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33
제233화
마르할과 노아는 거리로 나왔다.
서부에는 꿈이 있었다.
돈을 벌어 거상이 되겠다는 꿈, 지주가 되겠다는 꿈, 역사에 남을 잔혹한 범죄자가 되겠다는 것도 꿈은 꿈이었다.
간절히 품은 소원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소원으로 움직였다.
소원이 모습을 감췄다.
꿈과 소원이 사라진 자리에는 멸시와 폭력이 자리했다.
“죽여! 서부 새끼들은 다 죽여버려!”
“서부의 주인은 우리밖에 없다! 서부를 점령한 불한당들을 내쫓고 우리 땅을 되찾자!”
“미개한 서부인들이 대륙을 오염시키고 있다!”
“서부를 청소하자! 깨끗한 서부를!”
수백 명씩 무리 지은 사람들이 살기를 내뿜으며 거리를 걸었다.
비슷한 무리가 거리마다 어슬렁댔다.
서부 출신들이 주인인 상점과 여관이 습격당했다.
상점 주인들은 폭력에 시달렸다. 죽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평등하게 기둥에 매달렸다.
산 사람은 산 채로 기둥에 매달렸고, 죽은 사람의 머리통이 깃발처럼 흔들렸다.
“괜찮슴까?”
“화가 나네요.”
“…….”
마르할은 웃고 있었다. 현자들이 지을 법한 희미한 웃음이었다. 보는 사람도 편안해지는 웃음으로 마르할은 사람을 홀렸다.
메라와 식사할 때도, 네루를 설득할 때도 마르할은 웃었다.
똑같은 웃음이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용암 구덩이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깨지기 직전의 살얼음판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대화가 끊어졌다.
노아는 얌전히 마르할의 뒤를 따랐다.
마르할이 별장에 들어가기 무섭게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휴고가 종이 한 다발을 건넸다.
식당처럼 꾸며진 별장 1층 구석에는 이언이 서류 더미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마르할은 종이를 말없이 훑었다.
슥슥 넘기는 모습이 대충 넘기는 것처럼도 보였다.
“벌써 백 명이 넘게 죽었네요.”
“부하를 풀어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만, 인력이 모자랍니다.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마저 배신하는 형국입니다.”
“배신한 용병들은요?”
“일단 죽여 길드에 넘겼습니다만… 길드도 중간 간부 중에도 소문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력 수급이 쉽다는 점을 빼면 이용할 가치가 없는 집단이니까요.”
길드장까지 뇌물을 받아먹는 집단에 뭘 기대할까.
마르할이 길드를 몇 번이나 들쑤시지 않았다면, 용병 길드는 귀족들의 사병 조직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최선의 방법을 말해봐요.”
“저희도 뭉쳐 대응해야 합니다.”
“서부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출신을 가리지 않고 서로 협력했기 때문이에요. 출신을 따지기 시작하면, 서부는 멸망해요.”
동부와 서부를 가르면, 다음엔 국가를 가를 거고, 다음은 출신 지방을 가를 거다.
갈가리 찢어진 서부는 발전이 느려지고, 동부 권력자들은 서부를 맛있게 뜯어먹을 것이다.
공국은 여기, 제국은 여기, 성황국은 여기.
저희들끼리 땅을 나누고, 이권을 가르고, 서부 사람들의 목숨을 셈하겠지.
“자연스레 뭉치는 사람들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놔둬요. 뭉쳐 대응하는 집단이 하나도 없으면 반대로 수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알레스와 뤼겐 쪽에선 따로 들어온 정보 없어요?”
“알레스에 대해선 보고서에 정리해 뒀습니다. 뤼겐은 정보원이 조사 중입니다.”
작은 제국에서 활동하는 정보원이라 부를 사람은 샤힐레밖에 없다.
샤힐레가 조사 중이라면 믿고 기다릴 수 있다.
마르할은 서류를 계속 넘기며 가까이 있던 의자에 앉았다.
“알레스가 실각?”
“토지 문서의 주인도 바뀌었습니다. 성황국에 완전히 버림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노아, 아는 거 있어요?”
“성황국에서 사제가 왔고, 알레스가 쫓겨났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름다.”
“성황국이에요? 교황청이에요?”
“…이단심문관이 움직였슴다. 교황청일 검다.”
성황국의 뜻과 교황청의 뜻은 비슷하면서 다르다.
성황국은 국가고, 교황청은 종교의 심장이다.
동부의 대국인 성황국.
동부 전역에 영향을 미치는 종교의 중심 교황청.
어느 쪽을 내세우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가지는 정치적 의미가 다르다.
교황청이 움직였다면, 그건 종교의 뜻, 신의 뜻이다.
성황국이라는 국가를 지탱하는 신앙을 명분으로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강수를 뒀네요.”
국가의 실패는 국가의 손해로 떠넘길 수 있다.
정치를 책임지는 사제 몇을 경질해도 되고, 국가 간의 분쟁이니 배상금을 지급하고 끝낼 수도 있다.
교황청은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
전지전능한 신에게 선택받아 신에 가장 가까이 간 자들이 모이는 장소가 교황청이고, 교황청을 움직이는 교황의 뜻은 신의 뜻과 같다.
교황청의 실패는 신의 실패다.
전지전능한 신의 실패.
교회의 가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교황청은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죠. 그렇게 쉽게 꼬리가 잡히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어요.”
교황청도 많은 실패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도 꼬리를 잡히지 않았고, 교황청은 여전히 무결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르할도 교황청의 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없다.
현시점에선 너무 위험하다.
“교황청을 걱정할 때가 아니에요. 중요한 건 서부에서 자행되고 있는 무의미한 학살을 멈추는 거죠.”
별장 문이 열리며 스트레킬이 들어왔다.
스트레킬은 찬장에 있던 술을 꺼내 의자에 앉았다.
그의 왼손 갑옷이 칼처럼 변해 술병 입구를 잘랐다.
“어땠어요?”
“다 비슷하더군. 성녀는?”
“도움을 받긴 힘들어요. 감시당하고 있거든요.”
“왼손의 재생도 미뤄야겠군.”
“할 마음은 있고요?”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해. 손을 재생하면 이런 짓도 못 할 거 아냐.”
스트레킬은 갑옷의 형태를 이리저리 바꾸다가, 마지막에는 액체처럼 만들어 술병을 감싼 다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방침은 정했나?”
“일단은요. 대지주부터 만나야겠어요. 휴고, 아젠만은 돌아왔어요?”
스트레킬의 촉수처럼 움직이는 손을 꺼림칙한 눈으로 보고 있던 휴고가 대답했다.
“일주일 전에 돌아왔습니다. 다른 소식을 못 들었습니다.”
“적당한 선물 준비해줘요. 그리고 칼로스. 도시에 있죠?”
“자택에 머물고 있습니다.”
“나갔다 올게요.”
별장을 나가려는 마르할에게 스트레킬이 물었다.
“칼로스라면 나도 알지. 한 성깔 하는 인간인데, 호위는 필요 없나?”
“혼자 가는 게 더 좋아요.”
* * *
칼로스는 공국 출신 상인이다.
부친은 광물을 운반하는 작은 운반업을 했고, 아버지의 일을 도울 나이가 된 칼로스는 운송만이 아니라 광물의 매입을 시작했다.
칼로스는 상재가 뛰어났다.
그는 3년 만에 아버지에게서 상회를 물려받았고, 마족이 나타난 이후 무구로 사업을 넓혔다. 마족이 사라지고 모든 물자가 부족해지자 그는 잡화 전반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칼로스는 서부에 어마어마한 양의 물자를 대는 대상회의 주인이 되었다.
칼로스는 지주들도, 귀족들도 만나기 힘든 사람이었고, 귀족과 대지주의 접견 요청을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무시해도 되는 권력자였다.
그리고 마르할은 그런 칼로스를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칼로스는 자택 집무실에서 마르할을 맞았다.
칼로스의 외견은 탐욕스러운 상인의 전형이었다. 뚱뚱한 몸에 턱살이 세 겹으로 접혔고, 배를 감싼 옷은 터질 듯 부풀었다.
막 잠에서 깼는지 머리는 부스스했고, 옷도 구겨진 흔적이 보였다.
마르할을 본 칼로스는 억지로 눈을 떴다. 살에 파묻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을 떴는지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칼로스, 오랜만이에요.”
“젠장. 이번엔 뭘 뺏으러 왔지, 무기왕?”
칼로스의 턱살과 볼살이 부르르 떨렸다.
“그 별명, 그만 부를 때 안 됐어요? 창피해 죽겠다니까요.”
“나한테는 이게 편하다. 행동으로 사람을 규정한다. 얼마나 간단해? 그런 의미에서 네게 무기왕보다 어울리는 이름이 어디 있지? 내가 모은 무기의 절반을 쓸어간 인간에게 말이다.”
칼로스는 막대한 무기를 모았다.
마족에게 죽은 기사와 병사의 무기부터 시작해 용사에게 제압당하고 흩어진 국적 없는 3만 대군이 남긴 장비도 반 이상을 그가 회수했다.
흙바닥에서 박박 긁어모은 무기의 반 이상이 눈앞에 있는 남자의 손에 들어갔다.
군대 하나는 완전무장 시키고도 남을 물량이었다.
그만한 무기를 사들였다면, 어딘가 흔적이 남았어야 하거늘, 칼로스는 마르할이 구입한 무기가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잡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무기왕이다.
전사는 아니지만, 세상 누구보다 무기를 잘 다루는 인간.
무기와 사람을 다룬다고 해야 정확할까.
“바쁘니까 용건부터 말할게요. 당분간 무기 장사 접어요.”
통보에 가까운 발언에 칼로스의 턱이 덜덜 떨렸다. 살에 가려졌던 눈도 보였다. 실핏줄이 터진 눈이 마르할을 노려봤다.
“무기 상인에게 무기 장사를 접으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커다란 울림통에서 커다란 노호성이 터졌다.
그의 고함에 유리로 된 창문이 진동했다.
마르할은 그의 외침을 무시하고, 옆에 있는 선반에서 장식용으로 전시된 포도주를 가져와 병의 목 부분을 툭 쳤다.
병마개가 대포의 탄환처럼 쏘아져 천장에 맞고 떨어졌다.
칼로스의 몸이 움찔 떨렸다.
“칼로스. 많이 컸네요?”
“나는 대상인이다! 대지주라도 날 이렇게… 대할 수는… 없….”
기세 좋게 소리치던 칼로스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지더니, 웅얼거림이 되었다.
원래 안 좋던 안색이 푸르죽죽해졌다.
마르할은 토지 경주에서 칼로스의 부하들을 만나 말했다.
칼로스가 자신의 피를 보면 기겁한다고.
거짓말은 아니다. 그냥 칼로스는 피를 보면 기겁을 한다.
베이올라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그도 피 공포증 환자다.
마르할이 포도주를 마시며 입가를 타고 흐른 포도주가 꼭 피처럼 보였고, 피를 연상하자 칼로스의 안색이 나빠졌다.
호흡도 거칠어졌다. 후욱. 후욱. 입으로 숨을 짧게 내뱉었다.
“제가 우스워요? 무기를 안 드니 막 만만한 사람 같죠?”
“아, 아닙니다.”
연합이 생기고 마르할이 세력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할 무렵, 마르할은 폭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지금이야 입만 움직일 수 있으면 어지간한 상황에선 살아남을 자신이 있지만, 그때는 모든 게 미숙했다.
자신의 미숙을 가릴 방법으로 마르할은 폭력을 택했다.
마르할과 꾸준히 거래하던 칼로스는 평소 하던 것처럼 사기를 쳤다.
다른 상인들도 다 하는 일이었다. 당하는 놈이 등신, 들키면 위약금 듬뿍 내고 협상하면 되는, 상인들 사이에서 일상처럼 있는 일이었다.
마르할이라는 인간을 몰랐다는 게 칼로스의 잘못이었다.
사기당한 마르할은 칼로스를 공격했다.
야밤에 마르할과 부하들이 칼로스의 저택으로 들이닥쳤다.
어렵게 고용한 은퇴한 고위 기사도 마르할의 부하들 앞에서 사지가 잘리고 내장이 질질 흘러내렸다.
저택이 피로 물들었고, 그의 집무실에는 시신의 팔다리와 내장이 걸렸다.
그날 이후 칼로스는 피를 보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흐르는 붉은 액체만 보면 방 중앙에서 흔들리는 선홍색 촛불과 주변에 걸린 빨간 색채들이 뇌리를 어지럽혔다.
“손해만 보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좋은 정보를 준 건데, 그리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아니, 아니다! 안 팔겠다! 소문이 잦아들 때까지 무기 창고는 열지 않겠다! 그러면 되겠지!”
“경비 하나 없는 창고를 불한당들이 털어간다든가. 부하 중 한 명이 몰래 창고 물건을 바꾼다든가 하는 일도 없겠죠?”
“물론, 물론이지!”
“믿고 있을게요.”
마르할은 빈 술병을 책상 위에 올렸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칼로스는 한참이나 심호흡하며 숨을 골랐다.
푸르딩딩해졌던 안색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호흡이 안정되자 그는 밖에 있던 집사를 불렀다.
“무기 계약이 몇 건이나 되어 있지? 아니지. 거래 물량은 얼마나 되나?”
“토지 경주와 경주 이후의 분쟁으로 상당한 양이 거래 대기 중입니다.”
“싹 다 취소해! 위약금은 내 사비로 낸다. 그러니까 전부 취소해!”
“또 그 남자입니까? 하지만 회주님, 아무리 대지주라도 대상회의 목줄을 틀어쥘 수는….”
쨍그랑!
칼로스가 던진 술병이 집사의 앞에 떨어졌다.
“내가 우습게 보여?”
살 더미 사이에서 칼로스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마르할 앞에선 고양이 앞의 쥐새끼처럼 고개 숙여도, 그는 백 개가 넘는 창고의 주인이며, 천 명이 넘는 상인을 부리는 대상회의 주인이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 수 있는 맹수다.
“집사. 내가 널 집사라 부르는 이유가 뭐지?”
“제가 회주님의 보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 보좌. 네가 내 주인이야? 네가 내 상전이냐고!”
“아닙니다.”
집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현재 그는 칼로스의 다섯 번째 수석 집사고, 1년 전에 그의 위에는 두 명의 보좌관이 더 있었다.
“그래. 사람은 언제나 자기 위치를 알아야지. 무기 거래 다 취소하고. 약품을 최대한 매입해. 가격이 적당하면 마약도 모조리 사들여.”
“알겠습니다.”
집사는 팔에 걸치고 있던 천으로 깨진 술병 조각을 정리하고 방문을 닫았다.
칼로스는 서랍을 열고 장부를 꺼냈다.
“피가 튀는 곳에 꼭 무기만 팔라는 법은 없지.”
상처를 입으면 치료를 해야 하고, 치료에는 약이 필요하다.
유혈 사태까지 일으키고 있는 시끄러운 소문.
이미 집단을 이뤄 행동에 나서는 사람까지 있다. 이대로 두면 서부 내전까지 일어날 수도 있는 성가신 사상이다.
서부가 두 편으로 갈라지면, 양쪽에 무기를 팔아 한몫 챙기려 했지만, 마르할이 나서며 무기는 팔 수 없어졌다.
죽음의 상인도 제 죽음은 두려웠다.
죽음을 팔 수 없다면, 삶을 팔아야지.
칼로스는 장부를 열었다.
장부에 적힌 숫자가 황금으로 빛나는 듯했다.
“차선책으로 쓸 셈이었지만, 괴물이 움직였다면 다르지. 돈이 된다. 이건 돈이 돼.”
마약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짜릿한 쾌감에 칼로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