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83
제183화
마르할은 눈을 떴다. 사방이 칠흑이었고, 칠흑의 재료는 원한과 악의였다.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들끓는 살의가 조용했다.
하지만 살의 속에 있는 무수한 눈길은 마르할을 주시했다.
“안 꾸던 악몽을 다 꾸는 걸 보면, 이 앞에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이야.”
마르할은 혼잣말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꿈에서 마르할의 감각은 경계가 사라졌다.
여긴 마르할의 꿈속이었고, 동시에 마르할은 여기 있었다.
마르할은 시선을 보내는 자였으며, 시선을 받는 자였다.
보이지 않지만, 모든 공간에 시선이 빼곡했다. 시선마다 눈을 하나씩 달아주면, 마음 약한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 기절하는 그림이 탄생하리라.
평소에는 그 시선들이 말도 걸고, 욕도 하고, 악몽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할 말 없으면 간다.”
마르할의 손 앞에 검이 생겼다. 마르할은 검을 잡고, 세상을 갈랐다.
세상이 반으로 갈라졌고, 마르할의 의식도 반으로 갈라졌다.
마르할은 잠에서 깨어났다.
* * *
도시는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성벽?”
도시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성벽은 도시의 갑옷이다.
도시가 두른 갑옷을 확인한 티머시가 말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몇 번이나 성벽을 확인했다.
“마르할, 내가 제대로 본 거 맞지?”
“맞아요. 진짜 돌을 쌓아 만든 성벽이에요.”
“공성 기사도 없이… 아니, 공성 기사로 이루어진 기사단이 있어도 저런 성벽을 만들려면 몇 년이 걸릴 텐데.”
그들 앞에 나타난 건 도시를 둘러싼 높은 성벽이었다.
높이만 따지면 요새라 불러도 된다. 그래서 티머시는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티머시는 평범하게 성벽이 지어지는 현장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돌을 구해 적당히 각지게 부수고, 쌓는다.
초인도 돌을 부수는 일을 며칠만 하면 근육통으로 뻗어버린다.
평민은 말할 것도 없다.
수천에서 수만의 인력이 몇 년을 들여 돌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만들어낸다.
성벽을 쌓는다는 건 그런 일이다.
사람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주인 없는 토지에서 시도할 짓이 아니다. 설령 하더라도, 완성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대작업이다.
그런데 그의 앞에는 완성된 성벽이 있다.
“유물의 힘이겠죠.”
“유물? 아무리 그래도 그런….”
“티머시. 진짜 유물을 본 적 있어요? 용병들이 운 좋게 구해 쓰는 그런 물건 말고, 귀족이나 몇 대에 걸쳐 이름을 쌓은 유파들이 꽁꽁 숨겨둔 비장의 무기요.”
“마족과의 전쟁에서 딱 한 번. 수십 개의 벼락을 떨어뜨리는 물건이었지. 음. 다시 생각해보니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아.”
그 한 방에 전장의 판도가 바뀌었고, 무너지기 직전의 도시는 일주일을 더 버텼다.
하지만 애초에 일회용이었는지, 재사용에 필요한 시간이 있는지, 티머시가 두 번째 벼락을 보기 전에 도시는 마족에게 밀려 사라졌다.
티머시가 후일 다시 그 자리를 찾았을 때 남은 건 서부에 널리고 널린 흔한 황야였다.
“맞아요. 유물만 있으면 1년도 안 되어 성벽을 짓는 것도 가능해요. 지금 중요한 건 성벽이 아니라, 저 성벽을 보고 모인 용병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예요.”
“전부 죽이지? 마법사 둘이 성벽에서 마법을 쏘아대면 간단해 보이는데.”
파름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는 이미 마리나의 마법을 봤다. 샤힐레의 마법은 보지 못했지만, 신비를 느끼는 그의 감각이 샤힐레 또한 평범한 마법사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마법사가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은 전장에서 호위도 없이 방치되었을 때다.
진짜 마법사와 싸울 일이 있다면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마법사를 고립시켜 죽여야 한다.
마법사를 고립시킬 방법이 없고, 마법사를 지킬 확실한 수단이 있다면, 그 전장에서는 싸워주면 안 된다.
높은 성벽은 초인들도 공략하기 까다로운 방벽이다. 거기에 초인들을 호위로 세우고, 성벽 위에서 불덩이를 펑펑 쏘아대면, 용병 따위는 만 명이 모여도 학살할 수 있다.
작정하고 편성한 군대가 아니면 공략이 불가능하다.
“죽이기만 할 거라면 그것도 선택의 하나죠. 그런데 저희는 공성전에서 이기려고 온 게 아니잖아요. 용병을 무력으로 몰아내면,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떠나려 하겠어요?”
“평소처럼 그 입으로 현혹하면?”
파름이 제안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이 마을을 버리고 떠난 궁극적인 이유는 자력으로 마을을 지킬 자신이 없어서예요. 저런 성벽을 가진 사람들도 같은 마음일까요?”
“그럼 반대로 성벽을 무너뜨려야겠군.”
“성벽이 무너지면, 약탈을 위해 모인 용병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저는 저 사람들까지 통제할 자신 없어요.”
수십 명도 완벽히 통제하지 못해 저주를 걸었다. 이들은 이언이 고른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용병이고, 그런 자들도 말 몇 마디에 혹해 마르할을 배신하려 했다.
저기 모인 용병 중 연합에 의뢰받은 용병이 몇이나 될 것이고, 또 그들이 얌전히 마르할의 말을 들을까.
절대 아니다.
마르할은 저들을 통제할 수 없다.
여론은 만들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여론에 따르는 건 아니다.
일탈해 약탈을 저지르는 사람이 반드시 나온다.
마르할은 서부 사람이 최대한 피해를 보지 않기를 바랐다.
파름이 장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티머시도 머리를 긁적였다.
그들은 자신들 앞에 닥친 문제가 얼마나 성가신지 깨달았다.
“당신 계획은 어떻죠?”
“그래, 너라면 생각해둔 게 있겠지?”
마리나의 말에 파름이 냉큼 동참했다.
근처에서 대화를 엿듣고 있던 다른 용병들도 귀를 기울였다. 개중에는 못 미더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마르할의 지휘권이 땅에 떨어진 탓이다.
“없어요.”
마르할은 눈빛이 변하는 용병들을 기억해뒀다. 마르할을 배신하면 저주로 죽지만, 배신하지 않고도 마르할을 성가시게 하는 방법은 많았다.
“아무 계획이 없다고요? 당신이 말입니까?”
“유물부터 확인하고 계획을 짜려 했어요. 만약 유물이 정말 대단한 물건이라서 마리나도 성벽에 손을 댈 수 없다면요?”
“그럴 일은 없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면 성가시군요. 저도 손쓸 방도가 없는 유물이라면, 토지 경주 시작까지 도시가 무너지는 일은 없겠죠. 청소 실패입니다.”
“그렇게 되겠죠.”
“토지 경주의 시작은 청소가 정상적으로 끝난다는 걸 전제로 삼고 있습니다. 토지 경주의 대상이 되는 땅에 도시가 있으며, 심지어 청소도 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연합이 직접 군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서부가 다시 피바다가 되겠죠.”
연합이 서부에 직접 무력을 휘두른 적은 없다.
서부를 지키려고 만들어진 연합의 검이 서부를 향하면 연합의 존재 의의가 붕괴한다.
그리고 한 번 무력이 사용되기 시작하면 연합을 이루고 있는 절묘한 권력의 균형도 깨진다.
전투에는 부산물이 따른다. 서부에서 나오는 달콤한 부산물을 연합의 주인들이 구경만 하고 있을 리가 없다.
청소되지 않은 도시는 연합이 서부에 검을 휘두를 구실을 주게 된다.
“무식한 나는 반도 못 알아듣겠군. 어쨌든, 우선 도시 안에 들어가 유물을 봐야 한다는 거 아냐?”
“맞아요.”
“나는 찬성.”
파름이 여기까지 온 건 땅에 떨어진 유물 어디 없나 한번 둘러보려는 목적이다.
맨땅에 성벽을 쌓아대는 힘을 가진 유물이 있다면, 직접 눈으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의뢰주가 가자는데 가야지.”
“저도 상황을 보자는 말에는 찬성합니다.”
티머시와 마리나까지 동조하며 한번 도시에 들어가 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마르할은 도시를 기준으로 남서쪽에 있었다. 그리고 용병들은 동쪽에서부터 청소하며 서쪽으로 이동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도시는 포위되어 있었지만, 도시 남쪽에는 비교적 사람이 적었다.
마르할은 청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얼굴이고, 파름은 전투가 주업인 용병이라면 모를 수 없는 얼굴이다.
마르할과 파름을 본 용병들은 슬슬 자리를 피했다.
“저거 마르할 아냐?”
“아, 씨. 포기해야 하나?”
“모르지. 마르할이라도 도시를 어떻게 하겠어?”
“붉은 해골? 저거 장검 맞지? 야. 너 나보다 눈 좋잖아. 한번 봐봐.”
“파름… 맞는데? 저게 왜 여기서 나와? 도시랑 전쟁이라도 하나?”
“무늬뿐인 도시라도 도시인데. 용병단 하나로 되겠냐.”
용병들은 도시를 둘러싸고 하염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 나타난 마르할과 파름은 씹을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용병들이 깔고 앉은 땅에는 농사를 짓던 흔적이 있었다. 완전히 타버리고 재만 남은 땅도 있었다.
사방이 초목으로 가득한 풍요의 땅에서 그들이 앉은 자리만 검었다.
마르할이 말했다.
“저 땅들. 원래 농사를 짓던 땅이었겠죠?”
“그렇겠죠.”
잘리고 눌린 작물을 보며 마리나가 말했다.
“여기가 농사짓기 쉬운 땅이라 해도, 놀면서 곡식을 거두는 건 아니잖아요?”
“농사는 지어본 적 없지만, 아마 그렇겠죠.”
도시를 포위하면 식량 공급을 끊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그건 용병들의 원칙이다. 마르할의 원칙이 아니다.
마리나는 고삐를 놓고 안대로 감싼 왼쪽 눈을 쓰다듬었다.
용병을 죽이는 짓은 안 하겠다고 했지만, 죽음만이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는 건 아니었다.
* * *
마르할은 용병 하나를 불러 사정을 들었다.
오래된 사람은 열흘 넘게 여기 죽치고 있었고, 그 열흘 동안 있었던 일들이었다.
용병은 다른 용병들과 함께 곡창지대를 청소하고 있었다. 그러다 곡창지대에 떡하니 솟은 성벽을 발견했다.
용병들은 신중했다. 이미 몇 차례 마을을 털며 초인들과 싸운 전적이 있었다.
근처에 있는 다른 용병을 설득해 모으고, 그렇게 백여 명의 용병이 야밤에 도시를 덮쳤다. 그러나 도시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수상한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고 진즉 성벽 안으로 대피해 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했다.
시간이 지나자 성벽을 발견한 다른 용병들이 모였고, 또 일부 용병이 성벽을 뚫으려고 지인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래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되었다.
“문은 뚫지 못했나요?”
“마차 두 대가 나란히 들어서면 꽉 차는 작은 문이라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뚫기 힘들지 말입니다. 게다가 그 문, 돌로 만든 문이라서….”
“돌로 만든 문? 그게 열리나요?”
“간이 투석기나 간이 충차를 들이박아도 꼼짝도 안 합죠. 도시 놈들이 쓸 때만 귀신같이 열립니다.”
“성벽을 타고 오르는 건요?”
“그짝도 마찬가지로 사다리라도 걸면 어찌 알고 끓는 물을 부어대는데, 날고뛰는 기사라도 양손 양발 못 쓰는데 위에서 물을 부어버리면 피할 방도가 없습죠.”
마르할은 용병에게 금화 하나를 던졌고, 금화를 받은 용병은 희희낙락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파름. 보여요?”
“저거 대박이야. 팔면 얼마에 팔릴. 아니, 저건 내가 써야지.”
“잠깐만요. 왜 마법사를 두고 용병에게 그걸 묻는 겁니까? 여기 마법사 있는데요?”
마리나가 아니꼬운 투로 말했다.
차라리 옆에 있는 샤힐레에게 물었다면 참는다.
교회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던 서부라지만, 죽음의 신이라는 별명은 아무에게나 붙는 게 아니다.
정확한 실력은 마법을 쓰는 모습을 봐야 알겠지만, 용병들에게 건 저주만 봐도 대단한 실력이다.
그런데, 그런데… 일개 용병에게 의견을 묻다니 그게 웬 말인가.
“하하핫. 질투는 추하다, 마법사.”
“당신에게 물은 게 아닙니다.”
“마리나는 뭔가 보여요?”
마리나는 성벽을 노려봤다. 마법까지 사용해 시야를 조감도로 바꿨다.
성벽에 신비가 작용하고 있는 건 일단 확실하다. 성벽 전체를 신비가 감싸고 있다. 그리고 도시 중앙이 유독 신비가 짙다.
“유물 주인은 마을 촌장 정도 되는 인물이겠군요.”
“겨우 거기까지인가? 보는 눈은 내가 더 좋은 모양이야. 내 능력에 더 확신을 가져도 되겠군.”
“당신은 뭔데 갑자기 시비입니까?”
“내 능력을 먼저 의심한 건 그쪽이지. 그리고 용병은 걸어오는 싸움은 거절하지 않아. 내가 꼬리 말면 내 부하들은 뭐가 되겠어?”
“따라오십쇼. 지금 재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마법을 안 쓰는 싸움이라면 해주지.”
“싸움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3초 전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죽을 게 뻔한 자리로 걸어 들어가는 것도 병신이지. 안 그러냐!”
뒤쪽에서 붉은 해골 용병단 소속 용병들이 환성을 질렀다.
마리나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인간, 또라이다. 여태 얌전하기에 멀쩡한 인간인 줄 알았더니, 그냥 빌미가 없어 조용하던 거였다.
“자자. 싸우지들 말고요. 우선 도시에 들어갈 방법부터 생각해보죠.”
엘리제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렀고, 마르할이 두 사람을 말리며 도시로 향했다.
돌로 만들어진 단단한 성벽이 마르할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