변해.”
“제 답은 참고가 안 된다고 했는데요?”
“필요한 건 내 결심이지, 자네 말의 진위 여부가 아냐.”
“궤변 같으면서도 부정은 못 하겠네요.”
아젠만은 개인의 한계라는 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그건 아젠만이 스스로 만들어낸 벽이다.
마르할의 답이 전부 거짓이라도, 마르할의 답을 듣고 아젠만이 벽을 넘었으면, 그걸로 된 거다.
“성황국이 미쳐 날뛰겠군. 최근 수십 년은 얌전히 있지만, 그놈들은 절대 만만하지 않아.”
“저도 알아요. 건립 이념부터가 선민사상으로 이루어진 국가가 멀쩡할 리가 없죠.”
둘은 나란히 잔을 비웠다.
성황국.
성스러움이 포함되어 있는 이름이지만,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성황국을 성스럽다 하지 않는다.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며 죽을 때까지 싸우는 성기사는 광전사의 다른 이름이고, 마른하늘에 벼락을 떨구는 사제의 기적은 사람을 산 채로 태운다.
아젠만은 마르할의 잔에 술을 따랐다.
“내 평생 자네처럼 골칫거리를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본 적이 없어.”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별장 문이 열리며 아젠만의 집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집사는 두 사람이 그토록 기다리던 소식을 가져왔다.
“북쪽이 열렸습니다. 경주 시작은 한 달하고도 보름 후. 연합에선 용병 길드에 청소 의뢰를 넣었습니다.”
마르할과 아젠만은 동시에 의자에서 일어났다.
“자네는 청소를 가겠지?”
“아마도요?”
“자리를 비우면 우량 매물을 나한테 다 뺏길 거야.”
“할 수 있으면 한번 해보시죠. 휴고도 쉬운 사람은 아니에요. 샤힐레!”
의자에 무릎을 모으고 쪼그려 앉아 꾸벅꾸벅 졸던 샤힐레가 마르할의 부름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휙 들었다.
“청소 시간이에요. 준비해요.”
비몽사몽 일어난 샤힐레는 짐을 가지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도 가보겠네. 술 잘 마셨어.”
아젠만이 집사와 함께 별장에서 나갔다.
이언을 불러 알라실의 이름으로 식량을 풀라고 지시한 다음 마르할도 거리로 나왔다.
거리에는 배곯는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누웠다.
연합에서 나온 사람들이 배곯은 사람들 사이를 달리며 외쳤다.
북부가 열렸다! 북부가 열렸다!
곡창지대를 건 토지 경주가 시작된다!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배곯은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배곯지 않은 사람들이 집마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배곯은 사람과 배곯지 않은 사람 사이를 스치는 바람은 같았고, 그래서 그들의 귀에 꽂히는 소리도 같았다.
북부가 열렸다!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외침은 경계 도시의 거리 구석구석 멀리 퍼졌고, 오래 퍼졌다.
메아리처럼 되풀이되는 외침 위에 한 가지 외침이 더해졌다.
곳간이 열렸다! 성녀님에게 감화된 지주가 곳간을 열었다!
알라실 성녀님 만세! 알라실 성녀님 만세!
서로 다른 두 외침은 경계 도시의 골목 사이사이 깊게 스몄다.
곳간이 열렸다!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북부가 열렸다!
알라실 성녀님 만세!
도시 전체에 스민 외침은 서로 뒤엉켰고, 지는 해와 함께 도시에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