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78
제178화
루카스는 빠르게 짐을 꾸렸다.
서부와 교류할 때 쓰는 것으로 보이는 마차에 식량을 가득 담았고, 가축도 모두 끌어와 등에 짐을 올렸다.
사람은 적고 짐은 많았다.
이사할 때 꾸리는 짐의 개수가 사람의 부를 증명한다면, 마을 사람들은 부유했다.
서부에 사는 사람보다 부유했고, 경계 도시에 사는 어지간한 상인보다 부유했으며, 동부에 사는 귀족보다도 부유했다.
서부에는 아이가 적다. 하지만 그들은 10년 동안 아이를 낳고 키웠다.
그게 천하를 담은 땅이 품은 가능성이고, 이 땅의 가격표였다.
마을 사람들은 체념과 원망이 뒤섞인 얼굴을 했다.
그들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자신들을 마을에서 쫓아낸 이방인을 순순히 인정하는 건 다른 영역이다.
아이들이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말에 우는 아이도 있었다.
어른들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했다. 그들은 마족의 침공에 한 번 고향을 버렸고, 마족이 사라진 다음에는 공국, 혹은 공국과 함께 마족을 막아내던 국가를 버렸다.
어른들에게는 세 번째 버림이다.
어른들은 내일을 알고, 다음을 알고, 인생을, 삶을, 죽음을 알지만.
내일과 다음과 인생과 삶과 죽음을 아는 아이는 없었다. 그것들을 알아야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마을은 아이들에게 세계였고, 아이들은 세계를 떠나 미지로 떠난다는 사실에 서러워 울었다.
그들의 서러움은 어른이 죽음을 대하는 서러움과 같았다.
태어나 평생을 지낸 마을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니, 그건 세계의 죽음이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마을을 잃는 서러움은 죽음의 서러움이었다.
마르할은 품에서 하모니카를 꺼냈다.
꾸준한 관리로 하모니카는 먼지가 끼긴 했지만, 소리는 여전히 맑았고, 틈틈이 연주를 계속한 마르할의 연주 실력은, 소리에 감정을 담는다는 장인까지는 아니어도 한 번 들었던 소리를 모두 따라 할 정도는 되었다.
예로부터 죽음과 서러움을 달래는 건 음악이었다.
곡소리로 죽음을 달랬고, 서러움을 노래로 만들었다.
아이들의 울음은 죽음과 서러움이었으니, 음악은 그들을 달래는 데 잘 맞았다.
마르할은 하모니카를 입에 댔다.
투박하지만 맑고, 단순하지만 깊은 울림이 푸르른 땅 위를 달렸다.
생전 처음 듣는 낯선 소리에 아이들이 울음을 멈췄다.
소리는 처음이었지만, 음률은 아이들에게도 처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에게도 처음이 아니었다.
마르할이 연주하는 건 아프란체 전역에서 연주되던 노동가였다.
한 번의 호흡은 한 음절에서 네 음절 사이를 거닐고, 그래서 노동요의 후렴구도 한 음절에서 네 음절 사이를 거닌다.
용사와 도둑과 성인에게 마르할은 그리 배웠다.
힘들 때 노래하고 허벅지를 악기 삼아 때리며 연주하는 건 서부와 동부가, 종교와 비종교가, 아이와 어른이 다르지 않았다.
마르할이 연주하는 노동가의 후렴구는 세 음절이었다.
세, 아, 민.
노동요는 본디 반복하기 쉽게 만들어져 있다.
흥이 올라 일하다가 노래가 끊어지면 재미없지 않나.
마르할의 노래가 두 바퀴째에 들어섰다.
세.
누군가 한 음절을.
아.
다른 사람이 또 이어 한 음절을.
민.
마지막으로 또 다른 사람이 한 음절을.
그렇게 후렴구 세 음절이 만들어졌다.
마을을 버리고 떠나는 게 서글프니 세아민.
어쩔 수 없다는 걸 아니 세아민.
돌아올 수 없는 마을에 다시 세아민.
마을이 노래했다.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루카스도 노동요를 흥얼거렸다.
노동요는 흥겨웠다. 노동요는 지루할 수 없다. 단순하고 즐겁게, 끝없이 몸을 움직이도록 한다.
마르할이 연주를 멈춰도 노동요는 이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짐을 마저 싣고 짐을 묶은 끈을 조이며 떠날 준비를 했다.
하모니카는 없지만, 그들은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 마르할이 만든 음률에 올라타 계속 노래했다.
아이들은 훌쩍임을 멈췄다. 대신 태어났을 때부터 들어왔을 익숙한 음률을 흥얼거렸다.
마르할은 허리를 구부려 한 아이의 손을 잡았다.
일곱 살이나 여덟 살쯤으로 보였다.
아이는 낯선 사람을 향한 경계심보다 마르할이 든 하모니카에 관심을 보였다.
마르할은 아이의 기대를 들어주었다. 하모니카를 아이의 손에 쥐여주고, 아프란체어로 말했다.
“날 따라오려면 열심히 연습해야 할 거다. 나는 1년 걸렸거든.”
새로운 장난감을, 마을에서 오직 자신만 가진 장난감을 가진 아이는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말라붙었다. 새로운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루카스가 마르할에게 눈으로 인사했다. 그의 입에선 여전히 노동요가 계속되었다.
세아민. 세아민.
의미도 없이, 그저 발음하기 좋다는 이유로 과거의 누군가가 만들었을 세 개의 음절을 반복했다.
마을 사람들은 떠났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발자국과 세, 아, 민. 세 음절이 남았다.
마르할은 떠나는 사람들을 손 흔들며 배웅했다.
하모니카를 받은 아이는 하모니카를 든 손을 흔들었다. 언젠가 저 하모니카에서 마르할이 연주한 것과 같은 음률이 나올 터였다.
숙련도는 마르할보다 떨어지겠지만, 그 소리는 마르할의 소리와 본질적으로 같을 것이다. 그것이 노동요이므로.
마리나는 마르할의 뒷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사람을 조종하는 마법이라도 쓰는 게 아닌가 싶은 마르할의 친화력은 몇 번이나 보았다.
그러나 오늘 같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마리나는 새삼 깨달았다.
마르할의 출신은 서부고, 그는 동부 문화보다 서부 문화에 친숙하다.
서부 문화를 다룰 때 그의 진가가 드러난다.
마르할이 등을 돌렸다. 여기저기서 흠. 음. 큼. 등의 소리가 들렸다.
사람은 자신보다 거대한 것에 압도된다.
힘이 제일 보편적이고 편리하지만, 꼭 힘으로 사람을 압도할 필요는 없다.
그 도구는 존재감이 되기도 하고, 돈이 되기도 하고, 언변이 되기도 하며, 예술이 되기도 한다.
“자, 끝났어요. 마을에 남은 물건은 저희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어요. 큰 마을도 아니니 한 시간이면 되겠죠? 약탈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마을 주인에게 허락받고 그냥 떠나는 것도 용병답지 못하죠. 뭐 해요? 어서 안 가고.”
눈치 빠른 티머시가 먼저 움직였다.
그가 달려가는 방향은 루카스의 집이 있는 방향이었다.
티머시를 따라 다른 용병들도 마을을 뒤지기 시작했다.
세, 아, 민.
누가 시작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용병들은 마을을 뒤적이며 아까 들은 노동요를 흥얼거렸다.
아프란체어로 되어 있는 가사까지 따라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음률과 후렴구는 아프란체어를 모르는 사람도 따라 했다.
세아민, 세아민, 세아민.
용병들이 주인 없는 마을을 수확했다.
마르할은 파름에게 다가갔다.
어째 눈빛이 아까보다 부담스러워진 것 같았다. 도둑에게 배워 스스로 갈고닦은 눈썰미가 잘못되었을 리는 없다.
말을 걸고 싶지 않다. 마르할에게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처음이었다.
“안 털어도 괜찮나요?”
“마을 하나를 털어 나오는 돈이야 어차피 푼돈이겠지. 유물이 나오면 또 몰라.”
파름은 신비를 느끼는 인간이다. 신비를 포착하는 감각 하나는 마리나 같은 마법사와 동급에 올랐다.
아니, 그가 보여주는 반응은 마르와 비슷하니 마르의 무릎 언저리까지 닿았다고 보아야 한다.
특정된 분야이긴 하나 그 마르 실라나티엘의 경지를 엿보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의 사상이 제대로 되었을 리 없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인외의 발치도 따라가지 못한다.
그의 말은 아마 진심이다.
파름에게 대가는 필요 없다.
그는 마르할이 가진 신비를 관찰하고, 스스로 만족하면 떠날 것이다.
하지만 마르할은 파름을 떼어낼 수 없다.
파름이 목적을 이루고 마르할에게서 떨어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파름의 만족은 불가능하다.
마르할의 신비는 커다란 세 갈래 줄기로 되어 있으며, 두 개의 줄기가 남은 하나의 줄기를 봉인하고 있다.
마르할이 품은 신비가 세상에 모두 풀려날 일은 없으니, 파름은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즉, 마르할이 그를 죽여 이승에서 떠나보낼 게 아니라면 파름과의 협동은 기약 없는 협동이 된다.
이런 사이일수록 사소한 부분에서 철저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파름은 약탈은 눈곱만치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괜찮아도, 당신 부하들은요? 저들은 조금 뛰어날 뿐인 평범한 용병으로 보이는데요?”
파름은 즉답하지 못했다. 그는 자기 뒤에 있는 부하들을 보았다.
사십 명이 넘는 부하들이 그의 명령을 기다렸다.
파름의 시선이 다시 앞을 향했다. 마르할의 부하는 대략 사십 명 안팎으로 보였다.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도 여든 명을 모아두면 잡음이 생긴다. 하물며 거칠기로 따라올 자가 없는 용병들이다.
“참고로, 앞으로 약탈은 없어요. 저는 최대한 피를 보지 않으려는 사람이라서요. 이번 의뢰에서 사람을 보면 죽이고 빼앗는 게 아니라 설득해 다른 땅으로 가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에요.”
마르할의 말이 파름에게 쐐기를 박았다.
“그렇군. 내가 실수했어. 약탈하고 싶은 자, 약탈해도 좋다. 단, 분란은 일으키지 마라.”
약탈로 많은 이익을 보지 않아도 괜찮다. 물건을 부수고 멀쩡한 집을 뒤엎는 쾌락도 약탈의 일부다.
그것만으로 용병들에게 쌓인 욕구를 풀어줄 수 있다.
붉은 해골 용병단도 약탈에 동참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침묵했고, 이내 세, 아, 민. 세 음절을 흥얼거렸다.
파름은 숨길 생각도 없이 마르할의 옆얼굴을 주시했다.
여전히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는 없었다. 초점을 옆으로 돌리면 마르할의 얼굴이 시야 끝으로 보였다.
파름은 마르할과 했던 대화를 곱씹었다. 그러다가 의문이 생겼다.
“이봐. 마르할.”
“왜요?”
“저 안에서 너는 말했지. 내 감을 알아차린 게 여자와 말에게 가는 시선 때문이라고. 왜 내가 너를 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
“진짜 하기 싫은 대답인데, 답하지 않으면 더 귀찮게 굴 테니까 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마르할이 한숨을 쉬었다.
“저를 제대로 볼 수도 없잖아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가는 사람의 한 명처럼 흐릿하겠죠. 저에 대한 인식도 기억도.”
“나와 비슷한 사람을 아는군. 전에도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어. 그게 누군지 궁금해지는군. 일단 네 옆에 있는 두 마법사는 아냐.”
“지나친 과장이에요.”
“사람은 자신을 볼 수 없다. 네 몸을 감싼 그것이 거울로 확인할 수 있는 성질의 것 같지도 않다. 그러면 뻔하지.”
“의외로 머리가 좋았네요.”
“단순히 잘 싸우는 것만으로는 들짐승들의 목줄을 잡을 수 없어.”
“거, 반갑지 않은 소식이네요.”
붉은 해골 용병단의 단장은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파름 같은 사람은 같은 편이라도 불안하다.
흥미로 움직이는 사람은 흥미로만 다룰 수 있다.
적어도 청소가 끝날 때까지 마르할은 계속 그의 흥미를 끌어줘야 했다.
용병들의 거친 손길이 마을을 할퀴었다.
용병들은 절제를 몰랐고, 그들의 탐욕은 드높았다.
풀로 엮은 건물은 비바람도 버텼지만, 연장을 휘두르는 용병들의 손속에는 버텨내지 못했다.
마을은 반쯤 허물어졌고, 반은 불탔다.
용병들의 주머니는 조금 부풀었지만, 그들의 탐욕은 채워지지 않았다.
작은 마을에 용병의 탐욕을 채워줄 보물은 없었다.
10년의 세월을 들여 만든 마을이 사라지는 건 한 시간이면 족했다.
무너진 마을을 뒤로하고 여든 명에 가까운 용병이 다시 북쪽으로 나아갔다.
몇 명의 사람을 만났고, 몇 개의 마을을 만났다. 사람은 죽거나 남쪽 혹은 서쪽으로 사라졌고, 마을은 부서지고 불살라졌다.
그러던 중 지평선 앞에서 하늘과 하늘이 만났다.
땅에 있는 하늘의 이름은 호수였다.
거대한 호수가 일행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