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85
제185화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 덕분에 교회 내부는 크게 어둡지 않았다.
남자는 인자한 표정이었고, 시선은 정면을 향했다.
“알란이라고 합니다.”
“마르할이라 불러주세요. 다른 사람은 신경 쓸 것 없어요.”
“그쪽 마법사분들도 말인가요?”
“네.”
샤힐레와 마리나는 마르할의 태도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평소의 마르할이었다면 웃으며 한 사람, 한 사람 자기가 직접 소개하거나, 아니면 옆으로 자리를 비켜줬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마르할은, 어딘가 강경했다.
말에 칼이 있다. 마리나는 반사적으로 안대를 만졌다. 그녀의 한쪽 눈이 다시 빛을 잃었을 때가 떠올랐다.
마르할은 웃으며 그녀의 옆구리에 검을 박았고, 웃으며 그녀 위에 올라타, 웃으며 그녀에게서 하나의 빛을 앗아갔다.
마리나는 눈앞의 마르할에게서 그때의 마르할을 겹쳐 보았다.
마르할과 오래 알고 지낸, 마르할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샤힐레도 마찬가지로 석연치 않은 마르할의 대응에 입을 꾹 다물고, 손바닥에 숨겨둔 작은 종이를 만졌다.
“그 말은 진실인가요? 마을을 구해줄 수 있다는 거요.”
“하나 정정하죠. 마을이 아니라, 도시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사람이라면, 모두 구할 수 있는 건가요?”
“모두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대다수는 구할 수 있습니다.”
알란의 눈썹이 한차례 떨렸다. 광대 쪽 근육이 한 번 씰룩였다.
대강 알았다. 하지만 확실함을 위해 조금만 더 정보를 수집하자.
마르할은 대화를 계속했다.
“비정상적인 사태에 정상적인 해결을 기대하는 건 잘못된 일이에요. 그건 납득하고 있죠?”
“알고 있습니다.”
알란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비정상적인 일에 비정상적이지만, 그래도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겠다고 말하고 있어요.”
“방법이 있습니까?”
“바깥에 있는 용병을 치울 수 있어요. 최소한 도시 사람들이 대피하는 동안 용병들이 손대지 못하도록 시간을 끄는 건 가능해요.”
“정말입니까?”
알란이 몸을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예, 가능해요. 그 전에 저희 사이에 있는 인식의 차이를 메워야 할 것 같네요.”
“인식의 차이… 말입니까?”
“여기가 마을인가요?”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저는 아까부터 이곳을 도시라 칭하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쭉 마을이라 칭하고 있군요. 이곳은 마을입니까? 도시입니까?”
알란의 입이 벌어졌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곧 그는 의문을 표했다.
“그게 중요한 일인가요?”
“예, 아주 중요해요. 마을과 도시는 무게부터가 다르니까요. 쉽게 말해, 마을은 자급자족에 한계가 있지만, 도시는 자급자족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해요. 비옥한 토지까지 있다면 무조건 가능하다고 봐도 되죠.”
결국은 인력이다.
한 마을에 모이는 인력은 한계가 있다.
우연히 모인 백여 명이 마을을 만들고, 그 안에 대장장이, 가죽 장인, 농사꾼, 목수 등이 모두 있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목수가 없으면 집이 부실하고, 대장장이가 없으면 농사에 쓸 농기구를 만들 수 없다.
농사꾼이 없으면, 키우는 곡식이 병들어도 모르다가 한 해 농사를 망친다.
“한정된 자원 탓에 실패도 허용되지 않아요. 가죽으로 옷을 만들려 했던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옷을 만드는 방법을 몰라 가죽만 너덜너덜해졌죠. 자원이 풍부하면, 다른 가죽을 구하면 돼요. 하지만 가죽을 구할 방법은 없고, 옷을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없다면요?”
“조금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부정은 안 할게요. 저는 책상물림을 싫어하거든요.”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가 검을 뽑았다.
세 사람이 동시에 반응했다.
파름의 장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마리나 주변에 얼음송곳 십여 개가 생겨났고, 샤힐레는 입에 종이 한 장을 물었다.
“이봐. 휘두르기 전에 잘 생각해야 할 거야. 난 일검에 픽픽 쓰러지는 용병들하고 다르거든. 우리 마법사들도 모닥불이나 피우는 샌님하고는 차원이 달라.”
파름이 이죽거렸다.
기사는 금방이라도 검을 휘두를 기세였다.
“세인. 저희는 싸우려는 게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세인이라 불린 기사가 검을 검집에 넣었다.
알란이 마르할을 보았다. 이 상황 속에서도 마르할의 눈은 흔들림 없이 그를 주시했다.
마르할의 눈은 차분히 가라앉아 고요한 수면과 같았다. 하지만 수면은 탁했고, 그 탁함이 알란을 불안케 했다.
수면 아래 드리운 무언가가 튀어나와 그의 목을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물을 건 물어야 했다.
알란이 물었다.
“제가 책상물림이라고요?”
“네.”
마르할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저는 성황국에서 서부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여러 일을 경험했죠. 책상물림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신은 세상을 얼마나 보았나요?”
“볼 만큼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돌로 지어진 교회가 요동쳤다. 알란 앞에 있는 돌멩이가 붉은빛을 냈다.
흘러내리는 피처럼 붉은빛이 교회 여기저기에 스몄다.
천장 일부가 무너졌고, 떨어진 돌덩이가 튕겨 마르할의 얼굴 바로 옆을 지나갔다.
그래도 마르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당신의 이름을 다시 듣고 싶군요.”
“알란입니다.”
흔들림이 거세졌다. 핏빛이 진해졌다.
교회는 피로 덮인 듯했다. 천장에 뚫린 구멍에서 내려오는 빛은 유물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핏빛으로 가득한 교회에 내려와 한 줄기 따스함이 되었다.
그 따스함이 비추는 것은 변색된 돌과 바닥에 눌어붙은 시커먼 덩어리였다.
마르할의 입술이 달싹이며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언어를 뱉어냈다.
[하나가 빠진 이름 말고. 당신의 진짜 이름을 듣고 싶어요.]돌멩이가 뿜어내던 붉은빛이 사라졌다.
[성황국의… 그것도 미사어? 대체….] [대답해 주세요. 당신의 이름은 뭐죠?]알란의 손이 떨렸다. 알란은 팔꿈치를 팔걸이에 올리고 양손으로 깍지를 꼈다. 맞닿은 열 개의 손가락이 서로 자리를 바꾸기를 반복했다.
마르할은 흔들림이 없었고, 알란은 흔들렸다.
[성황국이 보낸 사람인가?] [그렇다면 대화보다는 무기를 들었겠죠. 알란, 저는 아직 당신이 누구인지 듣지 못했어요.] [알란, 알란 에고만. 그게 내 이름입니다.]기사 세인과 파름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냥 성황국어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해하는 듯했다.
하지만 성황국어를 알아듣고, 에고만의 이름이 가진 가치를 아는 샤힐레와 마리나는 달랐다.
마리나는 인상을 잔뜩 쓰고 알란을 노려보았고, 샤힐레는 마르할을 보며 큰 눈을 끔뻑였다.
[좋아요. 이제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겠네요.]마르할이 미사를 진행하는 성황국 사제처럼 평온하게 말했다.
* * *
율란은 성황국에서 태어났다.
율란에게도 부모는 있다. 율란의 아비는 성황국 사제였고, 율란의 어미는 성황국 사제의 하룻밤 놀이 상대였다.
선택받은 사람인 성직자는 그 피를 널리 퍼뜨릴 의무가 있으며, 부인을 여럿 두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율란의 아비는 부인을 두는 대신 하반신을 놀렸고, 율란에게는 수십 명의 이복형제가 있었다.
율란의 아비는 제 자식 중 싹수가 보이는 몇 명을 골라 교회에서 성직자로 키웠다.
율란도 아비의 손에 끌려 교회에서 자랐으며, 어미가 지어준 율란이라는 이름 말고 에고만이라는 이름을 더 받았다.
그래서 율란 에고만이 되었다.
율란은 마르할에게 가족 이야기를 그다지 해주지 않았다.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고, 아버지가 누구고, 또 비슷한 처지의 형제들이 있다는 정도였다.
율란은 가족을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그건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라 했다.
이름 뒤에 붙은 ‘란’은 율란이 태어난 지역에서는 이름 끝에 흔히 붙이는 단어다.
알란 에고만은 율란과 같은 지방에서 태어난 율란의 형제다.
“율란은 어렸을 때부터 특별했습니다. 같은 상처를 입어도 몇 배는 회복이 빨랐고, 몇 살이나 나이가 많은 형제보다 먼저 기적을 터득했죠. 엘란, 부올란, 겔란까지… 성인들도 막 교회에 들어온 율란의 재능을 질투했습니다.”
알란은 고개를 들어 과거를 되짚었다.
그의 입은 여전히 성황국 미사어를 하고 있었다.
졸지에 따돌림을 당하게 된 세인과 파름만 뚱한 표정을 지었다.
“재능이 없었던 저는 일찌감치 사제가 되는 걸 포기하고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마족이 사라지고, 율란이 성황국에 틀어박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형제들이 한 명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습니다.”
알란은 ‘잘 쌓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학문에는 재능이 있었다. 그는 성황국 안에서도 상당히 높은 등급의 서적을 열람하고 연구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알란을 살렸다.
“정확히는 몰라도, 에고만의 이름에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 건 확실했습니다. 저는 성황국을 나와 도망쳤고, 서부에 닿았습니다.”
“그사이에는 뭘 했죠? 성황국에서 도망쳐 서부까지 왔다면, 길게 잡아도 1년이면 돼요. 서부에 와서는요?”
“고행 사제가 된 기분으로 여러 장소를 돌아다녔습니다.”
알란이 말을 끊었다. 그는 난제를 마주한 학자처럼 마르할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는 신중하게 하나의 명제를 제시했다.
“땅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연합에서 멋대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내쫓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모았습니까?”
“자갈은 물길에 쓸려나갈 뿐이지만, 둑을 만들면 강을 막을 수 있죠.”
하지만 자갈로 만든 둑은 조금만 물길이 험해져도 무너진다.
마르할은 생각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대신 알란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단이 되었습니까?”
“수단입니다. 이단들 사이에서 유독 유물이 자주 발견된다는 걸 아십니까? 그래서 전 이단의 방법을 흉내 냈습니다. 그렇게 이 유물이 만들어졌죠.”
알란의 손이 돌멩이를 한차례 쓸었다.
알란은 업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유물을 만들어내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것 말고도 신앙은 효용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람들은 신앙을 중심으로 뭉칠 수 있습니다. 연합에 대항할 수 있습니다.”
“신은 어디 갔습니까?”
“전지전능한 빛이 계신다면, 이 또한 그분의 뜻이겠죠.”
“학자, 그것도 신학자라는 분이 잘도 그런 말을 하시는군요.”
“그분은 사람을 선별하십니다. 기적이 선별의 증거라면, 이 유물도 증거가 되지 않겠습니까?”
마르할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래서 책상물림이 싫다.
모든 주장과 답변을 자기 머리에서 끝내버리고, 타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마르할이 어떤 말을 해도 알란은 그가 가진 지식으로 반박할 것이고, 그게 설령 궤변이라도 그는 자신의 답변이 올바르다 믿을 것이다.
마르할은 저런 사람을 숱하게 봤다.
적당히 이용하다 버리면 되는 유형이다.
곧 죽어도 자신이 옳다고 믿기에 방향만 잘 유도하면 이보다 쉬운 인간이 없다.
마르할이 화가 나는 건, 저 인간이 율란과 같은 핏줄이라는 것이다.
율란과 닮은 얼굴로, 율란이 떠오르는 목소리로 개소리를 내뱉는 게 짜증 났다.
엇나가는 가족을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좋아요. 그런 유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신의 뜻이 맞겠죠.”
없는 신의 이름을 팔아 도시 하나를 구할 수 있다면, 몇 번이든 팔아줄 수 있다.
율란도 그걸 원할 터였다.
“바깥에 모인 용병들의 정보를 알고 싶어요.”
“많은 걸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뭐든지 좋아요.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그리고 하나 더, 교회 앞 광장에서 의식을 치르고 싶어요.”
“…의식 말입니까?”
“의식이란 말이 마음에 안 들면, 마법사의 기행이라 생각해도 좋아요. 이쪽 마법사가 마법을 쓰려면 의식이 필요해서요.”
“어떤 의식입니까?”
“그냥 동물 몇 마리를 제물로 쓸 뿐인 아주 단순한 의식이에요.”
알란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망설이는 그에게 마르할이 쐐기를 박았다.
“다 도시를 위한 일이에요. 사람들을 위한 일이고요. 모두 신의 뜻인데, 겁먹을 거 있나요?”
“알겠습니다. 허락하죠.”
알란은 입안이 텁텁했다. 모래를 한 줌 입에 머금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