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9
제19화
밤이라기엔 이르고, 저녁이라기엔 늦은 시간이었다. 저 먼 곳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운 거리는 눈으로 보이는 그런 어둠.
마르할은 뒤로 돌아 목소리의 주인을 살폈다.
마르할은 용사에게, 도둑에게, 성인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특히 자신 있는 건 제국 소속 사람들의 출신을 맞히는 것이다.
마법사 마르 실라나티엘은 제국 귀족 출신으로, 제국 주요 귀족들의 명단과 그들 가문의 문양, 제국 각 지방의 특징과 특산물을 전부 외우고 있는 기인이다.
그리고 마르할은 그녀의 지식을 모두 전수받았다.
‘므에트 제국 칼라엔스 공작령 소속 기사. 나이 30대 초반. 특기는 기습. 아슬아슬하게 중위 기사 정도 되려나.’
저기서 더 좋은 수련법을 가지게 되거나 양질의 경험을 쌓으면 고위 기사가 되어 한 지역을 대표하는 기사가 된다.
중위 기사가 약한 건 아니다. 대부분의 기사가 하위 기사라 불리는 일반 기사의 직위에 머문다.
‘기사로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이야. 막내는 아닐 테고, 막내가 할 일을 자기가 하니 기분이 나쁠 만도 해.’
“무슨 일이십니까?”
“이 땅을 넘겨라.”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여긴 주인 없는 땅입니다. 넘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죠.”
“그럼 그 자리를 비켜라. 여기 깃발을 꽂겠다.”
“싫습니다.”
기사가 검을 뽑았다. 타오르는 모닥불의 빛이 기사가 있는 곳까지 퍼져, 검날에 옅은 주홍색으로 반사되었다.
“여자를 두고 꺼져라. 그럼 팔 하나로 용서해 주마.”
“기사님, 여긴 성황국도 아니고, 근처에 사제도 없습니다. 팔이 잘리면 죽어요.”
“그게 내 알 바인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다른 사람도 근처로 다가왔다.
레벨라는 검에 손을 올렸고, 마린은 양손을 등 뒤로 감췄다.
“해보겠다고? 천민에게 주제를 알려주는 것도 기사의 의무. 좋다. 하늘을 보여주마.”
“푸흡.”
여간한 허세나 협박은 참겠지만, 방금 그건 조금 웃겼다.
하늘을 가르는 용사도, 그 인간 같지 않은 인간도 하늘을 논하지는 않는다.
용사의 손가락 하나도 상대하지 못할 사람이 하늘을 운운하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웃어? 나를?”
“웃기지. 눈앞에 죽여 달라 애원하는 개새끼가 있는데.”
스트레킬이 검을 뽑았다. 깔끔한 발검과 흔들리는 망토 사이로 번쩍이는 갑옷이 슬쩍 보였다.
“갑옷…?”
기사의 얼굴에서 오만이 사라졌다. 그리고 의심과 불신의 시선으로 스트레킬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고, 이어 기사의 손아귀에 힘이 꾸욱 들어갔다.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가 왜 이런 곳에?”
“제국의 중위 기사는 철을 벨 수 있는지 궁금하군.”
벨 수 없다. 제국 고위 기사들도 철을 베지는 못한다. 그게 가능한 건 극히 일부의 선택받은 사람들뿐이다.
중위 기사, 그것도 기습에 특화된 그는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한다.
“하늘, 보여준다면서요?”
“너희는 지금 제국을 건드렸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그 말, 책임질 수 있어요?”
“물론이다. 너희에게 제국의 저력을 보여주마. 그 눈빛은 뭐지?”
“아뇨. 황궁 직속 기사도 아니고 칼라엔스 공작령 소속 중위 기사가 언제부터 제국을 대표하는 위치가 되었나 해서요. 아니면 황제에게 특명을 받은 밀사라도 되시나?”
“어떻게…?”
“공작가 문양을 달고 다니는데 모르는 게 이상하잖아요?”
그럴 리가. 평민들은 귀족의 문양 같은 건 봐도 모르고, 외우지도 않는다. 제국 황실의 문양과 자기가 사는 땅의 영주 가문의 문양 정도나 겨우 외울까.
도시 안에서 그와 싸웠던 기사와 용병도 칼라엔스 공작의 문양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일개 야인이 공작가의 문양을 알아보고, 책임을 묻고 있다.
“너는 누구지?”
“당신이 알면 감당할 수 있겠어요?”
“…….”
말이 물러났다. 기사의 심정도 말의 뜻과 같았다.
저 남자는 자신을 안다. 하지만 그는 저 남자를 모른다.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는 누구고, 저기 있는 여자들은 누구인가?
왜 이들은 함께 있는 것이며, 갑옷 입은 기사를 부하처럼 부리는 저 남자의 정체는?
그는 무엇 하나 아는 게 없었다.
모닥불 타는 소리가 들렸다. 타닥타닥.
잠시의 침묵이 있었고, 기사가 입을 열었다.
“내가 무례했군. 사과하겠다. 자격을 갖춘 다음 다시 오지.”
말머리를 돌리려는 기사를 마르할이 붙잡았다.
“여자를 두고 꺼지라고 했죠. 그건 무슨 뜻이었을까요?”
“…….”
기사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돌아서야 하나? 그랬다간 꼼짝없이 고개 숙여야 할 것이다. 그는 제국 기사의, 유망한 공작 가문의 중위 기사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가 돌아가 단장에게 보고하면, 단장이 다시 와서 직접 대화를 나눌 것이다. 그 전에 서로 얼굴 붉혀 좋을 게 없다.
합리성을 곁들인 핑계를 근거로, 그는 마르할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말을 몰았다.
몇 발짝 걷던 말이 히히힝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기사는 쓰러지는 말 위에서 몸을 돌리며 착지했다.
‘끈…?’
두꺼운 가죽끈이 말의 뒷발을 묶고 있었다. 역할을 다한 끈은 뱀처럼 스르르 움직여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마법사…!”
그는 점점 더 알 수 없어졌다.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에 귀족 여식, 그리고 마법사까지.
기습이 특기인 그는 감각도 뛰어나다. 끈은 그의 감각을 속이고 접근해 말의 발을 묶었다.
은밀함도 은밀함이지만, 말의 움직임을 막을 힘도 가지고 있다. 방심한 사람을 제압하거나 죽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장애물이 많은 도시 안에서 저 끈이 돌아다녔다면, 기사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리라.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에 암살이 가능한 마법사. 도시 안에 들어와 도시를 노리는 것도 가능한 전력인데, 어째서 이런 공터에?’
기사의 혼란과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마르할의 차분한 목소리가 기사의 귓가를 두드렸다.
“사과하시죠. 이름을 걸든, 명예를 걸든, 폭언에 걸맞은 성의와 사과를 보이면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성의?”
“고귀한 분들의 고결한 정신과 존귀한 육체를 욕보였으니, 고개 정도는 박아야죠. 아니면, 기사답게 무기로 말하실래요?”
기사의 눈이 스트레킬에게로 향했다. 스트레킬은 연쇄살인마처럼 웃으며 검의 손잡이를 툭툭 두드렸다.
“머리, 아니면 무기?”
기사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무릎과 양손이 땅에 닿고, 마지막으로 이마가 땅에 닿았다.
“칼라엔스 공작에게 서임받은 중위 기사 아울. 아가씨들께 행한 무례와 제 행동에 고귀하신 분들이 받았을 충격에 이리 용서를 빕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길.”
“그렇게 말하는군요. 어쩌시겠습니까?”
말해도 돼? 베이올라가 눈으로 물었다. 마르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무례를 용서하지. 이번 일을 거름 삼아 차후 명예를 아는 위대한 기사가 되기를 빌겠다.”
“관대한 처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기사 아울은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몸을 일으켰다.
진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귀족들은 간단한 말과 행동에도 일반인과는 다른, 초인인 기사들도 범접하지 못하는 무형의 힘이 실린다.
저 여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진짜였고, 적어도 자신의 사죄가 진짜 고귀한 사람에게로 향했다는 것에서 그는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
적어도 자존심이 깨지지 않도록 자기 합리화는 할 수 있었다.
아울은 기사처럼 인사하고는 쓰러진 말을 일으켜 떠나갔다.
아울이 성벽 잔해 안으로 사라지길 기다리던 스트레킬이 마르할에게 물었다.
“기선 제압은 중요하다. 하지만 마법까지 보여야 했나? 숨겨둔 마법은 누구에게나 유효한 수단이다. 그 끈을 움직이는 마법은, 아마 나한테도 통할 거다. 다음에 올 때 저들은 나를 죽일 방법은 물론이고, 그 마법의 대응책도 짜 오겠지. 마법을 보인 건 악수였다.”
“저들과 비교해 저희가 점할 수 있는 우위가 뭐가 있을까요?”
“중위 기사가 심부름을 왔다. 고위 기사가 있을 거고, 높은 확률로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도 있겠지. 내 갑옷은 우위가 되지 못한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던 것이 마법이다.”
“그건 물리적인 전력이죠. 저희의 우위는 전투력을 제외한 모든 것이에요.”
“모든 것?”
“사다리가… 없네. 제자리 뛰기로 최대한 높이 뛰어서 동쪽을 보세요.”
스트레킬은 다리에 힘을 주었다.
화살처럼 솟구친 스트레킬은 동쪽에서 넘어오는 수십 개의 횃불, 수백 명의 사람을 보았다.
쿵. 그가 땅으로 떨어졌다.
“하이에나군.”
“하이에나의 속도는 측량사의 속도에 따라 달라져요. 하이에나가 원하는 건 직접 깃발을 꽂고 지키는 피 말리는 기다림이 아니라, 쉽고 빠르게 한탕 하는 거거든요.”
“그게 이것과 무슨 상관이지?”
“측량사가 가까이 있으면, 빠르게 측량을 받을 수 있겠죠? 하이에나들이 노리는 게 그거예요. 깃발 주인을 죽이고 측량사가 오면 그 땅은 자기 것이 되니까요. 그리고 측량사는 자기 구역에서 범죄가 일어나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죠. 소란은 측량 작업에 방해만 되니까요.”
“그거였군요! 마린을 습격하는 하이에나를 본 다음 당신이 이 계획을 세운 이유!”
레벨라가 소리쳤다.
몇 중으로 꼬인 퍼즐을 풀었을 때의 쾌감이 그녀의 머리에서 뿜어졌다.
“측량사가 근처에 있다면 이미 깃발을 꽂은 사람은 깃발을 지키려고 혈안이 될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깃발을 꽂으려고 하겠죠. 그리고 이 주변 깃발 주인들은 이미 당신과 합의를 마쳤습니다. 하이에나가 그들의 땅 사이에 깃발을 꽂는 걸 보고만 있지는 않겠죠. 하이에나만이 아니라 도시 안에 있는 기사들도 그들에게는 자기 땅을 빼앗으려는 경쟁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깃발 주인들에게 도시 주인을 협박할 방법도 알려주었죠. 깃발 주인은 자기 땅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러면… 맙소사! 우린 이 땅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군요!”
“그래, 네가 머리 좋다는 건 알았다. 이제 무식한 우리에게도 좀 설명해 주지?”
스트레킬이 불퉁하게 말했다.
그는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이지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아니다. 파편적인 정보만 듣고 사건의 전말을 추리하는 재주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칼라엔스 공작의 기사들이 도시를 차지하기 위한 조건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일대에 모조리 깃발을 꽂은 뒤 측량사가 도착할 때까지 그 깃발을 수비하며 기다리는 것. 두 번째는 저희가 있는 이 자리에 깃발을 꽂는 겁니다. 그래야 동쪽에 깃발이 보이는 위치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군략을 아는 자라면 첫 번째가 미친 짓이라는 걸 알겠지. 그럼 필연적으로 싸움이 일어난다. 싸움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말하지 않았나?”
“저도 그 점이 궁금하군요. 이건 분명 환상적인 상황입니다만, 동시에 전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제가 지휘관이라면 이 자리까지 차지하고 싶을 겁니다.”
마르할은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올지에 따라 작전이 달라져서요. 그때가 왔을 때의 재미라고 해두죠.”
다시 황야의 밤이 찾아왔다.
* * *
중위 기사 아울은 도시 안으로 돌아갔다.
도시 안쪽에서는 기사들이 나무는 베어내고 돌은 밀어내며 길을 만들고 있었다. 밤이 왔는데도 그들은 횃불에 의지에 작업을 계속했다.
도시를 노리는 누군가가 다시 들이닥치기 전에 작업을 끝내두라는 단장의 지시였다.
아울은 기사들을 지나쳐 도시 중앙으로 들어갔다.
도시 안쪽으로 갈수록 시취가 진해졌다. 치우지 못한 시체들이 내려앉은 밤의 어둠 사이로 드문드문 보였다.
아울은 도시 중앙에 도착했다. 도시 중앙에는 붉은 깃발이 꽂혀 있었고, 그 앞에는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 한 명이 돌덩이 위에 앉아 있었다.
갑옷은 피투성이였고, 옆에 벗어둔 투구도 피에 물들어 시뻘겠다.
돌덩이 앞에 피워진 모닥불이 시뻘건 기사의 갑주를 더욱 붉게 만들고 있었다.
“성공한 사람의 표정은 아니군.”
칼라엔스 공작가 흑철 기사단 단장 카반이 우묵하게 들어간 눈으로 아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울은 떨어지듯 말에서 내려 직립했다. 그리고 성벽 바깥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아울의 설명을 들으며 카반의 눈썹이 몇 번 꿈틀거렸고, 그때마다 아울도 덩달아 어깨를 흠칫 떨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카반이 무릎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옆에 두었던 검을 잡았다.
“새벽까지 작업을 끝낸다. 그리고 그자들을 만나러 간다.”
카반이 검을 휘두르자 그가 앉아 있던 돌이 반으로 갈라졌다.
고위 기사 카반, 그는 철은 자르지 못해도 돌은 자를 수 있는 기사다.
돌은 베어도 철은 벨 수 없는 기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