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30
제230화
마르는 천하를 담은 땅을 주유했다.
따로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다.
마족이 사라지고 주기적으로 하던 뒷정리의 일환이었고, 시간이 지나 습관이 되어버린 행동이었다.
마르는 땅을 접어 움직였다.
그녀의 한 걸음은 다른 사람들의 하루였고.
그녀의 백 걸음은 남들의 백 일이었다.
과거였다면, 쓸데없이 허비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많은 역사를 쌓았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역사를 쌓는 의미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가 이룬 신화는 전 세계에 퍼져 만인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아이의, 어른의, 여자의 남자의, 인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그녀의 역사가 되어 차곡차곡 쌓였다.
숨만 쉬어도 역사가 쌓인다.
누군가 평생 노력해 쌓을 역사가 자고 일어나면 쌓여 있다.
마르와 그 동료들이 도달한 영역은, 그런 불합리의 영역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천하를 담은 땅을 떠돌던 그녀는 달밤에 멈췄다.
그녀의 발이 멈춘 자리는 수백의 인원이 노숙하는 잠자리 중앙이었다.
수십 개의 모닥불이 타올랐고, 수십 명의 사람이 경계를 섰다.
그 중앙에 한 명의 여인이 잠들었다.
마르는 마리나의 머리맡에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실라나티엘이 아니지만, 실라나티엘인 여자.
실라나티엘이면서, 실라나티엘이기를 포기한 것들을 품었고, 실라나티엘을 향한 증오 또한 담았다.
마르는 마리나에게 크게 관심을 쏟을 생각이 없었다.
역사 훔치기 따위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법사의 역사를 탐낼 수 없었고, 새로운 실라나티엘의 등장 또한 아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녀가 없어져도 제국에는 실라나티엘이었던 것들, 실라나티엘이 될 수 있는 것들이 남아 있었으니까.
마리나를 보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래서 그녀는 생각을 밖으로 내었다.
역사를 억누르지 않고.
마르 실라나티엘의 역사를 담아.
“그 몸에 새겨진 업의 굴레에서 모두 벗어난다면, 네게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허락하겠어.”
과거의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도, 모닥불 바로 옆에 있던 기사조차 듣지 못한 말은.
하나의 역사가 되어 천하를 담은 땅에 또렷하게 새겨졌다.
* * *
세 마리 말이 평야를 달렸다.
엘리제는 자기 옆을 따라오는 말 두 마리를 사납게 노려봤다.
진심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힘을 쓰고 있는데, 말이 두 마리나 자신 옆에서 달리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놈들 앞에 있는 바람막이가 자기 앞에 있었으면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그런 항의의 의미를 담아 엘리제는 제 주인을 노려보았다.
시선을 못 느꼈을 리가 없는데 주인은 엘리제의 항의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확 멈춰버려?
발칙한 생각은 생각에서 끝났다. 그랬다간 한 달 내내 마구간에 갇혀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의 주인은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엘리제는 불만을 꾹 참고 발을 움직였다. 주인도 싫지만, 제 앞에 다른 말이 달리는 건 더욱 싫었다.
마법을 사용해 얼굴을 때리는 바람을 옆으로 흘려내며 마르할은 입을 열었다.
“성황국이라는 국가는 어떻게 성장했을까요? 마린?”
“어… 종교요?”
각성제까지 먹인 말 위에서 입을 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마르할이 만든 바람 덕에 대화를 나누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정답이지만, 너무 포괄적이에요. 스트레킬은 알아요?”
“기부다.”
“틀린 건 아니지만, 그건 국토 이야기죠.”
“국토를 기부받아 성장했다고요?”
마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녀는 비누에서 거품을 내 목욕하는 법을 처음 알았을 때만큼이나 놀랐다.
뽀송뽀송한 피부와 매끄러운 머릿결을 처음 만져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던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토지 경주에 목숨을 걸었다.
수많은 사람이 삶을, 목숨을 걸고 가지려 하는 게 땅이다.
땅을 기부하다니?
마린은 평생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성황국이 처음 세워졌을 때는, 성황국도 전쟁을 했어요. 선민사상은 어느 국가에나 있지만, 자기들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미친놈들은 이전에는 없었어요.”
교회의 선민사상과 귀족의 선민사상은 거의 같다.
신에게 선택받았기에 사제는 기적을 행하고, 사람들을 계몽할 자격을 가진다.
남들보다 뛰어난, 선택받은 사람이기에 귀족들은 우민들을 다스리고 이끌 자격을 가진다.
귀족들은 그 증거로 주로 신비를 제시한다.
신비 말고는 내세울 것도 없다는 게 맞는 말이다.
마법도, 기적도, 결국 신비의 다른 이름이니까.
“성황국은 멸망을 피해 자리를 잡았어요. 그리고 그들은 전쟁도 하지 않고 땅을 얻기 시작했죠. 국경 근처 귀족들이 사제가 되는 조건으로 땅을 기부했거든요.”
“어째서요?”
“귀족도 자신들이 하늘에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말은 자주 했어요. 성황국은 한층 더 나아가 아주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떠들고 다녔죠. 신이 선택한 권력. 얼마나 먹음직스러워요?”
“토지를 빼앗긴 왕은 가만히 있었나요?”
귀족이 토지의 역사를 사용하는 걸 막기 위해 국가의 모든 영지는 왕이 귀족에게 빌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마르할에게 예전에 들었던 내용이다.
마린은 이제 그 과정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나라의 왕이 역사를 알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어느새 관습처럼 굳어진 내용이리라.
모든 국가의 토지는 궁극적으로 왕에게 귀속된다고 명시해두는 편이 왕이 권한을 휘두르기도 편하고.
토지는 왕의 것이고, 토지를 기부했다면 귀족이 허락도 없이 왕의 땅을 남에게 준 것이 된다.
“당연히 항의했죠. 전쟁을 하기도 했어요. 항의는 무시당했고, 전쟁은, 전쟁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학살이었죠. 성기사의 무시무시함은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지금은 토지 확장을 멈췄지만, 성황국이 토지를 한창 확장할 당시 동부 국가의 왕들은 성황국을 증오하다시피 했다고 해요.”
“연합해서 공격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들 국가에도 교회가 들어서고, 평민들이 신을 믿는 와중에요?”
“…….”
마린은 입을 다물었다.
마린은 마르할과 함께 다니며 여러 일을 경험했다.
그리고 도둑 아르고의 제자이기도 했다.
아르고의 방대한 지식과 비전은 마린에게 이어졌다.
마린이 이은 지식은 손톱의 때 수준이지만, 그 작은 지식은 마린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바꾸었다.
가만히 두면 귀족들이 땅을 기부해 버린다. 그렇다고 성황국을 공격하자니, 그들도 이미 교회와 사제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교회는 민중의 지지까지 받는다.
마린이 공국에서 지내던 영지는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이었고, 사제가 가끔 선심 쓰듯 베푸는 기적으로 목숨을 살린 사람이 주변 마을을 모두 합쳐 수십 명은 되었다.
또 사제들은 갓난아기에게는 무료로 병을 봐준다.
교회가 없는 지역과 교회가 있는 지역은 거리에 보이는 아이의 숫자가 다르다.
사제를 탄압하고, 나아가 사제들의 구심점인 교회를 부수려 한다는 소문이 돌면?
민심이 나빠진다.
기사를 거느린 귀족들은 민심을 무시해도 좋을 힘이 있다. 하지만 나빠진 민심이 모든 면에서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전쟁으로 얻을 이익과 손해를 저울에 올려보고, 타산이 맞지 않으면 전쟁도 없다.
“이건…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어요.”
“맞아요. 그리고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건 종교의 권위죠. 귀족을 홀리는 신의 권위, 민중을 홀리는 사제의 권위. 그리고 권위를 만들어내는 선민사상. 그게 성황국을 키웠어요. 그리고 지금 서부는 두 가지 시련을 마주했어요. 서부는 멸망해야 한다는 괴악한 주장, 그리고 기존의 방법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병.”
“둘 다 성황국과 이어지는군.”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스트레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영웅이었고, 영웅이 받아야 하는 대접도 받아보았다.
영웅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도 보았다.
영웅이 숭배의 대상이라면, 그 반대도 있다.
경멸의 대상, 감정의 쓰레기통.
숭배로는 채워지지 않는 감정을 채워주며 민중의 불만을 해소하는 희생양.
서부 출신들이 경멸의 대상이 된다면, 반대로 숭배받는 사람도 나타날 것이다.
동부 출신…이라고 간단히 끝나면 좋겠지만, 서부에 사는 사람의 반은 동부 출신이다. 바로 옆집 사람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으라니, 그게 될 리가 있나.
옆집 사람은 감정을 나누는 동등한 존재이지, 숭배의 대상은 되지 못한다.
마침 동부에는 수백 년 동안 숭배받았던 직업이 있다.
신에게 선택받아 기적을 행하는 사람.
사제.
그들이 치료에 난항을 겪는 병까지 완치한다면?
교회의 영향력이 떨어지는, 성황국을 증오하는 사람이 잔뜩 있는 서부에서도 교회와 사제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모두 성황국의 수작인가?”
“소문은 성황국 짓일 거예요. 병은 우연이겠지만, 교황청은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죠.”
“네 말대로 성황국이 움직이기 최적의 환경이군. 막을 방법은 있나?”
“구체적인 건 상황을 보고 정해야겠지만, 생각해둔 게 있긴 해요.”
땅에서 풀이 사라지고, 황야가 나타났다.
마르할은 생명력 넘치는 땅을 벗어나 서부 황야로 돌아왔다.
“어, 저거 말리바 리시 부하네요.”
“아직 측량도 안 끝났어요.”
“처리하고 갈 건가?”
“그러죠.”
서부에선 일상처럼 사람이 죽어 나갔다.
* * *
도시로 돌아가던 카반은 어떤 문양을 가지고 있던 남자에게 두 통의 편지를 전달했다.
편지를 받은 남자는 그대로 북상해 곡창지대로 들어섰고, 거기서도 계속 북상해 돌로 만들어진 요새에 도착했다.
공국 병사들의 눈을 피해 성벽에 접근한 남자는 성벽의 한 부분을 꾹 눌렀다.
고위 공성 기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개구멍이 나타났고, 남자는 개구멍을 통해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도시는 붐볐다.
아스파룸은 군대의 모든 역량을 도시에 쏟아부었다.
공국 왕실의 무한한 자금 지원에 힘입어 공국 병사들도 배곯는 일이 없었고, 도시에는 이미 튼튼한 집이 완성되어 있으니, 생활에 부족한 것이 없음이라.
비어 있던 도시는 측량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어엿한 도시의 모습이 되어갔다.
도시에 잠입한 남자는 미리 훔쳐두었던 공국 병사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병사들에게 물어물어 한 명의 지휘관을 찾았다.
셰르도라는 남자가 있다.
마족에게 멸망한 국가의 군인이었던 남자는 군인 가문 출신이라 평생을 사람을 죽이는 기술만을 익혔다.
그의 눈은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사람의 빈틈을 살폈고, 몸은 언제든 사람의 급소를 찌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머리에는 과거 있었던 수백 개의 전쟁사와 수백 개의 전략, 전술이 뇌리 깊은 곳까지 스며 언제든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능히 살인자의 귀감이었다.
모든 전쟁이 끝나고, 평생 익힌 기술을 내려놓을 기회가 있었으나, 남자에게는 동생과 같은 부하들이 있었고,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와 평생 익힌 기술이 전부였던 남자는 군대가 월급도 주지 못하는 자금난에 시달릴 때도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돈을 내가며 꾸역꾸역 군에 남았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던 남자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가능하겠습니까?”
“흐. 내가 무슨 꼴을 보면서 여태 버텼는데.”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가서 말해. 도시 주인이랑 협상할 준비나 해두라고.”
은밀한 대화가 오갔다.
그날 밤. 공국군 총사령관 아스파룸이 암살당했고, 그의 직속 부관도 아닌 엉뚱한 인물이 공국군의 임시 지휘관이 되었다.
마족 전쟁과 연합 전쟁에서 혁혁한 군공을 세우고도 끝끝내 출세를 거부하던 한 명의 남자였다.
아스파룸은 아들의 원수를 영원히 갚을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