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38
제238화
불야성이 달렸다.
금빛 마차가 밤의 어둠을 몰아냈다.
얇은 마차의 벽면을 뚫고 눈부신 빛이 뿜어졌고, 빛은 사방을 환히 밝혔다.
하늘의 달보다 강렬히 빛나는 지상의 마차는 저 멀리 있는 산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지만, 평소 마차 하나만 보여도 득달같이 달려드는 도적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도적은 마차 근처에도 오지 못하고 마차를 호위하는 기사들에게 몸이 반으로 갈라져 죽었고, 극소수의 경험 많은 도적은 저 마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공국의 왕 슈바벤 베르그번.
그의 정적들이 칭하기를 불야성의 백귀.
귀신이 탄 마차는 귀신의 집과 같음이라.
굳이 귀신의 집에 흙발을 들이밀고 싶어 하는 얼간이는 없었다.
마차는 길도 아닌 산속을, 숲속을 달렸다.
불야성의 백귀는 자신의 주위가 어두워지는 걸 용납하지 못했고, 왕의 호위들은 왕이 눈에 띄는 방법으로 왕성을 벗어나는 걸, 정확히는 서부로 가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길도 없는 숲을 달리는 마차는 두 고집불통이 일궈낸 극적인 타협의 결과였다.
마차는 길이 없는 숲을 달렸지만, 동시에 마차는 길을 달렸다.
앞서 달리는 기사들이 나무를 밑동부터 베어내며 실시간으로 길을 만들었다. 급조한 길은 빈말로도 깔끔하다고는 못했다.
마차가 뒤집어질 듯 덜컹거렸으나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큰 흔들림을 느끼지 못했다.
왕은 재상에게 하문했다.
“재상. 그 책은 읽어보았나.”
“예. 완독하였습니다.”
“감상은?”
“율란 에고만이 집필한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짐이 움직일 가치가 있었다는 거로군.”
“하지만 기이합니다. 성인의 손이 닿은 물건이라면, 그게 치료와 관련된 물건이라면 마땅히 그만한 역사가 깃들어야 합니다. 그 책은 어떤 역사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다.”
사본이다. 그런 귀한 물건의 원본을 내어줄 리가 있나.
서론 말고 다른 책도 있다면, 그것도 모조리 사본일 것이다.
“소신은 과거 율란 에고만의 필체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의 필체는 그 필체와 완전히 같습니다.”
“사본을 만든 자가 유능하다는 뜻이군. 지금부터 만날 사람은 그 유능한 사람을 부하로 부리는 인간이고.”
“대지주 마르할. 경계 도시의 주인. 공국에서도 주의해 살피고 있는 자이지만, 기이하리만치 정보가 없는 자입니다.”
“나도 안다.”
공국이 견제해야 할 세력은 둘이다.
제국, 그리고 서부 전체.
성황국과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긴 하지만, 공국과 성황국은 상당히 떨어져 있다.
공국과 성황국 사이에 직접 무력 충돌이 일어날 일은 일단 없다고 보아도 된다.
제국은 황제의 폭탄 발언으로 과열된 황권 계승 경쟁과 그로 인한 내부 권력 구조 변화로 충돌 위험이 현저히 줄었다.
차기 황제가 정해지면, 황권 강화를 위해 한 번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몇 년 후의 일이다.
남은 건 하나, 서부다.
서부는 공국과 맞붙어 있다.
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경계 도시들만 봐도 그렇다.
경계 도시 태반은 공국의 도시나 공국의 속국이 되는 도시와 토지를 공유한다.
경계 도시의 지주가 병사를 일으켜 공국 토지를 침공하면, 공국 측에선 한발 늦은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병사를 경계 도시에 주둔시키는 것으로 예방할 수 있지만, 그러면 서부와 공국 사이 긴장감만 높아진다.
동부 전역의 자원이 서부로 몰리며 공국도 간접적으로 상당한 이익을 보고 있다.
공국 영토를 지나가는 상인들이 내는 통행세만 해도 얼마인가.
서부의 성장을 견제하는 건 공국에도 손해가 되는 행동이다.
공국에 가장 좋은 건 이대로 서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서부를 견제해야 하지만, 서부의 성장을 막아서도 안 된다.
불야성의 백귀 앞에 놓인 문제는 상당히 난해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만남은 슈바벤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마르할. 아젠만과 함께 경계 도시 하나를 다스리는 대지주.
단순히 땅만 가진 지주가 아니라 여러 사업체를 굴리며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주다.
그런 인간이, 율란 에고만이 작성한 책을 미끼로 만남을 요구했다.
옛 인연, 아젠만이 보낸 편지를 보고 슈바벤은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고, 다음에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리고 즉시 이번 암행을 준비했다.
암행이라 부르기에 지나치게 화려하긴 하지만, 그건 불야성의 백귀의 정체성이니 어쩔 수 없다.
‘높은 사람이 오면 협상이 원활해져? 성인 율란 에고만이 작성한 의학 서적을 걸고?’
슈바벤에게는 마르할의 말에 담긴 의도가 보였다.
마르할이라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야인이 감히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얼굴 한번 봅시다.
마차가 멈췄다. 기사 한 명이 조심스레 마차의 문을 두드렸다.
“도착했습니다.”
“상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가겠다.”
기사가 문을 열었다.
슈바벤은 축축한 풀을 밟았다.
공국의 왕이 서부에 행차하는 건 위험도 크고, 이상한 소문도 만들 우려가 있다.
슈바벤과 마르할은 공국 안에 있는 버려진 숲에서 만나기로 했다.
슈바벤이 마차를 나가자 마법사들이 그의 주위로 빛을 만들었다.
빛이 어찌나 강한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불야성의 백귀. 그 이름은 절대 퇴색되어서는 안 된다.
슈바벤 베르그번이 죽어도, 불야성의 백귀는 살아야 한다.
천 년 동안 이어질 공국의 거대한 기둥이 되어야 한다.
슈바벤은 걸음을 옮겼다. 숲 중앙에 탁자가 있었다. 탁자에는 두 개의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고, 젊은 남자가 이미 의자 하나를 차지했다.
남자의 뒤에는 두 명의 남녀가 있었다. 남자는 전신 갑옷을 입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고, 여자는 방어구를 입고 있긴 하지만, 슈바벤의 호위들 수준에서 보면 맨몸이나 다름없는 차림이었다.
그러나 기사들은 경솔하게 행동하지 못했다.
자신감 넘치던 슈바벤의 기사들이 단 두 명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의자에서 일어난 마르할이 완벽한 공국 예법으로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슈바벤 베르그번 폐하.”
슈바벤의 한 발 뒤에서 따라오던 재상의 발소리가 잠시 끊어졌다.
마르할의 예법은 완벽했다.
그러나 그건 왕을 향한 예법이 아니라 자신과 동급의 귀족에게나 하는 인사였다.
처음부터 마르할은 자기 의지를 확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상전 대접받을 생각하지 말라고.
여긴 서로가 동등한 자리라고.
그게 재상의 심기를 건드렸으리라.
재상은 슈바벤 본인만큼이나 왕실의 품위를 중시하는 사람이니까.
슈바벤은 흥미가 일었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보고는 질리도록 들었다.
직접 만난 마르할은 단순히 비범하다는 말로도 손색이 있었다.
특별, 저 남자는 특별했다.
“슈바벤 베르그번이다.”
“폐하라 불리는 게 좋으십니까? 아니면… 불야성의 백귀라 불러 드릴까요?”
“좋을 대로.”
슈바벤은 의자에 앉았고, 이어 마르할도 의자에 앉았다.
실로 기괴한 광경이었다.
숲에 떡하니 놓인 탁자와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 한쪽의 머리 뒤편에는 무수한 광원이 숲을 밝혔고, 기사와 마법사가 탁자 주변을 포위했다.
“손님이 왔으니, 대접은 초대한 사람이 해야겠죠. 백귀께선 술을 좋아하십니까?”
“자기 전에 한 잔 마시는 정도다.”
“그러면 마음에 드실 겁니다. 스트레킬.”
슈바벤의 호위 기사들이 동요했다.
공국 영웅 스트레킬. 그 이름을 모르는 기사는 이 자리에 없다.
스트레킬은 현장에서 물러나고 잠시나마 정치인으로 생활했다.
슈바벤의 호위라면 스트레킬의 이름과 공적을 모를 수가 없다.
“우리 기사를 데리고 있었군.”
“공국이 버린 기사죠.”
스트레킬은 뒤에 던져둔 짐에서 술 한 병을 꺼내 마르할에게 건넸다.
마르할은 유리병에 담긴 술을 애용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술로는 취하지도 못하니, 자연히 비싼 술을 찾게 되었다.
스트레킬이 꺼낸 술은 나무 병에 담겨 있었다. 항아리에 필적하는 큼지막한 크기의 병은 입구 부분이 밀랍으로 밀봉되었다.
마르할은 마법으로 불을 피워 밀랍을 천천히 녹였다.
병에는 무수한 흉터가 있었다. 그 흉터 안에서 어떤 인장의 흔적을 발견한 슈바벤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바체아의 밀주! 몇 년산이지?”
“20년은 족히 넘었을 겁니다.”
술을 나무에 담아 밀봉하는 건 흔한 풍습이다.
하지만 나무에 바체아 제국 황제의 인장이 새겨지면 흔하지 않은 술이 된다.
바체아 제국에선 한 해에 열 병 남짓 특별한 술을 담갔다.
1년 동안 황제가 받은 공물 중 가장 좋은 것들을 선별하고, 선별한 공물을 다시 궁합이 좋은 것들로 분류한다.
그걸 술로 만든다.
100년은 거뜬한 나무통에 밀봉해 숙성한다.
거대한 제국에서 1년에 몇 병 만들지 않는 술이다.
슈바벤도 즉위하고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바체아 제국 사절에게 선물로 한 병 받은 게 끝이다.
“어떻게 구했지?”
“제 직업 중 하나가 용병이라서요. 서부 깊은 곳에서 멸망한 국가의 왕궁이 있던 자리에서 찾아냈죠.”
밀랍이 녹고 밀봉이 열렸다.
마르할은 나무로 된 잔을 꺼내 술을 따라 슈바벤의 몫을 건넸다.
재상이 슈바벤을 말렸다.
“폐하. 독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내가 죽으면, 서부가 무사할까?”
그가 독살당하면, 다음 왕이 되는 태자의 숙명은 서부 멸망이 된다.
눈앞의 상대는 그런 근시안적인 일도 보지 못하는 멍청이가 아니다.
술을 입에 머금고 향을 즐기던 슈바벤은 입안을 스치는 까끌까끌함에 잔으로 시선을 내렸다.
금빛의 아주 작은 비늘이 잔 안에 떠다녔다.
“오. 이거 제대로 된 물건을 건진 것 같군요.”
“그렇군.”
바체아 제국 황궁 내성 연못에는 황금 비늘을 가진 잉어를 기른다는 소문이다.
바체아 황실이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는 잉어는 먹기만 하면 모든 속병을 치료하는 기적의 약이라 했다.
교회가 세를 떨치지 못한 서부에서 황금 잉어는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다.
“공국은 서부와 동부의 가교 역할을 했지. 공국은 서부와 동부의 문화가 모이는 자리였어.”
마르할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잔을 비웠다.
“열어보기 전에는 내용물을 모른다고 해서 밀주. 바체아 제국에선 국가의 경사가 있는 해에는 만병을 치료하는 황금 잉어로 밀주를 담았다지.”
“몇 병 만들지도 않는 밀주 중에서 딱 한 병에만 잉어를 넣었죠. 그래야 열었을 때의 기쁨이 배가되니까요.”
둘의 대화를 모두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재상밖에 없었다.
그래서 재상은 더더욱 안심할 수 없었다.
‘단순한 대접이 아니다. 이미 협상은 시작되었군.’
바체아 제국의 밀주는 바체아 제국이 멀쩡하던 시절에도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바체아 제국이 멸망한 이후로는 아예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 되었다.
밀주의 내력을 정확히 아는 것을 보면 운 좋게 주운 물건도 아니다.
심지어 밀주 안에 든 재료의 의미도 안다.
황금 잉어를 넣은 밀주에 대해선 재상조차 처음 알았다.
일개 용병의 식견이 아니다.
저 남자는 술 한잔으로 자신의 무력과 식견을 모두 증명했다.
탁자에 앉은 두 남자는 다음 잔을 나눴다.
머리가 아찔해지는 향이 재상의 코를 간질였다. 술을 별로 즐기지 않는 재상도 혹하는 매력적인 냄새였다.
바람이 불며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나뭇가지가 만들어내는 그림자도 흔들렸다.
재상의 눈에는 숲과 어둠이 탁자 위에 있는 술을 탐내 혀를 날름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자연조차 홀리는 술과 함께,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