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09
제209화
스트레킬은 노기사와 검을, 주먹을, 발을 나눴다.
기사의 검술이란 검을 든 상태로 육신을 사용하는 모든 방법의 총칭이다.
스트레킬과 노기사는 서로의 검술을 보였다.
검술은 두 사람이 육체를 움직이는 방법이었고, 평생 몸을 단련한 기사에게 육체란 그들의 인생이었다.
검과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 사이에서 스트레킬은 노기사의 인생을 발견했고, 노기사도 스트레킬의 인생을 발견했다.
노기사는 젊은 시절 강인한 육체에 기댄 검술을 사용했고, 육신의 노쇠와 함께 배웠던 기술을 모두 버리고 기교를 갈고닦는 길을 택했다.
전성기 이상의 육신을 얻은 노기사는 힘과 기술을 모두 가진 이상적인 기사였다.
스트레킬은 의리를 아는 맹수였다. 철저히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였지만, 누구보다 자기 사람을 챙겼다. 그는 개척자였다.
그의 개척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 자리에서 노기사와 함께 계속되었다.
주변에 있는 기사들은 쉽사리 둘의 싸움에 끼어들지 못했다.
노기사의 몸이 변하기 전에는 적당히 틈을 보며 합공이 가능했다.
노기사의 피부가 검게 물들고, 그들은 스트레킬과 노기사의 호흡을 따라가지 못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노련한 기사들은 종자이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맛보았다.
기사들의 싸움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지켜만 보고 있던 종자 시절의 기억.
무력감과 동경이 혼재된 감정.
기사들은 정체되었고, 과거로 회귀했다.
스트레킬은 눈앞에 있는 과거와 마주했고, 노기사는 현재를 불태웠다.
그들은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들이 거하는 시간은 달랐다.
화염 이전에 열기가 닥쳤다.
스트레킬은 노기사 뒤에서 달려오는 불덩이를 보았다.
불덩이 안에서 사람이 움직였다.
‘불꽃의 기사 케라스.’
마르할에게 미리 듣지 못했다면 공국 짓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사람을 담은 불덩이가 천하를 담은 땅을 달렸다. 천하가 이 땅에 담겼으니, 저기 달리는 불덩이는 천하를 불태우며 가로지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가까이 붙지도 않았는데 들이마시는 공기로 열기가 전해졌다.
‘죽겠군.’
스트레킬은 죽음을 각오했다.
철을 베는 기사 말고도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에게는 천적이 하나 더 있다.
열기. 더위다.
갑옷을 달구는 열기는 체력을 갉아먹고, 몸을 움직이며 발생하는 육신의 열이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막는다.
체력 하나는 자신 있는 스트레킬은 더위에도 강한 편이지만, 평야를 불태우며 다가오는 저 불덩이의 온도를 버틸 자신은 없었다.
그 전에, 저것 근처에서 호흡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기도와 폐가 익어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등을 데우는 열기에 노기사도 후방을 확인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스트레킬이 있는 방향으로 뛰었고, 스트레킬도 무방비하게 다가오는 노기사를 베지 않았다.
서로 검을 맞대고 있지만, 그들은 목숨을 나눈 전우였다.
뭐가 우선인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스트레킬과 노기사를 중심으로 다른 기사들도 옆으로 늘어섰다.
스트레킬이 저 불덩이의 정체를 읊었다.
“므에트 제국 황제 직속 기사단. 불새 기사단의 기사단장 케라스 아니게온이다.”
“서부에 왔다는 정보는 접했네. 하지만 그가 저런 괴물이라는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네.”
노기사가 말했다.
황제 직속 기사단은 소문만 무성한 집단이다.
공국 왕실에 전해지는 신뢰도 높은 소문에 의하면 그들은 철을 베는 걸 기본으로 한 가지 이상의 신비를 마법사 수준으로 부린다고 했다.
그래도 저건 도가 지나치다.
저런 기사를 필두로 한 기사단이 몇 개나 있다면 제국은 지금보다 배는 넓은 토지를 가졌을 것이다.
“우선 싸우면서 생각합시다.”
중년 기사 한 명이 케라스에게 단검을 던졌다.
날아간 단검은 케라스에게 닿기도 전에 녹아 땅에 떨어졌다.
“…싸우지도 못하겠군.”
스트레킬은 허리춤에 잠시 넣어뒀던 검을 다시 꺼냈다.
마르할에게 직접 받은 바체아 제국 황실 유물.
마지막까지 아껴두려던 비장의 수.
스릉.
심상치 않은 소리와 함께 검이 뽑혔고, 검신이 은은하게 타올랐다.
노기사를 포함해 자리에 있던 모두는 같은 생각을 했다.
스트레킬이 처음부터 저 검을 뽑았다면, 싸움은 성립조차 되지 않았다고.
스트레킬이 말했다.
“공국군과 연락은 안 되오?”
“자네를 위한 대포를 준비 중이네. 아스파룸은 아둔한 자가 아니니. 발만 묶으면 될 걸세.”
“그것도 그른 것으로 보이오만?”
노기사의 눈이 전선을 향했다. 그는 지금쯤 설치가 끝났어야 할 대포를 찾았다.
“기사단장이 홀로 움직일 리가 없지….”
노기사는 속으로 깊이 탄식했다.
대포가 부서졌다.
바퀴나 지지대가 부서져 땅에 고개를 처박았다. 조준해 쏠 상태가 아니었다. 포신이 손상된 대포도 있었다.
시간이 있으면 수리하겠지만, 불꽃의 기사는 대포가 수리되기 전에 여기 있는 모두를 태우고 평야를 불사를 것이다.
불덩이가 그들 앞에 멈췄다.
케라스의 몸을 감싸고 있던 불길이 사라졌다.
그는 우아하게 검을 뽑으며 공국어로 말했다.
“므에트 제국 황제 직속 호위. 제국의 두 번째 자리. 케라스 아니게온이다.”
“겁쟁이가 그럴싸한 이름만 대는군.”
스트레킬이 케라스를 비웃었다.
“…겁쟁이?”
케라스의 몸에서 불똥이 튀었다.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무기를 모두 부수고, 지친 기사들 사이에 끼어들어 당당하게 칼을 뽑는 놈을 겁쟁이가 아니면 뭐라고 불러야 하지? 아. 황제 직속 호위라는 이름이 있군. 누가 임명했는지 몰라도 호위 하나는 잘 뒀군.”
“제국을 모욕하는 거냐? 내 앞에서?”
“나는 칭찬할 셈이었다만.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는 건 호위의 덕목 아닌가? 그걸 모욕이라고 받아들이다니, 평소 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겠군. 황제 직속 호위조차 제국을 믿지 못하다니. 제국의 개입을 걱정하던 공국 왕실이 불쌍해질 지경이야.”
최근에는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았지만, 그래도 공국을 떠난 스트레킬이 제일 오래 얼굴을 보고 지낸 사람이 마르할이다.
멀쩡한 사람도 말 몇 마디로 중범죄자로 만드는 게 마르할이라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 옆에서 보고 배울 거야 뻔했다.
말로 사람을 죽이는 법.
졸지에 황제를 모욕한 사람이 된 케라스가 이를 악물었다.
분노로 그의 턱이 떨렸다. 이어 케라스의 몸이 불을 뿜었다. 그의 몸은 불과 하나가 되었다.
“입을 놀리는 솜씨가 제법이야. 칭찬해주마. 그래, 나는 내가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가 잘못되었지? 겉으론 고귀한 척해도 기사란 본디 그런 놈들이다. 너희가 더 뼈저리게 알고 있을 텐데.”
스트레킬이 작게 혀를 찼다.
케라스를 도발해 냉정함이라도 빼앗을 셈이었지만, 그리 쉽게 걸려주지는 않았다.
겉으로는 오만해 보여도, 황제 직속 호위라는 직책까지 얻은 기사는 쉽지 않았다.
스트레킬은 케라스 뒤로 눈을 돌렸다.
투구 아래로 슬쩍 드러난 스트레킬의 행동을 본 케라스가 말했다.
“소용없다. 공국군은 날 어떻게 하지도 못할뿐더러 내 부하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니까. 철을 베는 기사가 포함된 고위 기사들을, 사기가 바닥을 치는 병사들이 막을 수 있을까?”
“모르는 일이지.”
“여기까지 와서 최후의 보루가 병사들이라니, 웃기지 않나?”
노기사가 농을 던졌다.
스트레킬은 공국 병사들에게 기대 따위 하고 있지 않다.
목숨을 걸고 케라스를 죽여도, 공국 군대가 남아 있다면 다음은 자신들이다.
공국이 가족을 버렸을 때부터 스트레킬은 공국에 무엇 하나 기대하지 않았다.
스트레킬은 마르할을 찾았다.
마르할은 겉으로는 부서진 것처럼 보이는 대포에 붙어 있었다.
설령 진짜 대포가 부서졌어도, 마르할이라면 해낼 것이다.
해내리라는 믿음이 스트레킬에게는 있었다.
‘최악은 아니군.’
이것도 본래 마르할의 계획은 아니었다.
스트레킬이 시간을 끄는 사이 마르할이 병사들 사이 잠입해 대포를 부수는 게 원래 작전이었다.
케라스를 발견한 마르할이 작전을 바꾼 거겠지.
평야가 불탔다.
케라스가 남긴 불이 비옥한 토지에서 자란 잡초를 먹으며 몸집을 키웠다.
병사들은 불에서 도망가거나, 불을 끄려고 겉옷을 벗어 휘둘렀다.
아스파룸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의 부관들은 목이 쉬었다.
군대는 기능을 잃었다.
케라스 뒤의 평야는 불바다가 되었고, 불은 스트레킬과 공국 기사들을 노리며 다가왔다.
불을 등진 케라스가 입을 열었다.
“흥이 식었다. 그냥 빠르게 정리해주마.”
전신에 불을 감은 케라스가 움직였다.
그의 속도는 마족의 육체를 얻은 노기사와 비슷했지만, 스트레킬이 체감하는 케라스의 속도는 노기사보다 두 발짝은 빨랐다.
케라스의 몸을 감은 불길이 주는 위압감 탓이었다.
스트레킬은 배 속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호흡기가 따가웠다.
스트레킬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잔불이 일렁이던 유물이 세차게 타올랐다.
유물의 화력에 스트레킬 옆에 있던 노기사도 한발 물러섰다.
기사들은 말을 나누지 않고도 서로에게 역할을 부담했다.
목숨을 건 전장을 함께한 전우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재빠르게 자리를 찾아가는 기사들을 보며 스트레킬은 만족스러웠고, 애잔했다.
그의 전우들은 여전했으며, 싸움의 결과가 어떠하든 이게 전우들과의 마지막이었다.
케라스가 검을 휘둘렀다.
스트레킬도 검을 휘둘렀다.
케라스의 검은 불을 휘감았고, 스트레킬의 검은 불을 뿜었다.
검과 검이, 불과 불이 맞붙었다.
바체아 제국의 유물은 케라스가 뿜어내는 불과 신비를 ‘어느 정도’ 막아주었다.
그래, 다 막지는 못했다.
스트레킬은 몸이 실시간으로 익어가는 고통을 참으며 케라스와 검을 나눴다.
죽는다.
이대로 계속 검을 나누면 케라스의 불길에 인간 찜이나 인간 통구이가 되어 죽게 생겼다.
“내 불을 막아?”
케라스는 전신 갑옷을 가진 기사다. 작전의 특성 탓에 서부에 입고 오지는 않았지만, 제국에 있는 그의 전용 창고에는 여러 신비가 깃든 전용 전신 갑옷이 있다.
케라스는 전신 갑옷을 이용한 전투가 어떤 것인지 여기 있는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스트레킬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원래대로라면 첫 합에 피부와 내장에 끔찍한 화상을 입고 죽었어야 했다.
불을 뿜는 유물이 그의 신비를 막았다.
“공국에 그런 유물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다. 멸망한 서부 국가의 물건인가? 아니면 우연의 산물?”
“무엇을 상상하든, 네 생각보다 대단한 물건이지.”
“그럼 죽여서 빼앗으면 되겠군!”
케라스의 양옆과 뒤에서 기사들이 검을 휘둘렀다.
케라스는 그걸 알고도 검을 빼지 않았다. 그냥 몸에 두른 불꽃을 크게 키웠다.
검이 녹고, 기사들의 옷에 불이 붙었다. 가죽에 달아둔 급소를 보호하는 철판이 녹아내렸다.
극심한 화상에 전신의 털이 타고, 피부가 쪼그라들었다.
기사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도 스트레킬의 열세는 명확했다.
마족과의 전쟁에서, 기사의 목숨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마족 하나를 잠시 묶어두는 작전에 기사단 하나가 투입되기도 했다.
죽음을 전제로 한 작전이다. 그런 작전에 참가한 기사들은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여기 있는 기사들은 전우의 희생 위에 살아 있다.
이제 그들의 차례였다. 먼저 간 전우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그들도 몸을 날렸다.
기사들은 불구덩이로 뛰어들어 케라스의 발목을 잡았다.
“이걸로 빚은 없다!”
“어차피 전부 죽는다면, 너만이라도 살아라! 스트레킬!”
스트레킬은 팔에 힘을 줬다. 케라스의 검이 조금 뒤로 밀려났다.
“이런 제길….”
다리와 몸통에 달라붙은 기사들은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았다. 수축하는 피부와 근육이 다리와 몸통을 더욱 강하게 조였다.
“그 불, 쇠조차 녹이는 것치고 실제 온도는 그리 높지 않군. 녹이는 건 신비의 힘인가.”
노기사가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뜨거운 용광로에 단검을 던져도 용광로를 관통하기도 전에 단검이 녹아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온도의 불이라면, 기사들의 시신은 케라스의 몸에 닿기 무섭게 불타 재가 되어야 했다.
사방으로 퍼지는 열기에 착각하게 되지만, 순수한 불의 온도가 쇠를 녹이는 게 아니다. 쇠를 녹이는 건 불에 깃든 신비다.
노기사는 케라스의 후방을 노렸다.
피부가 화끈했다. 그러나 조금 뜨거운 정도.
피부를 대신한 검은 비늘은 불에 타지도, 쪼그라들지도 않았다.
호흡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검은 녹았다. 저 불에 버티는 검은 스트레킬이 든 유물 정도다.
검이 없으면 어떠하리.
검술은 이 몸에 깃들었고.
이 몸은 검보다 튼튼한 것을.
노기사가 케라스의 등으로 주먹을 질렀다.
바람이 불을 밀어냈다. 주먹이 닿기도 전에 밀어닥치는 풍압에 케라스는 스트레킬을 밀어내고 몸을 돌렸다.
주먹과 검이 부딪쳤다.
주먹이라는 이름의 검은 부러지지 않았다. 노기사는 검술의 이치에 따라 주먹을 움직였고, 케라스도 어쩔 수 없이 검술로 주먹을 밀어냈다.
“빌어먹을! 마족의 잔재 따위가!”
“역시 제국 짓이었군.”
노기사는 전신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더 많은 정보를 남기기 위해 입을 움직였다.
“내 정신력은 실시간으로 갉아먹히고 있네. 이 육신, 마족의 육신의 대가겠지. 오래는 못 버티네. 그러니 자네가 해야만 해.”
노기사는 케라스를 상대로 분전했지만, 그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케라스의 검은 노기사의 평생 검술이 깃든 주먹은 베지 못했지만, 신체 다른 부분은 아니었다.
케라스의 검은 노기사의 팔을 잘랐다.
노기사는 멈추지 않았다.
손이 없으면 발로, 발이 없으면 몸으로.
평생 휘두른 검에 부끄럽지 않게.
노기사의 발이 올라갔고, 신발이 불타며 드러난 맨발과 검이 서로를 밀어냈다.
“빌어먹을!”
케라스는 입으로 연신 거친 말을 쏟아냈다.
원본이 고위 기사라고는 하지만, 마족 하나를 단칼에 베어내지 못하고 있다.
다른 기사단장들이 봤다면 한 달은 비웃을 일이었다.
케라스의 몸에서 뿜어지는 열기가 한층 강해졌다.
노기사의 허벅지가 터질 듯이 부풀었다.
양발로 몸을 지탱하는 케라스와 한 발로 선 노기사.
공격에 실을 수 있는 무게가 달랐다.
기사들이 몸을 날려 미끼가 되었다. 세 명의 기사가 몸을 불태워 케라스의 몸을 붙들었다. 그들은 불타 죽으면서도 비명 하나 지르지 않았다.
전우들이 앞에서 죽어갔다.
적으로 만났지만, 마지막에는 공동의 적을 두고 싸우게 되었고, 다시 과거의 전장에서처럼 목숨을 내던지며 적의 발을 붙잡고 있다.
스트레킬은 투구를 벗어던졌다.
호흡이 한결 편해졌다.
어차피 다가가면 녹아버릴 갑옷이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벗어버리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스트레킬은 케라스의 등을 노렸다.
피부가 따갑도록 등을 찌르는 살기에 케라스가 소리쳤다.
“씨바아알!!!”
케라스는 방심하지 않았다.
스트레킬과 노기사는 죽일 가치가 있는 기사였고, 그래서 처음부터 신비를 사용했다.
그가 예상하지 못한 건 근처에 있던 잡다한 기사들이었다.
미친 새끼들이 몸이 불타 가는데도 몸을 잡고 떨어지지 않을 줄은 몰랐다.
한껏 취한 약쟁이들도 하지 않을 짓을 정신 멀쩡한 기사가 해대고 있다.
케라스는 마족이 날뛰는 전쟁을 모른다.
마족과의 전쟁에서 기사의 목숨은 한없이 가벼웠고, 기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방법을 배웠다.
인간의 존엄이 바닥없이 추락하는 지옥에서, 기사들은 인간으로 죽는 방법을 터득했다.
하나의 목숨으로 공국이, 인류가 하루 더 연명한다면, 그건 세상에서 가장 존엄한 죽음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스트레킬과 그 전우들은 죽는 방법을 배웠다.
출신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유파가 다르지만, 그들은 죽는 방법을 공유했다.
최전방에서 마족과 검을 맞대지 않고선 배우지 못하는 지식이다. 그러니 케라스는 기사들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불가해한 현실 앞에 그가 할 수 있는 건 발버둥과 욕설이 전부였다.
스트레킬의 검이 케라스의 심장을 향해 쏘아졌다. 노기사가 시간을 끌며 훤히 드러난 등으로, 저 괴물을 죽일 유일한 무기, 바체아 제국의 유물을 찔렀다.
케라스도 얌전히 당해주지는 않았다.
불길이 강해졌다. 그는 머리가 아프고 몸에 힘이 빠질 정도로 신비를 뽑아냈다. 거대한 화염이 케라스와 케라스 근처에 있던 기사들을 감쌌다.
노기사의 비늘이 말라붙었다. 유물에 보호받는 스트레킬의 갑옷 표면이 녹기 시작했다.
케라스의 몸에 달라붙은 기사들이 재가 되었다.
몸이 자유로워진 케라스는 뒤로 손을 뻗었다.
정확히 스트레킬의 검 끝이 향하는 방향이었다.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스트레킬의 검이 케라스의 손을 파고들었다. 케라스는 손에 신비를 집중했다.
손으로는 안 된다. 기사의 검이다. 사람의 신체는 간단히 관통한다.
케라스는 하나의 형상을 강렬히 의지했다. 케라스는 순간 정신이 날아갔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무형의 불이 형체를 이뤄 스트레킬의 검을 붙잡는다.
나아가던 검이 멈춘다.
“네까짓 것들이 나를 죽이려 해애애!”
케라스의 눈동자에 불이 깃들었다. 눈동자 안에서 불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스트레킬은 겨우 한 번의 실패로 멈추는 사내가 아니었다.
스트레킬은 케라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케라스의 신비는 압도적이지만, 그의 육신은 인간이다.
검으로 벨 수 있다면, 손으로 꿰뚫을 수도 있다.
케라스가 검을 휘둘렀다.
노기사가 뒤로 튕겨 나갔다.
케라스는 철을 베는 기사다. 전신 갑옷 따위 그의 앞에서 맨몸과 같다.
케라스가 스트레킬의 팔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스트레킬의 팔뚝이 부드럽게 잘렸다. 유물의 보호를 못 받게 된 갑옷이 녹아 쇳물이 되었고, 스트레킬의 잘린 팔은 쇳물과 함께 연기를 냈다.
갑옷 표면이 녹으며 갑옷 내부로 전해진 열기가 스트레킬의 전신 피부에 들러붙었다.
익숙한 작열통이다. 최소로 잡아도 신경까지 익혀버리는 극심한 화상이다.
한 부위만 입어도 치명적인 화상이 전신을 덮는다.
‘살긴 글렀나.’
그러면.
한 발짝이라도 더.
한 번이라도 더.
저것을 물어뜯는다.
살점 하나라도 더 뜯어먹는다.
스트레킬이 검을 쥔 손을 움직였다.
신비로 검을 붙잡고 있던 케라스의 집중력이 약해진 틈.
스트레킬이 케라스의 손과 팔뚝을 반으로 잘랐다.
스트레킬이 끔찍한 고통에서 정신을 유지하듯, 케라스도 고작 팔이 잘린 고통 따위에 전투 불능이 되지는 않았다.
케라스가 검을 휘둘렀다. 스트레킬도 검을 휘둘렀다.
외팔이 기사들이 서로의 검을 맞댔다.
“빌어먹을 벌레 새끼들! 네놈들을 나 케라스 아니게온이 인정하겠다! 황제 직속 호위이자 제국의 이인자가 인정하겠다! 그러니 제발 뒤지란 말이다!”
케라스의 발작에 스트레킬은 짧게 답했다.
“지랄.”
그는 케라스에게 몸을 바짝 붙였다. 검이 교차하며 서로의 얼굴이 바로 앞에서 보였다.
갑옷이 녹는 환경이다. 투구를 벗은 스트레킬은 머리카락과 눈썹이 모두 타고, 피부도 녹아내렸다. 시야도 흐릿했다.
스트레킬이 입을 벌렸다. 그리고 케라스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아쉽다. 목의 동맥을 노렸는데, 마지막에 몸을 비틀어 어깨를 먹는 게 한계였다.
스트레킬은 케라스의 살점을 씹어 삼켰다.
“미친 새끼!”
“최고의 칭찬이군.”
“맞아요. 저희에겐 그게 칭찬이죠.”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목소리가 실렸다.
“지각이다.”
“저걸 죽이려면 저도 준비가 필요해서요.”
“뭐, 뭐냐! 이건 누구 목소리냐!”
케라스가 미친 사람처럼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방을 감싼 케라스의 불길을 뚫고 검은 물체가 날아왔다.
단지 검게 뭉쳤을 뿐인 쇳덩이. 그렇기에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는 무기.
대포가 쏘아낸 포탄.
케라스가 불을 움직였다.
이 싸움이 시작되기 전이었다면, 직격하는 포탄은 그에게도 위협이었다.
그의 불도 순수한 쇳덩이인 포탄을 단번에 녹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그의 불은 사물을 붙잡는다.
케라스는 불로 포탄을 막아내려 했다.
불길로 포탄을 감싸려던 케라스는 머리를 망치로 두드리는 충격과 함께 뒤로 밀려났다.
포탄은 녹지 않았다. 쇠를 녹이는 불의 신비 안에서 멀쩡히 형체를 유지했다.
케라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바람…?”
바람이 포탄을 감고 있었다. 포탄을 감싼 신비가 그의 신비로부터 포탄을 보호했다.
케라스가 몸을 틀었다. 포탄이 그의 옆구리를 한 움큼 베어 먹었다.
“씨발….”
흘러내리려는 내장을 불로 틀어막으며, 케라스는 뒤로 물러났다.
사방을 감싸고 있던 케라스의 신비도 사라졌다.
케라스의 신비가 사라져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미 그의 신비가 만들어낸 불씨가 평야에 퍼져 사방을 불태우고 있었다.
“씨발 새끼들. 언젠가, 언젠가 돌아와서 너희를 없애주마. 네놈들의 삶 자체를 세상에서 지워주마.”
케라스는 달려 도망치려 했다. 중상을 입었지만, 육체 능력과 신비를 잘만 이용하면 죽지는 않을 거라는 계산이 섰다.
이 이상 부상을 입지 않으며 탈출하는 게 급선무였다.
달리는 케라스 앞을 노기사가 막았다.
케라스는 노기사의 눈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저건 이미 인형이다. 내면의 역사를 모두 뽑아 먹히고 자아 없는 마족이 되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잿더미가!”
노기사는 답하지 않았다. 흐릿한 눈으로 케라스를 보며, 남은 한 손으로, 손을 검으로 삼아 자세를 취했다.
노기사 안에 노기사는 없다. 노기사의 역사를 먹은 마족만이 이 자리에 있다.
마족은 노기사의 역사를 먹었다. 그의 인생을, 그의 검술을 먹었다.
그러니, 이 앞에 있는 마족은 노기사의 검술이다.
때론 이기적으로, 때론 이타적으로.
한 기사가 풍진 세상을 살아가며 겪은 모든 감정을 담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 검이다.
케라스가 검을 휘둘렀다. 검에 베이지 않는 건 주먹과 발뿐이다. 몸통을 반으로 갈라버리면 된다.
마족은 검을 막지 않았다. 마족은 자신이 저것을 막지 못한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마족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붙잡는다. 저것을 붙잡는다.
몸의 마지막 한 조각이 사라질 때까지 붙든다.
케라스의 검은 마족을 반으로 갈랐다. 마족은 잘린 몸으로 케라스에게 달라붙어 그의 움직임을 막았다.
“나한테 왜 그러냐고! 도대체 왜! 이 씨이발 것들아아아아!”
케라스의 몸에서 불이 뿜어졌다. 불이 마족의 몸을 태웠다.
마족의 몸이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전형적인 마족의 죽음이었다.
속박이 풀린 케라스가 움직이려 했다.
서부는 이제 진저리가 난다. 황제의 명이 아니라면 다시는 서부 땅을 밟지 않….
케라스의 몸이 기우뚱 기울었다.
“어?”
돌이었다. 그의 신비를 뚫고 들어온 돌멩이가 머리를 때렸다.
케라스의 신비는 쇠를 녹이지만, 돌까지 녹이지는 못했다.
희미해지는 의식 사이로 케라스는 노기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을 걸고 지킨다.”
하나의 검술이 세상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